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로고에 찍혀있는 여인은 사이렌(Siren)이라 불리는 님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은 이탈리아 서부해안 사이레눔 스코풀리(Sirenum Scopuli)라는 섬에 산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띄고 독수리의 몸을 가진 이 님프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섬 주변을 지나는 선박의 선원들을 유혹했다. 섬 주변의 해류는 선박이 난파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뿐만 아니라 님프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 목소리를 들은 선원들은 충동적으로 바다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호머의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는 이 매혹적인 노래를 이겨내고, 섬 주변을 무사히 항해하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그는 선원들에게 자신의 몸을 단단한 기둥에 결박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아 소리를 들을 수 없게 했다. 세이렌의 고혹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오디세우스는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결박을 풀지 못했고 무사히 섬 주변을 항해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그들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을 설명하기 위해 오디세우스 신화를 활용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디세우스가 사이렌 여신의 유혹을 지혜롭게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스스로 결박당하길 '선택'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꾀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유를 포기한 오디세우스의 모습이 우리가 자연을 이겨내기 위해 계몽을 선택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iOS7에는 itunes radio라는 기능이 있다. 특정 가수나, 곡을 검색하면 그 곡과 연관되거나 비슷한 곡들이 무작위로 재생되는 시스템이다. 랜덤으로 재생되는 곡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구매를 할 수도 있고 관심곡으로 지정해서 나중에 따로 찾아볼 수도 있다. 힘들게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밴드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아이튠즈 라디오가 가진 엄청난 장점이다. 또, 음악 선곡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날이면 아이튠즈 라디오에게 플레이를 맡겨도 됐으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튠즈 라디오를 듣는 내 모습이 스스로를 결박한 오디세우스의 모습과 같았다. 기분에 맞춰 음악을 고르는 일은 힘들지만, 그렇게 들은 곡들은 기억속에 오래오래 남는다는 장점이 있다. 여태까지 나는 오래된 아이팟 클래식에 담긴 160GB의 음원을 힘들게 굴려가며 그렇게 살았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카페에 앉아 있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물어물어 음원을 찾아내기도 했다. 늘 음악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휴대폰에 전화번호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면서부터 친한 친구들의 번호조자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문득, 아이튠즈 라디오에 익숙해지면 내가 어떻게 선곡을 했었는지, 어떤 기분에 어떤 노래를 들었는지 까먹게 되진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허트로커 Heart Locker에서는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폭발물 처리 임무를 담당했던 군인이 등장한다. 오랜만에 귀환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부탁에 마트에 시리얼을 사러간다. 스스로 무엇이든 선택했던 경험이 오랫만이었기에 그 많은 시리얼 앞에서 그는 멍하니 서있기만 한다. 결국, 그는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언젠가는 나도 음반가게에 가서 수많은 음반들 앞에 저렇게 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함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길 포기하는 순간, 많은 것들을 잃게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중의 탄생'이란 책에서 와타나베 히로시는 지금의 감상문화가 등장하기까지의 역사를 들려준다. 악장간에 박수를 치지 않고, 기침소리만 내도 핀잔을 받는 그런 문화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콘서트장은 연주자가 '시끄러워 도무지 연주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19세기, 부르주아의 등장으로 시작된 청중의 확대는 음악을 감상하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 벽은 점점더 높아져 지금 우리가 공연장에서 생각하는 '매너'가 탄상했다고 한다. 연주자의 집중을 위해, 공연장을 찾은 많은 이들의 감상을 위해 모두가 침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정명훈은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한 베토벤 5번 피아노 협주곡 앨범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했다.

 

'청중에게는 연주자들이 즐기면서 연주하는 음악처럼 들려야 하는데 다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특히 이 '황제' 협주곡 3악장은 솔직히 맥주 한 잔 마셔가면서 하면 좋겠어요'

 

클래식 공연장에서 학습된 감상방법은 공연장을 떠나도 이어진다. 사람들은 은연스래 클래식은 '심각하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이렌 여신의 음악에 미쳐서 바다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오디세우스처럼, 우리는 고전음악을 듣기 위해 스스로를 결박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 한잔 기울이면서 음악을 듣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떤 연주는 숨을 죽이고 들어야 하지만, 어떤 연주는 신나게 춤을 추며 들을때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몇 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전음악에는 정말로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다. 그 오랜 역사속에서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췄고, 이야기도 나눴으며 사랑도 나눴을테다. 17세기에 활동했던 작곡가 코렐리는 연주할때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광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작곡간 합주협주곡의 어느 부분에서는 왜 그가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할만큼 환상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가 미쳤으니 듣는 사람도 함께 미친다면 그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 마주친 스타벅스 로고를 보면서 사이렌 신화가 떠올랐다. 모두들 음악을 잘 듣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을 들을지 고민 할 필요 없는 음악 감상은, 기침소리도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고전음악 듣기는 과연 안녕한가 궁금하다. 더 많은 것을 얻기위한 우리의 감상법은 스스로를 결박한 오디세우스처럼 더 많은 것들을 들을 자유를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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