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io Abbado, Lucerne Festival Orchestra, Bruckner Symphony No.9

 

아바도는 밀라노의 유력한 음악가문에서 태어났다. 앨리트 코스를 밟고 지휘자로 성장하던 아바도는 1965년, 카라얀의 초청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하게 된다. 이 때의 성공으로 아바도는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는다. 이후 1989년에는 바렌보임, 로린마젤, 무티, 오자와등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카라얀의 뒤를 잇는 베를린필 지휘자가 된다. 이처럼 아바도는 흠잡을데 없이 훌륭한 프로필을 가진 지휘자였다. 그리고 2014년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많은 이들이 이 훌륭한 지휘자를 애도하고, 뛰어난 업적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이어졌던 칭찬 릴레이처럼 그의 지휘는 늘 호평을 받아오진 못했다. 베를린필 지휘자가 되고나선, 위대한 지휘자를 잇는 자리에는 어부지리로 당선됐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지나친 민주적 방식의 오케스트라 운영으로 기존 단원들은 탈퇴하기도 했다. 단원들은 그의 리더십에 지루함을 느꼈고, 카라얀 이후에 베를린필의 변해버린 분위기는 음반 판매고의 저하를 가져왔다. 음반 판매 수입만으로도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던 단원들은 뚜렷한 히트곡 없는 아바도의 디스코그라피에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아바도는 2002년 이후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베를린필 상임 지휘자에서 물러났다.

 

그가 베를린필을 떠나고 만나게 된 루체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아바도의 마지막 실황 공연으로 남았다. 2003년부터 호흡을 맞춰오던 오케스트라는 아바도와 함께 더 많은 레퍼토리를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브루크너 9번을 커플링한 이 날의 실황은 아바도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아바도는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다. 수많은 비판과 단원들의 불만 속에서도 꾸준하게 지켜냈떤 자신만의 신념을 담아 평소처럼 지휘했다. 초저녁의 가을바람 같이, 보슬비 같이, 첫 악장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 하이팅크가 발매한 브루크너 9번은 속도감과 과장된 대비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반면, 아바도는 사뿐사뿐하게 연주를 진행해 나갔다. 끊임없는 쏟아지는 9번 교향곡의 멜로디는 담백한 아바도의 연주로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냈다. 먹의 농담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듯, 그는 '아바도식 작별인사'를 그려냈다.

 

빈은 브루크너에게 끝가지 호의적인 곳이 아니었다. 포퓰리즘이 가득하던 빈에서 브루크너의 음악은 브루주아적 감성에 쩌든 교향곡일뿐이었따. 성공 이후에도 그칠줄 모르는 비난 속에 8번 교향곡을 완성한 1887년부터 1896년까지, 브루크너는 10년 동안 9번 교향곡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지막 악장을 완성하지 못한채 죽는다. 그렇기에 그의 9번 교향곡은 수많은 수정을 거쳐 대중의 입맛을 맞췄던 기존의 교향곡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생전에 발표되지 않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는 신념을 담아낼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교향곡은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정도로 과감한 관현악적 시도가 들어있었다. 평생동안 담아왔던 음악적 시도들은 그의 앞에 다가온 삶의 마지막 순간에, 신에게 바치는 애절한 마음을 담아 그려졌다. 그의 죽음과 마지막 교향곡은 독일-오스트리아 낭만파의 최후를 선언할 정도로 베토벤의 양식을 발전시키고 변용하며 미래를 그려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대로 음표를 그리고, 지휘봉을 잡았다는 점에서 브루크너와 아바도는 닮았다. 아바도는 늘 자신을 둘러싼 음악세계를 넘어 피안을 그렸다. 세계적인 명성을 받는일보다, 음반을 많이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예술이 그려내는 깊은 아름다움을 온 몸을 다하여 표현하는 일이었다. 세속적인 일에 지쳐있던 아바도는 브루크너를 통해 큰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그 신념과 위로를 담아 아바도는 편안한 마음으로 9번 교향곡을 지휘했을 것이다. 가장 아바도스러운 방식으로 뽑아낸 브루크너의 선율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가장 아름다운 브루크너를 선사할것이다. 다양한 교향곡 레퍼토리가 쏟아지는 지금, 언제나 그걸 연주했던 아바도의 음반이 언급되는건, 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늘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렸던 그의 지휘 때문일 것이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Claudio Abbado, Lucerne Festival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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