이 글은 블랙워터이슈(Black Water Issue, http://bwissue.com/)의 블랙빈이슈 코너에서 진행되는 원두리뷰입니다. 해당 링크를 따라가시면, 글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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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리아 로스터스, 코스타리카 카타라타 라 에스페란자(Coatrarica Finca Catarata La Esperanza)

 

알레그리아의 코스타리카는 따라주 지역의 카타라타 라 에스페란자 농장에서 재배된 커피입니다. 생두는 1500m의 중고고도에서 재배하였으며, 레드허니 프로세싱을 거쳤습니다.  홈페이지에는 2013/2014시즌에 재배된 커피라고 나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커피가 해당 시즌에 재배되었겠지만, 재배 시기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부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패키지에는 알레그리아의 로고와 홈페이지 주소, 그리고 간단한 테이스팅 노트가 나와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해당 원두의 정보를 찾아보니 해당 생두의 기본 정보가 나와있습니다. 부가적인 정보와 추출가이드는 따로 없었습니다. 커피를 구입할 때 참고할만한 정보만 간략하게 나와있어 깔끔한 느낌이 있었지만, 홈페이지에서도 마땅한 추출가이드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로스터리들은 자신들의 원두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로스터리에선 에그트론 넘버를 포함하여 구체적인 추출가이드까지 제공해주는가 하면, 알레그리아처럼 간략한 정보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다한 정보는 소비자로 하여금 스페셜티 원두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간략한 정보는 그 원두를 처음접한 사람들이 추출하기에 어려움을 준다는 점에서 각각 단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다양한 원두 패키지를 경험하면서 어느정도까지, 어떻게 정보를 제공하는가의 문제는 각각의 로스터들이 소비자와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결정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핸드드립 추출을 진행해봅니다. 드립굵기의 원두를 30g/92도/400ml의 레시피를 따라 3분 10초정도 추출을 진행했습니다.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커피에선 레몬그라스의 느낌이 강하게 풍겼습니다. 레몬의 신맛과 중약의 바디, 사탕수수의 단맛도 느껴졌으며 자두맛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에프터는 깔끔했으며 식으면서 살구맛과 자두맛이 도드라졌습니다. 밸런스도 비교적 괜찮았구요. 아쉬운 바디감을 조금 살려보기 위해 다른 추출을 계획해봅니다.

 

바디감과 풍미를 살리기 위해 콘필터를 사용해 푸어오버(Pour Over)방식으로 추출을 진행해봅니다. 30g/92도/450ml로 3분 10초가량 내렸습니다. 핸드드립과 동일한 조건에서 물을 부어주는 방식으로 좀 더 많은 양을 추출했는데, 오일리한 느낌이 바디를 잡아주니 밸런스가 살아나고 에프터테이스트가 부드러워졌습니다. 넉넉한 바디감 덕분인지 메이플 시럽의 단맛과 몰트의 느낌도 살아났습니다. 식으면서 살구맛이 강하게 나기도 했습니다.

 

 에스프로프레스를 통한 추출은 드립굵기에 17g/94도/270ml/3분 10초의 레시피를 따랐습니다. 추출시간을 조금 줄이는 대신 물을 붓고나서 바로 저어주었습니다. 달달한 사탕수수의 느낌은 여전합니다. 에프터의 몰트느낌은 에스프로프레스가 더 살려줍니다. 과일차를 마시는듯한 묽은 느낌이 아쉬웠는데, 추출실수인것 같습니다. 물을 조금만 덜 부어주고, 잘 저어준다면 훨씬 집중력있는 맛이 날 것 같습니다.

 

 

알레그리아의 로스팅은 전반적으로 테이스팅 노트를 충실히 따르는 커피였습니다. 알레그리아 로스터스의 코스타리카를 좀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는 콘필터 추출을 추천합니다. 물을 천천히 붓기보다 푸어오버식으로 부어주면서 추출한다면 풍미를 좀 더 잡을 수 있을것 같네요. 너무 가늘게 갈지만 않는다면 어느정도로 그라인딩을 하나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미를 살리고 싶으시다면 종이 필터 추출을 권해드리구요. 어림잡아 레시피를 잡아보았는데 잘 들어맞아 깔끔하게 마실수 있었다는 점은 알레그리아 로스팅의 높은 접근성을 보여줍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안정적인 추출을 위한 가이드가 없다는 부분이 아쉬운 점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기구별 추출법을 대략적으로라도 가이드해준다면, 누구나 쉽게 즐길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배송된 정글 에스프레소는, 적절한 기구가 없는 관계로 리뷰하지 않겠습니다. 에스프레소는 적절한 기구가 없을 경우 객관성도 떨어지고, 추출 가변성도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모카포트로 추출을 진행해 아이스라떼를 마셔보았습니다. 일전에 알레그리아 판교점에서 맛봤던 인상깊은 에스프레소의 맛이 생각나게 하더군요. 바나나우유를 마시는 듯한 깊이있는 맛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에스프레소 추출을 위한 기구가 마련돼있다면, 한 번쯤 마셔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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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볶는 곰, 메이플 블렌드(Seasonal Blend 'Maple')

 

로스터리 '커피볶는 곰'의 대표 블렌드 메이플은 모두 세 가지 커피가 들어있습니다. 고고도에서 재배된 스페셜티급의 케냐와 과테말라 그리고 여러 카페에서 선을 보인 콜롬비아 로스 나랑호가 블렌딩 돼 있습니다. 케냐와 과테말라에 대한 정보는 함께 동봉된 브로슈어를 통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콜롬비아에 대한 정보는 나와있지 않더군요. 콜롬비아 우일라(Huila)지역에서 재배되는 이 커피는 1300-1900m의 폭넓은 고도에서 재배되는 커피입니다. 제가 맛봤던 나랑호 커피들은 로스터리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2011년에는 Cup of Excellence에서 1위를 찾이할만큼 품질관리에 적극적인 농장인데, 이 블렌드에 사용된 콜롬비아 나랑호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나머지 블렌드에 사용한 원두들은 사진을 참고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정보들이 담긴 브로슈어는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만, 로스팅 날짜는 적혀있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택배로 수령한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시음을 시작했으니 로스팅 날짜는 대략 일주일이 지났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부 원두에서 기름이 베어나오는 모습을 보니 배전도가 어느정도일찌 짐작이 됩니다. 원두 자체에선 부드러운 메이플 시럽향이 느껴지는 군요.

 

 

 

두꺼운 브로슈어에는 브루잉과 에어로프레스에 추출 가이드가 상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추출은 이 방식 그대로 하리오 V60드리퍼, 에어로프레스로 진행해보았습니다.

 

 

브루잉 추출은 하리오 V60드리퍼로 드립보다 조금 가는 굵기로 2분 30초 동안 18g/92도/280ml를 추출합니다. 레시피에는 30g의 물을 붓고 2~3회 저어주라고 했는데, 이 부분이 조금 의아했습니다. 30g의 물을 적셨을때는 조금 퍽퍽한 감이 있었지만 일단 레시피대로 진행해봅니다. 100g, 200g, 280g 순으로 저울을 보며 브루잉을 진행했습니다. 추출된 커피에선 진하지는 않지만 고소하고 은은한 시럽향이 풍깁니다. 첫 모금에선 날카로운 신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매콤 달달한 맛이 느껴집니다. 메이플시럽같은 느낌은 있지만 달달함이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전반적으로 달콤 쌉사름한 신맛이 느껴집니다. 에프터에선 고소한 시럽향이 남습니다. 커피가 식으면서 달달한 느낌은 느껴지나 날카로운 느낌은 역시 커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혀끝을 아리게 하는 맛과 단맛이 같이 느껴집니다. 전반적으로 맛의 스펙트럼과 밸런스는 좁다는 느낌이 느껴집니다.

 

 

에어로 프레스 추출도 레시피를 따릅니다. 드립보다 조금 가는 굵기로 1분 40초 동안 18g/92도/220ml를 내려봅니다. 브루잉보다 약한 바디감이 느껴지지만 메이플 시럽맛이 느껴지는 에프터는 여전합니다. 날카롭고 아린맛들도 그대로 느껴집니다. 살짝 스모키한 향이 풍겨오기도 하는군요. 풍부한 느낌과 감미로운 느낌보단 약간 날카로운 뉘앙스가 지배적입니다. 보리나 곡물류의 느낌이 느껴지고 이어 달달함이 밀려옵니다. 날카로운 신맛이 이 달달한 맛을 가리는게 아쉬운 부분이네요. 에프터는 달달하고 감미로운 시럽향이 느껴집니다. 아몬드나 곡물류의 향이 강한 시럽향입니다.

 

 

날카로운 맛을 컨트롤 해보기 위해  드립보다 조금 굵은 굵기로 30g/92도/400ml를 뽑아봅니다. 하지만 날카로운 신맛과 아린 느낌은 여전히 지배적입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메이플 향은 매력적이나 벨런스와 향미 측면에선 부족함이 느껴지는군요. 마지막으로 메탈 콘필터를 이용해 브루잉을 해봅니다. 드립보다 조금 굵은 굵기로 20g/92도/300ml를 추출합니다. 종이필터를 사용했을 때보다 날카로운 느낌이 조금 줄어들고 밸런스 측면에서도 안정을 찾는것 같습니다. 드립과 에어로프레스모두 메탈필터를 사용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절한 설명과 커피 테이스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패키지는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로스팅 날짜 기입이 안돼있다는 점, 블렌드를 구성하는 한 종류의 커피 설명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또한 블렌드 자체가 브루잉을 위한 것인지, 에스프레소를 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또한 너무 구체적인 설명은 커피를 즐기는 입장에서 상상력을 제한받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메이플 시럽향이 느껴지는 블랜드드를 경험하는 일은 재미있었습니다. 두꺼운 브로슈어의 설명만큼, 한 잔의 커피로 마시는 이를 설득하는 블렌드를 맛볼수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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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Gaffigan, Luchern Symphony Orchestra, Dvorak Symphony No.6

드보르작의 6번 교향곡이 비엔나 초연에 성공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이는 당시 빈 필하모닉의 단원들이 지휘자 한스 리히터와 드보르작에 대한 가진 반감 때문이었다. 게르만족 성향이 다뉴브 왕가의 주를 이루고 있을 때 두 지휘자는 기여코 슬라브 민족에 대한 끊임없는 찬양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특히나, 체코를 사랑했던 민족주의 작곡가 드보르작의 새 교향곡 연주는 당시 비엔나 오케스트라나 비평가에겐 불편한 요소였을테다. 결국, 드보르작의 교향곡 연주를 위해 헌신했던 한스 리히터는 블타바 만에서 열린 6번 교향곡의 초연이 있은 3개월 후인 1881년 3월에 해임된다. 이렇게 고난을 겪던 드보르작과 그의 6번 교향곡은 1883년에 이르러서야 비엔나 초연에 성공한다. 비엔나에는 꽉 막힌 게르만족만 있지는 않았기에, 그의 비엔나 공연은 대 성공을 이뤘다. 음악 비평가 에드워드 한슬리크는 '신선하고 자연스러웠던 그의 초창기 작품들이 이제 꽃을 피운것 같다, 아름다운 관현악 연주는 간결하고 힘이 느껴지는 하나의 청동조각 같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드보르작에 호의적이지 않을것 같던 게르만 계열의 비평가들도 '슬라브 민요의 느낌이 살아있지만, 근저에는 위대한 베토벤이 살아있다!'는 식으로 에둘러 칭찬하기 시작했다. 한슬리크가 이에 동의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6번 교향곡은 그의 교향곡 작곡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에 작곡된 곡이다. 완성도나 독창성 면에서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단골 레퍼토리를 장식하고있는 7-9번에 비하면 뒤쳐지는건 사실이지만, 6번 교향곡은 비엔나의 초연이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탄탄한 구조와 독특함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교향곡이다. 평론가들이 이 곡에 대해 가장 많이 얘기하는 부분은 브람스의 교향곡과 닮은 1악장과 4악장이다. 이 부분의 소나타 형식을 확장시킨 안정적이나 주제의 등장과 변주는 브람스의 2번 교향곡과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6번 교향곡이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니다, 브람스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은 1,4악장과는 달리 목가적인 2악장과 춤곡 느낌이 강한 3악장은 슬라브 민요를 차용해 민속적인 느낌을 한껏 살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교향곡은 그에게 영향을 준 위대한 작곡가의 영향력과 민족적 느낌을 살린 독창성 사이에 있는 과도기적 작품이면서도 그 매력을 한껏 살린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과 함께 커플링된 '아메리카 조곡'은 원래 드보르작이 1894년,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이 조곡은 5개의 악장은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반면 음악적인 요소들은 상당히 절제된 느낌을 주는데, 장식도 없고 멜로디도 단순하며 심지어는 5음계적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아마 이러한 분위기, 단순한 리듬패턴 그리고 명백한 화음구조는 드보르작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영향을 받았던 아메리카-인디언, 아프로-아메리칸의 민속 음악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민속적인 리듬속의 아메리카 조곡은 전체적으로 슬라브 민족의 보헤미안적인 춤곡의 느낌을 강렬하게 선사한다. 이는 머나먼 타국에서도 조국을 그리워하는 보헤미안 드보르작의 마음이 담겼기 때문일테다.

 Edward Hopper, Rooms by the Sea, 1951

미국의 젊은 지휘자 제임스 가피건과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보기드문 선곡으로 장식한 앨범의 커버에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아마도 이 그림은 음악가로서 정점을 달리고 있을때에도, 슬라브 민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아야 했던, 조국이 그리워 떠나기 싫었지만 미국으로 향해야했던 드보르작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사실주의 작가로 종종 분류되어진다. 하지만 그가 그렸던 그림들을 보면, 그가 사실보다는 존재의 고독을 그려낸 추상화가라는 느낌을 받을수 있다. 그가 1951년에 그린 바다 옆의 방(Rooms by The Sea)는 그의 그림에 늘 등장하던 사람이 없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동일한것처럼 보이는것도 이를 증명한다. 천성적으로 내성적이었던 그에게 미국에서의, 도시에서의 삶은 군중속의 고독과 같았을 것이다. 항상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는 듯한 그의 그림속 화자들은 그렇게 마음속의 고향을 그리며 안식을 기도한다. 제임스 가피건은 젊은피 답게 박력있고 긴장감있는 리듬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나간다. 그 속에서 드보르작이 숨겨두었던 보헤미안적 감성은 극치를 달린다. 항상 마음속은 자신의 조국, 체코가 있었던 드보르작은 성공가도를 달리며 대서양을 넘나들었을 때에도 외로웠고 고독했다. 그래서 그의 6번 교향곡은 에드워드 호퍼와 훌륭한 마리아주를 이루고,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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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스, 코스타리카 신 리미테스(Costarica Sim Limites Red Honey)

 

 

코스타리카 신 리미테스는 1500m-1700m의 고고도에서, 약 1헥타르의 작은 섹터에서 1년에 200백 정도만 재배되는 마이크로 랏(Micro Lot) 커피입니다. 이 커피는 2008년 COE(Cup of Excellence)에서 2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좋은 품질을 자랑합니다. 여러가지 정보를 찾아보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로스터 모모스에서 선택할만한 좋은 생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모스가 선택한 신 리미테스의 프로세싱은 레드허니 입니다(Red Honey). 생두에서 붉은 빛을 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우선 모모스의 패키지와 원두 외관을 살펴보겠습니다. 전반적으로 친절하고 풍푸한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로고가 인쇄된 깔끔한 패키지 위에는 농장과 품종, 가공방식 그리고 테이스팅 노트가 적혀있습니다. 로스팅한 원두의 색깔을 알 수 있는 에그트론 넘버(Agtron No.)가 적혀있는건 다른 로스터와는 다른 부분인데, 어떤 의도에서 에그트론 넘버를 적어두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추천 레시피는 에어로프레스와 프렌치프레스를 기준으로 적혀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핸드드립이나 푸어오버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라, 이 부분에 대한 보충이 있거나 홈페이지를 찾아가면 추가 정보를 얻을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추출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해보았습니다. 추천 레시피를 뽑아보기 전, 원두의 전반적인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드립굵기로 그라인딩한 원두를 30g 투입하고, 330ml를 클레버로 추출해보았습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적혀있는 땅콩버터의 느낌과 인상깊은 산미가 느껴졌지만, 전반적으론 떫떠름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핸드드립으로 재추출을 할때에는 이를 고려하여 드립 굵기보다 조금 굵게/30g/92도/420ml를 하리오 V60드리퍼로 내렸습니다. 물을 부어 내리는 방식으로 최대한 빠르게 내렸는데, 레몬의 신맛과 견과류의 풍미가 잘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살짝 걸리는 목넘김과 짧은 여운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따뜻할때에는 땅콩버터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달달한 산미와 중약의 바디감이 부드럽게 혀를 자극했습니다. 식은 후에도 산도가 유지되며 레몬껍질의 풍미를 풍겼으나, 떫은 맛이 살짝 남아있다는 느낌은 지울수 없었습니다.

 

에어로프레스 추출은 추천 레시피를 따라 드립굵기보다 조금 굵게 그라인딩하여 15g/90도/205ml/1분 30초(중간에 한 번 저어줌)로 추출해보았습니다.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바디에, 고소하지만 레몬과 같은 산뜻한 신맛이 인상적인 커피였습니다. 거친맛이 솟아날때도 있었지만, 과일잼에서 느껴지는 농밀한 달콤함도 조금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차를 먹는듯한 느낌의 가벼운 바디감과 길지못한 에프터가 아쉬움을 남깁니다.

 

마지막으로 에스프로프레스를 내려봅니다. 역시 조금 굵게 그라인딩한 17g의 커피를 90도/250ml/3분(중간에 한 번 저어줌)으로 추출합니다. 커피 오일이 남아있는 덕분인지 아쉬웠던 바디감이 한 층 무게를 더해 안정감이 있는 밸런스가 느껴집니다. 달달하고 산뜻한 산미가 느껴지고 테이스팅 노트대로 밀크캬라멜의 느낌도 더해집니다. 하지만 거친느낌과 아쉬운 에프터는 이전 추출에 비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전반적으로 맛 자체가 가볍게 느껴지는건 모모스의 로스팅 스타일인것 같습니다.

 

패키지에 적혀있는 레시피로 내려 마신다면, 가볍게 차와같은 풍미가 느껴지는 커피를 즐길 수 있을것 같습니다. 추출 방식에 대해 덧붙이자면, 모든 추출에서 동일하게 느껴졌던 떫은맛을 죽이기 위하여 굵은 그라인딩과 빠른추출 추천합니다. 추출방식의 차이나 환경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함께 배달된 두 봉의 봉투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200g 봉투에 담겨온 커피보다 100g봉투에 담은 봉투에서 떫은맛이 더 느껴졌습니다. 200g봉투에 담겨있던 커피는 밸런스가 좋은편이었고 테이스팅노트와도 비교적 어울렸습니다. 봉투 패키지에 에그트론 넘버 대신, 배치(Batch)를 적어두었다면 좋지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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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Fischer, Budapest Festival Orchestra, Bruckner Symphony No.7
빈은 브루크너에게 호의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시골 촌뜨기이자 바그너리안인 브루크너의 음악은 비평가들의 훌륭한 사냥감에 불과했다. 당대를 주름잡던 음악평론가 한슬리크는 브루크너의 변하지 않는 작곡법에 지쳤으며,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막스 칼벡이란 평론가는 브루크너의 음악에서 '지옥의 불길이 치솟는다'고 했다. 그나마 '그의 교향곡은 가치가 없다'라고 평가한 브람스의 평가는 호의적인 편이었다. 시대와의 불협화음 때문에 브루크너는 공들여 작곡한 교향곡을 무대에 올릴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6번 교향곡의 경우 전곡 초연은 브루크너가 죽은지 3년이 지난 1899년, 말러의 독단적인 해석으로 이뤄졌다는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힘든 환경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브루크너는 이렇게 비호의적인 분위기와 쏟아지는 비난속에 동료 작곡가들에게 '어떻게든 좋으니, 좋은 방향으로 수정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 여태껏 가장 많이 연주된 브루크너의 교향곡인 7번은 열등생 브루크너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곡이다. 이 곡이 없었더라면 아마 브루크너는 수없이 수정된 자신의 악보와 함께 조용히 무덤속에 묻혔을 것이다. 하지만 7번 교향곡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브루크너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는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뤄졌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요즈음에도 중부 유럽의 고지식한 분위기는 브루크너의 전통을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죽었음에도, 브루크너의 음악은 이렇게 편견과 몰이해에 외면 당하기도 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이전시대에 발견할 수 없었던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그렸다. 그리고 바그너리안이라는 이유로 반대파에게 비판을 받았던 것에 비해 그의 스타일은 바그너와는 달랐고 개성이 넘쳤다. 악보에는 바그너 튜바나 팀파니 같이 이전의 오케스트라에서 볼 수 없었던 악기들이 그려졌고, 거대한 오케스트라는 쏟아지는 멜로디속에 화성과 조를 넘나들며 아름다움을 그렸다. 베토벤이 만들어낸 혁신위에 브루크너는 자신만의 세계를 세웠고, 고전파 교향곡의 끝을 보여주었다. 그의 교향곡이 위대하다고 평가받는건 비단 형식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이반 피셔가 브루크너를 성자이자, 부처이고, 구루라고 표현한 것 처럼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성스럽기 그지없다. 이 앨범에 실린 7번 교향곡도 마찬가지다. 1악장의 깊고 조용한 비올라와 첼로의 트레몰로는 브루크너가 신에게 바치는 조용한 기도의 시작을 알린다. 음표는 때때로 사그라들고 소리없이 죽는다. 속삭이듯 시작하는 현악과 관악의 조용한 연주는 수도원에서 자라 그곳의 교사 겸 오르가니스트로 평생을 살았던 그의 고요한 삶을 대변한다. 2악장은 그가 존경하던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기위해 그려졌지만, 신을 향하는 마음과 깊은 기도는 여전하다. 웅장하고 호전적인 3악장의 스케르초를 넘어서면 1악장을 닮은 피날레가 나온다. 수도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던 브루크너는 깊은 신앙속에 타인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품었고, 이를 음악에 담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의 마지막 부분에선 주인공이 맹인의 손을 따라 눈을 감고 대성당을 그리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한 번도 보지못한 사람에게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다. 맹인이 손을 떼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그려낸 주인공의 대성당은 브루크너의 교향곡과 일맥상통한다. 같은 방식으로 촌뜨기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어지러운 세상속의 많은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전해준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거대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섬세함을 요구한다. 가령, 브루크너 교향곡의 트레이드 마크 '브루크너 휴지'에선 세밀한 표현이 중요하다. 끊임없는 현악군의 활질과 관악군의 깊은 숨소리는 영원한 잠으로 빠져드는 사람의 숨소리처럼 고요하게 죽어가야 한다. 거대한 함선의 항해에서 섬세한 조타가 어렵듯,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스러지는 장면은 오랜 연습을 통해서야만 묘사될 수 있다. 이반피셔와 25년동안 호흡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는 브루크너 연주에서 놀랄만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지휘자의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연주자들에게 브루크너는 어렵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너무 유려해서, 스르르 흘러가는게 단점이라고 할만큼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완벽하다. 브루크너 사이클은 오케스트라와 오랜 우정을 쌓은 이반피셔의 야심작이다. 그 출발은 화려하고도 완벽했다. 7번 교향곡이 브루크너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던 것 처럼, 이반 피셔의 연주도 그와 오케스트라의 연주 인생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길 희망한다.

 

Claudio Abbado, Lucerne Festival Orchestra, Bruckner Symphony No.9

 

아바도는 밀라노의 유력한 음악가문에서 태어났다. 앨리트 코스를 밟고 지휘자로 성장하던 아바도는 1965년, 카라얀의 초청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하게 된다. 이 때의 성공으로 아바도는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는다. 이후 1989년에는 바렌보임, 로린마젤, 무티, 오자와등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카라얀의 뒤를 잇는 베를린필 지휘자가 된다. 이처럼 아바도는 흠잡을데 없이 훌륭한 프로필을 가진 지휘자였다. 그리고 2014년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많은 이들이 이 훌륭한 지휘자를 애도하고, 뛰어난 업적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이어졌던 칭찬 릴레이처럼 그의 지휘는 늘 호평을 받아오진 못했다. 베를린필 지휘자가 되고나선, 위대한 지휘자를 잇는 자리에는 어부지리로 당선됐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지나친 민주적 방식의 오케스트라 운영으로 기존 단원들은 탈퇴하기도 했다. 단원들은 그의 리더십에 지루함을 느꼈고, 카라얀 이후에 베를린필의 변해버린 분위기는 음반 판매고의 저하를 가져왔다. 음반 판매 수입만으로도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던 단원들은 뚜렷한 히트곡 없는 아바도의 디스코그라피에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아바도는 2002년 이후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베를린필 상임 지휘자에서 물러났다.

 

그가 베를린필을 떠나고 만나게 된 루체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아바도의 마지막 실황 공연으로 남았다. 2003년부터 호흡을 맞춰오던 오케스트라는 아바도와 함께 더 많은 레퍼토리를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브루크너 9번을 커플링한 이 날의 실황은 아바도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아바도는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다. 수많은 비판과 단원들의 불만 속에서도 꾸준하게 지켜냈떤 자신만의 신념을 담아 평소처럼 지휘했다. 초저녁의 가을바람 같이, 보슬비 같이, 첫 악장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 하이팅크가 발매한 브루크너 9번은 속도감과 과장된 대비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반면, 아바도는 사뿐사뿐하게 연주를 진행해 나갔다. 끊임없는 쏟아지는 9번 교향곡의 멜로디는 담백한 아바도의 연주로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냈다. 먹의 농담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듯, 그는 '아바도식 작별인사'를 그려냈다.

 

빈은 브루크너에게 끝가지 호의적인 곳이 아니었다. 포퓰리즘이 가득하던 빈에서 브루크너의 음악은 브루주아적 감성에 쩌든 교향곡일뿐이었따. 성공 이후에도 그칠줄 모르는 비난 속에 8번 교향곡을 완성한 1887년부터 1896년까지, 브루크너는 10년 동안 9번 교향곡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지막 악장을 완성하지 못한채 죽는다. 그렇기에 그의 9번 교향곡은 수많은 수정을 거쳐 대중의 입맛을 맞췄던 기존의 교향곡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생전에 발표되지 않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는 신념을 담아낼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교향곡은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정도로 과감한 관현악적 시도가 들어있었다. 평생동안 담아왔던 음악적 시도들은 그의 앞에 다가온 삶의 마지막 순간에, 신에게 바치는 애절한 마음을 담아 그려졌다. 그의 죽음과 마지막 교향곡은 독일-오스트리아 낭만파의 최후를 선언할 정도로 베토벤의 양식을 발전시키고 변용하며 미래를 그려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대로 음표를 그리고, 지휘봉을 잡았다는 점에서 브루크너와 아바도는 닮았다. 아바도는 늘 자신을 둘러싼 음악세계를 넘어 피안을 그렸다. 세계적인 명성을 받는일보다, 음반을 많이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예술이 그려내는 깊은 아름다움을 온 몸을 다하여 표현하는 일이었다. 세속적인 일에 지쳐있던 아바도는 브루크너를 통해 큰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그 신념과 위로를 담아 아바도는 편안한 마음으로 9번 교향곡을 지휘했을 것이다. 가장 아바도스러운 방식으로 뽑아낸 브루크너의 선율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가장 아름다운 브루크너를 선사할것이다. 다양한 교향곡 레퍼토리가 쏟아지는 지금, 언제나 그걸 연주했던 아바도의 음반이 언급되는건, 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늘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렸던 그의 지휘 때문일 것이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Claudio Abbado, Lucerne Festival Orchestra

 

Evgeni Koroliov, Beethoven Sonatas op.101, 106 "Hammerklavier"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베토벤 소나타 28,29번 '함머클라비어'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는 새로운 피아노의 탄생과 맞물려있다. 19세기 초반, 피아노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포르테피아노를 대체할 건반악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빈에 위치한 슈트라이허라는 피아노 회사에 7옥타브를 넘나드는 피아노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독일에서 탄생할 이 새 악기를 위한 메모였다. 지금은 29번 소나타에 붙은 별칭이지만 27번 소나타의 악보부터 함머클라비어란 단어가 등장한다. 두번째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작품번호 101번, 28번 소나타의 악보에는 여지껏 볼 수 없었던 4개의 덧줄이 있다.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피아노로 연주 가능한 음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정확히 한옥타브 낮은 미를 그려놓았다.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베토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동원하여 들리지 않는 소리를 영원한 음표로 표현해내고자 한다. 그 열망으로 베토벤은 그동안 음악사에서는 꿈꾸지도 못할, 혁신이 가득찬 작품을 만든다. 9번 교향곡은 기존의 교향곡이 넘보지 못하는 길이에, 합창까지 담아냈고, 현악사중주 14번(op.131)은 악장이 7개로 늘어났다. 32번 소나타(op.111)는 고작 두 개의 악장을 가지고 있다. 28번 소나타를 비롯하여, 한동안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질만큼 어려운 29번 소나타도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혁명이었다.

'Etwas lebhaft und mit der innigsten Empfindung'. 생동감이 넘치도록, 서정적인 느낌을 살려서 연주하라는, 표제음악에서나 볼수있는 지시사항이다. 28번 소나타의 첫 악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그너는 자신의 아내 코시마에게 이 악장을 '영원의 멜로디'라고 표현했다. 악보에 그려진 세 개의 샵은, 이 소나타가 라장조로 시작할 것을 알린다. 하지만 첫 음표는 마장조의 음들이 그려져있다. 악장이 마지막에 이르러 근음이 제자리를 찾을때까지 미묘한 불안함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극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러한 기법은 이미 바흐의 프렐류드나 하이든의 일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처럼 극적인 전개를 이끌어 나가는건 베토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지는 빠른 악장의 행진에선 미약하나마 대위법적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소나타는 마지막장에 이르러 첫 악장을 상기시키는 음표를 연주한다. 이어서 나타나는 주제는 피날레를 이끌어간다. 28번 소나타는 베토벤이 확신을 가지고 그려낸 음표로 만든, 아찔한 아치를 그리며 버티고 있는 위대한 건축물이다. 28번 소나타의 아찔한 출발처럼, 베토벤의 혁신은 하이든의 그것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하이든의 내림마단조 현악 사중주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조 바꿈이 나온다. 여기서 하이든은 악보에 자유롭게 연주하라는, 법칙에 벗어나서 연주해도 좋다는 'con licenza'를 써넣었다. 떠오른 영감을 과감하게 적용하고,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가는 하이든의 작곡법은 그를 스승으로 둔 베토벤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로 알려진 29번 소나타의 외형은 4개의 악장을 가진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소나타는 비범함으로 가득차있다. 첫 악장의 웅장한 울림은 마치 5번 교향곡의 위대한 등장을 연상케 한다. 알레그로 악장은 차분함과 긴장을 오가며 마지막까지 소나타가 아닌 한편의 교향곡을 연상케 한다. 기교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하는 스케르초 악장은 연주자에게도 기쁨을 안겨준다. 베토벤의 소나타중 가장 길고 서정적인 아다지오 악장은 활기차며 기교가 가득찬 협주곡의 첫악장과 대비되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피날레 악장은 푸가가 가득 차 있다. 상상력이 가득한 주제의 변주와 차분함이 느껴지는 종교적 칸타빌레 테마는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 마지막 악장의 푸가는 소나타 작곡뿐만 아니라 현악사중주를 작곡함에 있어서도 후세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베토벤은 어렸을적부터 바흐의 '평균률 클라비어'를 연주하며 푸가의 우주에 빠져들곤 했다. 바흐를 동경하고 그 무한한 우주에서 음악적 능력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베토벤과 예브게니 코롤리오프는 공통점이 있다. 17세의 나이에 코롤리오프는 모스코바에서 바흐의 '평균률 클라비어' 전곡을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열었다. 코롤리오프는 낭만주의, 현대음악등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했지만 늘 바흐에 대한 동경을 잊지 않았다. 첫 리사이틀 이후에도 코롤리오프는 수많은 콘서트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푸가의 기법, 평균률 클라비어를 연주했다. 그의 첫 CD녹음도 '푸가의 기법'이었다. 코롤리오프의 디스코그라피와 프로필은 온통 바흐의 이름으로 가득차있다. 하지만 그가 바흐의 연주에 정통했다는건 베토벤 연주에 있어서도 믿을만한 연주가라는 것을 반증한다. 기대했던 것처럼, 코롤리오프 시리즈의 최신작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 연주의 정석을 보여준다. 청명하고 울림이 깊은 그의 연주에서는 여태껏 만나보지 못했던 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깊은 우주가 느껴진다. 29번 소나타는 연주하는 이에게도, 듣는이에게도 쉽사리 정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코롤리오프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베토벤의 그려내는 19세기 '푸가의 기법'에 혀를 내두르고,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할것이다.


Evgeni Koroliov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이라면 조심!)

 

하이젠베르크는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나치의 핵연구를 맡게 되었다. 사보타주는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의 핵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리학자로서 순수한 과학이 정치와 전쟁에 이용되는것을 바라지 않았는지, 실제 그것을 만들능력이 없었기에 핑계를 댄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그를 둘러싼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최초의 핵무기 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가 뉴멕시코(New Mexico) 사막에서 이뤄진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5년 7월 16일의 일이다.

 

미국 AMC에서 방영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배경은 뉴멕시코다. 드라마는 50살의 생일을 맞은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며 시작한다. 칼텍(Caltech)의 총망받는 화학자였던 그는 믿음은 져버린 동료를, 성공을 앞둔 업적을 버리고 뉴멕시코에 정착했다. 하지만 화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올곧은 신념으로 가족과 함께한 지난날의 삶은 암 선고와 함께 스러지기 시작했다. 이 때, 죽음 앞에 내몰린 힘없는 그에게 마약단속국(DEA;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에서 일하는 동서 행크 슈레이더가 나타난다. 마약 제조실을 단속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정의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 월터 화이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결심을 한다. 그리고 마약 제조를 결심하고 쫓아간 행크의 단속 현장에서 자신의 제자였던 제시 핑크맨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소아마비에 걸린 아들, 자신이 암에 걸린지도 모른채 임신 사실을 털어놓은 아내, 세차장 알바를하며 근근히 충당해온 생활비, 보잘것 없는 자신의 50년 인생 앞에서 월터 화이트는 마약 제조업자가 된다. 그는 '하이젠버그'라는 별칭과 함께, 떼어놓을 수 없는 사업파트너 제시 핑크맨과 함께 마약의 세계로 빠져든다.

 

브레이킹 배드는 일종의 성장드라마다. 월터 화이트는 마약판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총 62화에 이르는 드라마는 월터화이트가 하이젠베르크로 변태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나쁜것(Bad)에 대해 이야기한다. 월터는 본격적으로 마약 판매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기 전, 행크와의 식사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전체적인 주제와 맞닿는다. 암에 걸린 월터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사자리에서 행크는 FBI 친구에게 얻었다며 쿠바산 시가를 건낸다. 월터는 불법이 아니냐고 묻지만, 행크는 별것이 아닌양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자 월터가 묻는다. 마약도 과연 나쁜것일까, 누가 그것이 나쁜 행위라 규정할까라고 말이다. 그러자 행크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 번 교도소에서 마약에 절은 놈들을 만나봐야 그런 얘기를 못할거야, 약에 절어 삶을 포기하고 절규하는 그 얼굴을 보고 나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행크의 대답은 월터가 제시한 문제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브레이킹 베드에서 제시하는 화두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다시 드라마의 배경인 뉴멕시코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뉴멕시코는 원래 나바호족과 아파치족이 몰려있던 인디언 서식지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이곳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200년이 넘는 식민지배 기간동안 인디언 문화는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다. 독립과 함께 최초의 멕시코인 도시가 된것도 잠시, 이곳은 다시 비극의 역사를 잇게 된다. 민가를 불태우고 가축을 잡아 죽이는 보복을 가해서 나바호 인디언의 항복을 받아 내고 강제 이주를 하는 장거리 행진, 롱 워크(Long Walk)는 비극의 일부였다. 오랜 인디언의 땅이었던 그곳은 미군의 점령과 함께 수많은 토착민들의 묘지가 되었다. 비극의 역사를 통해 미국의 영토가 된 뉴 멕시코는 미국에서도 주의 수입이 낮은 쪽에 속한다. 주수입원은 대부분 관광업과 주정부에서 관할하는 사업에 의존한다. 주를 대표하는 뉴멕시코 대학은 미국 내에서도 100위권 밖일 정도로 교육에서도 낙후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주의 특성상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월터 화이트는 뉴멕시코 마약업계의 거물 구스타보 프링(거스)와 손을 잡는다. 캠핑카에 조악하게 만들었던 제조시설은 이제 커다란 공장으로 변한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마약업계의 또 다른 '거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구스타보 프링은 남미에서 불법으로 이주한 역사가 있는 사람이다. 사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자랑하는 그는 최고의 마약 제조업자 하이젠베르크와 손을 잡고 마약 시장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이 성공을 오래 이끌지 못한다. 치열한 세력사움 끝에 숨을 거둔 구스타보는 나바호족과 아파치족의 가슴아픈 역사와 닮아있다. 월터 화이트를 곤경으로 몰아 넣은 수 억 원대의 암 치료비, 마약상들과 총격전을 하다 마비된 행크를 회복시키기 위해 들어야하는, 보험으로는 처리가 안되는 엄청난 치료비는 의료 민영화의 맹점을 꼬집는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이미 정직하게 살아가는 고등학교 교사의 능력을 넘어선다.

 

하이젠베르크의 딜레마는 다시 시작된다. 순수한 물리학자의 삶을 살고, 양심을 지킬것인가. 그가 어떤 선택을 했건, 핵을 개발하지 못한 나치는 미국에 의해 괴멸당했다. 1945년, 뉴멕시코에서 최초의 핵실험이 이뤄진 이후 미국은 또 다른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이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들은 무엇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증폭시킨다. 수많은 인디언들의 목숨과 아픈곳을 치료할 돈이 없어 죽어가는 수많은 저소득층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자유의 땅 미국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마약이 나쁘다고 규정된 순간부터, 누군가는 마약을 뿌리뽑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그 쾌락의 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나쁜것'이 규정된 순간 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에서 토킹 배드(Talking Bad)까지, 하이젠베르크의 성장기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 작곡가이자 [음악의 기쁨]의 저자인 롤랑 마뉘엘은 모차르트의 환상곡 C단조(KV475)가 피아노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포에 가득찬, 두려움이 느껴지는 시작부분은 리스트 B단조 소나타의 첫음과 닮아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인생을 회상하듯 흐르는 차분한 멜로디, 쉼표와 침묵은 모차르트의 삶에 대한 고뇌를 말해준다. 이어지는 알레그로 파트에선 잠시 어린 시절 행복을 맛보기라도 하듯 경쾌한 음표가 등장한다. 하지만 행복한 연주는 계속되지 않는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질정도로 한탄스러운 멜로디가 이어진다. 모차르트는 절규한다. 죽고싶지 않다고. 살고싶다고! 이렇게 건반위에서 모차르트는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을 이야기한다.

모차르트 환상곡 C단조는 늘 그의 열 네 번째 소나타와 짝을 이룬다(KV457). 이 소나타는 1784년,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20번 연속으로 자신의 콘서트를 매진으로 이끌었던 전성기 즈음에 쓰여졌던 작품이다. 이후 모차르트의 삶은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을 작곡하는 1791년까지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소나타는 자신의 비극적 삶을 직감한 모차르트가 쓴 첫번째 작품인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모차르트의 밝은 톤과는 전혀 다른 환상곡이 탄생한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슬픔이 느껴지는 이 곡들처럼, 모차르트는 성공한 작곡가의 삶을 만끽하지 못했다. 그의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계속되는 인생의 비극은 베토벤과도 많이 닮아있다. 실제로 그의 소나타를 듣다보면 베토벤의 정취가 연상되기도 한다.

파울 바두라-스코다가 연주한 모차르트 후기 작품집에는 이외에도 환상곡 D단조(KV. 387), 아다지오 B단조(KV.540), 피아노 소나타 D장조(KV.576)이 담겨있다. 궁핍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작곡한 D장조 소나타를 제외한 작품들은 모두 단조이며 죽음의 이미지를 담고있는 곡들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저승사자를 목격하고 레퀴엠을 그려내던 모차르트의 모습은 비단 그 때뿐이 아니었다. 그는 가장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때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했다. 음반 한 장의 무게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건 죽음앞에 두려워하는 모차르트가 인생의 무게를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모차르트와 동향인 파울 바두라-스코다는 1991년에 이미 모차르트 소나타 사이클을 완성한 바 있다. 87세인 그는 그가 완주했던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작품들을 다시 연구하며 시대악기로 다시 연주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앨범 이전, 국내에 발매됐던 그의 슈베르트 작품집은 무려 3대의 다른 피아노로 소품 D.946을 연주했다. 에드빈 피셔를 사사했던 그의 초창기 연주들은 밸런스가 좋고, 바닥을 상승하는 부드럽운 아름다움이 특징이었다. 살아있는 전설로 자신이 녹음했던 작품들을 다시 복기하는 그의 연주에는 이제 그 아름다움과 오랜세월 경험으로 쌓은 지식이 녹아 들어가있다. 사뭇 진지하게 모차르트의 삶을 짚어보는 이 앨범은, 바두라-스코다의 연주 속에서 빛을 내고 있다. 밝고 경쾌한 작품들로 모차르트를 생각하고있는 이들에게 이 앨범을 추천하고 싶다. 이 앨범을 듣고나면, 쉽게 접했던 다른 모차르트의 작품들에서도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파울 바두라-스코다의 연주대신, 유투브에서 찾은 졸탄 코치슈의 영상으로 음악을 대신한다.

Z. Kocsis - Mozart Fantasia in c minor, K. 475

 

 

 

Gil Shaham - Prokofiev Violin Concerto No. 2 (2nd movement)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첫 날에는 그럭저럭 버틸 만 했는데 점점 신경이 쓰인다. 예상치도 못했던 통증이 찾아와 집에 와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독한 술에 취하면 통증을 잊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치아교정을 시작하면서 걱정되는 점들이 많았다. 많은 돈을 들여서 교정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다. 가장 많이 의지를 한 사람은 단연 치과 의사다. 지인이기도 하고, 성격도 좋은 분이기에 교정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랜 상담 끝에 1년이 넘는 교정치료가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 장치를 부착한 날, 치과에서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우선, 네이버에 '치아 교정'을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 검색 결과의 상당부분이 네이버와 관련된 콘텐츠였다. 상당수가 홍보성이 짙은 네이버 블로그와 연결됐고, 어쭙잖은 정보와 홍보 링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구글에 '치아 교정'을 검색했다. 구글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검색 결과 제일 상단에 위치하는 홍보성 링크 두 개를 제외하곤 전부 원하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치아 교정에 대한 정의'부터 진행경과에 따른 유의사항까지.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매번 네이버의 검색결과에 실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네이버와 구글의 접근 방식에 있었다. 네이버는 유저가 오랫동안 네이버 페이지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첫 페이지에 많은 정보를 띄워 놓는 것부터가 그렇다. 검색 결과는 대부분 네이버 서비스 페이지와 연결된다. 스폰서 링크를 제외하고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네이버 블로그, 지식인과 연결된다. 유저는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는 순간, 그 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유저를 오랫동안 잡아두고 클릭수를 늘리는 것은 네이버의 오랜 전략이었고, 네이버를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괴물로 만들었다. 구글의 접근 방식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말했듯, 구글은 유저를 최대한 빠르게 구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단시간 내에 가장 정확한 정보를 찾게 해주는 것이 구글 검색 알고리즘의 목표다. 네이버와 상반되는 이러한 구글의 접근 방식은 글로벌 유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원하는 정보를 국경과 울타리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는 이 전략은, 검색에 만족하는 유저들이 다시 구글을 찾도록 만들고 있다. 조금 더 멀리, 많이 볼 줄 아는 구글의 접근방식은 그들을 세계적인 검색엔진으로 이끌었다. 반면, 네이버는 국내시장에서만 큰 힘을 발휘한다. 전 세계적인 트래픽을 조사해보면 네이버는 100위권 밖에 머물러있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빠르고 쾌적한 인터넷 접속환경은, 또 다른 우리만의 인터넷 문화적 특성을 유발한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정보가 '짤방'과 '동영상'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읽어야 하는 텍스트와는 달리 짤방과 동영상은 빠르고 쉽게 내용을 전달한다. 그나마 동영상의 내용은 대부분 1분을 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핵심적인 내용(만 담았다고 생각하는)을 담은 이 영상들은 '좋아요' 클릭 한 번으로 수만 명에게 전파된다.

 

'너 그 동영상 봤어?'

 

정보는 점점 자극적으로 변한다. 1시간 분량의 드라마가 끝나면, 가장 자극적인 장면들이 편집돼 돌아다닌다. 이슈가 되는 뉴스들은 금세 핵심만 추려 30초짜리 동영상으로 변한다. 전후 맥락이 거세된 동영상들은 순식간에 여론을 조성한다. 안현수는 국민 영웅이 됐고, 윤진숙 해양부 장관은 몰매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나도 무심코 누른 '좋아요'를 통해 그 수많은 무리 중에 한 명이 되었다. 사려 깊은 지인들의 링크를 통해 '안현수 및 쇼트트랙 파벌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되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 건 그 이후였다.

 

연인 K와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한 말이 생각났다. '뭐든지 100퍼센트 잘못된 것은 없을 거야.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해도 1퍼센트는 옳은 부분이 있을 테고. 그걸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거야. 그래야 소통을 할 수 있는 거야.' 세상을 선과 악으로 분류하는 순간 이 세상에 이해받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기업과 관련된 사람들도,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고 몰매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넥타이 공장을 취재하던 그 분의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1페이지 남짓의 넥타이 무역에 관한 글은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넥타이의 탄생부터, 우리나라 원단 무역이 역사까지. 문제가 출발하는 가장 근본에서부터 질문을 풀어가야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당연하다. 넥타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인터뷰이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얻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머리말부터 역자후기까지.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 귀를 기울여야 진정으로 깊은 독서를 할 수 있다.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지휘봉이 들리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 음표까지. 빨리 감김 없이, 어떠한 편집도 없이 끈기 있게 들어야 깊은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책 한권을 진득하게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졌다. 원하는 정보는 짧은 검색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제 눌렀던 '좋아요'가 오늘의 '화제'가 되는 날이 많아졌다. 카페가 많아졌다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확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서점이 커졌다고 좋은 책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 취향과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좋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오늘부터라도 '좋아요'를 누르는 일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끈기 있게 읽어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두 개의 아리아가 처음과 끝을 장식할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가장 처음 흘러나온 곡과 엔딩크레딧에 깔린 곡은 아리아였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부를 달릴 때 즈음 예상치 못하게 변주가 되던 배경음악은 아리아로 돌아갔다. 다시 아리아가 흐르는 순간 나는 은연스래 영화가 마지막을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 됐다.

 

영화가 끝나고, 왜 이렇게 음악을 심어놓았을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인공 료타가 보여준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흡사 변주를 완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아리아로 돌아가는 배경음악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모습은 답이라고 할 게 없다. 빨대를 씹어 먹고, 가끔 생각 없는 말을 내뱉지만 늘 아들을 곁에 두고 함께하는 것도, 아들이 보고 싶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 불러내는 것도 모두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들에게 혼자 있는 법을 가르치고,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 료타의 모습도 결국 아버지의 변주다. 하지만 료타의 변주가 그의 아버지,  료타의 아들을 기르고 있었던 유다이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마지막 아리아일테다. 아버지로서 료타는 끊임없이 방황했다. 처음과 마지막의 아리아는 같다. 하지만 료타는 그것을 몰랐다. 아버지가 되기보다는 끊임없이 혼자가 되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자랐기에 아들도 그렇게 자라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료타는 마지막 변주를 생각치 않았다. 아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 료타는 방황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되어간다. 엔딩크레딧에 이르러서야 흐르는 마지막 아리아는 그가 드디어 길을 찾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된다'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냥으로 바뀐다. 아버지가 되기 위해 허삼관은 피를 판다. 1년은 부지런히 일해도 벌지 못하는 큰 돈은 허삼관에게 아내를 안겨준다. 그들은 세 아들을 얻었다. 허삼관 매혈기는 그가 아들을 위해 피를 파는 내용을 그린 소설이다. 아들 일락이가 아내의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을 때도, 온갖 추문으로 가족 간의 갈등이 심해졌을 때도 허삼관은 자신이 아버지임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피를 팔았고 그 때마다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냥으로 허기진 속을 달랬다. 끊임없는 돼지간볶음의 변주는 허삼관이라는 아버지를 나타낸다. 자식들을 무사히 자라고 혼자 집에 남은 허삼관은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위해 피를 팔기로 한다. 하지만 병원에선 늙은 그의 피가 너무 묽어 쓸모없다며 거절한다. 그는 서러움에 복 받쳐 거리를 거닐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발견한 세 아들들은 그에게 찾아간다. 네 아비가 피를 팔아 너희들을 키웠다는 어미의 말에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돼지간볶음과 황주 한 병을 선물한다.

 

허삼관의 돼지 간 볶음은 정명훈에게 슈베르트 환상곡이 된다. 그의 둘째 아들은 ECM프로듀서다. 그는 아버지에게 솔로 앨범을 녹음하자고 했다.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지휘자에게 피아노 솔로앨범이 부담이 되기도 했겠지만 그는 마다하지 않고 녹음을 진행했다. 선곡은 너무나 평범했다. 첫 솔로 앨범을 내는 마에스트로에겐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될 정도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곡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흠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가 감동을 자아낸 건, 그가 지휘자나 피아니스트로 녹음을 하기보다 아버지로서 녹음을 했기 때문이다. 피아노 자서전이라 할 만큼 그의 선곡들에는 사연이 하나하나 담겨있다. 슈베르트 환상곡 D.899, E-flat major는 그가 큰아들의 결혼식에서 직접 연주했던 곡이라 한다. 손녀의 이름은 '루아', 포르투갈어로 '달'이다. 드뷔시의 '달빛'은 그가 손녀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앨범 가득히 그는 가족을 생각했다. 아버지 정명훈이 녹음한 피아노 솔로는 그래서 흠을 잡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마지막 트랙이 돌고 있을 것이다.

 

료타와 허삼관과 정명훈을 생각하며 나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오직 그 분 뿐이다. 아무리 가족을 힘들게 했고, 아들과는 목욕탕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물게 다녀왔고,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장엔 두 번 밖에 못 갔고, 아들과 단 둘이 딱 한번 여행을 갔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아들이다.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며 나는 아버지가 어떤 연주를 했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왜 음악을 이토록 좋아하는지,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변주를 들려주셨다. 그 변주가 설령 잘못될 때도 있고 틀렸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아리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고 믿는다. 끝내 마무리되지 않는 아버지의 변주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그는 나의 아버지가 된다.

 

 

 

 

 

 

 

 

 

 

스타벅스 로고에 찍혀있는 여인은 사이렌(Siren)이라 불리는 님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은 이탈리아 서부해안 사이레눔 스코풀리(Sirenum Scopuli)라는 섬에 산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띄고 독수리의 몸을 가진 이 님프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섬 주변을 지나는 선박의 선원들을 유혹했다. 섬 주변의 해류는 선박이 난파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뿐만 아니라 님프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 목소리를 들은 선원들은 충동적으로 바다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호머의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는 이 매혹적인 노래를 이겨내고, 섬 주변을 무사히 항해하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그는 선원들에게 자신의 몸을 단단한 기둥에 결박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아 소리를 들을 수 없게 했다. 세이렌의 고혹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오디세우스는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결박을 풀지 못했고 무사히 섬 주변을 항해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그들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을 설명하기 위해 오디세우스 신화를 활용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디세우스가 사이렌 여신의 유혹을 지혜롭게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스스로 결박당하길 '선택'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꾀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유를 포기한 오디세우스의 모습이 우리가 자연을 이겨내기 위해 계몽을 선택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iOS7에는 itunes radio라는 기능이 있다. 특정 가수나, 곡을 검색하면 그 곡과 연관되거나 비슷한 곡들이 무작위로 재생되는 시스템이다. 랜덤으로 재생되는 곡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구매를 할 수도 있고 관심곡으로 지정해서 나중에 따로 찾아볼 수도 있다. 힘들게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밴드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아이튠즈 라디오가 가진 엄청난 장점이다. 또, 음악 선곡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날이면 아이튠즈 라디오에게 플레이를 맡겨도 됐으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튠즈 라디오를 듣는 내 모습이 스스로를 결박한 오디세우스의 모습과 같았다. 기분에 맞춰 음악을 고르는 일은 힘들지만, 그렇게 들은 곡들은 기억속에 오래오래 남는다는 장점이 있다. 여태까지 나는 오래된 아이팟 클래식에 담긴 160GB의 음원을 힘들게 굴려가며 그렇게 살았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카페에 앉아 있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물어물어 음원을 찾아내기도 했다. 늘 음악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휴대폰에 전화번호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면서부터 친한 친구들의 번호조자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문득, 아이튠즈 라디오에 익숙해지면 내가 어떻게 선곡을 했었는지, 어떤 기분에 어떤 노래를 들었는지 까먹게 되진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허트로커 Heart Locker에서는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폭발물 처리 임무를 담당했던 군인이 등장한다. 오랜만에 귀환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부탁에 마트에 시리얼을 사러간다. 스스로 무엇이든 선택했던 경험이 오랫만이었기에 그 많은 시리얼 앞에서 그는 멍하니 서있기만 한다. 결국, 그는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언젠가는 나도 음반가게에 가서 수많은 음반들 앞에 저렇게 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함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길 포기하는 순간, 많은 것들을 잃게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중의 탄생'이란 책에서 와타나베 히로시는 지금의 감상문화가 등장하기까지의 역사를 들려준다. 악장간에 박수를 치지 않고, 기침소리만 내도 핀잔을 받는 그런 문화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콘서트장은 연주자가 '시끄러워 도무지 연주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19세기, 부르주아의 등장으로 시작된 청중의 확대는 음악을 감상하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 벽은 점점더 높아져 지금 우리가 공연장에서 생각하는 '매너'가 탄상했다고 한다. 연주자의 집중을 위해, 공연장을 찾은 많은 이들의 감상을 위해 모두가 침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정명훈은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한 베토벤 5번 피아노 협주곡 앨범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했다.

 

'청중에게는 연주자들이 즐기면서 연주하는 음악처럼 들려야 하는데 다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특히 이 '황제' 협주곡 3악장은 솔직히 맥주 한 잔 마셔가면서 하면 좋겠어요'

 

클래식 공연장에서 학습된 감상방법은 공연장을 떠나도 이어진다. 사람들은 은연스래 클래식은 '심각하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이렌 여신의 음악에 미쳐서 바다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오디세우스처럼, 우리는 고전음악을 듣기 위해 스스로를 결박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 한잔 기울이면서 음악을 듣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떤 연주는 숨을 죽이고 들어야 하지만, 어떤 연주는 신나게 춤을 추며 들을때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몇 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전음악에는 정말로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다. 그 오랜 역사속에서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췄고, 이야기도 나눴으며 사랑도 나눴을테다. 17세기에 활동했던 작곡가 코렐리는 연주할때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광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작곡간 합주협주곡의 어느 부분에서는 왜 그가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할만큼 환상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가 미쳤으니 듣는 사람도 함께 미친다면 그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 마주친 스타벅스 로고를 보면서 사이렌 신화가 떠올랐다. 모두들 음악을 잘 듣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을 들을지 고민 할 필요 없는 음악 감상은, 기침소리도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고전음악 듣기는 과연 안녕한가 궁금하다. 더 많은 것을 얻기위한 우리의 감상법은 스스로를 결박한 오디세우스처럼 더 많은 것들을 들을 자유를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해방촌에서 바라본 서울

 

화교인 우리 어머니는 서울에서 30년을 넘게 사셨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서울은 고향 땅보다도 익숙한 곳이다. 먼 곳을 여행하고 올 때마다 어머니께선 늘 이런 말을 하셨다. '매연 가득하고, 답답한 도시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서울만한 곳이 없어, 서울에 오면 편안한 기분이 들어.' 스무 살이 조금 넘어서야 나는 어머니가 서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처음 둥지를 틀었을 그 사글세 방, 동시통역을 위해 드나들던 동대문 상가들과 아버지가 처음가게를 얻었던 인사동, 이제는 고향보다도 더 친숙한 불광동까지. 인사동에서 동대문을 향해 걷던 어느 날 나는 어머니의 서울을 생각했다.

 

빌리조엘이 1976년에 발표했던 앨범 [Turnstiles]에 수록된 'New York State of Mind'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Some folks like to get away, Take a holiday from the neighbourhood
Hop a flight to Miami Beach or to Hollywood
But I'm taking a Greyhound on the Hudson River Line
I'm in a New York state of mind

 

어떤 사람들은 휴일을 맞아 이웃을 떠나 먼 곳으로 향하죠. 마이애미 비치로 혹은 할리우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뛰어들죠. 하지만 나는 나의 그레이하운드와 함께 허드슨 강변을 산책할거에요. 제 마음은 언제나 뉴욕에 있죠.

 

'New York State of Mind'은 빌리조엘의 넘버원 히트곡이 아니다. 하지만 빌리조엘은 자신의 콘서트에서 이 곡을 빼먹지 않고 부른다. 9·11테러를 추모하기 위한 콘서트에서 이 곡이 울려 퍼졌을 땐, 많은 뉴욕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떠한 이유도 이 마음을 설명 못할 것이다. 뉴욕 사람들의 마음엔 뉴욕이 있다. 잘 모르겠지만, 빌리조엘에게 뉴욕은 어머니의 서울과 같이 않을까 생각했다.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어머니는 중국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을 사랑한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품어준 도시에 대한 애정은 국적을 넘나든다. 그 깊고 아련한 마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968년 일본의 인기 여배우인 이시다 아유미가 발표한 블루라이트 요코하마(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Blue light yokohama)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 노래다. 발매되자마자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일본 노래가 금지돼있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사자에상에서 요코하마행 기차표를 블루라이트행 기차표로 달라는 장면이 나온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는 이렇게 요코하마를 상징하는 곡이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미국의 재즈밴드 핑크 마티니와 일본인 가수 사오리 유키가 함께 작업한 '1969' 앨범에 수록되기도 해서 인기를 끌었다)

 

街 の? り が とても きれい ね, ヨコハマブル? ライト? ヨコハマ
거리의 불빛이 무척 아름답 네요, 요꼬 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あなた と ふたり 幸せ よ
당신과 둘이 행복 해요

いつも の よう に 愛 の 言葉 を ヨコハマ ブル? ライト? ヨコハマ

私 に ください あなた から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전해주세요. 요꼬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 い て も? い て も 小舟 の よう に
걷고 걸어도 작은 조각배처럼

私 は ゆれ て ゆれ て あなた の 胸 の 中
나는 당신의 품속에서 흔들리고 흔들려요

 
足音 だけ が つい て? る の よ ヨコハマ ブル? ライト? ヨコハマ
발소리만이 따라 와요, 요꼬 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やさしい くち づけ もう一度
부드러운 입맞춤 다시 한 번 더

 

뉴욕을 노래하는 마음보다 이 노래가 더 깊이 와 닿는 이유는 가사때문일테다. 일엽편주가 되어 둥둥 떠다녔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잊지 못하는 마음은 1968년의 이시다 아유미나 어머니, 내가 모두 공유하고 있는 설렘일테다.

 

 

 

1989년에 발매된 어떤날의 2집에는 취중독백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도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정신없는 네온이 까만 밤을 수 놓는, 나의 고향 서울을 문득 바라본다.
제법 붙은 뱃살과 번쩍이는 망또로, 누런 이를 쑤시는 나의 고향 서울
설쳐대는 자동차 끔찍한 괴성과, 난지도의 야릇한 향기가 어울린
오등신의 미인들 검정 선그라스로 엿보는, 나의 고향 서울을 문득 바라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감싸주고 키워줄, 나의 고향 서울을 힘껏 껴안고 싶다.

나의 고향 서울을 힘껏 껴안고 싶다.


 

고향이 서울인 사람들이라면 깊게 공감할수 있을 테다. 서울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낸 어머니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다. 노래 제목에 '서울'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하찮은 시빗거리가 있지만, 나는 이 노래를 서울의 노래로 꼽고 싶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가 울려 퍼지던 1969년, 공교롭게도 패티김이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모 치통약 광고에서 이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 이 CM송의 멜로디가 익숙하게 들렸던 건 알게 모르게 서울찬가를 들었기 때문일 거다. 서울을 노래한 곡의 원조라면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가 단연 최고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작은 언덕배기에 오르면 서울시내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살았다. 서울에 올 기회가 있으면 종종 그곳을 찾았다.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들이 가득 찬 도시의 모습은 못나 보인다. 하지만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서 살으렵니다라고 외치는 이 노래의 가사가 와닿는 순간이었다. 도시에게 위로를 받는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빌리조엘도, 이시다 아유미도, 패티김도, 어떤날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을테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겠지.

 

 

 

푸가는 일종의 돌림노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슷하지만 체계를 갖춘 선율들이 반복해서 쌓이는것.

푸가의 기법은 바흐가 남긴 최후의 작품이다. 한참을 앞서나간 그의 작곡은 후대에 가서야 제대로된 연주가 진행됐다고 한다. 푸가도 푸가지만, 기타리스타가 참.

 

돌림노래와 같은 음악으론 이런 것도 있다. 조화로운 비트와 리듬을 쌓는다라는 의미에서 푸가와 닮은점이 많다. 그리고 위의 영상과 더불어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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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즉흥곡 D.899 3악장 작품번호90

 

사람들이 공연장을 채우기 시작한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공연이 시작된다. 슈베르트 즉흥곡의 첫 악장이 울려퍼지는 그 순간까지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를 찾지 못할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알렉상드르를 찾아 인사할 때가 되어서야 그들이 주인공임이 명확해진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는 그들이 집에 도착해서야 끝이 난다. 아름다움을 향해 달려가던 음악은 어떠한 징조도 없이 끊긴다. 침묵과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에서는 모두 네 번의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네 번의 연주는 모두 너무나 짧게 끝난다. 페이드 아웃이 되는게 아니라 무심하게 끊겨 버린다. 아름다움이 느껴지려고 하는 순간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그 순간 아무르에서 흐르는 음악들은 가장 충실한 효과음이 된다.

 

안느의 병세가 심각하지 않을 때, 그의 제자였던 알렉상드르가 노부부의 집을 찾아온다. 그는 어릴적 안느가 연주하라고 했던 바가텔(베토벤이 작곡한 연습용 곡)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타로는 곧 안느의 굳은 오른팔을 발견한다. 안느는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것이라며, 다른 얘기를 하는게 어떻느냐고 묻는다. '자네도 왔고, 멋진 막간을 즐기고 싶어'라고 말하는 안느는 알렉상드르에게 바가텔 연주를 권한다. 그렇게 시작된 멋진 막간의 연주는 또 예고 없이 끊긴다.

 

알렉상드르가 가고 난 저녁, 침상에 누운 안느의 모습 뒤로 바흐의 부조니가 울려퍼진다. 그러다 갑자기 연주가 멈춘다. 아름다운 순간은 연주를 갑자기 그만 둔 조르주의 침묵으로 마무리 된다. 그 후로 안느의 병세는 깊어만 간다. 그녀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즈음 다시 음악이 흐른다. 이번에는 안느가 피아노에 앉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슈베르트 즉흥곡의 세 번째 악장을 연주한다. 연주에 빠져들려고 할 때 조르주는 시디 플레이어를 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순간에 음악이 흐르지만, 그 음악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것은 노부부의 마지막과 닮았다. 멋진 막간을 즐기고 싶지만 그들은 더이상 아름다움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멈추게 한 건 조르주다.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음악을 멈출 수밖에 없다. 연주가 계속될 수 없다는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음악은 더욱 슬펐다.

 

아무르는 메타포와 침묵의 영화다. 어떤 장면도 과하거나 지나치지 않다. 가장 슬퍼야하는 순간 음악은 끊기고 침묵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게 노부부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지난 1년간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나는 바로 '아무르'라고 답했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사무치게 아름답고 슬펐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의 과잉이 넘쳐나는 영상들이 이끌어내는 신파적인 슬픔을 싫어한다. 문학과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삶의 어떤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매체기 때문이다. 아무르에서 노부부의 삶과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건 그 모든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침묵과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이해하게 만든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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