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넘어가는 방학이었다. 방학까지 학원에 다니고싶지않아,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내내 놀았던 기억이 있다. 딱히 할일이라곤 없었는데,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뒷산에 올라 쌓인 눈을 가지고 노는게 전부였다. 신발에 양말까지 가득 젖고나면, 집에들어와 보일러때문에 따뜻해진 이불장 밑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던 생각이 난다.

 

놀았던 시간은 좋았지만,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초등학생이 뭐 그렇게 챙겨야할게 많았냐겠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은 이리저리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기도 참 바빴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을까, 다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입대했다. 꼬박 3년의 시간을 보냈고, 막간의 여행이 있은 후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다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넉넉한 공백기는 가질 수 없었다. 쉬더라도, 충분한 이유는 만들어놓아야했다.

 

회사 옆 건물에 행사가 열렸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슬쩍 둘러보다가, 익숙한 트럭을 발견했다. SNS와 방송에서만 보던 그 트럭, 바람커피로드 이담님이었다. 단숨에 내가 쓴 책과 명함을 들고 이담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처음뵙지만, 인자하게 웃으시며 커피 한 잔 내려주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도 마셨고, 르완다와 과테말라도 내려주셨다. 마신 커피들은 통돌이 로스팅에도 불구하고 맛이 깊었고 잔향이 오래 남았다.

 

이담님과 별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를 내리며 방랑하는 인생이 어떤지 묻고싶었지만 딱히 대답을 듣지 않아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내리는 커피는 어떤 커피인지 이야기를 나누기만해도, 나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커피는 분위기에 매우 취약한 음료다. 어디서 어떻게 마시는지에 따라 맛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퇴근이 있는 커피가 맛있는 이유는 '퇴근이 있기'때문이 아닐까. 줄곧 퇴근후에 커피를 마셨지만, 불확실한 미래가 발목을 잡고있어 그 맛있던 퇴근후의 커피도 씁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바람을 가르며 방방곡곡 누비며 마시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커피는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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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니 커피 한 잔 생각나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제법 따뜻한 커피가 어울리는 계절이 찾아왔다. 짧은 글 한 편이 커피 한 잔 권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면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3&aid=0003220716&sid1=001

 

 

커피여행자 이담

twitter @yidams / facebook baramcoffeeroad / instagram yidam

 

2014년, 공연 예술잡지 월간객석에 연재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공개된 두 개의 원고를 이곳을 통해 공유드립니다.

 

 

사직동 커피한잔

http://www.gaeksuk.com/atl/view.asp?a_id=738

 

해방촌 콩밭커피로스터

http://www.gaeksuk.com/atl/view.asp?a_id=824

오랜만에 결혼식에 동창들이 모였다.

 

토요일 낮 12시, 꿀같은 낮잠을 포기하고 달려온 의리의 친구들. 누구는 새벽까지, 누구는 당일 아침까지도 사무실에 있었다. 그리고 한 친구는 예정된 주말근무를 빼기 위해 휴가를 내고 철야작업을 했지만 비상이 터져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어렵게 모인만큼 힘든 한 주를 보냈음에도 다들 밝은 표정으로 안부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진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그래서 넌 무슨 일을 하는데? 라는 질문. 다들 웃으며 나도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대답만 한다.

 

그래도 커피는 안다. 스페셜티 커피의 장점이라면, 추적가능성 traceability일 것이다. 내가 마신 커피가 누구의 손에서 어떤 품종, 토양, 기후에서 어떻게 재배되고 가공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수입되어 로스팅되었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내렸는지 확인 가능하다. 주말의 의무(결혼식 참석)에서 퇴근하고 홀로 찾은 브루브로스에서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주했다. 네가 누군지 정체성이 분명하니, 적어도 나보다는 사정이 낫구나.

 

콜롬비아 스트롱을 시킨다. 부산의 카페 노갈레스에서는 콜롬비아 생두만을 수입한다. 콜롬비아 생두만을 수입하는 만큼 생두도 품질이 좋다는 브루브로스 바리스타의 평가와 설명이 이어진다. 50ml 남짓의 작은잔에 담겨온 커피의 향은 매우 짙다. 마치 내가 콜롬비아 커피야! 라고 말하는것 같다. 비교적 약한 배전도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맛을 선사한다. 달콤하고 새콤하고, 때로는 매콤한 맛도 느껴진다. 스파이시한 느낌도 물론이고. 잔향도 오래남는다.

 

'브루brew'라는 말이 있다.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에스프레소도 브루의 일종이라 볼수도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로 따져 들어가면, 에스프레소가 아닌 커피를 브루잉이라고 부르는편. 스페셜티 커피 시대를 맞아 클레버, 케맥스, 에어로프레스, 프렌치프레스, 사이폰 등 다양한 기구들이 브루잉툴로서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덕분에 다양한 툴로 브루잉을 하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브루브로스는 브루잉, 그 중에서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준다. 시간과 온도, 원두와 추출양 등의 레시피에 맞춰 물을 부어주는 푸어오버(Pour Over)와는 다르게 핸드드립은 좀 더 섬세한 컨트롤을 요한다. 시간도 오래걸릴뿐더러 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핸드드립은, 올드스쿨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절에만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커피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 이렇게 제대로 내려주는곳도.

 

생두의 탄생부터 핸드드립까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한 잔의 커피와 다시 마주한다. 나는 언제쯤 이처럼 분명해질수 있을지. 수많은 정체성들 사이에서도 오롯이 내스스로 서 있을수 있는지. 맛에 감탄하고 있으니, 바리스타께서 강배전으로 내린 스트롱 커피 한 잔을 더 권한다. 부드러운 밸뱃의 느낌이 입을 감싼다. 달콤하고 치명적이다.

 

당분간은 이곳을 찾아 커피 한 잔 앞의 위로를 받을수 있을것 같다.

 

 

 

브루브로스 커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8-30

02-325-3580

평일 0900-2300 / 주말 1000-2200

요즘들어 부쩍 강남에도 스페셜티 카페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좀처럼 근처에도 가질 않지만, 그럴싸한 카페가 있다길래 외근 중 망중한을 즐기러 한 카페에 들렀다. 자세한 묘사를 시작하면, 인스타그램으로 유명세를 탄 그 카페를 알아차리는 이들이 있을테니 생략하기로 한다. 빈티지한 인테리어와 한낮에도 사진을 찍으러 몰려드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러 온 것인지, 찍으러 온 것인지.


이쯤되면 혼란스러워진다. 카페는 과연 어떤 공간인가. 

나에게 카페는 '커피가 맛있어야'하는 공간이다. 카페의 주제가 커피가 아닌 곳들(북카페, 애견카페 등)을 제외하고 커피가 메인이 되는 곳이라면 당연히 커피가 맛있어야지 않을까. 어느 밥집에서든 설익은 밥을 내어준다면, 바싹 탄 음식이 나온다면 문제가 되는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낮의 커피를 즐기러 방문한 이곳의 맛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맛집과 먹방과 쿡방이 지배하는 시대에 카페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심오한 고민속에서도 카메라 소리는 찰칵 찰칵.


카페에 들어서면 싱글그룹 머신이 2대가 있다. 보통의 카페라면 2그룹(그룹헤드가 2개인 머신)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머신의 크기가 작으면, 추출 안정성이 좋지 못할 수 있다. 물론, 드문드문 커피를 내리는 카페라면 싱글그룹 머신으로도 충분히 좋은 커피를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끊임없이 커피 주문이 쏟아지는데, 두 대의 싱글그룹 머신이 훌륭한 디스플레이를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커피가 맛있으면 괜찮은거 아닐까. 원두가 훌륭하고 바리스타가 머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사실 머신의 크기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게 시킨 커피는 아무리 애를쓰고 마셔봐도 맛있지 않았다. 보통은 한 잔의 커피에 위로와 휴식을 기대하며 카페를 찾는다. 하지만 주문한 커피가 맛없으면 우울함이 찾아온다. 인테리어도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빈티지를 지향하는 의자는 앉는순간 삐걱 소리를 내며 기울었고, 불편함이 가시질 않아 옆에 있는 더 작은 의자에 몸을 옮겼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 공간을 찾는 것일까.


다시 가을답지 않은 더위가 가득한 강남의 대로변을 걷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회사로 들어가 직접 내린 커피로 다친 마음을 위로 받고싶은 심정이다. 


서울의 커피는 서울을 닮았다. 설탕-프림-인스턴트 커피가 믹스되어있는 믹스커피의 탄생이 그렇다. 어디서든 빨리 커피를 타야하고, 후루룩 들이켜야 하니 인스턴트 커피는 1976년 처음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시장을 지배했다. 언제나 피곤하고 우울하니 달디단 믹스커피에 담배라도 한까치 피어야 정신이 들지 않겠는가. 카페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 넓은 도시에 내 공간 하나 가지고 꾸밀 여력이 없으니,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카페에 대리 만족을 하는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5천원이면 그 공간은 내것이 되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하염없이 수다를 떨 수 있으니. 그럼에도 제법 맛있는 카페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2호점을 확장한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어쨌든 이 도시가 망하지 않은 이유들이 문득 생각난다.


곧 동부이촌동에 헬카페 2호점이 오픈한다.


애증의 도시 서울에서 맛 볼 수 있는 최고의 커피 한 잔을 기대해본다.


 



직장인에게는 두 잔의 커피가 있다.


아침(혹은 저녁), 하루의 근무를 혹은 남은 끝자락을 버티기 위해 마시는 커피

온전한 퇴근이 있는 저녁, 남은 하루를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마시는 커피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두 잔의 커피가 모두 의미있지만, 당연히 후자가 더 맛있지.

 

논현동 사무실로 출근한지 1년, 성의없게 쭉쭉뻗은 강남의 대로변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커피였다. 강남에서도 꽤 비싼 임대료를 자랑하는 대로변에 사무실이 있는데, 이런곳이라면 어떤 카페도 살아남기 힘들었을듯 싶다.


강남역에 릴리브가 생겼다는 소식은 가뭄에 단비였다. 이제 강남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것인가! 물론 퇴근후에 강남역을 가는 일은 최악이다. 압구정에서 신사까지 꽉 막힌 버스, 콩나물 시루같이 사람들이 가득찬 거리. 퇴근후에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보면, 이게 사는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맛있는 커피라면 가야하지 않겠는가. 하늘은 높고 미세먼지는 살찌는 가을의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릴리브에 도착한다.

 

 

 

플랫화이트를 시킨다. 점원은 묻는다. '아이스로 드릴까요?'

다시 무더워진 날씨덕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네'라고 대답한다. 아 실수했네. 

다른 음료에 비해 우유의 양이 비교적 적은 플랫화이트는, 되도록이면 따뜻하게 마시는게 좋다. 아무래도 많지않은 우유와 커피에 얼음까지 녹아버리면 커피맛은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일전에 인테리어 짱짱한 카페에 들러 플랫화이트를 아이스로 시켰다가 절반은 버렸던 기억이 난다. 어쩔수 없지. 후루룩 들이키면 되겠지. 


플랫화이트는 보통 150ml 남짓의 작은 잔에 나온다. 유행처럼 작은 유리잔에 담겨 나오기도 하는데,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아무래도 유리잔의 단가가 높지 않고, (조금)멋있어 보여서 그러는게 아닐까하고 추측해본다. 릴리브에서는 작고 귀여운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가 나온다. 받자마자 성급하게 한 모금 후르륵. 개업초기보다 배전도가 살짝 올라 고소함이 더 강해졌다. 강남역 멋쟁이 언니 오빠들 사이를 비집고 3층으로 올라간다.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높은 곳에서 바라도면 더 신기한데, 언덕배기 끝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은 끝임없이 쏟아지는 폭포같기도 하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얼음은 녹는다. 그럼 오늘도 실패인건가, 하며 후루룩 한모금을 마신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래도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빠르게 마실것을 권장한다. 얼음이 녹아서 맛있는 커피는 많지 않으니까. 


플랫화이트, 피콜로, 코르타도, 마끼아또. 이름도 복잡하다. 각각의 메뉴가 무얼 의미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대략의 정의는 있지만 쉽게 확답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심지어 매장마다 레시피도 조금씩 다르니까 말이다. 당신이 마신 한 잔의 커피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커피를 만든 바리스타 밖에 없다. 물론 추천하는 방법은 따뜻한 커피는 식기 전에, 아이스커피는 얼움이 녹기전에 후딱 마시는 것. 질문이 많으면 커피는 맛없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선 다시 여름이 돌아온듯 사람들의 땀냄새가 가득하고, 버스에 내려 멀리 바라본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다. 그래도 오늘은 퇴근후에 한 잔의 커피가 있으니 얼마나 평화로운가 하며 집으로 향한다.

 

 

 

릴리브 강남점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102길 21

평일 0800-2300 / 주말 1100-2300

 

 

 

 

뱀발.

북 콘서트를 합니다. 10월 2일이고, 와우북 페스티벌의 행사 일환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링크를 붙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onoffmix.com/event/76822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 오늘의 커피를 만드는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와 로스터가 들려주는 커피와 인생

 

포토그래퍼 유재철과 1년여간의 준비 끝에 커피 서적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정식 발행일은 5월 25일이지만, 온/오프라인 서점 모두 20일을 기점으로 책이 풀렸습니다. 

 

5월 14일 토요일에는 펠트커피에서 책에 등장하는 23명의 커피인들, 책을 만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푸드 콘텐츠 디렉터 김혜준님, 항공 바리스타팀 그룹장님이시자 이미 두 권의 커피 책을 발간하신 심재범님 그리고 출판 관계자분과 가족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할분들이 많지만, 사정의 여의치 않아 전부 초대를 못했습니다. 정식 출간을 기점으로 그동안 잠시 중단했던 블로그 활동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못 찾아갔던 카페들도 찾아가고, 새로운 공간들의 소식도 전하면서 열심히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개별적으로 연락도 드리고, 찾아뵙고 기회가 되면 조촐한 출간기념 식사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좋은 소식 전해야 할 분들을 일일이 언급하기엔 이 페이지가 너무나 좁습니다.

 

어려운 시간 같이 이겨내고 함께해준 어머니와 아버지, 책 홍보용 브로슈어, 명함을 제작해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준 누나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 덧붙입니다.

 

감사합니다.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커피를 인생의 직업으로 둔 23명의 사람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대한 소규모 다큐를 모아서 책을 엮었습니다. 제가 진행한 인터뷰 외에도, 사진작가 또한 23명과 또 다른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진을 찍었고 글을 쓴 시간만큼이나 오래 공을들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맛있는 한 잔의 커피를 위해서 10년 남짓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은 이들의 숨겨둔 이야기를 풀어내어, 많은이들에게 한 잔의 커피를 생각케 하는게 이 책이 가진 작은 목표입니다.

 

블로그를 통해 이 책과 함께하는 새로운 여정에 대해 소식 전하겠습니다.

 

 

구매 링크는 아래를 참조해주세요

 

✔ Yes24: http://www.yes24.com/24/goods/27730195?scode=032&OzSrank=1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
✔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4009915

슈퍼스타 Superstar

 

 

 

카펜터즈의 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곡은 사실 ‘델라니 앤 보니’라는, 기타리스트 에릭클랩튼도 연주를 했었던 밴드의 곡이다. 사실, 이 곡이 처음 나왔을 1969년에는 US싱글 차트 86위에 오른 것이 전부. 게다가 델라니 앤 보니는 유명해지기 전이었고, 이 곡은 B-side에 실렸으니 가만 두면 사라질 그런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날 사랑하겠다고 했던 그 말 기억 나지 않나요?” Don’t you remember you told me you loved me, baby? 라는 유명한 가사와 함께 이 곡이 히트를 친 것은 1971년, 카펜터즈가 리메이크를 하고 나서부터였다. 사실 이 버전은 배틀미들러가 “The Tonight Show Starring Johnny Carson” 에서 연주한 것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가사와 멜로디의 일부가 변한 이 곡은 카펜터즈의 것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 곡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위, 이지리스닝 차트에선 1위 까지 올랐고, 일본 차트에서는 3위, 캐나다 차트에선 8위에 올라 전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슈퍼스타 록 밴드 소닉 유스가 이 곡을 한참이나 키를 낮춰 리메이크 했던 것은 1994의 일이다. 소음에 가까운 음악을 만들어냈던 소닉유스의 맴버들은, 1991년에는 카렌 카펜터즈를 추모하는 곡을 앨범에 수록할 정도로 그들을 존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곡이 발표되었을때, 리처드 카펜터즈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의 스타일하고 많이 어긋난 연주기도 했을테니까. 공식적으론 “이 곡에 대해 내가 좋다 나쁘다 할 수 있지는 않다.”고만 코멘트를 남겼다.

 

눈 오는 출근길, 사연 많은 슈퍼스타를 들었다.
소닉유스는 소음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했지만, 이 ‘슈퍼스타’를 연주할때 만큼은 그들이 가진 서정성을 폭파시켰다고 느껴질만큼 의외의 녹음을 남겼다. 많은 밴드들이 카펜터즈의 영향을 받았을것이고, 소닉 유스 또한 그랬을 테다. 한 곡에 담긴 많은 사연들을 들춰보면 결국엔 록음악의 역사가 얽히고 설켜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장르와 세대를 뛰어넘는 이런 명곡이 탄생할 수 있었을테지.

 

링크는 소닉유스의 슈퍼스타를 남겨놓는다.
가사는 내 멋대로 해석.

 

 

슈퍼스타

 

아득한 오래전의 어느 날,
사랑에 빠졌어
두 번 째 공연 이었던 걸로 기억해
너의 기타, 기타소리는 청명하고 달콤했지
그런데 너는 지금 여기있지 않구나
들리는 것은 라디오 소리뿐

 

기억나니
날 사랑했다고,
다시 나에게 돌아오겠다고,
그말에 나 또한 너를 사랑한다고,

 

너와 함께할 그 순간들을 기다리는 일들은 마치
외로운 고독속에 정사와 같아
네가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너의 그 슬픈 기타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억나니

날 사랑했다고,
다시 나에게 돌아오겠다고,
그말에 나 또한 너를 사랑한다고,

 

 

 

2015년 7월 5일부터 7월 26일까지 약 3주간 다녀온 멕시코-쿠바 여행

사진 촬영은 전부 Canon-AE1, 필름은 종류별로.

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instagram @_cafebeirut

 

여행기와 올리려 했지만, 더 많은 이야기는 차차. 우선은 사진부터.

 

 

 

 

 

 

 

 

 

 

 

 

 

 

 

 

 

 

 

 

 

 

2015년 7월 5일부터 7월 26일까지 약 3주간 다녀온 멕시코-쿠바 여행

사진 촬영은 전부 Canon-AE1, 필름은 종류별로.

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instagram @_cafebei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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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퇴근 후의 음악감상 

 

엘튼존은 1987년, 성대결절로 성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라드 곡들로 유명하지만, 엘튼존은 사실 시원시원한 가성을 내지르는 로커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에게 수술 이후 가성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단 소식은 더할나위 없이 절망적이었을테다. 하지만 그는 곧 재기했고, 훨씬 굵고 단단한 목소리를 내새워 예전처럼 종횡무진 차트를 휩쓸고 다녔다. 말년에는 양성애자 어설프게 커밍아웃했던, 위장 결혼으로 여론을 무마하려 했던 과거를 딛고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1990년, 악보를 넘기다 손가락에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별것 아니라 생각했던 상처는 계속 덧나기 시작했고, 항생제를 먹어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의 엄지 손가락은 심각한 변형을 겪었고, 페라이어는 본의아니게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또한 1990년대 후반, 재기에 성공했고 2000년에 녹음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 15주나 머물렀다. 2004년에는 모든 공연을 취소할 정도로 손가락 부상이 다시 심해졌지만, 다시 재기에 성공한 그는 많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음반을 쏟아냈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로 별것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꾸준히 해내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기묘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두 아티스트의 삶이 닮아 있어 퇴근 후 음악 듣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엘튼존의 음악은 <Honky Chateau>앨범에 수록된 Rocket Man을 들었고, 머레이 페라이어는 최근에 발매한 브람스 헨델 변주곡이 들어간 소품집을 들었다.

 

 

 

 

 

 

 

 

 

 

생상스&거쉰 피아노 협주곡 -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1993년 실황녹음)

Saint-Saens & Gershwin Piano Concerto, Sviatislav Richter, Christoph Eschenbach, Radio-Sinfonieorchestra Stuttgart des SWR (Concert 1993)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에는 아주 긴 트럼펫 솔로가 나온다. 찬 바람에 근무하던 부대 활주로를 거닐면서 이 곡을 들었는데, 갑자기 가을 날씨가 찾아오니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원래 내가 듣던 곡은 피아니스트 스테파노 볼라니와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의 2011년 음반이다. 계속 같은 연주만 듣는것이 지겨워 새로운 연주를 찾아보는데, 생각보다 음반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녹음은 젊은 연주자들의 것. 제대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던 거쉰이 이 곡을 만든 때가 1924년이니, 그 후에 수많은 협주곡들이 쏟아졌고 많은 녹음이 있음에도 그의 작곡이 외면당하는건 연주자들의 편견이 작용했을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놀랍게도 내가 찾아낸 음반이 있었는데,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가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슈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1993년에 녹음한 독일 레이블의 연주다. 더불어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5번도 함께 녹음 되었는데, 처음에는 연주자를 잘못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흐테르와 거쉰의 조합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보니, 이 실황연주는 아주 조악한 음질의 해적반으로 녹음되어 리흐테르를 추종하는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 오고가던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약간의 손질을 거쳐 좋은 음질로 복각을 했다니, 일전에 쉽게 구할 수 없는 연주들을 정갈하게 손질해 내놓은 핸슬러 레이블의 연주들이 생각났다. 그러고나선 바로구입, 아무런 일정을 잡아놓지 않은 일요일에 드디어 이 음반을 시디플레이어에 넣을 수 있었다.

 

 

 

몇 장 안되는 속지의 소개글이 좋아 불법으로(?) 번역을하여 옮겨보고자 한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에밀 길레스, 클라우디오 아라우,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아루트르 루빈스타인 - 20세기의 손꼽히는 명연주자들- 공식적으로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거나 심지어 약간의 녹음이라도 남겨두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에 견주어 볼 때,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가 거쉰을 연주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랄만한 일일 것이다. 슈베칭엔(Schwetzingen)에서 연주회가 있던 날,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곡해 저녁 공연의 포디엄을 책임졌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는 리흐테르의 아내와 전화통화에 대한 기억을 또렷이 하고 있다. 리흐테르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을 슈베칭엔(Schwetzingen)에서 연주하고 싶다며, 자신은 언제나 거쉰의 작품을 높게 평가해왔다는 말을 전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고국인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좀처럼 거쉰의 곡을 연주할 기회가 없었다며.

 

뒤에 이어지는 내용까지 그대로 옮기자면 조금 길어질것 같아 간단히 요약하자면, 리흐테르의 간단한 프로필과 철의 장막이 무너진 1960년대, 45살이 넘어서야 서방세계로 자유롭게 넘나들수 있었던 그가 미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추측컨데 그에게 자유롭게 리사이틀을 열며 미국을 여행할수 있었던 일은 엄청난 영감을 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나 거쉰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다는 마음은 소비에트 시절에 품었다가, 자유로이 여행을 하면서 더욱 커졌을테고 말이다. 그의 나이가 여든이 넘은 1993년, 리흐테르는 드디어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을 무대위에 올릴수 있게 된다. 좀처럼 무게감 있는 속도로 진행되지만, 연주는 그 어떤 피아니스트보다 깊은 타건을 통한 울림을 들려주고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리흐테르-거쉰 사이에 있는 장벽을 허물어낸다. 일전에 리흐테르 자서전을 읽다가 거쉰에 대한 언급이 있던 것이 생각나 그의 글을 찾아보았는데, 이 곡을 천천히 연주하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었다.

 

역시나 불법으로(?) 그의 자서전에서 약간의 글을 옮기자면 내용은 이렇다.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생상스 연주와 거쉰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나서의 감상인데, 거쉰이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부분만 옮겨본다. 아마 이 감상을 적은 후애 아내를 통해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작곡가 자신이 피아노를 맡고 있으니 이 연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편곡(누가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템포기 지독하게 빠르다. 명인의 기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 요란스러운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작곡가 자신의 연주를 듣고 무슨말을 하겠는가"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493p.,브뤼노 몽생종, 이세욱옮김, 정원] 리흐테르의 수첩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 번역자료는 1995년에 가서야 끊기는데 이 메모는 그 끝에서 두페이지를 남겨두고 기록되었다. 연주를 그만두는 순간까지 그는 거쉰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곡가들과 다양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들었으며-심지어 서울에서 정명훈의 지휘를 감상하기도 했다!- 메모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80세가 넘은 소비에트연방의 한 피아니스트가 거쉰을 연주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쉽게 그 모습이 그려지질 않았다. 아직도 내 손에 들린 이 음반커버에 리흐테르와 거쉰의 이름은 빙탄지간과 같이 섞이지 않고있다. 그럼에도 연주를 듣다보면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을 이렇게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녹음된 생상스 또한 리흐테르의 색이 그대로 묻어있는데, 왠지 보물을 발견한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볼륨을 한껏 높여 음악을 들었다. 음악도 계절감이 있는지라 찬바람이 불때면 유독 찾게되는 음악들이 있는데 슈베르트와 함께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은 나에게 따뜻한 스웨터와 같은 음악이다. 조금씩 차가워지는 바람에 마음이 헛헛하지만, 얼마전 손에 넣었던 잉그리드헤블러의 슈베르트 연주도 있고 리흐테르가 들려주는 거쉰도 있기에 든든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반은 2010년 헨슬러(hanssler) 레이블에서 제작되었고, 국내에는 2010년 8월에 수입되었다. KBS 명연주 명음반에도 소개된적 있는데, 방송은 듣지 않았지만 정만섭씨가 뭐라고 소개했을지 왠지 알것만 같다. 음반의 가격은 온라인에서 18,500원 정도. 리흐테르의 팬이라면, 거쉰을 좋아한다면 망설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플라츠커피, 케냐 카루만디(Kenya Karumandi AA), 콜롬비아 산파스쿠알(Colombia San Pascual)

 

지난번, 2주의 상미기간을 지나고도 훌륭한 맛을 보여주었던 플라츠 커피에서 새로운 원두를 보내왔습니다. 이번에 테이스팅 할 커피는 케냐 카루만디(Kenya Karumandi AA), 콜롬비아 산파스쿠알(Colombia San Pascual)입니다. 각각 완전 수세식(Fully Washed)와 내추럴(Natural)가공방식을 택했는데요, 가공방식이 완전 다른 두 커피가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우선 케냐 카루만디 AA입니다. 완전 수세식 방식을 택한 이 커피는 1700-1900m의 고고도에서 자란 고품질 원두입니다. 향부터 남다른 원두의 패키지에는 농장에 대한 간략한 개요와 테이스팅 노트가 나와있습니다. 심플한 디자인은 좋지만 로스팅 날짜가 따로 나와있지 않다는 점이 아쉽군요.

 

배전도는 대략 이렇습니다. 지난번 과테말라 라 라구나를 마시면서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플라츠 커피는 로스팅을 참 안정적으로 가져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 원두에 비해 신선하고 원두 자체도 매력있기에 추출후 테이스팅에 조금 더 기대를 걸어봅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나오지 않은 내용들은 한 장의 종이에 잘 담았습니다. 생두 정보, 테이스팅 노트와 간단한 추출가이드까지. 깔끔한 디자인에 이해가 쉬운 내용들이 인상적입니다.  

 

추출은 드립굵기로/25g/94도/220ml/1분 30초의 레시피를 따랐습니다. 추출가이드를 그대로 따라서 내려봤는데요, 첫 모금은 레몬이나 라임 껍질이 느껴지면서 달콤함이 올라왔습니다. 전반적으로 맛이 살짝 뻣뻣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끝맛이 혀끝을 아리게 하기도 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추출 가이드에서 벗어나 새로운 레시피로 다시 브루잉을 해봅니다. 드립굵기로/30g/93도/450ml/2분 30초의 레시피를 따랐습니다. 여전히 레몬과 라임의 상큼한 느낌과 달콤함은 매력적이었지만, 뒤로갈수록 거칠어지고 집중도가 떨어지는 맛은 여전했습니다.

 

에어로 프레스는 드립굵기에 17g/93도/220ml/1분 40초의 추출을 해봅니다. 물과 커피의 접촉시간을 줄이되, 압력을 준다는 계산으로 커피를 내렸고, 역시나 맛의 집중도가 올라갑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나왔던 맛들이 좀더 안정적으로 느껴지는군요.    

 

 

에스프로프레스의 레시피는  17g/93도/230ml/4분의 레시피를 따릅니다. 커피를 천천히 녹여내는 느낌으로 시간을 두어 내렸고, 맛 또한 기본적으로 가진 매력적 뿜어냅니다. 하지만 여전히 에프터 테이스트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점, 끝으로 갈수록 매력적인 맛들이 흩어지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습니다. 여러차레 도구와 레시피를 달리하여 추출한 결과 케냐의 경우 원두가 조금 예민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드립의 경우 레시피를 따라 내려도 컨트롤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뒷맛이 무너지는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물론, 생두선택과 로스팅은 뛰어나단 생각이 듭니다. 다만, 끝가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맛을 유지했다면 정말 훌륭한 커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쉬움이 조금 남는 케냐 테이스팅을 뒤로하고 콜롬비아 원두를 꺼내봅니다. 요즘들어 한동안 워시드의 유행으로 나오지 않았던 내추럴 커피들이 가공방식을 개선하여 조금씩 인기를 끌고있는듯 합니다. 내추럴 특유의 맛과 향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내추럴 커피들이 다시 관심을 받는 추세가 반갑기만 합니다.

 

봉투를 열자마자 따라오는 강한 딸기향은 코를 즐겁게 합니다. '이게 정말 콜롬비아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테이스팅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군요.

 

동봉된 안내서의 추출 레시피는 모두 동일하네요.  

 

콜롬비아의 추출도 드립굵기로/25g/94도/220ml/1분 30초의 레시피를 따랐습니다. 콜롬비아 원두는 첫모금부터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놀랍도록 집중력있는 딸기와 초콜렛의 맛은 이 생두가 가진 힘이 엄청다는 생각을 들게합니다. 역시나 끝에가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만 케냐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밸런스를 유지합니다. 좋은 생두를 선택하고, 매력을 잘 뽑아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얼마 남지 않은 원두지만, 테이스팅이 끝난 후에도 계속 손이가는 쪽은 콜롬비아였습니다.

 

 

에어로 프레스도 드립굵기에 17g/93도/220ml/1분 40초의 동일한 레시피를 따라봅니다. 여전히 식으면서 아쉬운 느낌은 있지만, 그 단점을 덮을만큼 매력적인 향미가 입안을 즐겁게 합니다. 생두의 힘이 정말 뛰어나고, 로스팅또한 준수하단 생각을 다시하게됩니다.

 

에스프로프레스의 레시피는  17g/93도/230ml/4분의 레시피를 따릅니다. 부드러운 바디감과 마우스필이 초콜렛을 둘러싼 딸기맛을 좀 더 매력적으로 끌어올립니다. 아쉬운점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세 잔의 추출 모두 인상깊었습니다.

 

 

여전히 플라츠 커피는 매력적인 로스팅을 합니다. 물론, 훌륭한 생두를 선택하는 능력도 대단하고요. 하지만 상미기간이 지났음에도 훌륭하고 안정적인 향미를 뽐냈던 과테말라 라 라구나와는 달리 이번에는 식거나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느낌은 좀 아쉬웠습니다. 로스팅의 문제일지, 숙성기간의 문제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쉬움이 있는것은 사실이군요. 추출 변수에 따라 예민하게 변하는 커피들에 저는 여전히 100점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플라츠 커피는 늘 평균이상의 맛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여전히 다음 로스팅과 생두 선택이 궁금해지는군요.  

코알라 커피공장, 콜롬비아 로스 쿠로스(Colombua Los Curos, COE#25)

제주도에서 날아온 커피 콜롬비아입니다. 컵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 25위를 차지한 로스 쿠로스 농장의 커피입니다. 보통 순위가 높은 CoE커피가 좋다고 생각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순위가 가장 높은 몇 개의 커피를 뺀 나머지는 크게 품질 차이가 나지 않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래서 종종 낮은 순위의 CoE를 낙찰 받아 잘 활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죠. 코알라 커피공장 어떤 경로를 통해 낙찰 받았는지 몰라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이 또한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커피는 기름기가 살짝 베어나올 정도로 배전도가 높습니다. 보통의 스페셜티 로스터들이 약배전을 추구하는 것과 다른 모습입니다. 종종 스페셜티를 접하는 사람들이 좋은 커피는 약하게 볶아야 맞는게 아니냐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편견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떤 커피도 성향만 잘 파악하고 좋은 포인트를 잡는다면 배전도와 상관없이 매력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죠. 코알라 커피공장의 선택의 결과는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적절한 추출가이들을 찾아보기 위해 코알라 커피공장의 블로그에 들어갔으나, 커피에 대한 설명이나 레시피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대신 코알라 커피공장을 홍보하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들이 자신들의 커피를 위한 레시피를 제공하는것과 다른 모습이네요. 아쉽지만 전도를 생각해 대강의 시피를 잡아봅니다. 드립굵기로 그라인딩한 원두를 30g/91도/350ml/3분 20초의 추출을 진행합니다. 첫 모금은 강배전 커피 답지 않게 치고 올라오는 산미와 강배전의 강한 불맛이 느껴집니다. 살짝 탄 느낌이 들기도 하나 이내 이런 느낌은 줄어들고 집중력있는 신맛이 올라옵니다. 복숭아나 살구, 오렌지에서 느껴지는 과일 산미와 고소한 느낌이 밸런스를 이룹니다. 단맛도 은은하게 느껴지면서 풍부한 마우스 필을 전해줍니다.

 

 

에어로프레스 추출은 드립굵기의 그라인딩 17g/92도/230ml/2분의 추출을 진행합니다. 드립추출보다 산미는 죽은 느낌이나 단맛이 더 강해지고 은은한 오렌지 필의 신맛도 느껴집니다. 전반적으로 강한 배전도로 인한 보디감이 입안을 감쌉니다. 식으면서는 감칠맛을 더해주고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테이스팅 노트를 보여주는 코알라커피공장의 콜롬비아입니다.

 

 

에스프로프레스 추출은 17g/91도/250ml/3분 30초의 추출을 진행합니다. 끝맛이 살짝 거칠고 불맛이 느껴진다는 점이 살짝 아쉽긴 합니다. 이 느낌은 드립 추출에서도 느껴졌는데요, 거부감을 줄 정도로 강하지는 않으니 신경쓰지는 않아도 될것같단 생각이 듭니다. 전반적인 느낌은 드립과 에어로프레스 테이스팅 노트를 따라갑니다. 안정감있는 밸런스와 감칠맛이 매력적인 커피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단종의 커피 하나만으로 로스터를 평가할수는 없습니다. 특히 지난번 모모스의 볼리비아 같은 경우 생두 가격이 상당하다는 점,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급격하게 원두 맛이 변질된다는 점을 보면 볶은지 5일 지난 시점에서의 집중적인 추출이 정확한 평가기준이 될 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밸런스와 커피의 특징을 잘 잡아낸 로스팅은 로스터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과연 이 커피도 모모스의 커피처럼 시간이 지나면 급격한 맛의 변화를 보여줄지, 일정기간동안 개성을 유지하며 좋은 로스팅의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모모스, 볼리비아 라 린다(Bolivia La Linda)

 

모모스커피가 새로 들여온 생두 볼리비아 라 린다입니다(Bolivia La Linda). 동봉된 브로슈어에는 지난해 남미커피의 반응이 좋았고, 올해는 작황이 더 좋았다고 적혀있습니다. 패키지의 디자인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에그트론 넘버도 적혀있다는걸 제외하면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띕니다. 설명은 콤팩트해졌고, 특히 원두의 향미를 설명하는듯한 색깔선정이 인상적이네요. 햅쌀로 만든 밥을 기다리는 느낌으로 사진촬영부터 진행합니다.

 

 

눈에 띄는건 추출에 대한 설명 더 늘리고, 패키지 뒤쪽으로 옮겼다는 점입니다. 패키지의 앞부분에선 원두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색깔있는 배너를 통해 커피의 맛을 그릴수 있게 했고, 뒷 부분에는 간략한 레시피를 보기좋게 정리한거죠. 지난번 패키지에는 이 정보를 패키지의 앞부분에 다 담았었죠. 미묘하지만 소비자를 배려한 세심한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원두의 로스팅 상태는 사진과 같습니다. 플로럴한 향미가 느껴져서, 추출이 더욱 기대됩니다. 

 

하리오 V60추출은 패키지에 적힌 레시피를 따라 진행해봅니다. 드립굵기로 그라인딩한 원두를 18g/90도/250ml/2분 30초의 추출을 진행합니다. 첫 모금부터 향미가 좋습니다. 슈가, 라임, 그레이프가 감칠맛나는 산미와 함께 느껴집니다. 가벼운 바디가 잘 어울리는군요. 은은한 과일맛이 나는 에프터까지, 좋은 인생을 심어줍니다. 모모스가 이번 볼리비아의 작황이 좋다고 얘길했는데, 생두의 강력한 힘이 느껴집니다.

 

드립굵기의 그라인딩, 17g/91도/230ml/1분 30초의 추출을 따른 에어로프레스 추출은 단맛을 더 도드라지게 만듭니다. 플로랄한 향기, 살구와 포도의 맛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목넘김 후엔 열대과일의 단맛도 느껴지고요. 바디감은 너무 무겁지 않아, 커피의 향미를 더욱 살려줍니다. 식으면서 살짝 밸런스가 흔들리는 느낌이 있지만 크게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이어서 진행한 에스프로프레스 추출또한 권장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봅니다. 프렌치프레스 굵기에 18g/90도/240ml/3분 30초의 추출을 진행합니다. 첫모금은 이전 추출과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산미가 치고 올라오면서 살짝 벨런스가 치우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단맛은 여전하고, 식으면서는 안정감을 찾기 시작합니다. 테이스팅 노트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모모스의 볼리비아 커피는 다이렉트 트레이드의 장점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직접 현지에가서 작황을 살펴보고, 좋은 커피를 골라 올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볼리비아 커피가 다양한 추출에도, 커피가 식어감에도 또렷한 테이스팅 노트를 보여주었다는건 생두의 강력한 힘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적절한 커피의 특징을 잘 살리는 로스팅도 좋았고요. 그간 모모스의 커피들의 아쉬운 모습을 잊게하는 좋은 커피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패키지의 변화부터 인상적인 생두 선택과 로스팅까지 모두 좋은 점수를 주고싶습니다. 꾸준히 모모스의 커피를 맛보고 있는 입장에서, 다음 커피가 더욱 기대되는군요.

 

 

알비에이치 커피 (RBH Coffee), 레이지 라이언 블랜드(Lazy Lion)

  

부산의 또 다른 스페셜티 로스터 RBH의 시즈널 블랜드 레이지 라이언(Lazy Lion)입니다. 블랜드 이름 그대로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을 즐길수 있도록 하는게 블랜드의 목표라고 하는데요, 콜롬비아 네셔널 위너와 니카라과의 조합을 했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살짝 걱정이 되는건, 콜롬비아와 니카라과의 생두 크기 차이가 확연한 점입니다. 함께 동봉된 브로슈어에는 후블랜딩 여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만약 선블랜드 로스팅이라면 두 생두를 어떻게 균일하게 익혔는지가 이 블랜드의 포인트가 될 것같단 생각이 듭니다. 

 

보시다시피 원두 크기부터 차이가 납니다. 니카라과 커피가 Maracaturra종으로, 큰 원두입니다. 원두 정보를 확인해보니 콜림비아는 워시드, 니카라과는 네추럴입니다. 성격이 크게 다른 이 두 생두의 조합이 어떤 결과를 냈을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인 추출은 브로슈어의 가이드라인을 참조합니다. 드립굵기에 20g/90도/230ml/3분의 추출을 진행합니다. 첫 모금부터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드는 레이지 라이언 블랜드는 로즈티와 캐모마일의 향미를 전하다가 떫은 맛을 전해줍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나와있는 브라운 슈가나 자스민의 느낌이 약하게 느껴지지만 전반적으로 떫고 아린맛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생각보다 맛이 잡히질 않아 클레버 추출도 진행해봅니다. 레시피를 따라 정확하게 20g/90도/230ml/3분의 추출을 진행했으나 여전히 결과는 비슷합니다. 온도를 조금 높여 20g/94도/330ml/3분의 추출을 진행했을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시간차를 두고 두 번 더 추출했으나 역시 결과는 비슷합니다.

 

에어로프레스 추출 결과물은 조금 낫습니다. 드립굵기에 17g/90도/220ml/1분 30초의 추출을 진행했을때는 바교적 맛이 깔끔해졌습니다. 하지맛 맛보다는 로즈티나 케모마일티같이 향미가 도드라졌습니다. 살짝 떫은 느낌, 식으면서 무너지는 벨런스는 여전했습니다. 에스프로프레스 추출은 3번의 클레버 추출을 했음에도 맛이 나아지질 않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원두를 받은 분들에게 알아본 결과, 에스프레소 추출 결과물은 좋았다고 합니다. 목적성이 뚜렷한 블렌드라면 추출 방식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드립보다는 물과의 접촉시간이 짧은 에어로프레스 추출이 조금 나았다는 점을 유추해보면 레이지라이언 블렌드는 에스프레소용 추출로 특화된 블랜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블랜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출 결과물의 향미가 급격하게 떨어졌다는걸 보아 블랜드에도 디팩트가 있단 생각이 듭니다. 이게 생두의 보관상태나 결점두의 문제일지, 로스팅의 문제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은 배치에 따라 작용된 여러 변수들이 이 한통의 블랜드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을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다시 좋은 컨디션의 RBH의 커피를 마셔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리사르 커피 로스터즈, 엘살바도르 라 팔마(El Salvador Finca La Palma)

리사르 커피 패키지에는 커피의 품종 이외에 별 다른 노트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로스터를 대표하는 늑대 라벨과 홈페이지 주소가 전부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리사르를 소개하려는 설명이 장황하게 적혀저 있더군요. 엘살바도르를 소개하는 판매 페이지에도 이 지역의 분쟁과 아픔을 소개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커피 봉투를 열기전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리사르 로스터입니다.

 

리사르 로스터에서 맛볼 커피는 엘 살바도르 라 팔마입니다. 라 팔마는 마이크로랏 커피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농장입니다. 미국의 Verve커피에서도 이 농장의 커피를 수입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생두가 가진 기본적인 능력이 탁월하고, 가격적인 메리트도 좋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은 생두이기도 하죠. 리사르 로스터에서는 이 커피를 어떻게 볶았는지 궁금합니다. 커피의 대락적인 외관을 이렇습니다.

 

별다른 추출법 가이드가 없어 기본적인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V60을 이용한 드립을 해봅니다. 추출은 드립굵기로/30g/93도/450ml/3분의 레시피를 따라봅니다. 날카로운 신맛과 견과류의 느낌이 은은하게 전달되는 부드러운 맛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룹니다. 서서히 식은 커피는 리치 등의 붉은 열대과일의 산미를 연상케 하고요. 전반적으로 발랄한 느낌이 매력적이면서도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출을 하면서도 커피가 참 잘 녹는다는 생각을 했을정도로 로스팅이 잘됐다는 생각도 했고요.

 

에어로 프레스 또한 기본 레시피로 추출을 진행합니다. 드립굵기에 17g/93도/230ml/2분 23초의 추출입니다. 첫 모금을 마셨을땐, 견과류의 은은한 고소함이 입안을 감쌌습니다. 이어 붉은과일의 톡튀는 상큼한 맛이 감돌더군요. 전반적으로 리치와 플럼의 맛이 강하게 느껴젔습니다. 약한 바디와 한뜻한 느낌이 안정적인 밸런스를 이뤘습니다. 커피가 식으면서 질감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단맛과 고소한 맛이 부드럽게 전달되었습니다. 좋은 생두를 잘 볶았단 생각이 드는군요.

 

에스프로프레스 추출은 17g/93도/200ml/4분의 레시피를 이용했습니다. 첫 모금은 견과의 느낌과 카카오의 느낌이 강렬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끝맛이 살짝 거칠어 아쉽긴하지만 전반적으론 흠잡을데 없이 맛있습니다. 리치와 과일맛, 카카오, 캬라멜등의 복합적인 풍미도 느껴집니다. 식어도 이 맛들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밸런스를 유지합니다.

 

리사르커피의 엘살바도르는 근래 마신 커피들 중에서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피의 개성이 잘 드러났을뿐더러 어떤 추출에도 장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커피에서 선사하는 복합적인 맛도 서로 연관성이 있는 맛들이 조화를 이루어 밸런스 측면에서도 단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리사르 커피를 접하면서 아쉬운 점이있다면 커피에대한 접근성 입니다. 단순한 패키지도 좋고, 장문의 설명을 적은 홈페이지도 좋지만 좋은 커피를 쉽게 접근해서 마실수 있게 하는것도 스페셜티 로스터가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찾으려고 리사르 홈페이지의 글들을 읽었습니다만 대부분의 글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것이 사실이고, 정작 필요한 정보들이 부족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령 엘살바도르 구매 페이지의 경우 주문 단위부터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파운드 단위(lb)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쉽게 오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커피 농장이 위치한 라 팔마 지역에 대한 분쟁에 대한 이야기는 잘 다듬어지지 않아서 저에게는 그 느낌이 잘 와닿지 않았고요.

 

커피에 대해 지적할 사항이 없으니 괜히 꼬투리를 잡는 심정으로 홈페이지의 단점을 지적하는게 아니냐라는 생각을 하실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많이 성장했고,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한건 사실이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이질감을 느낍니다. 좋은 커피를 볶아놓고도 사람들과 소통에 실패한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좋은 커피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눌수 있으려면 그만큼 접근과 소통의 통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저에게 배달되는 수많은 커피들이 다른 소비자에게 동등하게 전달될 것을 가정하여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딴지를 거는 심보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 첨언을 해보았네요. 좋은 커피에 입이 호강하니 많은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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