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오랜 친구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모리스 라벨의 스테디 셀러 '라 발스' 연주 실황. 

 

 

모리스 라벨

 

중학교때 읽었던 소설에서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가 흐르는 장면이 있었다. 궁금한 나머지 들었던 음악은 신비로움이 가득했다. 너른 잔디가 인상적인 야외무대에서 서서히 울려퍼지는 볼레로의 연주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나도 언젠가는 저곳에서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내가 두번째로 구매한 클래식 음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프로코피예프, 라벨 작품집이었다. 무얼 들어야 하고 사야할지 몰랐던 그때, Y선배의 추천으로 덥썩 집었던 음반이다. 구매 당시에는 요란하고 난삽했던 음표들이 어지러워 두 번 정도 듣고 시디장에 넣어두었다. 프로코피예프에 빠져있을때 1-3번 트랙만 주구장창 틀었던 적이 있었으나 라벨은 논외였다. 별로 관심이 가질 않았다.

문득,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작품이 듣고싶어졌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건 아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라벨이 떠오른것이다. 모리스 라벨이 듣고싶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풍월당에서 나는 좋은 음반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알렉상드르 타로의 프랑스 작곡가 작품 연주 모음집이었다. 그리고 포근한 타로의 연주로 나는 라벨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집에와서 라벨의 작품들을 더 찾아보다 문득 시디장에 있는 앨범을 발견했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이 담긴 그 앨범이었다. 처음 시디를 열어보는 마음으로 라벨을 플레이했다. 당분간은 모리스 라벨에 빠져들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소설의 첫 문장이 이리도 아름다울수 있는가라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설국의 첫문장은 불과 몇달전만에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었다. '이상한 소리'라는 일본 단편문학 선집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후 구입했지만, 몇달째 읽지 못하고 있었다. 얇은 책이었지만, 이상하게 페이지를 넘길수가 없었다. 이렇게 지루한 소설이 있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책상에 있는 설국이 읽고 싶어졌다. 어젯밤이었다. 잠자리에 들기전, 오랜만에 열어본 책에서 나는 첫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을 깊게 느꼈다. 그 인상이 쉽게 지워지질 않아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다음날 일과가 끝난후, 나는 한 시간만에 '설국'을 읽어버렸다.

얼마전 다시 본 '비포 선셋'이 생각났다. 수줍고 겸손한 일본판 '비포선셋'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려내는 일본의 설국이 마음속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모든것은 때가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자연스럽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안들었던 음반과 안읽혔던 책이 하루아침에 깊은 감동을 전한것처럼 말이다. 사실 갑작스럽다고 말하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라벨을 듣고, 설국을 읽을수 있었던건 언젠가 꼽아둔 음반과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듣고, 읽었기에 다시 그것들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진심으로 즐길수 있게 된것이다.

 

이건 어느순간 양파와 피망을 즐겨먹는일과 같은일이다. 마음을 열어두고 꾸준히 때를 기다리다보면 가장 좋은 때가 올것이다. 중요한건 그 순간을 놓치지않는 것이다. 꾸준히 먹고, 마시고, 듣고, 읽고, 달려야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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