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의 눈

해삼에는 눈이 없다. 해저의 얕은 모래 진흙에서 살고 있는 해삼은 동남아시아 리푸의 산호위에 누워 있기도 하다. 해삼은 인간의 탐욕을 드러내는 사치스러운 식재료다. 해삼의 95%는 수분으로 이뤄져있는데, 날해삼을 먹지 않는 이상 해삼은 삶아서 물기를 뺀 뒤 오랜 시간 잘 말려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보관된 날 해삼은 등급이 나뉘어 고가에 거래되는데, 특성상 양식이 힘들뿐더러 가공과정 또한 많은 인력과 엄청난 양의 소나무(땔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삼이 동남아시아를 너머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귀중한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금과 은 그리고 구리가 고갈되어 화폐로서의 역할을 충당할 수 없게되자 해삼을 가공하여 국제 무역에 참여하곤 했다. 이렇게 거래된 해삼은 중국의 수많은 왕족과 제후들의 식탁을 장식하곤 했다. 그래서 진주조개만큼이나 해삼은 귀중한 자원이었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도 해삼어장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해삼의 발자취를 찾아 해삼이 거래되었거나 재배되었던 지역을 찾아나선 저자 쓰루미 요시유키는 한반도 해삼의 역사 또한 귀중하게 다룬다. 하지만 그 중요함 만큼이나 해삼의 역사는 찾기 힘들었다. 젊은이들은 “해삼은 중국의 음식이다”라고 말하며, 어업을 천하게 여기어 기록이 남지 않은 역사에는 해삼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제국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지만, 일본의 침략 이후에나 해삼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고 씁쓸한 얘기를 한다.

젤라틴을 공급하는 고급 식재료라고 말하기엔, 해삼의 역사는 깊디 깊다. 영생을 얻기 위해 자연의 귀중한 재료를 찾게되었고 그 중 하나가 해삼이라고, 저자는 해삼과 도교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해삼은 눈이 없고 발 또한 없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힘을 가졌다. 해삼이 인간의 손에 들어온 순간,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역사를 좇는 일은 다른 어떤 사사를 다루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게 되었다.

먹는 일과 음식에 대한 역사는 인간이 절대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될 기록이다. 어업을 천하게 여겨 그에 대한 기록 또한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먹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오늘날에도 그다지 귀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경작하거나 채취하고, 그것을 인간의 입으로 가져가는 일에 대한 기록은 가치 있는 사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담처럼 미학의 ‘미’자는 맛을 뜻하는 ‘미’의 의미도 있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아름다움을 논하는 일이 심오했던 것처럼, 맛에 대해 논하는 일 또한 심오하고 깊어져야 할 것이다.

내가 태어난 해 89년 11월에 이 해삼에 대한 역사가 쓰여졌다.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문체는 유려하고 역사는 깊었다. 종종 인터뷰를 할때면 누군가는 “그래, 그 일은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는 일이지”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 세상에 사소한 역사는 없다. 그래서 기록하고 기억해야한다.

귀중한 책을 추천해주신 따비 출판사 박성경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연연풍진을 보기에 앞서 카페 뤼미에르를 보았는데, 영화가 줄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깊고 다양한가를 알려준 담백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못할 무심한 음악이 흐르던 카페 신들과 요코가 장원예의 음악을 찾아다닐때 미묘하게 흐르던 음악들이 만들어내는 미장셴들은 오래두고 마셔도 질리지 않는 깊은 차의 향을 닮았다. 허우사우셴은 덤덤하게 주고받는 대사들과 과장 없이, 특별한 카메라의 움직임없이 도시의 삶을 그려내서 보는내내 내가 그 도시에 걷고 있음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한없이 잔잔한 이 영화에서 극적인 부분이라면 요코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밝히는 30분 정도쯤에서의 장면인데, 사실 이 또한 넘어가자면 조용히 넘길수 있는 그런 먹먹한 장면이다. 이 때문인지 특별한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터넷의 감상글에서 종종 혹평을 보게 되는데, 이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정의가 협소해서 그렇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마음을 읽어 커피를 내려주는 연남동의 이심커피가 조용한 단골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 영화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담고있기에 왁자지껄한 맛집처럼 줄을 서지 않고도 편안하게 찾을수있는 조용한 단골 카페의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추천해주거나 좋다고 말해준 주변인들의 깊은 취향에 감사를 전한다.​

헨리 머레이슨은 27살에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간질을 고치기 위해 정신외과 수술을 받는다. 이는 정신분열증이나 간질등의 뇌질환에 대해서 뇌의 일부를 잘라내는 '정신 외과'가 유행했던 60년 전의 일이다. 뇌의 측두엽을 일부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헨리는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간질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수술전 기억을 제외한 그 어떤 장기기억도 해내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이라는 책은 수술후 평생의 삶을 신경외과와 관련된 실험에 헌신했던 헨리머레이슨의 평전이다. 30초가 넘어가는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헨리는 측두엽과 해마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데 큰 기여를 했고, 그 밖에도 뇌과학에 엄청난 발전을 도왔다. 문득 단기기억으로 가득찬 인생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하는 의문속에 책장을 넘기다가, 저자 수잰 코킨이 핸리 머레이슨의 삶을 유추해보는 짧은 구절을 발견하고 숨이 멎을듯한 먹먹함이 찾아왔다.

'막강한 기억의 권능에서 해방되어 오직 현재시제만이 존재하는 시간'에 산다면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잊고 살수 있을까, '장기기억 없이 산다는 것은 생각만으로 두렵지만, 그럼에도 인생을 지금 이 순간으로, 30초의 경계선에서 완성되는 단순한 세계를 살아간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하고 생각하는 그녀의 말에 인생이 얼마나 고단한가를 생각하며 살짝 눈물을 흘렸다. 일부분만을 인용할까 하다가 이 부분만큼은 전체를 옮겨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있다면 일독을, 더 여유가 있다면 이 책을 사서 읽어보길 권한다.

 

-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수잰 코킨, 알마

P.128-130

단기기억에만 의존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헨리가 겪은 일은 틀림없는 비극이지만 정작 헨리 자신은 좀처럼 고통스러워 보이는 일이 없었으며 항상 헤매고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헨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순간을 살았다. 수술을 받은 그날부터 처음 만나는 모든이가 그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그 누구라도 열린 마음과 신뢰로 대했다. 그는 고교 동창생들이 기억하는 조용하고 예의바른 헨리의 온화하고 상냥한 성품을 잃지 않았다. 우리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했고,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묻거나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살아야 하며 남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야 하는 자신의 상화도 충분히 인식했다. 헨리는 1966년 마흔 살에 MIT 임상 연구센터를 처음 방문했다. 여행가방을 누가 챙겨주었냐는 질문에 그는 간단히 답했다. "어머니였을 겁니다. 그런 일은 항상 어머니가 하시니까요."

헨리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붙들게 되는 정신적인 닻, 그러니까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애착이나 집착같은 것이 없었다. 장기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인것은 맞지만 때로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 살면서 겪었던 고통, 처참했던 실패와 정신적 충격이나 골치 아픈 문제에서 헤어나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이 무거운 쇠사슬이 되어 우리를 스스로 만들어 낸 정체성 속에칭칭 동여맨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않은가?

옛 기억에 꽁꽁 싸여 '지금 여기'에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불교를 비롯하여 많은 철학이 우리가 겪는 고통 대부분이 특히나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 속에 살면서 만들어내는 자기 안의 생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지난 시간과 사건을 재생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를 되뇌면서 불안감의 수렁에 빠져든다.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과 감정이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명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들숨과 날숨 혹은 특정한 신체 부위에 의식을 집중하거나 하나의 주문을 반복해서 왼다. 명상은 우리의 의식이 시간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훈련하는 방법이다. 막강한 기억의 권능에서 해방되어 오직 현재시제만이 존재하는 시간에 거하기 위해서다. 현재에 집중하는 수련에 오랜 시간을 바치는 명상자들도 있다. 헨리로서는 원치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과 고통의 많은 부분이 장기 기억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계획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면, 헨리가 어떻게 상대적으로 스트레스 없는 삶을 누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과거에 대한 회고나 미래에 대한 추측에 얽매이지 않는다. 장기기억 없이 산다는 것은 생각만으로 두렵지만, 그럼에도 인생을 지금 이 순간으로, 30초의 경계선에서 완성되는 단순한 세계를 살아간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http://www.theguardian.com/music/musicblog/2014/dec/09/kyung-wha-chung-i-have-always-welcomed-children-to-my-concerts사진출처 http://www.theguardian.com/uk

 

1. 12년만에 영국 무대에 선 정경화를, 청중들은 정성을 다해 맞이해주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후 66세의 노장에 대한 기사는 청중의 기침으로 가득찼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하기전, 정경화가 한 어린 아이를 지적하며 '저 아이는 좀 더 큰 후에 공연장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은 레전드 바이올리니스트의 복귀무대 헤프닝을 기사화했다. 몇몇 평론가들은 '그 공연에서 기침을 한 건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다'거나 '정경화의 지적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은 잠에 빠져있을수밖에 없었다'고 공연 상황을 전했다. 타임지의 한 음악평론가는 그녀가 아이에게 했던 말을 되돌려주었다. 그녀야 말로 좀 더 나이가 들어서 공연장을 찾아야할것 같다고.
부정적인 의견만 있었던것은 아니다.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정경화가 '공연중의 기침은 훌륭한 연주를 방해하는 분명한 요소다. 누군가는 공론화 했어야 할 문제'라며 정경화의 대담함을 칭찬했다. 다른 문화 평론가는 '지금 우리의 삶은 클래식같은 조용한 음악과 침묵에 익숙치 않다. 청중들은 고요한 공간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며 정경화를 우회적으로 옹호했다. 이에 공연을 개최했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는 이에 대한 단 한건의 항의도 없었다고 전했다.
공연장에서 청중의 태도만큼이나 클래식 애호가들사이에서 논쟁적인 주제도 없을것이다. 지금처럼 관객들은 침묵을 유지해야했던 공연문화가 성립된건 1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라니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것도 당연한 일일것이다. 영국의 청중들은 이 지지부진한 논쟁의 당사자로서 성숙하게 문제와 마주했다. 연주자의 오만함에 불평하고 아이들이 받은 모욕을 되돌려주기 위해 공연 관계자들을 못살게 굴지 않았다는 부분이 그렇다.
공연을 본격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나도 어떻게 공연을 보아야하는지 배울수있었다. 공연장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의 문제는 강요나 금지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것이 시민들의 경험으로 해결해나가야할 문제라고 본다. 무엇을 어떻게 듣고 감상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런던의 한 공연은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서울시향 지휘자 정명훈의 투잡논쟁이며, 대표자리에 금융권 인사를 앉혀놓고 효율성 운운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문화가 산업이 되는순간 예술 밖의 논쟁은 격렬해지고 본질은 흐려진다. 서울시향 사태로 느낀바, 우리나라의 예술은 연봉과 예산의 문제이며 정치적인 싸움의 또 다른 주제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http://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30327567

 

2.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정경화 콘서트의 기침사건에대한 그녀의 칼럼. 콘서트는 음악가와 관객이 소통하는 곳이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드물게 침묵속에 침전할수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녀는 스토코프스키를 인용한다. 훌륭한 음악은 침묵이라는 캔버스 위에서야 완성될수 있다. 정경화는 글에 아직 이런 문제가 이슈가 된다는건 클래식이 죽지 않았다는 위트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침묵의 아름다움과 그 속의 소통을 이해했으면 한다는 얘기또한 담아냈다.

 

http://www.theguardian.com/music/musicblog/2014/dec/09/kyung-wha-chung-i-have-always-welcomed-children-to-my-concerts

 

3. 클래식은 단순히 '오래된 서양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정경화 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영국인들의 논의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침묵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순한 음악감상을 넘어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클래식 공연장과 같은 침묵과 함께 할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몇몇 평론가들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클래식 음악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무엇인가로 두고 껄끄러운 논쟁을 하는것은 내가 보기에도 참 힘겨운 일이다. 숨쉬기도 힘들만큼 모든 것이 목을 조여오는 생활에 예술이 없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우리는 지금 그 '예술'을 지키는 일에 대해 보다 섬세한 논쟁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기, 최유준 음악평론가의 서울시향 사태에 대한 글을 첨부한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412112054505

 

 

개복치 생존게임은 기존의 육성게임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처음 키울때는 바다거북만 봐도 질겁해 돌연사하는 개복치의 삶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그렇게 죽고 다시 살아가는 개복치의 삶이 우리내 인생임을 인지하고 다가오는 개복치의 역경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대입한다. 죽어라 공부해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군대, 연애, 취업 그 어느하나 녹록한게 없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수없는 돌연사를 당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 왕관을 쓰고 수염을 쓰다듬하며 살아가던 개복치 왕(Mola King)의 삶을 즐기다가도 취업을 앞두고 스펙의 문에 질겁해 돌연사를 한다든가 입대 후 선임들의 어이없는 갈굼에 오줌을 저리다가 돌연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복치력은 돌연사의 역사를 통해 이뤄진다. 피로를 권유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늘 수심을 일러주지 않아 어린날개가 물결에 젖어 서글퍼진 나비요, 햇볕을 쬐러 나갔다가 말라죽는 개복치다. 결국엔 50번이 넘는 돌연사를 통해 저 먼 바다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개복치 게임의 엔딩처럼, 우리는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결국은 이 모든 돌연사를 이해하고 감당할수있는 그릇이 되는거다.

돌연사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두려움에 휩싸여 눈앞에 있는 정어리와 가리비를 먹지도 못하고 나의 작은 바다에서 살 것인가. 우리는 작은 스마트폰 안에 개복치를 바라보며, 그의 영문 이름이 몰라몰라(Mola Mola)임을 떠올리며 우리내 삶을 생각하고 또 허탈한 인생을 생각하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이라면 조심!)

 

하이젠베르크는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나치의 핵연구를 맡게 되었다. 사보타주는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의 핵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리학자로서 순수한 과학이 정치와 전쟁에 이용되는것을 바라지 않았는지, 실제 그것을 만들능력이 없었기에 핑계를 댄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그를 둘러싼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최초의 핵무기 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가 뉴멕시코(New Mexico) 사막에서 이뤄진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5년 7월 16일의 일이다.

 

미국 AMC에서 방영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배경은 뉴멕시코다. 드라마는 50살의 생일을 맞은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며 시작한다. 칼텍(Caltech)의 총망받는 화학자였던 그는 믿음은 져버린 동료를, 성공을 앞둔 업적을 버리고 뉴멕시코에 정착했다. 하지만 화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올곧은 신념으로 가족과 함께한 지난날의 삶은 암 선고와 함께 스러지기 시작했다. 이 때, 죽음 앞에 내몰린 힘없는 그에게 마약단속국(DEA;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에서 일하는 동서 행크 슈레이더가 나타난다. 마약 제조실을 단속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정의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 월터 화이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결심을 한다. 그리고 마약 제조를 결심하고 쫓아간 행크의 단속 현장에서 자신의 제자였던 제시 핑크맨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소아마비에 걸린 아들, 자신이 암에 걸린지도 모른채 임신 사실을 털어놓은 아내, 세차장 알바를하며 근근히 충당해온 생활비, 보잘것 없는 자신의 50년 인생 앞에서 월터 화이트는 마약 제조업자가 된다. 그는 '하이젠버그'라는 별칭과 함께, 떼어놓을 수 없는 사업파트너 제시 핑크맨과 함께 마약의 세계로 빠져든다.

 

브레이킹 배드는 일종의 성장드라마다. 월터 화이트는 마약판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총 62화에 이르는 드라마는 월터화이트가 하이젠베르크로 변태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나쁜것(Bad)에 대해 이야기한다. 월터는 본격적으로 마약 판매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기 전, 행크와의 식사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전체적인 주제와 맞닿는다. 암에 걸린 월터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사자리에서 행크는 FBI 친구에게 얻었다며 쿠바산 시가를 건낸다. 월터는 불법이 아니냐고 묻지만, 행크는 별것이 아닌양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자 월터가 묻는다. 마약도 과연 나쁜것일까, 누가 그것이 나쁜 행위라 규정할까라고 말이다. 그러자 행크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 번 교도소에서 마약에 절은 놈들을 만나봐야 그런 얘기를 못할거야, 약에 절어 삶을 포기하고 절규하는 그 얼굴을 보고 나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행크의 대답은 월터가 제시한 문제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브레이킹 베드에서 제시하는 화두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다시 드라마의 배경인 뉴멕시코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뉴멕시코는 원래 나바호족과 아파치족이 몰려있던 인디언 서식지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이곳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200년이 넘는 식민지배 기간동안 인디언 문화는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다. 독립과 함께 최초의 멕시코인 도시가 된것도 잠시, 이곳은 다시 비극의 역사를 잇게 된다. 민가를 불태우고 가축을 잡아 죽이는 보복을 가해서 나바호 인디언의 항복을 받아 내고 강제 이주를 하는 장거리 행진, 롱 워크(Long Walk)는 비극의 일부였다. 오랜 인디언의 땅이었던 그곳은 미군의 점령과 함께 수많은 토착민들의 묘지가 되었다. 비극의 역사를 통해 미국의 영토가 된 뉴 멕시코는 미국에서도 주의 수입이 낮은 쪽에 속한다. 주수입원은 대부분 관광업과 주정부에서 관할하는 사업에 의존한다. 주를 대표하는 뉴멕시코 대학은 미국 내에서도 100위권 밖일 정도로 교육에서도 낙후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주의 특성상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월터 화이트는 뉴멕시코 마약업계의 거물 구스타보 프링(거스)와 손을 잡는다. 캠핑카에 조악하게 만들었던 제조시설은 이제 커다란 공장으로 변한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마약업계의 또 다른 '거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구스타보 프링은 남미에서 불법으로 이주한 역사가 있는 사람이다. 사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자랑하는 그는 최고의 마약 제조업자 하이젠베르크와 손을 잡고 마약 시장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이 성공을 오래 이끌지 못한다. 치열한 세력사움 끝에 숨을 거둔 구스타보는 나바호족과 아파치족의 가슴아픈 역사와 닮아있다. 월터 화이트를 곤경으로 몰아 넣은 수 억 원대의 암 치료비, 마약상들과 총격전을 하다 마비된 행크를 회복시키기 위해 들어야하는, 보험으로는 처리가 안되는 엄청난 치료비는 의료 민영화의 맹점을 꼬집는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이미 정직하게 살아가는 고등학교 교사의 능력을 넘어선다.

 

하이젠베르크의 딜레마는 다시 시작된다. 순수한 물리학자의 삶을 살고, 양심을 지킬것인가. 그가 어떤 선택을 했건, 핵을 개발하지 못한 나치는 미국에 의해 괴멸당했다. 1945년, 뉴멕시코에서 최초의 핵실험이 이뤄진 이후 미국은 또 다른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이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들은 무엇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증폭시킨다. 수많은 인디언들의 목숨과 아픈곳을 치료할 돈이 없어 죽어가는 수많은 저소득층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자유의 땅 미국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마약이 나쁘다고 규정된 순간부터, 누군가는 마약을 뿌리뽑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그 쾌락의 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나쁜것'이 규정된 순간 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에서 토킹 배드(Talking Bad)까지, 하이젠베르크의 성장기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Gil Shaham - Prokofiev Violin Concerto No. 2 (2nd movement)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첫 날에는 그럭저럭 버틸 만 했는데 점점 신경이 쓰인다. 예상치도 못했던 통증이 찾아와 집에 와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독한 술에 취하면 통증을 잊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치아교정을 시작하면서 걱정되는 점들이 많았다. 많은 돈을 들여서 교정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다. 가장 많이 의지를 한 사람은 단연 치과 의사다. 지인이기도 하고, 성격도 좋은 분이기에 교정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랜 상담 끝에 1년이 넘는 교정치료가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 장치를 부착한 날, 치과에서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우선, 네이버에 '치아 교정'을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 검색 결과의 상당부분이 네이버와 관련된 콘텐츠였다. 상당수가 홍보성이 짙은 네이버 블로그와 연결됐고, 어쭙잖은 정보와 홍보 링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구글에 '치아 교정'을 검색했다. 구글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검색 결과 제일 상단에 위치하는 홍보성 링크 두 개를 제외하곤 전부 원하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치아 교정에 대한 정의'부터 진행경과에 따른 유의사항까지.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매번 네이버의 검색결과에 실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네이버와 구글의 접근 방식에 있었다. 네이버는 유저가 오랫동안 네이버 페이지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첫 페이지에 많은 정보를 띄워 놓는 것부터가 그렇다. 검색 결과는 대부분 네이버 서비스 페이지와 연결된다. 스폰서 링크를 제외하고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네이버 블로그, 지식인과 연결된다. 유저는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는 순간, 그 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유저를 오랫동안 잡아두고 클릭수를 늘리는 것은 네이버의 오랜 전략이었고, 네이버를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괴물로 만들었다. 구글의 접근 방식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말했듯, 구글은 유저를 최대한 빠르게 구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단시간 내에 가장 정확한 정보를 찾게 해주는 것이 구글 검색 알고리즘의 목표다. 네이버와 상반되는 이러한 구글의 접근 방식은 글로벌 유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원하는 정보를 국경과 울타리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는 이 전략은, 검색에 만족하는 유저들이 다시 구글을 찾도록 만들고 있다. 조금 더 멀리, 많이 볼 줄 아는 구글의 접근방식은 그들을 세계적인 검색엔진으로 이끌었다. 반면, 네이버는 국내시장에서만 큰 힘을 발휘한다. 전 세계적인 트래픽을 조사해보면 네이버는 100위권 밖에 머물러있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빠르고 쾌적한 인터넷 접속환경은, 또 다른 우리만의 인터넷 문화적 특성을 유발한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정보가 '짤방'과 '동영상'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읽어야 하는 텍스트와는 달리 짤방과 동영상은 빠르고 쉽게 내용을 전달한다. 그나마 동영상의 내용은 대부분 1분을 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핵심적인 내용(만 담았다고 생각하는)을 담은 이 영상들은 '좋아요' 클릭 한 번으로 수만 명에게 전파된다.

 

'너 그 동영상 봤어?'

 

정보는 점점 자극적으로 변한다. 1시간 분량의 드라마가 끝나면, 가장 자극적인 장면들이 편집돼 돌아다닌다. 이슈가 되는 뉴스들은 금세 핵심만 추려 30초짜리 동영상으로 변한다. 전후 맥락이 거세된 동영상들은 순식간에 여론을 조성한다. 안현수는 국민 영웅이 됐고, 윤진숙 해양부 장관은 몰매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나도 무심코 누른 '좋아요'를 통해 그 수많은 무리 중에 한 명이 되었다. 사려 깊은 지인들의 링크를 통해 '안현수 및 쇼트트랙 파벌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되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 건 그 이후였다.

 

연인 K와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한 말이 생각났다. '뭐든지 100퍼센트 잘못된 것은 없을 거야.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해도 1퍼센트는 옳은 부분이 있을 테고. 그걸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거야. 그래야 소통을 할 수 있는 거야.' 세상을 선과 악으로 분류하는 순간 이 세상에 이해받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기업과 관련된 사람들도,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고 몰매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넥타이 공장을 취재하던 그 분의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1페이지 남짓의 넥타이 무역에 관한 글은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넥타이의 탄생부터, 우리나라 원단 무역이 역사까지. 문제가 출발하는 가장 근본에서부터 질문을 풀어가야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당연하다. 넥타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인터뷰이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얻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머리말부터 역자후기까지.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 귀를 기울여야 진정으로 깊은 독서를 할 수 있다.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지휘봉이 들리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 음표까지. 빨리 감김 없이, 어떠한 편집도 없이 끈기 있게 들어야 깊은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책 한권을 진득하게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졌다. 원하는 정보는 짧은 검색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제 눌렀던 '좋아요'가 오늘의 '화제'가 되는 날이 많아졌다. 카페가 많아졌다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확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서점이 커졌다고 좋은 책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 취향과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좋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오늘부터라도 '좋아요'를 누르는 일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끈기 있게 읽어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커피상점 이심의 오픈 1주년 기념행사는 특별한 연주회가 있었다. 건너편 하나미용실 주인 아주머니의 아코디언 연주가 있었던것. 그 구석진 골목에 지나가는 사람들 쉬었다 가고, 마음놓고 아이참 바리스타와 대화를 나누고, 건너편 미용실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커피상점 이심은 마땅히 그 골목에 어울렸다.나이 지긋한 사장님은 미용실 아주머니와 잘 어울렸다. 그리고 카페에서 노니는 젊은이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직접 인테리어한 가게는 골목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다.

 

한적한 골목에 바람이 산들산들 불면, 사람들은 카페 밖으로 나와 커피를 마시곤 했다.

 

커피 리브레가 처음 그곳에 문을 연다고 했을때 걱정이 되긴 했었다. 카페 앞에 카페라니. 하지만 리브레 사람들의 정중한 요청에 이심 사장님은 흔쾌히 새 카페의 오픈에 동의했다. 그렇게 두 카페는 골목과 함께 호흡하며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려주었다. 커피상점 이심이나 카페 리브레나 북적이는 일은 드물었다. 항상 그 골목에 지나치는 그만큼만 카페의 손님이 되었다.

 

커피 리브레가 방송을 타고나서 연남동의 그 골목은 아비규환이 됐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몇시간이고 줄을 섰다. 그 좁은 골목에 차를 가지고 오는건 다반사였다. 더불어 커피상점 이심에도 낯선 손님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잘 된 일이겠지. 좋은 카페들에 사람들이 북적이니 좋은 일이겠거니 했다.

 

두 달이 지난 즈음, 그 골목에 함께 있던 하나 미용실이 문을 닫았다. 카레집 옆에는 빈티지 천가게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의 임대료는 꽤나 올랐다고 한다. 하나 미용실이 사라진 자리에는 와플 가게가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커피상점 이심에서 바라본 아이참 바리스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다시는 이 골목이 예전과 같지 않을거라며 슬퍼하셨다. 관광지를 찾아온양 방송을 보고 골목을 찾아온 손님들이 시끄럽게 떠들다 가는 분위기가 내심 불편하다고 말하셨다. 창 밖에는 얼마전까지 보기 드물었던 차들의 드나듦이 많아졌다. 동네 사람보단 놀러온 사람들이 더 많아보였다. 근처에 있는 세탁소는 잘 버티고 있을까, 숯불 갈비집을 찾는 아저씨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즐거울까 걱정됐다.

 

사람들의 욕심은 골목을 바꾸어놓았다. 방송을 타고나서 골목은 한번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골목분위기를 이용해 그럴싸한 가게 하나 마련하려고 한다.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부동산은 이제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용한 연남동 골목의 그 주택가는 이제 손을 쓸 수 없을만큼 변해버렸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찾아가던 미용실이 사라졌고, 아저씨들이 술 한 잔 하러가던 갈비집도 언제 떠날지 모른다. 그 가게들과 어색하지 않게 어울렸던 커피상점 이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다.

 

 

계동에 있었던 커피한잔이 기억난다. 사장님은 커피한잔이 그 조용한 동네를 흐려놨다며 내심 걱정했다. 이제는 사라진, 사직동으로 이전한 가게에서 사장님은 다시는 그런일이 없기만을 바란다. 소중한 카페를 잃는 일은, 고즈넉한 동네의 풍경이 사라지는 일은 늘 가슴이 아프다. 좋은곳에 생긴 단골카페가 사라지는 일에 나도 한 몫을 한 것 같아 쉽게 커피가 넘어가질 않는다.

 

지나가는 동네주민 쉬었다 가는, 그 동네 누구나 들러도 어색하지 않은, 지역과 호흡하고 천천히 뿌리내리는 카페들이사라지고 있다. 땅을 닮은 카페들이 오래가길 바라는건 과한 욕심일까.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지켜보길 바라는건 무리일까. 사라진 카페들 생각에, 사라질 카페들 생각에 가슴이 저며온다.

 

 

 

 

 

 

다경도설(茶經圖說)차에 관한 최초의 서적인 육우 다경(茶經)을 그림과 함께 풀어쓴 책이다. 다경을 해설한 책은 논문에 가까운 것부터 차에 입문하는 이들이 쉽게 접할수 있도록 간편하게 요약한 버전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다경도설은 치우치핑이라는 중국 차 연구 학자가 다경을 풀어쓴 것을 번역한 책이다. 여기에 다양한 그림까지 더해져서 다경'도圖'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차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차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커피를 공부함에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책을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에 대한 깊은 혜안이 담긴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더해주는데 큰 도움이 됐다. 개인적인 생각을 나열하기보다 책에 나온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고민을 나누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를 해둔 부분 중 일부를 옮겨본다.

 

 

  • 차는 들에서 자생하는 것이 좋고, 밭에 가꾸어 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양지쪽의 벼랑이나 그늘진 숲에서 나는 차가 좋다. …(중략)… 그늘진 산이나 비탈진 계곡에서 나는 것은 채취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나는 차는 그 성질이 엉기고 막히어 몸에 병을 일으킨다. (36쪽)
  • 고산의 구름과 안개가 좋은 차를 낳는다. (37쪽)

 

책은 차가 재배되는 환경에 대해 서술하며 시작된다. 고산에서 좋은 커피가 재배되듯 차 또한 고산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 상품이 탄생한다. 억지로 재배하는것보다 스스로 자생하는것이 상품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은 우리가 '야생커피'를 발견하고 그 오묘한 맛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좋은 자리에서 스스로 자라는 커피가 있다면 그 커피야 말로 진정한 스페셜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량 생산에서 벗어나 농장별, 섹터별 마이크로랏 커피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참고해볼만한 구절이다. 커피를 재배함에 있어 얼마나 인간의 손이 닿아야 하는가. 좋은커피는 결국 자연에서 나온다. 고산의 구름과 안개가 차를 '낳는다'는 표현은 그래서 더 깊이 와닿는다.

 

  • 차의 쓰임은 그 맛이 매우 찬 것이어서 그것을 마시는데에 적당한 사람은 정성스러운 행실과 검소한 덕을 갖춘 사람이다(40쪽)
  • 병차시대에 차를 맛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방아를 찧고, 스스로 체에 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 '입으로는 말할 수 없고 마음으로 쾌활하게 자득한다'는 초연한 의경을 경험하게 되는것이다(127쪽)

 

다도(茶道)라는 말이 있다.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목을 축이는 것 뿐만 아니라 예를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통해 얻어진 것을 스스로 다스려 마시는 일 만큼 고귀한 일이 어디있는가. 커피도 마찬가지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마시는건 종교의식처럼 여겨진다.

 

'추출이란 말은 그것이 간단한 과정이라는 환상을 낳게 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많은 가변요소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테디 링글이 추출에 대해 한 말은 육우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커피를 추출하고 마시는 일은 간단해보이지만 많은 가변요소들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커피 한 잔에 예를 갖추고 한 모금에 마음을 다스린다는건 지나친 일이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것을 볶고, 내리는 과정을 생각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투로 만들어지는 커피 한 잔이 어디있겠는가.

 

 

  • 차를 구울 때 사용하는 불의 연료는 숯이 가장 좋고, 다음은 단단한 떌감이 좋다. 그 숯은 일찍이 지지거나 굽는일을 해서 누린내나 비린내가 스며 있는 것이거나 진이 나는 나무와 썩은 그릇은 쓰지 않는다. 옛 사람들이 '썩고 문드러진 땔나무로 음식을 만들면 이상한 맛이 깃든다'고 했는데 믿을 만하다.(170쪽)
  • 차를 달이는 데 사용하는 물은 산수가 상품이요, 강물은 중품이요, 우물의 물은 하품이다. 산수는 젖샘이나 돌로 된 못에서 천천히 흐르는 것이 상품이다. 용솟음치거나 '솨아' 소래를 내는 물은 먹어서는 안된다. …(중략)…강물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것을 취하고, 우물물은 길어가는 사람이 많은 곳을 취한다.(175쪽)

 

다시 자연의 이야기이다. 상품의 뗄깜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탄화배전을 생각하게 한다. 좋은 불로 볶은 콩은 맛있을 수 밖에 없다. 물 또한 마찬가지다.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강한 물은 차의 맛을 헤친다. 역시 자연의 힘을 생각케 한다. 육우는 물과 뗄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다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커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로스팅을 하고, 추출을 함에 있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단연 맛있는 커피가 나올 것이다.

 

  • 새는 날고, 짐승은 뛰어가고, 사람은 입을 벌려 말한다. 이 셋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마신다는 것의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목이 마르면 장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196쪽)
  • '신선한 바람 속에 차 한 모금 마시면 마음 스스로 맑아지네', '마시면 쓰나 목구멍에는 달고', '진귀하고 고운 향기 가득한' 차탕을 품음할때에는 선엽을 딸 때부터 차로 만들어 마실 때 까지의 전체 공예 과정에서 적지 잖은 이치와 방법을 하나하나 파악하여 '아홉가지 어려움'을 깨달아야 하며, 이 아홉가지 어려움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육우가 들었던 다도의 당오에 도달할 수가 있다.(207-208쪽)

 

'마신다는 것의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한 번이라도 마시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되돌아본다. 커피 농장에서 카페의 테이블까지. 한 잔이 거쳐온 자연의 힘과 바리스타의 노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누군가 '순댓국이 6천원, 커피가 6천원. 순댓국만도 못한 커피가 왜이리 비싼가'라고 말해서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커피는 순댓국이 주는 포만감과 영양소들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육우가 말했듯 마시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우는 일을 넘어선다.

 

커피 가격 논쟁은 물론이요 최근 가장 깊이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커피'에 대해서도 다경도설은 답을 주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한 잔을 소중히 하는 육우의 다도(茶道)는 우리의 커피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물줄기를 잡아 커피를 다스리는 핸드드립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제부턴가 그 모습을 두 잊고 TDS를 측정하고, 월드 챔피언의 레시피를 따르고, 트렌디한 추출기구만을 찾고 있다. 다경도설의 여러 구절을 읽으며 빈 드리퍼 가득 물을 부으며 연습했던 핸드드립이 생각났다. 처음 커피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커피를 하면 할수록 자연의 위대함을 느껴, 자연을 이길 순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자연이 허락한 한도에서 최선의 맛을 뽑아내는거지'.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일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채식주의를 대변하는 책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동물을 먹는다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고 의미를 집고자 한다. 개고기에 대한 해묵은 논쟁으로 글을 시작한다는 점은 이 책의 방향성을 보여주고있다. 개와 인간이 계약이라도 맺은양, 개를 특별하게 여기고 그것을 먹는걸 금기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모순적인가. 돼지는 개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 고통을 느끼는것도, 행복을 느끼는것도 개와 돼지는 모두 똑같을텐데 왜 우리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가.

 

그리고 이야기는 해마로 넘어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신비로운 모습의 해마는 약 35종으로 분류된다. 그 중 20종이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나 만날법한 신비로운 모습은 수집광들에게 크나큰 유혹이다. 잘말려 보관된 해마는 훌륭한 수집용 화석이 된다.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해마의 모습은 신비 그 자체다. 덕분에 모든 물고기가 그렇듯 해마도 수족관에서 자유를 잃고 생명을 잃는다. 해마가 죽는 경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해마는 부수어획에서 가장 많이 희생당하는 어종이다. 참치 한마리를 잡기위해서 위성항법장치(GPS)를 동원하는 글로벌 포획자들은, 그물에 함께걸린 다른 145종을 죽인다. 새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우 0.5kg를 잡기 위해 12kg의 다른 어종들이 죽어야만 한다. 사람의 얼굴에 갈고리를 던지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숨도 못쉬게 죽여버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갈고리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은 물론이요 함께 죽어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공장식 축산업이 전달하는 비극적인 광경은 참치가 잡히는 모습에 비하면 온화한것일지도 모른다. 원양어선을 타고 비극의 종점으로 가는대신 샤프란포어는 농장들을 찾아간다. 곧 세상의 빛을 볼 자신의 아이를 위해, 그 아이가 먹게될지 모르는 동물들을 직접 보기 위해 그는 농장에 편지를 쓰고 머나먼 시골로 차를 몰고 간다. 그는 침착하게 그가 보고 듣고 읽고 느낀것을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업 덕분에 우리가 겪게될 고초들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그는 우리가 사소하게 넘기는 소화불량이나 복통의 원인이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가공된 육류에서 기인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비정상적으로 단기간에 성장한 동물들은 생명이라 하기엔 너무 많은것을 잃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모든 공장식 축산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광인이거나, 광인이었거나, 광인이 된다.

 

그가 채식주의를 선택한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안이라고 존재하는 목장들에서 탄생하는 육류들조차도 공장식 축산이 지배하는 업계에서 벗어날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대안이 될수있는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포어는 사실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챕터에서 그는 할머니가 차려주었던 맛있는 닭 요리에 대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올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책은 마무리 된다. 동물을 먹는다는것에 대한 성찰. 우리가 마주하는 음식들이 어디서 탄생하고,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마주하는 일에 그는 수많은 생각과 과제들을 던져주고 끝이난다. 책은 통해 육식에 대한 독자의 냉철한 성찰을 도와주고 그들이 선택을 하게 도와준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됐든, 책의 내용들은 그 선택의 근거가 되어준다.

 

 


 

착한커피열풍이 드세다. 이 열풍이 좋은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듣도보도 못한 스페셜티에 관심을 가졌다는건 대단한 일이다. 시다고만 여겨졌던 그 커피들을 설득할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는 좋은것이고 라마르조꼬도 훌륭한 머신으로 밝혀졌다. 이제는 바리스타들이 자신들이 낸 커피가 왜 신맛이 지배적인지 소비자를 설득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육식에 반감을 가지듯 직거래하지 않은 커피, 비싼 머신을 쓰지 않는 가게를 착한 가게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

 

착한커피 방송과 샤프란포어의 책은 깊이의 차이가 있다. 좋은 기자는 기사를 쓰기 전 자신이 취재하고자 하는 것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령, 넥타이 무역에 대한 취재를 한다면 넥타이의 탄생부터 섬유업계의 화두까지 간단하게라도 사정을 파악한 후 펜을 집어든다는 것이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는 동물을 먹는 모든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착한커피 방송은 그저 하나의 '맛집 소개'에 그치지 않는 방송을 만들어냈다. 70분의 영상이 던진 충격은 1권의 책보다 파격적이었다. 우리는 어떤 커피를 마셔야하는가. 포어는 육식을 하지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평생 육식에 대해 고민없는 선택을 했던 사람이 샤프란 포어의 책을 읽는것과, 커피라곤 인스턴트만 마셨던 사람이 방송을 보는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포어의 책은 사람들의 편견을 걷어냈고 착한커피 방송은 사람들에게 뿌리깊은 편견을 심어줬다.

 

Coffee Break (Addis Ababa, Ethiopia) from John Harrison on Vimeo.

 

 

애초에 '착한 먹거리'를 찾겠다는 방송의 의도가 잘못됐다. 어떤 먹거리가 착한 먹거리일까. 착한 먹거리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것들은 다 나쁜 먹거리가 되는걸까. 방송에서는 착한 먹거리만 보여주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다른것들은 나쁜 먹거리로 자리잡는다.

 

커피는 도대체 어떻게 마셔야 할까. 오랫동안 수많은 커피와 마주하고 카페를 다녔지만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답이라고 찾은것이 있다면 먹는것과 같이 커피 또한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다. 커피를 볶는 것에 정답이 있을까. 추출을 하고 마시는 것에 정답이 있을까. 방송에서 그토록 찾아해맸던 직거래, 약배전 커피가 훌륭하고 비싼 머신이 착한 커피라면 아디스아바바에서 마시는 저들의 커피는 나쁜 커피일까.

 

실제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마이크로랏 농장주들은 어마어마한 부자들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가 꼭 착한일만 하는건 아니다. 스페셜티가 커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시모넬리 라인업은 국제대회에서 사용할만큼 공인된 머신이다. 약배전 커피라고 낮은온도에서 내리라는 법은 없다. 커피가 맛있어지는건 커피에서만 기인하는게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 어떤 음악과 함께 듣느냐도 중요하다. 내리는 사람의 철학도 중요하다. 취향의 문제도 무시하지 못한다.

 

샤프란 포어가 소규모 목장을 방문하면서, 채식주의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스스로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서 글을 써나간 것 처럼 커피에 대한 방송을 만들었으면 하는 하는건 너무 심각한 부탁일까. 포어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은것처럼, 독자 스스로가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하게끔 만든것처럼 커피를 선택하게 만들어 줬으면 어땠을까. 우리는 꼭 착한커피를 마셔야 한다는양 방송을 하는건 너무나 거만하고 납득할수 없는 폭력적인 일이다. 그들이 무심코 만들어낸 그 70분의 영상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들은 알까. 커피 한 잔에 담긴 깊은 의미가 짧은 영상으로 인해 무너져내렸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카페 견문록의 목표는 좋은 카페를 소개하는것 뿐만 아니라 카페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도 있습니다. 바리스타의 고용문제나 카페와 관련된 부동산 문제 등.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곁다리로 얘기해왔던 부분들은 모두 실제 바리스타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보고, 듣고 적어나간 것입니다. 좋은 카페를 찾아가기에 앞서, 이러한 문제까지도 공유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으면서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꺼내고,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와 관련된 기사 혹은 소식들을 리뷰하는 이 카테고리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으면 좋겠습니다.

 

'커피와 영수증' 코너는 커피를 마시며 영수증에 끄적여놓은 생각들로 시작되는 글입니다. 여기엔 커피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죠. 오랬동안 잠겨있던 이 카테고리를 꺼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써봅니다. 

 

이 코너의 첫번째 글('커피와 영수증' 연재의 본격적인 시작)은 Alex Bernson의 기사와 함께 합니다. 바리스타가 스스로 건강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는지에 대한 조사부터 실질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이야기까지. 3파트로 이뤄진 이 기사에선 바리스타(혹은 로스터)가 하는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바리스타들이 이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줍니다.

 

http://sprudge.com/real-talk-barista-health-in-the-workplace-part-one.html

http://sprudge.com/real-talk-barista-health-in-the-workplace-part-3.html

http://sprudge.com/real-talk-barista-health-in-the-workplace-part-3.html

 

글에서는 바리스타들이 카페인을 많이 섭취함으로 인해서, 스티밍등 뜨거운 것들을 많이 만지고 접함으로 인해서, 템핑과 같이 반복적이고 강렬한 행위를 함으로 인해서 바리스타 가질 수 있는 위험요소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감정노동의 측면에서 바리스타들의 정신건강을 조명해보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평소 관심을 갖던 주제라 흥미롭게 읽어나갔습니다. 기회가 되면 세 편의 글을 요약해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커피 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커져갑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노동자 혹은 인격체로서 커피업계 종사자를 생각하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려는 움직임은 미미하기만 합니다. 그들의 임금체계, 노동환경, 인권에 대해 이야기해야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새해 첫 포스팅입니다.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숨겨두었던 글로 올해를 시작하게 됐네요. 
 



바리스타들은 멋있어 보입니다. 주문과 동시에 뚝딱 커피나 나오는걸 보면, 그들이 하는 일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은 종종 바리스타에 대한 오해를 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바리스타가 누구나 조금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또한 쉬워보이는 추출과정때문에 손님들을 상대하는것도 벅차지 않을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커피를 추출하는 일은 보이는 것 처럼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가령, 에스프레소 추출만 해도 그렇습니다. 바리스타는 출근하자마자 몇번의 추출을 합니다. 그 날, 손님들을 맞이할 원두의 상태를 체크해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일은 예민한 원두의 상태를 파악하는것부터 시작합니다. 언제 로스팅이 됐는지, 얼마나 바스켓에 담아야 하는지, 탬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추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한 잔을 만드는데는 엄청난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업중에도 지속적인 추출로 인해 커피 맛에 변화가 생긴건 아닐지, 바리스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커피는 취향의 음료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추출한 한 잔의 커피도 누군가의 입맛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손님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조용히 커피를 남기고 가는 손님이 있다면, 바리스타에게 항의하는 손님도 더러 있습니다. 바리스타들은 손님들의 미세한 반응부터 체크해가며 다른 주문들을 소화합니다. 손님들이 나간 후, 마감을 하는 일은 바리스타가 해야하는 또 다른 일입니다. 커피 기구들은 민감합니다. 특히 에스프레소 머신은 예민하기 이를데 없죠. 바리스타들은 설거지부터 시작해 매장 청소 그리고 정산까지 하는게 보통입니다. 카페가 11시에 문을 닫는다면, 그들이 카페 문을 닫는 시간은 적어도 12시.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나가거나한다면 퇴근은 훨씬 더 늦어집니다. 바리스타들은 근무시간동안 바(bar)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근무하는 내내 서 있어야하고, 손님의 민감한 반응에 항상 친절한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민감한 미각(혹은 감각)을 유지하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휴식을 하기 위해 카페를 찾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은 커피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바리스타들에겐 남들이 쉬고 노는날이 더욱 고단합니다. 충분한, 일정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들에겐 매우 힘든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도 바리스타의 근무여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홍대 인디뮤지션 못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은 일하고 커피를 내립니다. 실력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훌륭한 프로 바리스타들이 파트타이머의 시급과 다르지 않은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시급은 두번째 문제입니다. 마음놓고 커피를 만들수 있는 환경또한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도제방식으로 직원을 교육하는 카페가 점점 줄어들곤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오너에게 커피맛에 대한 솔직한 조언은 금물이죠. 수 년간 커피를 만들어오고, 마셔왔지만 그들의 조언은 달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최선의 추출을 꿈꾸는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과도한 친절을 요구합니다. 추출하는 와중에 말을 거는것은 예사입니다. 바리스타들은 언제나 준비된 웃음과 답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시미를 든 일식 조리사에겐 말을 걸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리스타들은 추출을 하는 순간에도 웃으며 손님들과 대화를 합니다.

추운 겨울, 친하게 지내던 한 바리스타가 문자로 해고당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쪽의 이야기만 들었다는 점에선 분명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을겁니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것도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바리스타가 어떤사람들인지 얘기 하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바리스타들은 가장먼저 카페에 나가 가장 늦게 마감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카페와 커피에 애착을 가진 분들입니다. 한 잔, 한 잔, 허투로 내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쉬는날이면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를 사랑합니다. 항상 최선의 환경에서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려주는 어떤 커피라도 전 즐거이, 행복하게 마십니다.

한 잔의 커피를 위해 그들이 들인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지난 겨울의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커피는 커피와 바리스타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상호작용을 통해 탄생합니다. 올해에도 바리스타들은 매일 커피와 고군분투를 할겁니다. 맛있는 커피에 귀를 기울이고 한 잔의 노력에 관심을 가지는 손님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커피 추출이란 말은
그것이 간단한 과정이라는 환상을 낳게 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많은 가변요소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그들 모두 맛있는 음료로써 추출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히 제어되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은 일련의 작은 생각을 통해
자연의 비밀에 조금씩 다가간다고 한다.
이들 작은 생각은 때때로 과학적인 방법이 된다.

by Ted R Lingle

박상호 바리스타의 세미나, 커피 리브레

 

지난 월요일 저녁, 리브레에서는 박상호 바리스타의 커피 세미나가 열렸다.

박상호 바리스타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영국에 진출했다. 아시아인도 손에 꼽히는 영국 커피업계에서 그는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둬왔다. 스퀘어 마일즈를 기반으로 일하면서 런던 바리스타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편견과 차별속에서 어느덧 런던 최고의 바리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날 세미나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국의 커피 산업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갔다. 비교적 늦게 커피 산업에 진출한 영국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영국의 커피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까지. 경험에 기반한,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흥미로운 세미나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피쉬엔 칩스 아니면 굳이 먹고 마시는 것에 밀어넣은 홍차문화가 전부일 것이다. 영국이 본격적으로 커피산업(정확히 말해서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한것은 2005년이다. 음식문화에서는 별볼일 없었던 영국이 불과 10여년 사이에 스페셜티 커피에서 두각을 나타낸건 호주와 뉴질랜드의 영향이 컸다. 영국에 비해 식문화가 발달한 호주와 뉴질랜드의 젊은이들이 영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양질의 커피 문화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각각 2005년, 2008년에 문을 연 Cafe Flat White, Milk Bar는 영국 스페셜티 커피의 기반을 다졌다. 여기에 Square Mile이 힘을 더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커피는 커피의 산업혁명 이뤘다. 여기엔 Steve Leigton의 In my mug(커피를 주문하면 매주 목요일 일정량의 커피와 함께 그 커피를 설명하는 영상을 배달해주는 시스템), 2009년 바리스타 챔피언 Gwilym Davies의 Disloyalty card(다른 8개의 샵에서 커피를 마시면 자신의 샵에서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카드)같은 헌신적이고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힘을 더했다.

 

이렇게 박상호 바리스타는 전반적인 영국의 커피 산업의 발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더불어 그는 한국과 구분되는 영국의 커피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외국의 한 카페 리뷰어가 지적한 것 처럼, 한국에는 로스터리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반해 영국은 런던에 있는 수 십 개의 스페셜티 샵중 로스터리는 불과 다섯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도 할 수 있어'가 아니라 '그래, 로스팅만큼은 로스터를 믿자'라는 마인드가 잘 정립해 있는게 그 이유다. 또, 경력직을 우대하기보다 각각의 샵의 분위기에 맞는, 열정이 있는 직원을 뽑는 것도 한국과 영국의 차이점이다. 이 밖에도 레시피를 중요시하는 점(물의 온도, 추출량과 시간에 대한 정확한 기록), 저울과 타이머 없이는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소금, 식초맛 과자가 심심치 않게 팔려나가는 것 처럼 신맛을 좋아하는 영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신맛을 중심으로한 벨런스가 좋은 커피를 뽑아내는 것. 역시 한국과 비교되는 영국의 커피문화였다.

 

이 세미나의 초점은 영국의 우월한 커피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국 커피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한국 커피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주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나는 커피 스터디 사람들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두 개의 커피하우스가 떠올랐다. 바로 대학로의 학림과 다동의 다동커피집이다.

 

 

대학로, 학림

 

 

네이버, 히룡(coolday33)의 사진출처 : 네이버, 히룡(coolday33)의 사진 http://photo.naver.com/view/2010082900264960095

 

학림을 커피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런 학림을 얘기하기에는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므로 오늘은 커피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

 

1956년 처음 문을 연 학림은 지금까지 줄곳 '학림 블렌드'만을 팔아왔다. 50년간 학림의 커피 맛은 변해왔다. 아니 변해왔을 것이다. 분명한건, 어느 순간부터 학림은 자신만의 맛을 찾았다는 것이다. 신맛이 너무 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밍밍하지는 않은, 구수한 숭늉의 느낌이 나면서도 커피 고유의 쌉싸름함(Bitter)이 살아있는 맛. 벨런스의 측면에선 한국의 어떤 카페도 따라오지 못할 훌륭한 블렌드다.

 

학림의 커피 맛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부분이다. 스퀘어마일이 세계적인 로스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커피 문화에 기반한 벨런스 있는 로스팅이다. 신맛을 좋아하는 영국인의 입맛을 기반으로 질좋은 생두와 철저한 메뉴얼화를 통한 로스팅이 스퀘어마일 커피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신맛이 강한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벨런스를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기때문에 거북함이 들지 않는다.

 

신맛은 과연 세계적인 트렌드일까? 자칭 커피 마니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혹은 세계트렌드를 따라간다고 하는 샵들이 좋아하거나 내놓는 약배전 커피들이 과연 진리일까. 자칫 잘못하다간 콩을 익히지도 못해 신맛만 잔뜩나는, 벨런스가 무너지기 쉽상인 커피가 우리의 입맛에 맞는 커피일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학림의 커피는 신 커피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트렌드라 하기에는 강배전을 고집한지 너무 오래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학림을 찾는다. 수 십 년간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던 사람부터 이제 막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까지, 학림의 커피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학림의 커피는 스퀘어 마일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졌다. 학림이 연구해온 맛은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기반한다. 우리의 커피문화를 생각할때, 학림이 떠오르는 이유다.

 

 

다동, 다동커피집

 

 

개인적으로 다동의 커피를 좋아하는 편은 안니다. 물에 커피탄 듯, 커피에 물탄듯 그곳의 커피는 너무 연하다. 스트롱 커피나 에스프레소만이 그곳을 찾을때 즐겨 먹는 메뉴다.

 

다동은 고집이 센 커피집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4000원에 커피를 팔면서 무제한 리필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커피'를 하는 자부심도 크다. 은은하면서도 고소하고 달달한 커피에 중심을 둔다.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커피의 농도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누구도 그곳에선 커피가 쓰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집중해야 느낄 수 있는 은은하고 깊은 맛에 감동을 받는다.

 

믹스커피가 훌륭한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다동의 커피는 그렇다. 4000원을 내고 이 커피, 저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건 누구에게나 신나는 일이다. 게다가 커피는 진하거나 쓰지 않다.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어떤 한국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다동에 앉아있다보면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만 뺵뺵한 홍대의 카페 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종로의 50대 부장님들도 다동에 자주 찾는다. 얼큰한 부대찌게를 먹고 입가심하기에 다동의 커피는 무리가 없다.

 

 

우리의 커피

 

어떤 외국인이든 한국에 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이렇게 카페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싶을 것이다. 프렌차이즈는 물론 직접 콩을 볶아대는 로스터리 카페들도 넘쳐나고 있다. 양적인 성장이 가진 단점은 이미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아직도 프렌차이즈 카페에선 시럽없이는 커피 먹기가 힘들다. 그리고 대부분의 로스터리 샵은 콩을 덜 익히거나 태우고 있다.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져다 놓고도 과추출을 하는건 예사로운 일이다.

 

반면, 그 속에 숨은 진주처럼 커피를 만드는 카페들이 있다. 양질의 생두를, 오랜 연구를 통해, 정성을 들여 볶는 로스터리들이 있다. 그 카페들 덕분에, 그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어느곳을 가도 부끄럽지 않은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은 함께 입맛을 끌어올린다. 좋은 커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분명하다. 우리만의 커피문화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커피에 대한 고민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커피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을 쫓아가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한다.

 

학림과 다동같은 고민을 하는 카페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당장 우리 어머니를 데려가도 좋아할만한, 그런 카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영국에서는 한 카페에서만 오전에 수 백 잔의 커피가 팔려나간다고 한다. 수백명의 영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한국 스페셜티 로스터리도 이런 카페가 됐으면 좋겠다. 양질의 커피로, 벨런스가 뛰어난 커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커피를 마실 줄 안다면 신맛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당신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이곳의 커피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카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학림 가는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출구로 나와 직진. 혜화동 로터리방향으로 50m정도 가다보면 2층에 있는 학림다방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4가 94-2, 02-742-2877

언제나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담배를 자유롭게 필 수 있는 몇 안되는 카페다. 변하지 않는 학림의 블렌드는 학림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다.

 

다동 가는길

버스 정류장 종로1가(01-191)에 내려 청계천을 건너가면 다동 먹자골목 사이에 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번출구, 2호선 을지로입구역 2번출구에서 가깝다. 서울 중구 다동 164-1, 02 777-7484

커피를 처음 마시는 사람들에게 추천. 은은하고 고소한, 달달하고 부드러운 다동의 커피맛에 인심후한 리필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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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홍대에서 일하고 있는 바리스타 형님의 전화였다.홍대의 몇몇 카페에서 도움을 주고싶다는 의사를 전해와 연락했다는 것이다. 오늘 노점을 하게 되면 갓 볶은 커피를 1kg정도 후원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노점이 계속된다면 장비와 인력또한 후원하고싶다는 내용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샤워를 하고 급하게 노점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겼다. 트위터에 노점을 열겠다는 글을 올렸고, 후원을 하겠다는 바리스타분들과 약속을 잡았다. 혼자서는 벅찰 것 같아 친구와 후배들에게 연락을 했다. 여행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구겨넣고 급히 집을 나섰다. 학교 법인화에 반대해 본부를 점거한 학생들이 문화제를 여는 시각은 4시. 늦어도 3시 반에는 학교에 도착해 준비를 해야했다.



얼마 전 트위터에 노점을 열고싶단 글을 올렸다. 날씨가 좋을 때, 캠퍼스 혹은 홍대에서 노점을 하곤 했다. 직접 콩을 볶아서 커피를 팔았다. 사람들이 꽤 모였던 기억이 났다. 커피를 마시며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노천 카페가 생각났다. 학교에선 법인화 일방추진 반대를 외치며 본부 점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학우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노점을 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내리고, 후원금을 받아 학생회에 기부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다. 기말고사 기간이었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참여하는 학내 구성원들도 없는 마당에 외부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잊고 있던 일이었다. 전화를 받았을 땐, 어쩌다가 내 글이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졌나 싶었다.한 번 퍼지기 시작한 트위터 글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커피가 부족할수도 있으니 더 가져오겠다, 장비를 지원해주겠다, 커피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뭐든지 할테니 일단 만나자. 쉴 세 없이 트위터 알람이 울렸다. 한 손으론 정신없이 트위터를 하면서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엔 선뜻 후원에 응해주신 홍대에 들러 커피를 받아들고 학교로 향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금세 사람들이 모여 테이블을 옮기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역할 분담을 했다. 물을 계속 끓이고 공급하는 일은 법대 친구가 도와주었다. 부족할까 직접 원두를 사가지고 온 공대생은 나와 함께 커피를 내렸다. 외교학과에 다니는 친구는 미학과 친구와 함께 노점 홍보에 나섰다. 서빙도 하고 후원금도 걷었다. 행사는 많은 학우들과 졸업생 그리고 학교 직원들의 호응속에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덕분에 노점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모든 수익금을 학생회에 기부하겠다고 하자 후원은 물밀듯이 들어왔다. 어느새 후원금함은 가득찼고, 가져온 커피는 바닥을 드러냈다. 정신없이 2시간이 지나갔다. 후원금은 꽤 모였다. 함께 노점을 한 친구들의 이름과 후원한 카페의 이름으로 후원금 전액을 학생회측에 전달했다.

그 이후에도 노점을 열 기회가 있었다. 학교측의 입장은 완고했고, 학생들은 본부를 계속 점거할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온갖 아이디어로 본부점거를 유쾌하게 이어갔다. 그리고 무르익은 분위기는 곧 본부스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본부스탁에 커피장사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나왔고, 나는 선뜻 커피 콩을 볶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곧이어 학교 커피 동아리에서 연락이 왔다. 본부스탁에서 커피를 파는 부스를 연다고 했다. 커피만 볶아주기로 했던 나는 엉겁결에 부스에 함께하기로 했다. 있던 약속을 취소한 채 나는 본부스탁에서 커피를 팔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준비해둔 원두를 모두 소진했다. 다음날에도 커피 장사는 이어졌다.
 




커피 노점은 총 3일간 열렸다. 10명 가량이 노점에 참여했고 홍대의 카페 한 곳에서 후원을 받았다. 커피는 200잔이 넘게 팔렸다. 첫 날 후원금으로 25만원, 본부스탁 부스에서 10만원의 이윤이 남았다. 학생회에는 35만원 정도를 기부했다. 숫자를 좋아하는 경륜있는 어른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니,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는건 하나도 없는 쓸모없는 짓거리였다. 이것저것 들어간 비용에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35만원은 적자나 다름없는 수익이다. 장사를 하느라 과제를 딜레이 한 사람도 있었고 시험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원래 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장사를 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헛수고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적인 훌륭한 대학을 만들겠다는 총장님의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초학문에 돈을 쓰는게 아깝다고 생각하는, 법인이 돼 학교의 재산을 있는대로 불리고 싶은 그들의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노점을 하지 않고 레포트에 힘을 썼다면, 공부라도 한 자 더하고 시험을 봤더라면 훌륭한 학점을 받는 훌륭한 학생이 됐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학교를 기초학문이든 실용학문이든 상관없이 좋아하는 공부를 열정적으로 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다.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과 학장님이 아니고 학교에 학생, 직원 그리고 학교와 관련있는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입장에선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경제적이지 못할지라도, 이윤창출이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우리들에겐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이 아니었다면 노점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는 사람들만 모였더라면 커피는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에 의해 노점은 열렸고, 사람들을 위해 커피가 내려졌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나눴던 그 소중한 시간들은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를 가졌다.



노점을 열었던 첫 날, 본부에서는 총장님과 학생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서로의 의견차가 분명하여, 경륜없는 학생들과의 만남이 당혹스러웠던 총장님의 수줍음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본부를 수줍게 나서는 총장님을 향해 나는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총장님은 묵묵부답이었다. 아직도 난 그 이유를 모르겠다. 친절한 나의 부탁을 거절한 이유를. 아마도 총장님은 커피를 싫어할지도 모른다(혹은 봉지커피를 즐겨먹는 취향일 수도 있다). 혹은 아무런 이윤도 낼 수 없는 쓸모없는 노점따위엔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세계 최고의 학교를 위해 있는 경륜 없는 경륜을 쏟아 붓느라 커피 한 잔 즐길 여유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때, 억지로라도 총장님의 손을 잡고 커피 한 잔 쥐어드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소망한다. 언제라도 총장님의 마음이 열려, 학생들과 커피 한 잔 할 수 있기를. 함께 노점 앞에서 웃고 떠들며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기를.

맛있는 커피 이야기

     맛있는 커피를 위한 6원칙
  • 신선한 배전두(볶은커피)
  • 청결한 도구
  • 신선한 물
  • 기구에 맞는 적당한 굵기
  • 적당한 분량
  • 추출시간과 온도 지키기

맛있는 커피를 위한 6원칙. 커피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 노트에 열심히 필기 해 둔 내용이다. 간단하면서도, 지키기 까다로운 내용이다. 하지만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 언제나 저 6가지 항목들을 기억하며 커피를 볶고, 갈고, 내린다. 이 기준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카페를 갈 때 마다 유심히 체크하는 항목들이다. 신선한 커피를 사용하는지, 주방을 청결하게 쓰는지, 신선한 물을 사용하는지, 적당한 굵기의 커피를 적당한 분량으로 최적의 온도에서 추출하는지를 살핀다. 조금만 관심있게 카페를 둘러보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6가지 원칙을 지키는 카페 중에서, 커피맛이 별로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가령 내가 자주가는 홍대의 카페 헤이마(Heima)는 이 6원칙에 충실하다. 헤이마에선 항상 열정이 가득한 로스터분께서 콩을 볶는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볶은 원두를, 가장 적당히 숙성된 상태에서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청결한 주방은 언제나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커피를 위해 따로 정수기를 설치한 것은 물론이며, 최상의 머신으로 최고의 커피를 내려주려 노력한다. 추출이 잘못된 커피는 절대 손님에게 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추출된 한잔의 커피를 대접하려 노력한다. 이는 내가 헤이마를 자주 찾는 이유이며, 그곳의 커피가 맛있는 이유다. 연남동에 있는 카페 이심에선, 언제나 신선한 커피를 맛 볼 수 있다. 사장님께선, 커피를 가장 최상의 상태에서 대접하고자 노력하신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직감으로, 가장 적합한 온도에서, 적합한 방법으로 커피를 내려주신다. 그곳의 커피는 언제나 신선하며, 부드럽다.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지만, 카페는 언제나 깨끗하다.

맛없는 커피 이야기

까다롭게 보여도, 나는 대체로 대부분의 카페에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자신의 카페에 최선을 다하는 로스터, 바리스타는 언제나 저 6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커피맛도 맛있어진다. 문제는 취향의 차이다. 내가 카페에 가고, 맛에 대해 표현하고, 리뷰를 하는 이유는 각 카페가 가진 성향에 대해 기록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 기록이 나의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나는 최선을 다해 리뷰를 하고자 한다.

전주에 내려가 카페를 찾아다닌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작년에 전주에서 들른 한 로스터리샵이 인상깊게 남아, 전주의 카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다시 전주의 카페들을 들러보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주시 D동에 있는 B카페를 찾았다. 로스터리 샵에, 각종 블로거들의 칭찬으로 유명한 카페였다. 하지만, 나는 메뉴판을 보는 순간 부터 화가 났다. 그리고 주문을 하며 화가 났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화가 났다.



메뉴판에는 내가 여지껏 한번도 보지 못한 식의 가격표가 있었다. 원두가 3그람 늘어날 때 마다, 가격이 2000원씩 오르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사실 여기서 크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정확한 추출을 한다는 자부심과, 훌륭한 원두를 내려준다는 자신감이라면, 이정도는 이해할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으면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만큼의 노력이 들어갈 것이고, 이정도의 가격을 받는다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든 것은 주문을 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주문한 두 종류의 커피가 없어서 직원이 두 번이나 바와 내가 있는 테이블로 갔다왔다했다. 결국, 있는 커피가 무엇이냐 물어보았고, 원두가 있는 진열장을 살펴보던 직원이 남아있는 커피를 알려주어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화가나기 시작한 건, 커피맛을 보면서부터였다. 그래도, 기대는 했었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커피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나는 실망을 했다. 정말 맛이 없었다. 내가 가장 저렴한, 연한 커피를 주문하기도 했지만, 이 커피는 맛이 연하다기보단 어떠한 특징도, 개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이 간 여자친구는 커피가 조금 오래된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혹시나 해서, 난 계산을 할 때 커피의 로스팅 날짜를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커피가 볶아진 날짜는 각각 5일과 11일이었다. 우리가 카페를 찾은 건 22일. 그러니까 각각의 원두는 18일과 12일이 지난 커피라는 것이었다. 신선한 커피의 유통기한을 2주를 기준으로 한다면, 12일된 커피까지는 그래도 용서가 됐다. 하지만 볶은지 18일이 지난 커피를 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카페에선 나름 핑계를 댈 수도 있겠다. 혹은 내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다.
그날따라 원두가 없을 수도 있었고, 그나마 남은 커피가 얼마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오래된 커피를 내려줬을 수도 있다. 혹은 이 카페는 원래 오래된 원두를 내려주는 카페일 수도 있다. 또, 워낙에 비싼 생두를 쓰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커피를 팔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직원들은 이제 막 커피를 배워나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분별이 없어서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사실이라고 해도, 난 이 카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단 한잔의 커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카페들이 있는데, 이렇게 무심한 카페를 다시 찾을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커피 맛에 신경쓰고, 손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카페를 다녀온 다음날, 나는 또 한 잔의 맛없는 커피를 만났다.

또 박씨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시간은 18~23초로 정해져 있어서 추출시간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에스프레소를 버려야 한다"면서 "에스프레소 추출이 잘못됐다면 음료 제조에 쓰지 않는 것이 맞지만 바쁜 아침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이를 완벽하게 지키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모 프렌차이즈 커피샵의 커피 맛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추출시간을 지키지 않은 커피에 대한 내용이다. 워낙에도 잘 찾아가지 않지만, 이런 얘기를 듣고나니 가고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음식으로 치자면 불어터진 라면이라든지, 익지 않은 쌀밥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당연히 맛 없을 수 밖에 없고,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바로 버려야 할 커피이다.

다시 맛있는 커피 이야기

이야기는 간단하다. 로스팅은 요리이고, 커피를 추출하는 일 또한 조리에 속한다. 청결함은 기본이고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점에 가서는 이러한 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데 익숙하면서, 카페에 가서는 너무나 무심해진다. 언제부턴가 맛없고 쓴 커피엔 시럽을 넣어 먹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니, 커피는 원래 쓰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바람이다. 음식에 대해 민감한 만큼, 커피에 대해서도 민감했으면 한다. 로스팅과 커피를 요리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수 많은 음식점에게 잔반을 다시 쓰지말라고 하는 것 처럼, 신선한 재료를 요구하는 것 처럼, 깨끗한 주방을 요구하는 것 처럼 카페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으면 좋겠다. 기본적인 원칙만 지킨다면 커피는 더 맛있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커피는 원래 맛있다. '진짜'커피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커피를 선택하는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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