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가는 일종의 돌림노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슷하지만 체계를 갖춘 선율들이 반복해서 쌓이는것.

푸가의 기법은 바흐가 남긴 최후의 작품이다. 한참을 앞서나간 그의 작곡은 후대에 가서야 제대로된 연주가 진행됐다고 한다. 푸가도 푸가지만, 기타리스타가 참.

 

돌림노래와 같은 음악으론 이런 것도 있다. 조화로운 비트와 리듬을 쌓는다라는 의미에서 푸가와 닮은점이 많다. 그리고 위의 영상과 더불어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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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학비는 학교 근처 교회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해결했다. 아버지의 반대로 못다녔던 교회를 나간것도 그때다. 학교 담임 목사님은 내가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졸업식때였다. 대학에 무사히 합격하고 담임목사를 만났고, 교회를 들러 장로님께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 때 나는 몇 권의 자기계발서와 성공스토리를 담은 책 그리고 종교서적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과 함께 더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니까 네가 더 성공을 하려면 앞으로도 교회를 잘 다녀야 한다. 실력과 권력을 겸비한 사람들은 다들 기독교인이거든. 거기서 인맥을 쌓는거야. 인생의 큰 도움이 될거다.'

얼굴이 붉어질정도로 부끄럽고 화가났지만, 그간의 정이 있어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물받은 책들도 절반정도는 읽었다. 인생의 멘토라 되시길 원했던 사람들의 정성스런 편지가 가득했던 그 책들은, 그 이후로 부끄럽게 내 책장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알고나서, 언젠가는 꼭 이 책들을 다 팔아버리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상급으로 보관된 그 책들을 한아름들고 중고서점을 찾았다. 5만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책들중에는, 성접대에 연루됐다는 기사로 시끄러워진 H씨의 책도 있었다.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그 사람의 자서전을 읽었다는게 부끄러웠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교보문고에 들렀다. 모아둔 적립금과 책을 판 돈을 합쳐 러시아 소설 단편선을 사고 두 장의 음반을 샀다. 보광동은 교보문고에서 30분, 헬카페에 들러 새로 산 음반을 들었다. 존 엘리엇 가드너가 지휘하는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 연주,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이었다. 마지막 5번을 들으면서 인생의 멘토들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성공하고자 교회를 다녔더라면 난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남은 돈은 월급 조금 보태 생두를 사기로 결정했다. 1년전 상자에 넣어두고 테이프 꽁꽁 싸매둔 그것들을 꺼냈다. 콩을 볶고, 자전거도 타고, 노점도 열고 그랬던 옛날 일들이 생각나 조금 울컥했다. 다시 볶을수밖에 없는 운명이구나. 볶고 마시고, 읽고 쓰고 즐기고. 그게 나의 운명이구나 싶었다.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은 나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다. 불편하기 꽂혀있던 책장의 책들은 가드너의 베토벤 교향곡으로 변했고 러시아 단편선으로 변했고 커피 한 잔이 되었다. 성공은 무슨. 그냥 좋아하는거 할수있는만큼 최대한 즐기다 사는게 사는거지. 그러다보면 어찌어찌 살게되겠지, 인생 뭐 별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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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아플수 있을까 할 정도로 아팠었다. 출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링거를 맞기까지 했다. 몇번의 근무는 벌벌벌 떨다만 나왔다. 선배들은 걱정반 근심반으로 나를 휴게실로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리 아파도 티를 내면 안된다, 아픈건 결국 자기 관리를 못했다는거니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일주일을 보냈다. 휴일에도 힘들긴 했다. 편도선이 부어있다가 곪아버려서 목을 움직이기만해도 아팠다. 내가 왠만큼 아파선 밥을 거르거나 덜 먹지는 않는데, 이번엔 정말이지 먹을 힘이 없었다. 밥을 넘길때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힘들었다. 차라리 안먹고 말지. 정말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몇 숟가락 먹었다. 오늘 저녁도, 약을 먹기 위해 먹었다. 빨리 목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프면 서럽다. 동기들이 챙겨준 덕분에 근무를 잘 버텨낼 수 있었지만, 서 있기도 힘든데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건 서러웠다. 하루만 푹 쉬면 좋을텐데. 약먹고, 조용한 곳에서 딱 하루만. 그러질 못하고 병원에 가고 링거만 맞다가 출근하곤 했다.

위로가 되는건 역시나 어머니다. 집에 도차하자마자 밥을 차려주시고 따뜻한 이불도 깔아주시고 핫팩도 데워주셨다. 휴일 첫날,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씻고 눕자마자 다음날까지 근래에 잤던 어떤 잠 보다 포근한 잠을 잤다. 다음날엔 어머니와 병원에 갔다. 혼자 가겠다는걸 굳이 어머니도 가시겠다고 한거다. 약을 먹고 처방을 받는 동안 어머니랑 얘길 나눴다. 그 순간은 그 어떤 약 보다도 훨씬 힘이 됐다. 울컥울컥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하고 속으로 몇번이나 말했다.

또 위로가 되는건 사람들. 아파서 뒹굴뒹굴, 시간이 어찌어찌 가는지도 모르고 누워있다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열어본 휴대폰에 남겨진 메시지들. 어떻게 살고 있니, 건강하게 잘 지내니, 이번에 서울오면 꼭 보자, 하는 메시지들. 잊지않고 날 찾아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덕분에 힘을 많이 냈다. 몸이 나아지면, 휴일이 찾아오면 꼭 만나야지. 만나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꼭 나눠야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들.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에 힘을냅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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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림. 마티즈의 바이올리니스트. 친구는 나에게 이 그림을 선물로 줬다. 여러장 중에 한 장이었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걸. 그림이나 시집 혹은 책을 선물 했을때 그걸 진심으로 기뻐하며 받고 또진심으로 읽어주는 친구는 드물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말로 손에 꼽는다.

어린 마음에(혹은 어른이 돼섣) '시집을 선물하면 좋겠다'고 했다가 막상 선물했을때 낭패를 본 경험이 많다.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시집을 가지고 어쩔줄 몰라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곤, 내가 선물한 시집도 저런 처지겠거니 생각했었다. 종종 너무 좋다는 이유만으로 범문사 문고판 책들을 선물로 대신한 적이 있었으나 역시 이것도 낭패. 같은 가격이면 수면 바지나 목도리가 더 좋은 선물이라는 걸 나는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는 아직도 그림과 시집, 책 그리고 음반을 선물하는 이들이 몇 있다. 나도 역시 이들에게 답례로 진지하게 고민한 소정의 선물을 주곤 한다. 같이 읽었을때 나눌 수 있는 묘한 희열감, 함께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는 뭉클함, 어느날 문득 마주친 그림에 반가운 사람이 생각나는 것.

 

2. 지지난 밤에는 혼자 부암동 언덕길에 올랐다.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오늘의 커피를 테이크아웃했다. 3천원. 멀리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은 몇년이 지나도 평화로운 마음을 선물한다. 문득 말러 교향곡이 생각나 한시간이 넘도록 음악을 듣다가 집에 왔다. 같이 좋아해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내심과 집중력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친근해지기만 하면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이 고전음악을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록음악에 끼워서 팔면 되지'라는 답변을 들었던게 생각났다. 어떻게든 듣게하고,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거니까.

밤에는 그날 새로 산 음반을 들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스코틀랜드 3번 교향곡. 박진감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몇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역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런거 같이 들어줄 동네친구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디 록음악에 끼워팔면 자기도 모르게 쏙 빠져들만한 사람 없나?

 

3. 교수님의 성화에 이끌려 온듯한 대학원생들 사이에 끼어 피나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졸거나 미처 내지 못한 레포트를 만지작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는 감상문을 써야하나라는 질문만 무성했다. 누군가 같이 나눌 사람이 있을까 하고 폰을 만지작 거렸다. 좋아할만한 사람들이 몇 있었으나, 그들 역시 바쁜 삶에 영화보기도 힘든 처지였다. 팝콘을 들고 동네 CGV에서 영화를 봤다면 얘기할만한 사람들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무취향, 무취미인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고 진득하니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씨얘기 뿐만이 아니라 취미얘기만으로도 신나게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내가 가진 취미 만큼이나 당신의 취미도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4. 피나에는 피나 바우쉬가 춤추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긴 하지만 앞과 뒤에 조금. 그리고 대사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춤과 표현만이 있을뿐. 처음에는 난감했다. 도대체 뭘 의미하는거지, 생각하며 머리를 감쌌다. 영화가 흐를수록 자연스레 그들의 춤동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어와 기보법으로는 표편할 수 없는 동작들이, 피나 바우쉬의 안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새삼 빔 벤더스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더 길게, 깊게 쓰고 싶지만 사정상 여기까지. 자자, 다들 영화관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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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범랑포트로 드립 커피를 내리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모난 곳 없이 평평하게 커피가 가라앉으면 맛있게 내려졌단 뜻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엔 도자 전공을 하는 H가 선물해준 컵만 쓴다. 컵이 입에 닿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연말에는 부탁해서 몇개의 컵을 더 주문제작 해야겠다.

 

커피를 내리면서 비어있는 원두 통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저 원두 통들엔 내가 매일 볶은 원두들이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로스팅을하고 테이스팅을 하고 포장하기도, 판매하기도 했다. 문득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아직 대학'시절'이라 하기엔 나는 졸업한지도 얼마 안됐고 또 젊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것들과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살다보니 그 기억들을 '시절'이라 명명해도 좋을것이라 생각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K와 만나서 커피를 마셨다.

K와 함께 했던 여러가지 일들은 내가 대학시절 '전성기'라고 불렀던 때에 벌어졌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린 그 시절을 가끔 회상했다. 소설, 음악, 영화, 커피 그리고 담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문득 최근들어 이런 이야기를 해본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자리잡은 곳에서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마치 단절됐던 것을 이어가는 것 처럼 풀려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K와 이야기하면서 몇번을 울컥했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찾아서 기쁜 것과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 때, O기자님한테 연락이 왔다. 이제사 회식이 끝났으니 함께 보자는 전화였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신촌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학생들이 가득했다. 같은색의 옷을 차려입은 무리가 가장 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고 구석에는 기타를 치고 노래부르는 무리들이 있었다. 함께 오지는 않았지만,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나오면 다들 따라부르곤 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이따금 내 귀에도 들리곤 했다. 막차 시간을 아쉬워하며 떠나는 모습이며, 흔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 '대학생활'을 생각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대학생때는 한없이 불균형했던 시기였다. 한없이 열정에 타오르거나 혹은 회의주의자가 되거나. 그래도 됐고, 그래야했고, 그럴 수 있었다. 생기와 활기가 넘치는 시기였다. 만나는 사람들은 위계질서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었다. 다음날을 살아가는것에 대한 고민이 즐거웠다. O기자님은 무얼 하고 살고싶냐고 물었다. 나는 할 일 없으면 기자나 하죠 하고 농을쳤다. 대학생때라면 선뜻 나왔을 대답이 힘들게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얼마전 Y형은 나에게 이런말을 해주었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변하지 않는게 중요하다는 것만 명심해'. 돈이나 시간은 매정하게 변해버리는 것 만큼 중요하진 않다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변하지 않고 로스팅을 하고 글을 쓰고 싶다.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는일, 영화를 보는 일을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떠한 행위들을 떠나서 나와 관계맺은 사람들과 변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조금씩 예전의 그 모습을 찾아가야겠단 생각을 한다. 비어진 원두 통을 채워나가기 위해 로스팅을 해야겠다. 아름다운 시절을 '그 시절'로만 생각하고 싶진 않다. 지금이 아름다운 시절이 될 수 있게, 조금씩 해답을 찾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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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형은 정말 만두같이 생긴 형이다. 일단 외모가 잘 빚어진 만두를 닮았다. 고속터미널이나 서울역 근처를 지나다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만두 말이다. 심지어 몸매도 만두를 닮았다. 샤워를 하고 속옷에 수건만 걸치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만두다. 막 일어났을 때, 피곤할 때 얼굴이 조금씩 붓기 시작할때면 만두형은 진가를 발휘한다. 정말 만두로 변신한다. 그리고 만두형은 항상 웃는다.

 

우리-만두형과 나 그리고 3명의 팀원-의 일과는 규칙적이다. 6시간을 일하면 12시간을 쉰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24시간을 하루로 산다면 우리는 18시간을 기준으로 하루를 산다. 낮과 밤은 조금씩 바뀐다. 아직 업무에 적응을 하지 못하기도 했고, 처음 일을 시작하면 겪는 어려움과 서러움은 교대근무자에겐 더욱 고달프다. 남들이 퇴근할 때 일하고, 쉬는날에도 밤낮없이 출근하고. 그리고 피곤과 서러움에 치여 12시간도 편하게 쉬지는 못한다. 그래도 만두형은 항상 웃는다.

 

지난 추석에는 몸이 아팠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었고, 추석이라 식당문도 다 닫아서 밥도 못챙겨 먹었고, 밤새 공부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플 수 밖에 없었다. 어김없이 혼나고 그리고 밥을먹으려 하는데 식당문이 닫혀있었다. 추석이라 근처 식당들도 전부 문을 닫았다. 서럽기도 이리 서러울 수 있는가. 그래도 만두형은 웃었다.  설날에는 새해복 많이 받아라, 그렇다면 추석에는 무슨말을 하지? 라는 질문에 만두형은 '더도 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밤샘근무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한가위 연휴 첫 날이었다. 우리는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돌아오는길에, 밥을 얻어먹었다. 추석 연휴동안 처음 먹는 밥이었다. 두그릇이나 밥을 비웠다. 미처 챙기지 못한 동기들이 미안해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만두형은 혼자 티비를 보고있었다. 눈시울이 젖어있는 만두형에게 나는 무얼 먹었느냐고 물었다. 만두형은 햇반과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곤 추석 연휴에 대한 보도를 하는 뉴스를 계속 보고있었다. 만두형은 고백했다. 울었다고. 혼자 방에서 울었다고.

 

추석에도 쉬지못하고 일하는 사람들 인터뷰가 나올때부터 만두형은 울컥했다고 한다. 그래, 우리랑 뭐가 달라. 다 그렇게 사는거지 뭐. 만두형은 웃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추석 당일 순직한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란다. 거기서 만두형은 울 수 밖에 없었다. 어찌 저럴 수 있는가. 너무해도 너무하다. 만두형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조금 부어있는 만두형의 눈을 보고 웃프지 않을 수 없었다. 순직한 소방관이며, 혼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추석날의 만두형이며 우리 신세며 슬플 수 밖에 없었다. 만두형의 그런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쓴 웃음 말이다.

 

웃프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갔다. 이상하기도 했다. 어떻게 웃플수가 있지?

나는 비로소 웃프다는 표현에 동의를 할 수 있었다. 웃프다. 웃픈 한가위다. 모두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을 수 있길. 추석 복 많이 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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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쇼팽의 녹턴 연주하기

민음사 문학전집 전부 읽기

로드바이크 구입, 일주일에 100km이상 타기

고전 영화(혹은 영화) 일주일에 한 편, 감상문 한 편 쓰기

고전음악 일주일에 10개 이상 새로운 음반 찾아듣기, 감상문 비평문 쓰기

 

매일매일 글 쓰고 기록하기. 책 읽고 감상 적기.

 

꾸준히 마시고, 듣고, 읽고,

내세우기보다 안으로 흡수하기. 그리고 깊어지기.

 

내 3년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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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적으로 가장 부담이 되는 시기다. 훈련 기간에는 몸이 힘들었다면 이제는 정신력 싸움이다. 기본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근무를 하며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한다. 어쩌면 생각했던것과 생활이 많이 다르기에 더 힘들수도 있다. 이럴수록 생활에 부담이 되는 생각들이 있다. 가령 편하게 지내는 동기들과의 비교, 어려운 시절을 겪고나면 성숙해질것이라는 환상, 새옹지마가 있다. 더러는 나보다 더 어려운 선택을 한 사람들과의 단순비교로 행복의 우위를 점하는 방법도 있다.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그저 어려운 상황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 어려운 상황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삶의 조건을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힘들다면, 그냥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 지금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2.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시가를 피운다. 얼마 전 우연히 들렀던 이태원의 번(Burn)이라는 바에서 처음 시가를 폈다. 우선 분위기부터 압도적이다. 우선 그곳은 어디선가 구해온 환상적인 팟캐스트로 바를 찾는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가 색깔의 벽면과 조명은 시가를 피지 않아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말해준다. 바에 들어서면 멕시코 출신의 주인장은 우리를 진열장으로 안내한다. 그날의 기분을 말해도 좋고 원하는 맛과 향을 말해도 좋다. 진열장을 열면 매콤한 담뱃입 냄새가 눈과 코를 아리게 만든다. 이것 저것 향을 맡아보곤 맘에 드는 시가를 선택한다. 이제 리퀴드를 고를 차례다. 바 안에는 수많은 리퀴드가 놓여있다. 가령 다비도프 2000에는 32년산 과테말라 럼이 제격이다. 텍스쳐는 부드럽고 향이 풍부하다. 맛과 향에 밸런스가 좋아 연기를 품었을때 기분을 해치지 않는다. 함께 간 사람들은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 한다. 레드페퍼, 바닐라, 아몬드, 보리차등의 느낌이 난다. 시가들은 크기도 제각각 맛도 제각각이다. 훌륭하게 만들고 보관한 시가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
시가 커터는 만원 가량. 불을 붙이기 쉽게 저렴한 가격에 지포형 라이터를 구입했다. 쉬는 시간에 커피를 내려마실 때면 종종 시가가 생각난다. 더러는 맛과 향이 좋지만 더러는 분위기가 번(Burn)과 같지 않아 느낌이 살지 않는다. 맛에 대한 탐닉은 즐거운 취미다. 커피를 마시고 시가향을 맡으며 상상을 한다. 입 안에 머무는 커피와 시가는 단시간에 최상의 쾌락을 제공한다. 돈 드는 취미가 하나 더 늘었다.

3. 멘델스존 3번 교향곡 스코틀랜드. 멘델스존 교향곡 중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곡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받은 첫 인상은 낭만주의의 시발점이 되는 이 교향곡을 탄생시켰다. 1악장의 환상적이고도 강렬한 멜로디가 요즘 가장 많이 떠오른다. 장기간의 집중력이 필요한 요즘 교향곡을 주로 듣곤하는데,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가장 많이 트는 곡이다. 처음 들었을땐 그렇게 인상깊지 않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고 두 개의 영상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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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출근. 잔뜩 쫄아있던 어깨를 푸는 순간 골아떨어졌다. 유리마음이 돼버렸다. 쉽게 깨지고 쉽게 상처받는다. 즉각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지만 위로를 받는건 어려운 일이다. 단단해지기 위한 조건들을 생각해본다. 틈틈이 책을 읽고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나는것들을 바로바로 메모하고 글로 풀어내야겠다. 엄격한 생활보다 더 엄격한 규칙들을 새우고 스스로를 몰아붙여야겠다. 강해지기 위해서다.
2. 최근엔 클래식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스웨이드, 오버 더 라인, 멈포드앤손스의 음악을 들었다. 검정치마의 젊은 우리 사랑을 들었다. '될대로 되라 망해도 좋은걸'이란 가사는 언제 들어도 맘에 든다. 강해지면서 실수나 사람관계에 유연해져야겠다.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 아직은 젊고, 꿈이 많다.
3. 오산에서 몇일 지내면서 새로운 카페들을 발견했다. 신기하게 오산에는 프렌차이즈 카페가 별로 없다. 덕분에 스스로 강해진 작은 카페들은 왠만한 서울의 동네 카페들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물론 실망할 곳들이 많다. 하지만 그 카페들이 있어 기쁨이 더 많다. 되려 훌륭한 카페가 있었다면 그곳만 찾아갔을테지. 오늘 들렸던 카페를 포함하여 다섯 곳의 카페가 있다. 멀지 않은 시일내에 이 카페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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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t of a Woman

 

 

 

 

'여인의 향기'라는 제목 때문에 오해를 살 수 있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아 그래서 알파치노가 저 미묘한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저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거구나' 하고 오해할 수 있겠다. 아마 영화가 두 남자의 이야기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겠지. 눈 먼 프랭크가 찰리의 도움으로 스포츠카를 타고 멘헤튼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라면 더더욱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매혹적인건 정말 여인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묘한 섹시함은 프렝크가 여인의 등에 손을 살짝 올릴 때다. 미묘하게 등 근육이 움찔거린다. 그리고 더빙한듯한 수줍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탱고. 탱고가 절정에 이르렀을때보다 실수할까 조마조마한 시작부분이 더 미묘하다.

라오스 여행에서 라파엘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춤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고. 그저 남자가 이끄는데로 uno, dos, tres, cuatro. 발을 옮겨가면 된다고 했다. 실수를 하면 할수록 여성의 매력은 솟아 넘치며 더욱 섹시해보일 수 있고. 그러니까 탱고를 배워야 한다.

 

 

Hallelujah

 

 

할렐루야의 오리지날 버젼은 레너드 코헨에 의해 탄생했다. 영국 차트에서 36위를 차지하며 심심찮은 성공을 이끌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제프 버클리 버젼은 후에 존 케일이 커버한 버전에서 유래했다. 요절한 제프버클리의 할렐루야는 영국에서 2위, 미국 빌보드에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이곡을 제프버클리의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로 시작하는 시편 51장은 이 곡의 기원을 설명해준다. 다윗왕은 친애하는 우리야 장군의 아내의 밧세바를 사랑하게 된다. (노래 가사대로라면)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다윗은 결국 우리야를 전장에 내몰게 된다. 그가 죽고 다윗은 밧세바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곤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할렐루야, 할렐루야.

노래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담아냈다. 여기, 비밀스런 노래가 있다. 다윗은 주를 찬양하기 위해(혹은 회개하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 하지만 넌 음악에 대해 신경쓰지 않잖아.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하지. 네 번째와 다섯 번 째 그리고 메이저 코드는 올리고, 마이너는 내리고. 다윗의 신념은 강했다. 하지만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그녀는 그렇게 다윗을 묶고 왕좌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할렐루야를 끌어낸다. 이제 다윗은 회개하기 시작한다. 나는 온 힘을 다했어요.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느낄 수 없었기에 만져보려 했어요. 나는 진실을 말했고, 당신을 속이러 온 것이 아니에요. 간절하게 할레루야를 외치며 그는 노래한다. 어떻게 다윗이 사랑에 빠졌으며 어떻게 반성하고 고백했는지 노래는 담아내고 있다. 제프 버클리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사람들은 그 애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버 더 라인이 부른 할렐루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이다. 노래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곡을 설명하는 Karin Bergquist의 목소리는 이미 이 노래가 얼마나 매혹적일지 알려주고 있다. 그녀는 어디서 더 힘을 주어야 할 지 알고 있다. 다윗이 고백하듯, 할렐루야를 부른다. 그의 남편은 그녀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들만의 비밀스런 코드가 있는 것 처럼, 그렇게 할렐루야는 시작된다. 오버 더 라인의 음악을 듣고 울었던 적이 있다. 그녀가 부르는 음표는 가슴을 저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사람들에게 종종 이들의 할렐루야를 추천하곤 한다. 하도 사람들이 '오버 더 라인'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에 직접 찾아봤다. 오버 더 라인은 신시내티, 오하이오에 있는 이탈리아 풍의 거리라고 한다. 근처에 있는 운하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독일의 라인강에서 별명을 얻었고, 이 지역은 오버 더 라인이라고 불리게 됐단다. 당연히 오버 더 라인은 오하이오 출신의 밴드다. Linford DetweilerKarin Bergquist를 주축으로 객원 멤버들을 참여시키며 앨범 작업을 했다. Ohio라는 앨범도 있고 Drunkard's Prayer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영상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면 이 두 앨범을 들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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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왈츠 op.54, no.1



체코 태생의 작곡가 드보르작. 모국의 민속풍 선율을 이용해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브람스의 총애를 받은걸로도 유명하다.
포근하면서도 신선한 소규모 작품들은 드보르작의 성향을 말해준다.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 놀이동산에서 솜사탕을 들고 걸어다니는듯한, 구름위에서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음악들은 평온함을 선사해준다. 평범한듯한 작품들이지만 드보르작만의 무언가가 있다. 천재적인 작품들이라 하기엔 무난한, 하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있는 느낌. 편안하다.

나나 무스끄리&존 윌리엄스, 브라질 풍의 바하

브라질풍의 바하라니.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나나무스끄리의 무심한듯 시크한 표정, 빨간 드레스, 뿔테안경, 가지런히 모은손 그리고 마지막 땡큐라는 인사. 너무나 재미있는 영상. 김남시 교수님은 존 윌리엄스와 나나 무스끄리의 뿔테안경이 이 오래된 영상의 풍크툼이라 표현하셨다. 재미있는 표현이라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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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라디오 주파수는 93.1MHz. 내가 좋아하는 실내악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창문을 적당히 열어 빗소리가 잔잔히 들려오도록 맞추어두었다. 잔잔한 실내악들과 어울려 기분이 좋아진다. 평소보다 오래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 급하게 결정한 서울행이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제야 겨우 마음이 차분해졌다.

 

1.

4개월간의 훈련기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본다. 본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인생의 최악의 기간이었다. 첫 한 달은 편지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전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1주 남짓이었다. 취미와 섬세한 취향은 당연히 지킬 수 없었다. 입맛조차도 단순해져서 평생 사 먹은 과자보다 더 많은 과자를 먹었다. 이렇게 하소연을 늘어놓자면 길다. 모든게 무뎌졌다. 그리고 오감이 억압당했다.

지난 두달은 나에게 그동안 쌓여왔던 극심한 스트레스를 푸는 기간이었다. 읽고 싶은 책, 음반을 마음껏 샀다. 먹고싶은 것, 마시고 싶은것(주로 맥주와 커피)도 원없이 먹었다. 가령 일반적인 나의 주말 스케쥴은 이랬다. 토요일 아침 일찍 교보문고나 풍월당에 들렀고 낮에는 무연탄-노란코끼리-밀로-이심-리브레로 이어지는 카페투어를 즐겼다. 카페에선 주로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났고, 적당히 커피를 나눠마셨다. 저녁에는 불광동이나 이태원에서 맥주를 마셨다. 다행이도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들은 나와 동행해주었다. 나는 그동안 하고싶은 말들을 쏟아냈고 그렇게 정신없이 주말이 흘러갔다. 평일에는 틈틈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교육기간은 종종 여유로운 시간을 선사해 심심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도 난 사람들에게 연락해 그간 쌓아두었던 회포를 풀곤했다.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그간 잊혀졌던 감각들은 그 순간에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문제는 밸런스. 밸런스가 없었다. 지나간 상처들을 치유받고 싶었고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대해 미리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지나칠 정도로. 커피와 맥주를 너무 마셔 몽롱했던 기억이 한두번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오랜만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가 흥분해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모든 감정에 있어서 스스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군대가 사람을 이리 변하게 만드는가. 혹은 내가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었던가.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2.

지나치게 감상적인 이 기간동안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집중적으로 독서를 했다. 일주일에 2-3권정도. 일과 시간만 끝나면 독서에 매진했다. 헐거벗은 상태에서 읽은 그 소설을은 그 어느때보다도 나에게 강렬하거나 아프게 다가왔다. 존 치버의 '팔코너'나 루쉰의 '아Q정전'은 특히 그랬다. 팔코너에서 주인공이 감옥에서 겪었던 일들이 지난 4개월의 훈련에서 겪었던 일들이 미묘하게 교차했다. 아Q가 생각하고, 보여주는 행동들은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몇몇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단체생활, 그것도 군대에서 서로의 가장 낮은 모습까지 보여주는 상황에서 그들이 보여줬던 역겨운 모습들이 아Q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과 교차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이라는 중국 작가들의 단편집에는 개화시절 중국인들이 겪었던 처절한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최근에, 일거리를 찾아 아저씨가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휴가철을 맞아 주차장 일을 돕기로 하신것이다. 잘 지내시는가 싶더니 오늘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셨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6주정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최근에 어머니는 일하시던 문화센터에서 손님이 가방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오해를 사셨다. 손님은 가방이 없어지자 어머니를 의심하곤 CCTV를 보자고 했단다. 알고보니 가방은 그 손님의 친구가 다른 곳으로 옮겨놨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어머니는 서러움에 나에게 문자를 보내셨다. 그리고 얼마 후 일을 관두셨다. 오늘에야 마지막 책장을 넘겼던 그 소설집에서의 강렬한 이야기들이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시기는 지나가겠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을 하고 있다. 부디 부족하거나 흘러넘치지 않기를. 잘 균형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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