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인터뷰 보다는 100배 더 깔끔하고 좋은 인터뷰였다.

[COVER STORY |책,싫어도 읽어라! 07] “책 잘 읽어 대학 가고 ‘토론 달인’ 됐죠”

[주간동아]

조원진(20·서울대 미학과 2년·사진 왼쪽) 씨와 김양우(20·연세대 외국어문학부 2년) 씨는 고교 시절 함께 한 독서토론 모임의 경험담을 엮어 최근 ‘노란 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삼인)를 펴냈다.

학교는 달랐지만 함께 다니던 학원에서 번갈아 1, 2등을 하며 서로의 ‘내공’을 확인한 두 사람이 독서모임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고교 1학년 2학기 말.

“통합교과형 논술이 도입되면서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훈련이 필요했거든요. 주어진 문제에 정답을 끼워맞추는 식으로 진행하는 학원의 논술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우리끼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조원진)

모임의 조직, 운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조씨는 “원래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뭔가를 집중해 읽는다는 게 귀찮아서 신문도 스포츠면에 실린 사진만 겨우 볼 정도였죠. 양우에게 좋은 책을 추천받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책에 대한 관심이 ‘혁명적으로’ 커졌어요.”

이들은 비틀스의 노래 제목을 본떠 모임 이름을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으로 정했다. 또 학교 성적과 독서량이 탄탄한 다른 3명의 친구를 끌어들였다. 토론모임은 2주에 한 권씩 책을 선정하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토론주자’가 돼 토론을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자 관심 분야가 다르다 보니 토론 주제도 다양했어요. 남들이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었죠.”(김양우)

이들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읽은 뒤 ‘전쟁을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했고, ‘슬로라이프’를 접하면서 입시 공부로 지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봤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온갖 감각을 동원해 경쟁자들의 ‘전투력’을 시험해본다는 거예요. 경쟁심에 휩싸이다 보니 정서적으로 황폐한 학창시절을 보내기도 하죠. 그러던 ‘모범생’들이 책을 매개체로 마음도, 비밀도 나누는 진정한 친구를 찾게 된 거예요.”

물론 수험생 처지에 마음 놓고 책을 읽기란 쉽지 않았다.

이들은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머리를 식힐 때, 또 화장실에서 틈틈이 읽는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했다.

조씨는 지금도 책장을 ‘다 읽은 책’과 ‘읽고 있는 책’ 섹션으로 나눈 뒤 재미없어서, 또는 시간 없어서 몇 페이지 읽다 만 책들을 따로 분류해놓는다고 한다.

“읽다 만 책들은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두고 수시로 꺼내볼 수 있게 했어요.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어려서부터 몸에 밴 독서 습관 때문에 뭔가를 읽지 않으면 허전하다는 김씨는 수험생 시절에도 일주일에 두세 권의 책을 읽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책을 펴들면 오히려 머릿속이 상쾌해진다”고 말할 정도.

‘노란 잠수함’의 다섯 멤버 가운데 독서토론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김씨뿐이다. 그는 논술 비중이 높은 수시전형에 합격했다. 독서와 토론이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은 다른 멤버들의 경우 수험생 시절 책을 읽느라 보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와보니 그때 다져진 읽기, 쓰기 능력이 오히려 빛을 발하는 느낌이에요. 전공 특성상 토론수업이 많은데, 다른 친구들보다 말하고 발표하는 데 익숙하거든요. 독서와 토론을 ‘놀이’로 생각하게 된 덕분인 것 같아요.”(조원진)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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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난척이 심한건 사실이었지만, 그 잘난척을 더 돋보이게 만든건 동아일보였다.

연락 받았을땐 출판사에 도움도 줄 겸 해보자 이거였는데, 동아일보 사옥에 들어서면서부터 후덜덜이었다.

한겨레 신문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그리고 우리가 진심을 담아 했던 얘기들은 아마도 주간동아의 편집방향과 잘 안맞았나보다.

결국에는 기사가 이렇게 나왔다. 기자는 기사가 나간 후 별 연락이 없었고, 보내준다던 주간동아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무데나 인터뷰하겠다고 해서 받아주면 이렇게 크게 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책읽고 대학 갔다가, 책만 들고 대학 관두고
 

 (1) 책읽기와 대학교 가기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는 고등학생이던 때, 학교나 학원 동무인 여러 아이들이 ‘책을 읽고 느낌을 이야기로 나누자’는 데에 뜻을 맞추면서 열다섯 차례에 걸쳐 ‘독서토론’을 해 온 발자국을 담아낸 책입니다.

 따로 학교에서 교사가 이끌지 않은 ‘책읽기모임’이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꾸역꾸역 몰려든 동아리가 아닌 ‘책읽고 나누는 모임’이었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열다섯 차례뿐 아니라 서른 차례이든 쉰 차례이든 얼마든지 ‘책읽고 나누고 함께하는 모임’으로 꾸려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또는 마땅하게도 ‘책읽기모임’은 ‘논술모임’으로 바뀌었고, 아이들 스스로도 이렇게 가야 한다고 그럭저럭 느끼거나 받아들였습니다. 열다섯 차례에 걸쳐 스스로 모임을 꾸려 나가던 어느 날, 아이들한테 가뭄에 단비처럼 모임을 도와준 ‘어른’이 나타났거든요.


.. 사실 《제3의 물결》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우리 모임이 수준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 책으로 토론을 하면서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어려운 책만이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항상 내 관점만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독서토론을 하면서는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친구들과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도 배웠다 ..  (32, 56쪽)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도움이 어른’은 아이들한테 더없이 좋은 길동무였을는지, 그지없이 반가운 이슬떨이였을는지.

 언제나 받아들이기 나름이므로, 아이들 스스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즐거이 함께하려 했다면 도움이 어른은 좋은 사람이고 고마운 길잡이입니다. 더구나, 아이들은 ‘책읽기모임’을, 티없는 마음으로 책을 사랑하는 줄기를 내 삶을 사랑하는 줄기로 잇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책읽기모임’을 하면서 ‘다가오는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 대비도 잘할 수 있어 괜찮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스스로 도움이 어른을 바랄밖에 없었고, 스스로 얼마든지 ‘책읽기모임’을 꾸려 나갈 수 있었고, 또 열다섯 차례 꾸려 나가기까지 했지만, 스스로 이루어 온 열매와 보람에 어떤 뜻과 값이 담겨 있는가를 더 깊이 곰삭이고 깨닫고 되뇌기보다는, 가볍게 ‘대학교 잘 붙기’ 쪽으로 갑작스레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 토론이 진행될수록 저마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게 됐다는 거다. 처음 멋모르고 독서토론을 시작할 때는 무서울 게 없었다. 어떤 개념을 모른다든지 지식이 부족하다는 데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고, 엉터리 같은 말이라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무지하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토론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보다는 주제에 대한 발표 위주로 진행되었다 ..  (106쪽)


 딱하다면 딱한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를 쓰고 함께한 아이들만 딱한 노릇이 아닙니다. 그나마 이렇게 ‘책읽기모임’이라도 해 보겠다면서 ‘입시에 옴쭉달싹 못하도록 매인 껍질’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몸부림조차 안 하는 아이들이 거의 모두이니까요.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고, 그예 억누르는 틀에 맞춰 지내면서, 몰래몰래 ‘어른들 하는 짓’을 따라 담배도 태우고 술도 마시고 사랑놀이도 즐기면서 푸른날(청소년기)을 썩히고 있으니까요. 담배태우기와 술마시기와 사랑놀이가 나쁜 짓이 아니라, 왜 담배를 태우고 왜 술을 마시며 왜 사랑을 나누려 하는지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채, 그저 ‘어른 따라하기’로 치달을 뿐이니까요.

 학교에서는 시험만 잘 치르면 ‘착한 아이’가 됩니다. 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험을 잘 치르는 아이가 몹쓸 짓을 한다 해서 크게 꾸지람을 듣는 일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옆 짝꿍을 괴롭힌다든지 도둑질을 한다든지, 또는 청소 땡땡이를 친다든지 겉속이 다른 말을 한다든지, 애엄마나 늙어 힘든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안 돕는다든지, 새치기를 버젓이 한다든지,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든지, 용돈이 넉넉해 군것질을 내키는 대로 한다든지, …… 타이르고 다독일 대목이 많다 하여도 ‘공부를 잘하는데요!’ 하면서 대충 얼버무리거나 잠자코 지나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시험성적이 좋은 아이는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이 아이를 때리는 교사는 몽둥이 세기가 달랐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한테는 온힘을 다해 몽둥이질을 더 많이 했고, 공부 잘하는 아이한테는 살살 몽둥이질을 하는 데다가 몇 대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웬만한 잘못은 슬쩍 못 본 체하기도 했습니다. 담배 태우다 걸리는 동무들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뺨 한 대 맞고 풀려나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는 ‘너흰 임마, 수업 안 들어도 되잖아? 어차피 잘 텐데?’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장 돌 줍기에다가 툭하면 발로 엉덩이 걷어찬다든지 하면서 갖은 모욕을 주면서 괴롭히기만 했습니다.


.. 논술공부를 한다는 것, 또는 그와 비슷하게 입시의 맥락에서 독서나 토론을 한다는 것은 사실 특정한 문화의 산물이었고, 그 문화는 정확히 말하면 중산층 가족의 것이었다 … 이렇게 ‘권력을 지닌’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다른 언어들 내지 하위주체의 언어들이 추방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193쪽)


 따지고 보면,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라는 책 하나까지 이루어 낸 아이들은 퍽 남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제법 잘 나오는 아이들인 가운데, 집안 형편도 썩 괜찮았던(그러나 아주 넉넉하지는 않은) 아이들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그럭저럭 어중간이었다면, 또 집안 형편도 그리 낫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 아빠 엄마 되는 분들께서 ‘그래, 너희가 좋은 생각을 하는구나. 잘해 보렴!’ 하면서 북돋워 주거나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치지 않았겠다고 느낍니다. 하물며 학교에서는 어떻겠습니까. 뭔가 ‘불량서클’을 ‘책읽기모임’이라는 이름을 입히면서 뻘짓거리 하지 않느냐고 눈을 번득이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되는 아이’에다가 ‘있는 아이’라는 ‘타고난 재주’가 있으니, ‘책읽기모임’을 내걸면서 입시논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로지 대학교 가기만을 바라고 있고 내몰고 있고 밀어붙이고 있거든요. 제아무리 착하고 얌전하고 바르고 상냥한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시험성적은 젬병이라면 ‘저 병신!’ 하고 깎아내리는 교사요 부모요 어른입니다. ‘그래, 좋은 사람이구나!’ 하면서 어깨를 쓰다듬고 손을 맞잡아 주지 못하는 교사요 부모요 어른입니다.

 교사든 부모든 어른이든 아이들 스스로 ‘책읽기모임’을 하든 ‘야구모임’을 하든 ‘연극모임’을 하든 ‘인터넷게임모임’을 하든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거들 일은 거들면서 기쁨과 슬픔을 아이들이 온몸과 온마음으로 맞부딪칠 수 있게끔 부드러운 울타리가 되어 주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돈에 매이고 이름에 팔리고 힘에 끄달리는 삶이거든요. 어른들부터 옳지 않게 살아가면서 아이들한테도 옳지 않은 삶을 ‘현실은 이러하니 어쩔 수 없더라’ 하는 핑계로 감추어 놓고 있거든요.


..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분명히 다른 사람과 함께 부대끼면서 배워 나가는 것임에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다른 삶들과 만날 기회는 점점 적어졌다 … 내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  (210∼211쪽)


 이리하여,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는 조금도 대단한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라꼴이 이러하기 때문에 외려 대단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뒤죽박죽 엉키고 꼬이고 다투고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잔뜩 담긴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야말로 아이들 오늘날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힐 수밖에 없는 고등학교 삶자락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교육방송 교재’와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입시지옥 속알맹이를 더 깊이 파고들거나 파헤치는 눈썰미를 기르지 못해 겉핥기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렇게 겉모습이나마 핥으면서 잘잘못을 깨닫는 눈썰미를 스스로 길러내려고 한 아이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교사나 부모가 시키는 교과서 외우기와 논술대비를 벗어나, 스스로 ‘참답게 알고 싶다’는 마음외침을 따르면서 손수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골라드는 아이는 이 나라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빈틈없이 나올 수 없던 책이요, 처음부터 허술함 가득한 채 이루어질 수밖에 없던 ‘책읽기모임’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빈틈많음과 허술함이야말로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를 읽는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깨지고 까이고 넘어진 발자국이야말로 ‘앞으로 중고등학생인 나이에 스스로 책읽기모임을 꾸려 나가는 좋은 앞사람 보기’가 되어 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2) 왜 관두지 못할까


.. 토론이 잘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일이 모두에게 처음일뿐더러, 어려운 책을 고르는 바람에 모두가 읽는 것조차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토론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아직도 60년대식 사고에 멈춰 있는 틀에 박힌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것들을 암기시키는 식으로 수업을 한다. 우리는 그동안 10년을 학교에서 공부했으나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운 토론을 해 본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 무조건 풀고 답을 적기만 강요했던 수학이, 암기만 죽어라 했던 역사가 진짜 공부일까? 아무리 흥미 있는 내용이라도 문제 풀기나 암기에 치중해 공부하면 따분하고 지루해진다. 학생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공부를 피해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다 ..  (36, 109쪽)


 고등학생 아이들 네다섯이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가며 책을 읽으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모습을 책으로 읽으면서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나이였을 때에는 어떠했는가를 돌아봅니다.

 제가 책읽기에 눈을 뜬 때는 중학교 2년이고, 한 반에 《영웅문》을 교과서 뒤에 숨기고 읽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좋은 책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리고 제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없고 쓸데없는 시험지식 외우기 수업이 골이 난 저로서는 딱히 할 일도 없어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나 하고 있었는데, 그 교과서 밑에 책을 감추어 놓고 읽는 모습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제 뒤통수를 그지없이 후려갈겼습니다. ‘수업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뭐 마땅히 읽을 만한 책이 우리 집에 없었고, 학교에서 어디 빌려 주는 데도 없습니다. 그래도 기껏 읽는답시고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300원 주고 빌려서 읽었습니다. 그런 다음 중학교 3년 때에는 얇은 ‘빨간 책(시사영어사에서 펴낸 영한대역본)’을 한 권에 1000원에 사서 읽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고2로 올라선 무렵, 바야흐로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제가 입시를 치를 1993년 가을부터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뀐 틀에 맞추어야 했고, 제 또래는 수능뿐 아니라 논술도 맨 처음으로 치르는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나중에 논술시험은 몇몇 대학교에서만 치르는 틀로 다시 달라졌습니다). 갈팡질팡 입시제도 때문에 갈피를 잡기 어려웠지만, 저로서는 한 가지 빛줄기를 보았으니, ‘외워서 잘 쓰는 시험문제 풀이에서 벗어나, 교과서 아닌 책도 읽고 생각하는 테두리를 넓힌다’고 하는 입시방침이라고 밝힌 대목입니다. 그래서, 중학교 2년 때부터 하던 ‘교과서 아닌 책’ 읽기를 마음놓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했기에,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딱 두 사람만 ‘대학 독일어 논술시험’을 따로 준비해야 했는데, 학교에서는 ‘두 사람한테만 가르치자고 독일어 수업을 할 수 없다(그러나 우리 학교는 제2외국어로 버젓이 독일어를 가르쳤고, 수업도 한 주에 두 번 있었으나, 1학년 때에만 수업을 하고, 그 뒤 이태 동안은 국영수 보충수업과 다름없이 해 버렸습니다)’고 밝히며 우리 둘보고 학원에 가서 배우라고 내밀었습니다.

 대단히 엉뚱한 학교입니다만, 전교조도 없던(이제 막 꿈틀거리던) 때에 무슨 수업권이 있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인천에서 독일어를 어디에서 가르치느냐 알아보니 딱 한 군데 있었고, 그나마 그 학원에서도 독일어 수업은 고작 일곱 사람만 들었습니다. 학원강사는 당신 스스로도 우리를 가르치기 쉽지 않음을 느꼈을 텐데,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독일어를 기본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니, 알맞춤한 교재가 딱히 없어, 당신이 예전부터 쓰던 교재를 장만해 오라 했는데, 그 교재는 인천 시내 어느 책방에서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마실을 가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도 갔으나 그곳에서조차 팔지 않았습니다.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더군요. 빈손으로 학원으로 가니, 학원강사는 우리 두 사람한테 ‘헌책방에는 갔느냐?’고 물었고, 안 가 보았다 하니, 헌책방도 안 가 보고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줄곧 입시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아끼려고 발버둥쳤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공부해서 숨막히는 경쟁에서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잃는 게 많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면서,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홀히 하면서 입시에만 매진하다 보니, 내 삶에서 내가 없어졌던 것이다 … 이 시대와 절대 발맞추지 않으려는 듯한 꽉 막힌 이야기도 (교과서에) 많이 실려 있어 공부하기가 무척 괴로웠다. 고리타분하고 뻔한 내용이어서 흥미가 일지도 않고 공부할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 뛰어난 인재들을 동원하면서도, 내용을 시대에 맞춰 더 개정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교과서를 무조건 암기하게 한다는 것이다 … 교실에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이 금기시된 듯한 느낌이었다 ..  (47, 92∼93쪽)


 이리하여 토요일 보충수업이 끝난 세 시 반에 부리나케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골목으로 갔고, 이곳에서 세 시간 남짓 뒤진 끝에 꼭 두 권을 찾아냈습니다. ‘있구나, 있어!’ 하면서 기뻐하는 가운데 책값을 치렀고, 책값을 치르고 나오려는데 책방 뒤쪽이 궁금해 슬쩍 돌아보다가, 헌책방에 ‘교과서와 교재 아닌 책’도 많이 갖추고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판이 끊어진 독일어 교재 하나 찾아낸 일은 기뻤지만, 이 기쁨을 잠재울 만큼 ‘뭐야? 헌책방은 이런 곳이었나? 난 이런 헌책방에서 고작 판끊어진 교재나부랭이나 찾는답시고 몇 시간을 헛되이 버렸나?’ 하고 생각하며 부끄러웠습니다.

 이날부터 제 책읽기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제 책읽기뿐 아니라 책을 읽는 매무새도 바뀌었고, 책을 읽으며 바라보는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여느 새책방에는 꽂혀 있지 않던 책을 헌책방에서 잔뜩 만났고, 교재와 부교재에는 대충 이름만 걸쳐 놓던 ‘시인과 소설가 작품집’이 얌전하게 꽂혀 있어 들뜬 마음으로 하나둘 장만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좋고 나쁨을 떠나, 통으로 책 하나를 살피면서 앞사람들 넋과 얼을 돌아보는 일에 마음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ㄱ대학교 한국사학과를 꿈꾸면서, 고등학교 3년 때에는 일찌감치 그 ㄱ대학교 역사학과에서 교재로 삼는 역사책을 모두 읽어냈고, 그 대학교 교수들이 쓴 웬만한 역사책은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었습니다.


..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이다. 어째서 우리 나라의 많은 고등학생들은 스무 살이 가까워져서야 생각하기와 글쓰기를, 그것도 ‘입시를 위해서’라는 옹색한 이유로 해야만 하는 것일까 … 동시에 우리는 글쓰기 영역에서도 자유로운 글쓰기가 아닌 논술에 맞춘 글쓰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조차 우리는 별 무리 없이 수긍했다. 대학에 가야 한다는 절박함은 어찌 보면 쉽게 생길 법한 고민들을 없애 버렸다 …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로부터 이를 극복할 전망을 발견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나조차 중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잘했지만 말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늘 ‘사탕’이 주어진다 ..  (140, 147, 161쪽)


 1993년 입시에서 저는 제가 바라던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로 바라던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로 바라던 곳을 다니며, 대학교가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다쳤습니다. 내 학생증은 복학생이었다가 졸업까지 했어도 일자리를 못 얻고 도서관을 헤매는 선배한테 선물로 남기고 그 대학교를 관뒀습니다. 이럴 바에는 고등학교부터 관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속이 아팠으나,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고등학교를 때려치운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일찌감치 그만두었으면 내 삶이며 생각이며 더 단단하고 슬기롭게 다스리지 않았겠느냐고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더 아름다운 제가 되었겠습니다마는, 얄궂고 어줍잖은 길을 어느 만큼 걷기도 한 탓에, 얄궂고 어줍잖은 길에서도 아픈 이웃이 있으며 아픈 이웃을 돕는 길을 생각할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거꾸로, 얄궂고 어줍잖은 길을 안 걸으면서 더 크고 너른 아름다움을 나눌 길을 찾았을 수 있는데, 스스로 잘잘못하고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까이고 차이고 넘어지고 얻어맞고 쫓겨나고 밟히고 하던 하루이틀이 제 몸을 한결 단단하게 갈고닦는 밑거름은 아니었을까 싶으며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를 덮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이만큼 생각밭을 일구는 매무새라 한다면, 이 아이들 스스로 제 기득권을 얼마든지 내버리면서 아이들 꿈과 뜻에 튼튼한 날개를 달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대안학교도 많고 뜻있는 괜찮은 대안학교 교사도 많은 요즈음은 얼마든지 “책의 바다에 빠지는 노란잠수함”이 더 즐겁고 신나게 바다밑을 넘나들고 누빌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찌감치 ‘입시를 관두지 않았’고, ‘시험성적이라는 기득권을 더 꼭 움켜쥐었’기 때문에 이렇게 책 하나로 갈무리하는 아이들 푸른날을 남길 수 있었으며, 이 푸른날을 발판으로 삼아 아이들 스스로 ‘곧바른 지식인으로 걸어갈 길’을 차근차근 다지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노란잠수함’ 아이들은 아직 제대로 까이지 않았거든요. 남김없이 밟히고 짓이겨지고 차이고 밀리고 쫓겨나고 들볶이지 않았거든요. 이제부터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부딪히면서 까이고 아파하고 밟히고 슬퍼하고 차이고 괴로워하며 쫓겨나고 고달픈 가운데, 세상 살아가는 보람을 저마다 다르게 붙안지 않겠느냐 믿어 봅니다.

 저한테는 ‘책읽고 대학 갔다가, 책만 들고 대학 관둔’ 삶이지만, 이 아이들한테는 ‘대학 가려고 책읽고, 책도 들고 대학도 다니는’ 삶으로 일구면서, 이 나라에서 함께 어깨동무할 수 있다면, 이런 삶으로도 서로서로 반갑고 기쁠 수 있다고 믿어 봅니다. (4342.6.3.물.ㅎㄲㅅㄱ)

http://cafe.naver.com/hbooks.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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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는 책을 좋아하는 고딩 다섯 명이 모여 어설프지만 욕심껏 독서 토론을 이끌어간 내용을 담은 책이다. 총 3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인 그들이 2006년 동안 15회에 걸쳐서 독서토론을 진행한 과정하며 결과물들을 소개하는 장이다. 2부는 그들이 토론한 책 중에서 마르셀 모스의  『선물, 경제 너머를 꿈꾸다』에서 이야기하는 ‘증여론’을 현실에서 만나본, 공짜 선생님을 만난 이야기와 이미 대학생이 된 양우 학생이 본 인문계 고교의 고3으로 산다는 것, 새로운 방식의 논술수업, 입시를 위한 글쓰기에 관한 생각 등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주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3부에서는 노란잠수함 멤버들 다섯 명의 유쾌한 수다가 이어진다.

 아무리 책을 좋아해서 모인 학생들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2학년에게 독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노란 잠수함의 항해는, 처음에는 입시제도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되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리도 대학 진학을 위해 논술 공부가 필요했던 것이다. 논술시험에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부모님께 부담을 지우며 등록한 논술학원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이렇게, 저런 문제에 대한 답은 저렇게, 하는 식으로 모범답안을 쓰는 것만을 가르쳤다. 또한 사교육에 맞서 학교에서 어렵게 생겨난 논술 수업들도 그다지 큰 실효를 보지 못한 채 명맥만 유지하며 지속되었다. (25쪽)

 여느 고등학생과 마찬가지로 입시를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만난 노란잠수함이 특별한 이유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함께 입시가 아닌 책 읽기 본연의 즐거움을 나름대로 누렸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의 도움도 학원의 도움도 아닌 그들 스스로가 사유할 수 있는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들이 선정한 책은  『제 3의 물결』이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이 책은 필독서였던 걸로 안다. 하지만 읽은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뭣 하러 어른들도 잘 읽지 않는 책을 필독서로 선정하여 책 읽는 즐거움의 싹을 잘라버리는지 모르겠다. 노란잠수함 멤버들도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골랐다는 것을 알고 다음 토론부터 책의 난이도를 조절한다. 토론이 무르익을 무렵, 『대담』이란 책을 읽고 문과·이과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는 점은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대도 무척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도 중간 중간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문제점이라든지 고딩시절의 암울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자칫 대안이 없는 불평불만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비추어 그들이 지닌 문제의식만은 대단한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혹, 이 책을 참고하여 독서 토론 모임을 이끌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참 좋은 참고서가 될 듯싶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trio000&artSeqNo=1379230&viewRep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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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온 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가네요.
가끔씩 이렇게 올라오는 서평들을 읽다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고마워요,



1년 반 만이다. 다섯명이 다 같이 만난 일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기에 이전처럼 2주에 한 번 다 같이 볼 일이 없었다. 만나는 일이야 가끔 한 두명이서 모여 술잔을 부딫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가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될 줄은 몰랐다. 모두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약속된 시간에 맞춰 홍대로 와주었다. 오랜만이었지만, 우리는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서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와 양우를 제외하곤 다들 출판사를 와본 적이 없어 살짝은 분위기가 얼어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곧 화기애애해졌다. 솔직한 얘기들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책의 주된 내용은 나와 양우가 적어나가겠지만, 과거에 우리가 가졌던 추억은 모두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쨋건 다섯명의 목소리가 모두 책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한 처사이다. 마무리 작업에서 부랴부랴 약속을 잡고 5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좀 더 좋은 출판을 위한 모두의 노력때문일게다. 4시간 남짓 이뤄진 회의는 시간가는줄 모르게 진행되었고, 어느정도 책의 윤곽이 잡히고 작업의 마무리를 바라볼 수 있게되었다.

작년, 그러니까 2008년 3월 처음 출판 제의를 받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떠겠냐는 유성룡실장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애초에 우리 모임이 출발할 때부터 책을 만는 것이 소정의 목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여러모로 필요한 출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하고 멤버들 중 같이 작업이 가능한 양우와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출판계획서를 만들고, 출판사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다. 딱딱한 분위기에서가 아닌 편한 술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속마음을 진솔히 털어놓았다. '왜 우리가 책을 출판해야 하는가?' 혹은 '우리의 이야기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따위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대화를 나누면서 양우와 내가 합의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입시 성공을 위한 메뉴얼'을 출판하겠다는 것이라면 우리는 정중히 거절하겠다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대학을 잘 가는 방법 정도라면 우리보다도 훨씬 더 좋은 입시결과를 가진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시중에는 그런 책들이 많이 있을 뿐더러, 우리도 별 그것들에 별 흥미가 없었다. 또한, 결론적으로 우리 모임이 입시에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다섯명 중 두명은 논술로 대학을 가지 않았다. 두 명은 더 높은 목표를 위해 다시 팬을 잡았고, 한 명은 논술로 대학을 갔지만 워낙에 글을 잘 쓰는 친구였다. 여러모로 우리는 입시와는 상관없는 모임이었다. 출판사의 입장도 우리와 차이가 없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은 '입시 성공기를 잘 만들어내 수익을 내 보려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꼭 필요한 책'이었기에 소수의 독자들만 책을 사게 되더라도 과감히 내 보겠다는 것이었다. 몇 번의 접촉이 오가고 본격적인 책 쓰기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책을 '논술을 잘 쓰기 위한 비법'을 찾아내거나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지름길'을 위해 읽고자 했다면 당장 이 순간부터 책을 덮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가 풀어놓을 이야기들은 이 두가지 것들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다. 애초에 모임이 만들어졌을 때, 5명이 가진 마음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2년여간의 활동속에서 우리는 공통의 분모를 발견했다. 10대의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열정적인 일 중 하나가 '독서'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은 입시라는 짧은 목표에 응한다기 보다는 인생에 있어 큰 방점하나를 찍는 작업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책을 읽게 되었는지, 아무런 강요 없이 스스로 토론을 하게 되고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앞으로 우리가 써 나갈 내용들이다. 더불어 이러한 활동 또는 행동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찾아볼 것이다. 고등학생들에게 책을 못들게 만드는 입시제도에 대한 비판이며,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메뉴얼을 만들어가며 토론을 했던 생생한 경험담이기도 하다. 팍팍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물','증여','연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처음 우리가 모였을 때 모습이 서로 달랐고, 목표도 달랐다. 아마 이 책을 펼친 많은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공통 분보를 발견하며 모임의 의미를 찾았던 우리들의 모습처럼 이 책의 독자들도 하나의 소중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와 책읽고 이야기하니 스트레스 훌훌
생각 정리되고 남 설득할 논리력 키워져
독서토론 모임 ‘노란잠수함’ 회원들 만나보니
한겨레
» 조원진(서울 대성고 졸·왼쪽), 김양우(서울 대신고 졸·오른쪽).
“애초에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은 비틀스의 앨범에서 따온 것입니다. 노란색은 회원들이 지적 재기발랄함을 뜻합니다. 학문의 탐구에 대해서 어떤 경계, 어떤 권위도 넘나드는 지적인 월경(越境), 이것이 우리의 정신입니다.”

인문학의 바다에서 ‘노란 잠수함’을 타고 대학에 간 이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 때,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을 썼다. 이른바 ‘인문학적 활동’이다. 김양우(서울 대신고 졸), 김준기(서울 충암고 졸), 이은호(서울 대성고 졸), 조원진(서울 대성고 졸), 홍종일(서울 대성고 졸), 89년생 동갑내기 다섯 명이 그 주인공이다. 노란 잠수함은 모임 이름이다. 이들은 인문학적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조원진씨는 우선 ‘재미’를 꼽는다. “일주일 내내 내신이나 수능 공부에 시달리다 일요일에 친구들을 만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주일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정도였으니까요. 마치 노는 것 같았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같은 정신분석학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 남학생들의 왕성한 성욕을 이해하는 것은 ‘야동’을 보는 것 못지않았다.

재미있는 토론이 되려면 조건이 있었다. 책을 이해해야 했고 각자 읽은 내용을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논리’가 필요했던 거다. 김양우씨는 “책을 혼자서 읽고 말면 내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남들과 얘기하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논리를 만들 수도 있으므로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친구들과 함께한 토론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갓 스무살이 된 이들이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어려움 없이 책을 쓰고 있는 것도 이때 얻은 글쓰기 내공 덕이다. 발표와 토론이 많은 대학 수업에 적응하는 것도 수월했다.

조원진씨는 독서토론을 통해 이기적인 성격을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독서는 결국 타인이 타인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이므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며 “토론을 통해 남의 의견을 듣고 인정하는 경험을 쌓은 것도 나 말고 다른 이를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김양우씨는 독서토론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는 논술 반영 비율이 큰 수시 모집을 통해 연세대 외국어문학부에 입학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독서토론에 논술 학원 선생님들이 참여해 논술 첨삭을 받긴 했지만 친구들과 꾸준히 진행했던 독서토론이 힘이 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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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다양한 4~5명 규모 모임 적당”

김양우씨는 “논술에 관심이 있는데 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담스럽고 스스로 뭔가 하고 싶다면 친구들과 독서토론 모임을 꾸리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좋다. 고교 시절의 한 자락에 사색의 물을 들이고 싶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노란 잠수함의 노하우에 주목하라

우선 모임의 규모는 4~5명 정도가 좋다. 인원이 너무 적으면 발제 순서가 일찍 돌아와 금세 지칠 수 있다.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보다는 서로 다른 친구들이 모이면 훨씬 더 풍부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하라. 참고로 노란 잠수함의 다섯 명은 철학, 수학, 역사, 문학 등 각자의 관심사가 크게 달랐고 서로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모았으면 규칙을 정한다. 규칙은 구성원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정하면 된다.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책임과 의무가 부여돼 있어야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다. 단, 규칙을 고수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모임이 끝날 때마다 그냥 모임 자체에 대한 반성과 검토를 통해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고교생 독서토론의 원조 격인 ‘노란 잠수함’은 비슷한 성격의 독서토론 모임을 만드는 고교생들에게 모임 운영 등에 대한 조언을 해 줄 계획이다. 선착순 다섯 팀이며 원하는 이들은 전자우편 (edu@hani.co.kr)으로 보내면 된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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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인터뷰 이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신 진명선 기자님. 덕분에 책이 나오기도전에 메스컴을 탔다.
열심히 쓰고있지만 힘든 요즘, 이런 일들은 막판스퍼트를 올리게 해준다.

날 인터뷰 한 기사중 제일 마음에 드는 기사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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