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경도설(茶經圖說)차에 관한 최초의 서적인 육우 다경(茶經)을 그림과 함께 풀어쓴 책이다. 다경을 해설한 책은 논문에 가까운 것부터 차에 입문하는 이들이 쉽게 접할수 있도록 간편하게 요약한 버전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다경도설은 치우치핑이라는 중국 차 연구 학자가 다경을 풀어쓴 것을 번역한 책이다. 여기에 다양한 그림까지 더해져서 다경'도圖'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차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차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커피를 공부함에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책을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에 대한 깊은 혜안이 담긴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더해주는데 큰 도움이 됐다. 개인적인 생각을 나열하기보다 책에 나온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고민을 나누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를 해둔 부분 중 일부를 옮겨본다.

 

 

  • 차는 들에서 자생하는 것이 좋고, 밭에 가꾸어 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양지쪽의 벼랑이나 그늘진 숲에서 나는 차가 좋다. …(중략)… 그늘진 산이나 비탈진 계곡에서 나는 것은 채취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나는 차는 그 성질이 엉기고 막히어 몸에 병을 일으킨다. (36쪽)
  • 고산의 구름과 안개가 좋은 차를 낳는다. (37쪽)

 

책은 차가 재배되는 환경에 대해 서술하며 시작된다. 고산에서 좋은 커피가 재배되듯 차 또한 고산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 상품이 탄생한다. 억지로 재배하는것보다 스스로 자생하는것이 상품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은 우리가 '야생커피'를 발견하고 그 오묘한 맛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좋은 자리에서 스스로 자라는 커피가 있다면 그 커피야 말로 진정한 스페셜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량 생산에서 벗어나 농장별, 섹터별 마이크로랏 커피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참고해볼만한 구절이다. 커피를 재배함에 있어 얼마나 인간의 손이 닿아야 하는가. 좋은커피는 결국 자연에서 나온다. 고산의 구름과 안개가 차를 '낳는다'는 표현은 그래서 더 깊이 와닿는다.

 

  • 차의 쓰임은 그 맛이 매우 찬 것이어서 그것을 마시는데에 적당한 사람은 정성스러운 행실과 검소한 덕을 갖춘 사람이다(40쪽)
  • 병차시대에 차를 맛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방아를 찧고, 스스로 체에 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 '입으로는 말할 수 없고 마음으로 쾌활하게 자득한다'는 초연한 의경을 경험하게 되는것이다(127쪽)

 

다도(茶道)라는 말이 있다.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목을 축이는 것 뿐만 아니라 예를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통해 얻어진 것을 스스로 다스려 마시는 일 만큼 고귀한 일이 어디있는가. 커피도 마찬가지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마시는건 종교의식처럼 여겨진다.

 

'추출이란 말은 그것이 간단한 과정이라는 환상을 낳게 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많은 가변요소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테디 링글이 추출에 대해 한 말은 육우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커피를 추출하고 마시는 일은 간단해보이지만 많은 가변요소들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커피 한 잔에 예를 갖추고 한 모금에 마음을 다스린다는건 지나친 일이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것을 볶고, 내리는 과정을 생각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투로 만들어지는 커피 한 잔이 어디있겠는가.

 

 

  • 차를 구울 때 사용하는 불의 연료는 숯이 가장 좋고, 다음은 단단한 떌감이 좋다. 그 숯은 일찍이 지지거나 굽는일을 해서 누린내나 비린내가 스며 있는 것이거나 진이 나는 나무와 썩은 그릇은 쓰지 않는다. 옛 사람들이 '썩고 문드러진 땔나무로 음식을 만들면 이상한 맛이 깃든다'고 했는데 믿을 만하다.(170쪽)
  • 차를 달이는 데 사용하는 물은 산수가 상품이요, 강물은 중품이요, 우물의 물은 하품이다. 산수는 젖샘이나 돌로 된 못에서 천천히 흐르는 것이 상품이다. 용솟음치거나 '솨아' 소래를 내는 물은 먹어서는 안된다. …(중략)…강물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것을 취하고, 우물물은 길어가는 사람이 많은 곳을 취한다.(175쪽)

 

다시 자연의 이야기이다. 상품의 뗄깜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탄화배전을 생각하게 한다. 좋은 불로 볶은 콩은 맛있을 수 밖에 없다. 물 또한 마찬가지다.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강한 물은 차의 맛을 헤친다. 역시 자연의 힘을 생각케 한다. 육우는 물과 뗄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다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커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로스팅을 하고, 추출을 함에 있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단연 맛있는 커피가 나올 것이다.

 

  • 새는 날고, 짐승은 뛰어가고, 사람은 입을 벌려 말한다. 이 셋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마신다는 것의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목이 마르면 장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196쪽)
  • '신선한 바람 속에 차 한 모금 마시면 마음 스스로 맑아지네', '마시면 쓰나 목구멍에는 달고', '진귀하고 고운 향기 가득한' 차탕을 품음할때에는 선엽을 딸 때부터 차로 만들어 마실 때 까지의 전체 공예 과정에서 적지 잖은 이치와 방법을 하나하나 파악하여 '아홉가지 어려움'을 깨달아야 하며, 이 아홉가지 어려움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육우가 들었던 다도의 당오에 도달할 수가 있다.(207-208쪽)

 

'마신다는 것의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한 번이라도 마시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되돌아본다. 커피 농장에서 카페의 테이블까지. 한 잔이 거쳐온 자연의 힘과 바리스타의 노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누군가 '순댓국이 6천원, 커피가 6천원. 순댓국만도 못한 커피가 왜이리 비싼가'라고 말해서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커피는 순댓국이 주는 포만감과 영양소들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육우가 말했듯 마시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우는 일을 넘어선다.

 

커피 가격 논쟁은 물론이요 최근 가장 깊이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커피'에 대해서도 다경도설은 답을 주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한 잔을 소중히 하는 육우의 다도(茶道)는 우리의 커피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물줄기를 잡아 커피를 다스리는 핸드드립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제부턴가 그 모습을 두 잊고 TDS를 측정하고, 월드 챔피언의 레시피를 따르고, 트렌디한 추출기구만을 찾고 있다. 다경도설의 여러 구절을 읽으며 빈 드리퍼 가득 물을 부으며 연습했던 핸드드립이 생각났다. 처음 커피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커피를 하면 할수록 자연의 위대함을 느껴, 자연을 이길 순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자연이 허락한 한도에서 최선의 맛을 뽑아내는거지'.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일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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