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상점 이심의 오픈 1주년 기념행사는 특별한 연주회가 있었다. 건너편 하나미용실 주인 아주머니의 아코디언 연주가 있었던것. 그 구석진 골목에 지나가는 사람들 쉬었다 가고, 마음놓고 아이참 바리스타와 대화를 나누고, 건너편 미용실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커피상점 이심은 마땅히 그 골목에 어울렸다.나이 지긋한 사장님은 미용실 아주머니와 잘 어울렸다. 그리고 카페에서 노니는 젊은이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직접 인테리어한 가게는 골목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다.
한적한 골목에 바람이 산들산들 불면, 사람들은 카페 밖으로 나와 커피를 마시곤 했다.
커피 리브레가 처음 그곳에 문을 연다고 했을때 걱정이 되긴 했었다. 카페 앞에 카페라니. 하지만 리브레 사람들의 정중한 요청에 이심 사장님은 흔쾌히 새 카페의 오픈에 동의했다. 그렇게 두 카페는 골목과 함께 호흡하며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려주었다. 커피상점 이심이나 카페 리브레나 북적이는 일은 드물었다. 항상 그 골목에 지나치는 그만큼만 카페의 손님이 되었다.
커피 리브레가 방송을 타고나서 연남동의 그 골목은 아비규환이 됐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몇시간이고 줄을 섰다. 그 좁은 골목에 차를 가지고 오는건 다반사였다. 더불어 커피상점 이심에도 낯선 손님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잘 된 일이겠지. 좋은 카페들에 사람들이 북적이니 좋은 일이겠거니 했다.
두 달이 지난 즈음, 그 골목에 함께 있던 하나 미용실이 문을 닫았다. 카레집 옆에는 빈티지 천가게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의 임대료는 꽤나 올랐다고 한다. 하나 미용실이 사라진 자리에는 와플 가게가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커피상점 이심에서 바라본 아이참 바리스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다시는 이 골목이 예전과 같지 않을거라며 슬퍼하셨다. 관광지를 찾아온양 방송을 보고 골목을 찾아온 손님들이 시끄럽게 떠들다 가는 분위기가 내심 불편하다고 말하셨다. 창 밖에는 얼마전까지 보기 드물었던 차들의 드나듦이 많아졌다. 동네 사람보단 놀러온 사람들이 더 많아보였다. 근처에 있는 세탁소는 잘 버티고 있을까, 숯불 갈비집을 찾는 아저씨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즐거울까 걱정됐다.
사람들의 욕심은 골목을 바꾸어놓았다. 방송을 타고나서 골목은 한번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골목분위기를 이용해 그럴싸한 가게 하나 마련하려고 한다.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부동산은 이제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용한 연남동 골목의 그 주택가는 이제 손을 쓸 수 없을만큼 변해버렸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찾아가던 미용실이 사라졌고, 아저씨들이 술 한 잔 하러가던 갈비집도 언제 떠날지 모른다. 그 가게들과 어색하지 않게 어울렸던 커피상점 이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다.
계동에 있었던 커피한잔이 기억난다. 사장님은 커피한잔이 그 조용한 동네를 흐려놨다며 내심 걱정했다. 이제는 사라진, 사직동으로 이전한 가게에서 사장님은 다시는 그런일이 없기만을 바란다. 소중한 카페를 잃는 일은, 고즈넉한 동네의 풍경이 사라지는 일은 늘 가슴이 아프다. 좋은곳에 생긴 단골카페가 사라지는 일에 나도 한 몫을 한 것 같아 쉽게 커피가 넘어가질 않는다.
지나가는 동네주민 쉬었다 가는, 그 동네 누구나 들러도 어색하지 않은, 지역과 호흡하고 천천히 뿌리내리는 카페들이사라지고 있다. 땅을 닮은 카페들이 오래가길 바라는건 과한 욕심일까.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지켜보길 바라는건 무리일까. 사라진 카페들 생각에, 사라질 카페들 생각에 가슴이 저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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