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곡가이자 [음악의 기쁨]의 저자인 롤랑 마뉘엘은 모차르트의 환상곡 C단조(KV475)가 피아노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포에 가득찬, 두려움이 느껴지는 시작부분은 리스트 B단조 소나타의 첫음과 닮아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인생을 회상하듯 흐르는 차분한 멜로디, 쉼표와 침묵은 모차르트의 삶에 대한 고뇌를 말해준다. 이어지는 알레그로 파트에선 잠시 어린 시절 행복을 맛보기라도 하듯 경쾌한 음표가 등장한다. 하지만 행복한 연주는 계속되지 않는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질정도로 한탄스러운 멜로디가 이어진다. 모차르트는 절규한다. 죽고싶지 않다고. 살고싶다고! 이렇게 건반위에서 모차르트는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을 이야기한다.
모차르트 환상곡 C단조는 늘 그의 열 네 번째 소나타와 짝을 이룬다(KV457). 이 소나타는 1784년,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20번 연속으로 자신의 콘서트를 매진으로 이끌었던 전성기 즈음에 쓰여졌던 작품이다. 이후 모차르트의 삶은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을 작곡하는 1791년까지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소나타는 자신의 비극적 삶을 직감한 모차르트가 쓴 첫번째 작품인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모차르트의 밝은 톤과는 전혀 다른 환상곡이 탄생한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슬픔이 느껴지는 이 곡들처럼, 모차르트는 성공한 작곡가의 삶을 만끽하지 못했다. 그의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계속되는 인생의 비극은 베토벤과도 많이 닮아있다. 실제로 그의 소나타를 듣다보면 베토벤의 정취가 연상되기도 한다.
파울 바두라-스코다가 연주한 모차르트 후기 작품집에는 이외에도 환상곡 D단조(KV. 387), 아다지오 B단조(KV.540), 피아노 소나타 D장조(KV.576)이 담겨있다. 궁핍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작곡한 D장조 소나타를 제외한 작품들은 모두 단조이며 죽음의 이미지를 담고있는 곡들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저승사자를 목격하고 레퀴엠을 그려내던 모차르트의 모습은 비단 그 때뿐이 아니었다. 그는 가장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때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했다. 음반 한 장의 무게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건 죽음앞에 두려워하는 모차르트가 인생의 무게를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모차르트와 동향인 파울 바두라-스코다는 1991년에 이미 모차르트 소나타 사이클을 완성한 바 있다. 87세인 그는 그가 완주했던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작품들을 다시 연구하며 시대악기로 다시 연주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앨범 이전, 국내에 발매됐던 그의 슈베르트 작품집은 무려 3대의 다른 피아노로 소품 D.946을 연주했다. 에드빈 피셔를 사사했던 그의 초창기 연주들은 밸런스가 좋고, 바닥을 상승하는 부드럽운 아름다움이 특징이었다. 살아있는 전설로 자신이 녹음했던 작품들을 다시 복기하는 그의 연주에는 이제 그 아름다움과 오랜세월 경험으로 쌓은 지식이 녹아 들어가있다. 사뭇 진지하게 모차르트의 삶을 짚어보는 이 앨범은, 바두라-스코다의 연주 속에서 빛을 내고 있다. 밝고 경쾌한 작품들로 모차르트를 생각하고있는 이들에게 이 앨범을 추천하고 싶다. 이 앨범을 듣고나면, 쉽게 접했던 다른 모차르트의 작품들에서도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파울 바두라-스코다의 연주대신, 유투브에서 찾은 졸탄 코치슈의 영상으로 음악을 대신한다.
Z. Kocsis - Mozart Fantasia in c minor, K.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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