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렇게 아플수 있을까 할 정도로 아팠었다. 출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링거를 맞기까지 했다. 몇번의 근무는 벌벌벌 떨다만 나왔다. 선배들은 걱정반 근심반으로 나를 휴게실로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리 아파도 티를 내면 안된다, 아픈건 결국 자기 관리를 못했다는거니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일주일을 보냈다. 휴일에도 힘들긴 했다. 편도선이 부어있다가 곪아버려서 목을 움직이기만해도 아팠다. 내가 왠만큼 아파선 밥을 거르거나 덜 먹지는 않는데, 이번엔 정말이지 먹을 힘이 없었다. 밥을 넘길때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힘들었다. 차라리 안먹고 말지. 정말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몇 숟가락 먹었다. 오늘 저녁도, 약을 먹기 위해 먹었다. 빨리 목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프면 서럽다. 동기들이 챙겨준 덕분에 근무를 잘 버텨낼 수 있었지만, 서 있기도 힘든데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건 서러웠다. 하루만 푹 쉬면 좋을텐데. 약먹고, 조용한 곳에서 딱 하루만. 그러질 못하고 병원에 가고 링거만 맞다가 출근하곤 했다.

위로가 되는건 역시나 어머니다. 집에 도차하자마자 밥을 차려주시고 따뜻한 이불도 깔아주시고 핫팩도 데워주셨다. 휴일 첫날,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씻고 눕자마자 다음날까지 근래에 잤던 어떤 잠 보다 포근한 잠을 잤다. 다음날엔 어머니와 병원에 갔다. 혼자 가겠다는걸 굳이 어머니도 가시겠다고 한거다. 약을 먹고 처방을 받는 동안 어머니랑 얘길 나눴다. 그 순간은 그 어떤 약 보다도 훨씬 힘이 됐다. 울컥울컥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하고 속으로 몇번이나 말했다.

또 위로가 되는건 사람들. 아파서 뒹굴뒹굴, 시간이 어찌어찌 가는지도 모르고 누워있다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열어본 휴대폰에 남겨진 메시지들. 어떻게 살고 있니, 건강하게 잘 지내니, 이번에 서울오면 꼭 보자, 하는 메시지들. 잊지않고 날 찾아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덕분에 힘을 많이 냈다. 몸이 나아지면, 휴일이 찾아오면 꼭 만나야지. 만나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꼭 나눠야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들.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에 힘을냅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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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09시, 그녀는 나의 머나먼 비행을 위해 짐을 싸죠. 그리고 나는 저 멀리 나는 연 보다도 더 높게, 비행을 할거랍니다.

엘튼존의 로켓맨은 비장한 목소리의, 우주로 떠나는 로켓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생각보다 오래걸릴 것이라고, 과학 따위는 알지 못한다고, 이건 그냥 나의 일이라고. 내가 다시 지구위에 발을 내밀었을땐, 당신들이 아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로켓맨은 이야기한다.
이 곡의 탄생에는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david bowie의space oddity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기도 하고 berni taupin이 하늘에 별을 보면서 받은 영감에서 나온 곡이라고도 한다. 우주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딧는 로켓맨의 복잡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한 사람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하는거라면, 나는 전자의 경우가 더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데이빗 보위의 노래에서도 로켓맨의 모습은 겹친다. 지구에서는 당신이 우주에서 무엇을 입는지, 무엇을 먹는지 궁금해 할 것이랍니다. 잘하고 있어요, 아주 성공적인 비행입니다. 지상 관제소는 로켓맨에게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고독을 이겨내야 하는건, 멀리서 지구의 모습을 지켜보며 온갖 그리움을 극복해야 하는건 우주비행사 홀로의 몫이다. 평생이고 내가 지구에서 떨어져 이렇게 홀로 떠다니고 있을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새벽 근무가 끝나고 혼자 벤치에 나와 담배를 피며 이 노래를 들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그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렇게 커피 한 잔을 하고 있자니 마치 내가 로켓맨이 된 기분이었다. 우주에 있지 않으면서도 로켓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로켓맨은 나 뿐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로 떠나는 일 처럼, 은하에 떠 있는 먼지 따위를 연구하는 일 처럼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거라곤 상상도 못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따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 일을 일주일에 5일씩 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가사처럼, 사람들은 종종 그 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주에 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혹은 홀로 멀리 떨어져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한건 그들이 어떤 옷을 입느냐 정도다. 로켓맨 얼마나 고독할지, 그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지 못한다.

한동안 로켓맨만 들었었다. 열번도 넘게 로켓맨만 듣다가 잠에 들어버린 날도 있었다. 엘튼존의 목소리가 몸서리치게 좋았던 것도있었고 그의 피아노 연주가 피로를 씼겨내줄만큼 청량해였을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위로가 됐던건 로켓맨의 마음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을거라며, 외로움을 삼키는 로켓맨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로켓맨은 1972년에 탄생했다. 그 해, 영국 차트에서는 2위, 미국 차트에서는 6위를 차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콘서트장에 가면 따라부르는, 엘튼존의 히트곡 중 하나다. 로켓이 날아가는 소리같은 몽환적인 기타 소리가 매력적인, 로켓맨의 이야기가 담긴 곡이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당연히 로켓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된 일상의 끝에, 홀로 남은 기분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노래속의 로켓맨이 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엘튼존은 청량한 목소리로 로켓멘의 마음을 절절하게 전해줬다.
덕분에 이 곡은 스테디 셀러가 됐다. kate bush, david fonseca, my morning jacket, jason mraz등 수 많은 뮤지션들이 이 노래를 커버했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익숙한 멜로디처럼 들린다면, 아마도 이 때문일것이다.

그래도 이 상황을 이해해주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다는 것. 로켓맨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겠지, 생각하며 오늘도 다시 한 번 그의 음악을 플레이한다.

첨부하여 로켓맨과 데이빗 보위 스페이스 오디티 가사도.

Elton John - Rocket Man

She packed my bags last night pre-flight
Zero hour nine a.m.
And I'm gonna be high as a kite by then
I miss the earth so much I miss my wife
It's lonely out in space
On such a timeless flight

And I think it's gonna be a long long time
Till touch down brings me round again to find
I'm not the man they think I am at home
Oh no no no I'm a rocket man
Rocket man burning out his fuse up here alone


Mars ain't the kind of place to raise your kids
In fact it's cold as hell
And there's no one there to raise them if you did
And all this science I don't understand
It's just my job five days a week
A rocket man, a rocket man


And I think it's gonna be a long long time...



David Bowie - Space Oddity




Ground control to major Tom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Ten) Ground control (Nine) to major Tom (Eight)
(Seven, six) Commencing countdown (Five), engines on (Four)
(Three, two) Check ignition (One) and may gods (Blastoff) love be with you

This i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ve really made the grade
And the papers want to know whose shirts you wear
Now it's time to leave the capsule if you dare
This is major Tom to ground control, I'm stepping through the door
And I'm floating in a most peculiar way
And the stars look very different today
Here am I sitting in a tin can far above the world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Though I'm past one hundred thousand miles, I'm feeling very still
And I think my spaceship knows which way to go
Tell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she know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r circuits dead, there's something wrong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re am I sitting in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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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림. 마티즈의 바이올리니스트. 친구는 나에게 이 그림을 선물로 줬다. 여러장 중에 한 장이었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걸. 그림이나 시집 혹은 책을 선물 했을때 그걸 진심으로 기뻐하며 받고 또진심으로 읽어주는 친구는 드물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말로 손에 꼽는다.

어린 마음에(혹은 어른이 돼섣) '시집을 선물하면 좋겠다'고 했다가 막상 선물했을때 낭패를 본 경험이 많다.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시집을 가지고 어쩔줄 몰라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곤, 내가 선물한 시집도 저런 처지겠거니 생각했었다. 종종 너무 좋다는 이유만으로 범문사 문고판 책들을 선물로 대신한 적이 있었으나 역시 이것도 낭패. 같은 가격이면 수면 바지나 목도리가 더 좋은 선물이라는 걸 나는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는 아직도 그림과 시집, 책 그리고 음반을 선물하는 이들이 몇 있다. 나도 역시 이들에게 답례로 진지하게 고민한 소정의 선물을 주곤 한다. 같이 읽었을때 나눌 수 있는 묘한 희열감, 함께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는 뭉클함, 어느날 문득 마주친 그림에 반가운 사람이 생각나는 것.

 

2. 지지난 밤에는 혼자 부암동 언덕길에 올랐다.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오늘의 커피를 테이크아웃했다. 3천원. 멀리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은 몇년이 지나도 평화로운 마음을 선물한다. 문득 말러 교향곡이 생각나 한시간이 넘도록 음악을 듣다가 집에 왔다. 같이 좋아해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내심과 집중력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친근해지기만 하면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이 고전음악을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록음악에 끼워서 팔면 되지'라는 답변을 들었던게 생각났다. 어떻게든 듣게하고,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거니까.

밤에는 그날 새로 산 음반을 들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스코틀랜드 3번 교향곡. 박진감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몇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역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런거 같이 들어줄 동네친구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디 록음악에 끼워팔면 자기도 모르게 쏙 빠져들만한 사람 없나?

 

3. 교수님의 성화에 이끌려 온듯한 대학원생들 사이에 끼어 피나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졸거나 미처 내지 못한 레포트를 만지작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는 감상문을 써야하나라는 질문만 무성했다. 누군가 같이 나눌 사람이 있을까 하고 폰을 만지작 거렸다. 좋아할만한 사람들이 몇 있었으나, 그들 역시 바쁜 삶에 영화보기도 힘든 처지였다. 팝콘을 들고 동네 CGV에서 영화를 봤다면 얘기할만한 사람들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무취향, 무취미인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고 진득하니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씨얘기 뿐만이 아니라 취미얘기만으로도 신나게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내가 가진 취미 만큼이나 당신의 취미도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4. 피나에는 피나 바우쉬가 춤추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긴 하지만 앞과 뒤에 조금. 그리고 대사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춤과 표현만이 있을뿐. 처음에는 난감했다. 도대체 뭘 의미하는거지, 생각하며 머리를 감쌌다. 영화가 흐를수록 자연스레 그들의 춤동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어와 기보법으로는 표편할 수 없는 동작들이, 피나 바우쉬의 안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새삼 빔 벤더스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더 길게, 깊게 쓰고 싶지만 사정상 여기까지. 자자, 다들 영화관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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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범랑포트로 드립 커피를 내리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모난 곳 없이 평평하게 커피가 가라앉으면 맛있게 내려졌단 뜻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엔 도자 전공을 하는 H가 선물해준 컵만 쓴다. 컵이 입에 닿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연말에는 부탁해서 몇개의 컵을 더 주문제작 해야겠다.

 

커피를 내리면서 비어있는 원두 통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저 원두 통들엔 내가 매일 볶은 원두들이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로스팅을하고 테이스팅을 하고 포장하기도, 판매하기도 했다. 문득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아직 대학'시절'이라 하기엔 나는 졸업한지도 얼마 안됐고 또 젊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것들과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살다보니 그 기억들을 '시절'이라 명명해도 좋을것이라 생각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K와 만나서 커피를 마셨다.

K와 함께 했던 여러가지 일들은 내가 대학시절 '전성기'라고 불렀던 때에 벌어졌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린 그 시절을 가끔 회상했다. 소설, 음악, 영화, 커피 그리고 담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문득 최근들어 이런 이야기를 해본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자리잡은 곳에서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마치 단절됐던 것을 이어가는 것 처럼 풀려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K와 이야기하면서 몇번을 울컥했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찾아서 기쁜 것과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 때, O기자님한테 연락이 왔다. 이제사 회식이 끝났으니 함께 보자는 전화였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신촌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학생들이 가득했다. 같은색의 옷을 차려입은 무리가 가장 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고 구석에는 기타를 치고 노래부르는 무리들이 있었다. 함께 오지는 않았지만,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나오면 다들 따라부르곤 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이따금 내 귀에도 들리곤 했다. 막차 시간을 아쉬워하며 떠나는 모습이며, 흔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 '대학생활'을 생각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대학생때는 한없이 불균형했던 시기였다. 한없이 열정에 타오르거나 혹은 회의주의자가 되거나. 그래도 됐고, 그래야했고, 그럴 수 있었다. 생기와 활기가 넘치는 시기였다. 만나는 사람들은 위계질서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었다. 다음날을 살아가는것에 대한 고민이 즐거웠다. O기자님은 무얼 하고 살고싶냐고 물었다. 나는 할 일 없으면 기자나 하죠 하고 농을쳤다. 대학생때라면 선뜻 나왔을 대답이 힘들게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얼마전 Y형은 나에게 이런말을 해주었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변하지 않는게 중요하다는 것만 명심해'. 돈이나 시간은 매정하게 변해버리는 것 만큼 중요하진 않다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변하지 않고 로스팅을 하고 글을 쓰고 싶다.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는일, 영화를 보는 일을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떠한 행위들을 떠나서 나와 관계맺은 사람들과 변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조금씩 예전의 그 모습을 찾아가야겠단 생각을 한다. 비어진 원두 통을 채워나가기 위해 로스팅을 해야겠다. 아름다운 시절을 '그 시절'로만 생각하고 싶진 않다. 지금이 아름다운 시절이 될 수 있게, 조금씩 해답을 찾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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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형은 정말 만두같이 생긴 형이다. 일단 외모가 잘 빚어진 만두를 닮았다. 고속터미널이나 서울역 근처를 지나다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만두 말이다. 심지어 몸매도 만두를 닮았다. 샤워를 하고 속옷에 수건만 걸치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만두다. 막 일어났을 때, 피곤할 때 얼굴이 조금씩 붓기 시작할때면 만두형은 진가를 발휘한다. 정말 만두로 변신한다. 그리고 만두형은 항상 웃는다.

 

우리-만두형과 나 그리고 3명의 팀원-의 일과는 규칙적이다. 6시간을 일하면 12시간을 쉰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24시간을 하루로 산다면 우리는 18시간을 기준으로 하루를 산다. 낮과 밤은 조금씩 바뀐다. 아직 업무에 적응을 하지 못하기도 했고, 처음 일을 시작하면 겪는 어려움과 서러움은 교대근무자에겐 더욱 고달프다. 남들이 퇴근할 때 일하고, 쉬는날에도 밤낮없이 출근하고. 그리고 피곤과 서러움에 치여 12시간도 편하게 쉬지는 못한다. 그래도 만두형은 항상 웃는다.

 

지난 추석에는 몸이 아팠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었고, 추석이라 식당문도 다 닫아서 밥도 못챙겨 먹었고, 밤새 공부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플 수 밖에 없었다. 어김없이 혼나고 그리고 밥을먹으려 하는데 식당문이 닫혀있었다. 추석이라 근처 식당들도 전부 문을 닫았다. 서럽기도 이리 서러울 수 있는가. 그래도 만두형은 웃었다.  설날에는 새해복 많이 받아라, 그렇다면 추석에는 무슨말을 하지? 라는 질문에 만두형은 '더도 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밤샘근무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한가위 연휴 첫 날이었다. 우리는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돌아오는길에, 밥을 얻어먹었다. 추석 연휴동안 처음 먹는 밥이었다. 두그릇이나 밥을 비웠다. 미처 챙기지 못한 동기들이 미안해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만두형은 혼자 티비를 보고있었다. 눈시울이 젖어있는 만두형에게 나는 무얼 먹었느냐고 물었다. 만두형은 햇반과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곤 추석 연휴에 대한 보도를 하는 뉴스를 계속 보고있었다. 만두형은 고백했다. 울었다고. 혼자 방에서 울었다고.

 

추석에도 쉬지못하고 일하는 사람들 인터뷰가 나올때부터 만두형은 울컥했다고 한다. 그래, 우리랑 뭐가 달라. 다 그렇게 사는거지 뭐. 만두형은 웃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추석 당일 순직한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란다. 거기서 만두형은 울 수 밖에 없었다. 어찌 저럴 수 있는가. 너무해도 너무하다. 만두형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조금 부어있는 만두형의 눈을 보고 웃프지 않을 수 없었다. 순직한 소방관이며, 혼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추석날의 만두형이며 우리 신세며 슬플 수 밖에 없었다. 만두형의 그런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쓴 웃음 말이다.

 

웃프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갔다. 이상하기도 했다. 어떻게 웃플수가 있지?

나는 비로소 웃프다는 표현에 동의를 할 수 있었다. 웃프다. 웃픈 한가위다. 모두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을 수 있길. 추석 복 많이 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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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쇼팽의 녹턴 연주하기

민음사 문학전집 전부 읽기

로드바이크 구입, 일주일에 100km이상 타기

고전 영화(혹은 영화) 일주일에 한 편, 감상문 한 편 쓰기

고전음악 일주일에 10개 이상 새로운 음반 찾아듣기, 감상문 비평문 쓰기

 

매일매일 글 쓰고 기록하기. 책 읽고 감상 적기.

 

꾸준히 마시고, 듣고, 읽고,

내세우기보다 안으로 흡수하기. 그리고 깊어지기.

 

내 3년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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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적으로 가장 부담이 되는 시기다. 훈련 기간에는 몸이 힘들었다면 이제는 정신력 싸움이다. 기본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근무를 하며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한다. 어쩌면 생각했던것과 생활이 많이 다르기에 더 힘들수도 있다. 이럴수록 생활에 부담이 되는 생각들이 있다. 가령 편하게 지내는 동기들과의 비교, 어려운 시절을 겪고나면 성숙해질것이라는 환상, 새옹지마가 있다. 더러는 나보다 더 어려운 선택을 한 사람들과의 단순비교로 행복의 우위를 점하는 방법도 있다.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그저 어려운 상황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 어려운 상황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삶의 조건을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힘들다면, 그냥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 지금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2.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시가를 피운다. 얼마 전 우연히 들렀던 이태원의 번(Burn)이라는 바에서 처음 시가를 폈다. 우선 분위기부터 압도적이다. 우선 그곳은 어디선가 구해온 환상적인 팟캐스트로 바를 찾는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가 색깔의 벽면과 조명은 시가를 피지 않아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말해준다. 바에 들어서면 멕시코 출신의 주인장은 우리를 진열장으로 안내한다. 그날의 기분을 말해도 좋고 원하는 맛과 향을 말해도 좋다. 진열장을 열면 매콤한 담뱃입 냄새가 눈과 코를 아리게 만든다. 이것 저것 향을 맡아보곤 맘에 드는 시가를 선택한다. 이제 리퀴드를 고를 차례다. 바 안에는 수많은 리퀴드가 놓여있다. 가령 다비도프 2000에는 32년산 과테말라 럼이 제격이다. 텍스쳐는 부드럽고 향이 풍부하다. 맛과 향에 밸런스가 좋아 연기를 품었을때 기분을 해치지 않는다. 함께 간 사람들은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 한다. 레드페퍼, 바닐라, 아몬드, 보리차등의 느낌이 난다. 시가들은 크기도 제각각 맛도 제각각이다. 훌륭하게 만들고 보관한 시가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
시가 커터는 만원 가량. 불을 붙이기 쉽게 저렴한 가격에 지포형 라이터를 구입했다. 쉬는 시간에 커피를 내려마실 때면 종종 시가가 생각난다. 더러는 맛과 향이 좋지만 더러는 분위기가 번(Burn)과 같지 않아 느낌이 살지 않는다. 맛에 대한 탐닉은 즐거운 취미다. 커피를 마시고 시가향을 맡으며 상상을 한다. 입 안에 머무는 커피와 시가는 단시간에 최상의 쾌락을 제공한다. 돈 드는 취미가 하나 더 늘었다.

3. 멘델스존 3번 교향곡 스코틀랜드. 멘델스존 교향곡 중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곡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받은 첫 인상은 낭만주의의 시발점이 되는 이 교향곡을 탄생시켰다. 1악장의 환상적이고도 강렬한 멜로디가 요즘 가장 많이 떠오른다. 장기간의 집중력이 필요한 요즘 교향곡을 주로 듣곤하는데,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가장 많이 트는 곡이다. 처음 들었을땐 그렇게 인상깊지 않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고 두 개의 영상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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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출근. 잔뜩 쫄아있던 어깨를 푸는 순간 골아떨어졌다. 유리마음이 돼버렸다. 쉽게 깨지고 쉽게 상처받는다. 즉각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지만 위로를 받는건 어려운 일이다. 단단해지기 위한 조건들을 생각해본다. 틈틈이 책을 읽고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나는것들을 바로바로 메모하고 글로 풀어내야겠다. 엄격한 생활보다 더 엄격한 규칙들을 새우고 스스로를 몰아붙여야겠다. 강해지기 위해서다.
2. 최근엔 클래식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스웨이드, 오버 더 라인, 멈포드앤손스의 음악을 들었다. 검정치마의 젊은 우리 사랑을 들었다. '될대로 되라 망해도 좋은걸'이란 가사는 언제 들어도 맘에 든다. 강해지면서 실수나 사람관계에 유연해져야겠다.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 아직은 젊고, 꿈이 많다.
3. 오산에서 몇일 지내면서 새로운 카페들을 발견했다. 신기하게 오산에는 프렌차이즈 카페가 별로 없다. 덕분에 스스로 강해진 작은 카페들은 왠만한 서울의 동네 카페들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물론 실망할 곳들이 많다. 하지만 그 카페들이 있어 기쁨이 더 많다. 되려 훌륭한 카페가 있었다면 그곳만 찾아갔을테지. 오늘 들렸던 카페를 포함하여 다섯 곳의 카페가 있다. 멀지 않은 시일내에 이 카페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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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을 트럭운전에 비유한 바 있다. 솔로 연주가 세단을 운전하는 것이라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건 엄청나게 큰 트럭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움직임은 둔하지만 그것을 운전하는 운전자의 손놀림은 그 누구보다도 세심해야 한다고.

나는 줄곧 지휘자를 포수라고 생각해왔다. 야구를 처음보는 사람은 포수를 그저 공을 받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포수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할 곳을 말해주어야 하며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마주보는 사람으로서 수비수를 전체적으로 지휘해야 한다.

 

지휘자의 역할이 좀처럼 이해가 안간다면 두다멜을 찾으면 된다.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엘 시스테마'를 통해 데뷔한 두다멜은 드물게 어린나이에 지휘자로 성공을 거뒀다. 1999년, 18세의 나이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지휘 콩쿨을 휩쓸며 스타가 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레틀 등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후원을 받은것을 시작으로 그는 2007년 정명훈이 지휘했던 예테보리 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를, 2009년엔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 음악감독을 맡게 됐다.

 

처음 두다멜의 영상을 봤을 때, 나는 지휘자가 매력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야구를 보며 어느순간 포수의 역할을 깨닫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가령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 영상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지휘다.

 

 

두다멜의 표정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또 하나의 도구다. 다음에 나올 멜로디가 얼마나 신날지 알고 있다는 듯 개구장이처럼 지휘한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구제된 빈민가의 아이들은 그의 지휘 아래 하나의 음표가 된다. 축제와 같은 연주는 모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절정에 이르러 폭발하는 이 영상만큼 두다멜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을까.

 

얼마전 PBS에서 방영하는 Great Performance라는 프로그램에서 두다멜이 등장한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그리고 친구인 후안 디아고 플로레즈와 로시니의 곡을 연주한 공연이었다. 줄곧 유럽 혹은 미국이 주도해왔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남미 출신의 지휘자가, 솔리스트가 무대를 휘어잡는 장면은 이 영상이 가진 매력포인트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멕시코 출신의 작곡가 아르투로 마르케즈의 Danzon No.2다. 두다멜은 이 노래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후안 디아고는 이 노래를 듣다보면 쿠바의 작은 바가 생각난다고 한다. 어딜봐도 남미의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단원들이 두다멜의 지휘아래 연주를 시작하는 장면은 설명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풍경을 만들어준다. 이미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많이 들려준 곡이지만, 더욱 성숙한 멜로디로 연주되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Danzon도 충분히 매력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두다멜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앙코르곡을 들어보자. (5분부터)

 

 

두다멜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연주를 시작한다.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후안 디에고를 놀려먹는다. 마구마구 느리게 연주했다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 오케스트라를 숨겨버린다. 얼마나 오케스트라가 유쾌해질 수 있는지, 그는 보여주고 있다. 두다멜은 훌륭한 트럭 운전수며 전설에 남을 포수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으며 지휘자는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수 많은 영상에서 말해주고 있다.

 

얼마전 친구가 자신은 고전음악을 즐겨 들으면서도 아직 지휘자에 따라 뭐가 달라지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길 했다. 물론 누구나 들어도 알법한 훌륭한 지휘자의 연주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두다멜의 영상을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어쩌면 두다멜은 그 친구에게 좀 더 확실한 답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라는 영화를 보다보면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두다멜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추신 : 상호가 변경됐습니다. 테일러 커피(Tailor Coffee)로 로스터와 바리스타는 동일합니다. 위치와 상호만 변경됐다고 하네요. 서교동 329-15/02-335-0355 입니다. 찾으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밀로 커피 로스터스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일요일엔 좀처럼 쉬지 않던 밀로가 문을 닫았습니다. 날은 덥고. 걷기는 귀찮고. 근처에 갈 곳이 없나 생각하던 중 포레스트가 떠올랐습니다. 밀로 사장님의 소개로 커피 용품을 사러 잠깐 들른 샵이 생각나 그곳을 찾았습니다. 커피는 마셔 본적이 없었지만 사용하는 머신들이 눈에 띄게 좋았다는 점, '밀로'사장님이 추천해주셨다는 점 때문에 망설임 없이 갈 수 있었습니다. 이태원에서 들렀던 카페 보통에 원두를 공급하는 곳이기도 하죠. 그곳에서도 맛있었으니 여기는 오죽하겠습니까.

 

기대감에 부풀어 포레스트에 입장합니다.

 

 

 

 

 

골목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있는 소박하지만 센스있는 가게 외관입니다.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해봅니다. 자자. 다른 가게와 다른 점을 찾아볼까요. 커피 견문록을 성실히 따라왔던 독자들이라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겁니다.

 

정답은. 플렛화이트와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입니다. 플렛화이트에 대해선 지난 카페 보통편에서도 간단히 설명해드린적이 있습니다. 카푸치노와 비슷한 메뉴입니다. 에스프레소 1-2샷에 카푸치노에 들어가는 스팀밀크의 1/3정도가 들어갑니다.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유를 반으로 나누어 반은 커피와 섞고 반은 우유 거품으로 올리는 점이 특이사항입니다. 카푸치노보다는 우유와 커피가 본격적인 결합을 하는셈이죠. 카푸치노가 연애 초기의 풋풋한 커피라면 플렛화이트는 사랑이 커피와 우유가 서로 불타오르는 사랑에 빠지는 단계라고 할까요. 핫핫. 그만큼 만들기도 힘들고 에스프레소가 우유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맛없기 짝이없는 커피가 될 수 있는 메뉴입니다. 싱글 오리진 커피는 역시 지난 리뷰 아이두편을 보셨다면 아실겁니다. 보통 포레스트에선 퍼플레인(프린스의 노래 제목이죠)과 도어즈(맞습니다. 밴드 도어즈.) 블렌드를 이용해 커피를 만든다고 합니다. 싱글오리진의 경우 이벤트성으로 내놓는다고 하네요.

 

역시 저는 플렛화이트를 골랐습니다. 드립메뉴도 맛보고 싶었기에 케냐를 골랐습니다. 카라티나가 산미가 조금 덜하다기에 선택했구요. 커피 이름들을 보니 스페셜티를 취급하는듯 합니다.

 

 

두둥. 머신은 시네소입니다. 라마르조꼬가 머신계의 베엠베(BMW)라면 시네소는 머신계의 벤츠정도 되겠네요. 뉴욕에서 인상깊었던 샵 카페 그럼씨에서 시네소를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상수동에 있는 무연탄 카페에서도 리네아를 없애고 시네소를 사용하고있죠. 우수한 성능으로 점점 많은 바리스타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좌측에 보이는 정수기는 에바퓨어. 홍대 헤이마, 사당동 커피 소사이어티편에서 상세하게 소개해드린 바 있지요. 그라인더는 드립용으로 말코닉, 에스프레소용으론 콤팍과 메저그라인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두 훌륭한 그라인더죠. 시네소부터 시작해서 정수기, 그라인더까지. 셋팅으로 치면 멘하탄에 진출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두둥. 로스터는 기센 W1. 겨울 안으로 W6가 합류한다고 하네요. 부자 카페입니다 부자 카페. 프로밧 로스터를 만들던 사람들이 새로 만든 네덜란드 브렌드죠. 저의 드림 로스터이기도 합니다.

 

 

 

드립커피 사진은 이해해주세요. 찍고 확인하니 이렇습니다.

 

플렛화이트는 놀라웠습니다. 말린 자두를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인상적입니다. 첫모금에선 부드러운 캬라멜 느낌이 나면서 마지막엔 자두향이 느껴지며 목으로 넘어가는, 아주 인상깊은 커피였습니다. 퍼플레인 블렌드를 사용했다고 하던데, 에스프레소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우유와 커피의 벨런스가 훌륭한, 최고의 플렛화이트였습니다.

드립커피도 역시 벨런스가 훌륭했습니다. 적절한 신맛과 단맛 그리고 에프터도 훌륭하더군요. 주인장의 설명으론 샵에서 쓰는 가장 고급 스페셜티 커피라고 합니다. 식어도 신맛이 도드라지지 않는, 인상깊은 커피였습니다. 사랑스럽네요.

 

 

 

인테리어는 뭐. 커피에 비하자면 뭐. 보통입니다. 보통.

 

 

포레스트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입니다. 방향제로 원두를 무료로 주더군요. 잘못 로스팅한 원두를 처분하는 것이죠. 보통은 커피 찌꺼기를 가져라가라고 하는데 여기선 원두를 줍니다. 잘못 로스팅된 커피는 아깝더라도 버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거죠. 장인정신이 느껴집니다.

얼핏 살펴보니 저건 그냥 가져가서 갈아먹어도 맛있을것 같습니다. 프렌차이즈에서 묵은 원두 사느니 차라리 여기에서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방향제 가져가다 먹는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드립바와 판매하는 원두들입니다. 가격은 비싸지만 사먹을만 합니다. 최상의 생두로 볶은 최고의 커피.

 

 

 

 인테리어는 소소. 의자가 불편하고 화장실이 조금 더럽습니다. 참고하세요.

 

생두 좋은거 쓴다고 은근슬쩍 홍보하네요.

 

이상 카페 포레스트 리뷰였습니다.

 

  • 카페 포레스트 포인트 - 트렌디한, 최고급 사양의 머신을 사용하는 맛있고 멋있는 카페
  • 카페 포레스트  미스 포인트 - 의자가 불편하고 화장실이 조금, 아주 조금 더럽다는 애로사항
  • 카페 포레스트  포 미 - 당분간 연구대상. 플렛화이트가 먹고싶다면 단숨에 달려가리.
  • 카페 포레스트 가는 길 -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출구로 나와 보이는 골목으로 우회전. 따라올라오다 좌회전. 홍익 숯불갈비와 패밀리마트 사이로 직진하고나면 보이는 왼쪽 첫번째 골목.

뱀발. 스타벅스의 신상 리프레셔를 마셔봤습니다. 그린 빈 추출액이라뇨. 볶지 않은 커피를 가공해 원액을 만들고 라임 혹은 블렉베리를 섞어 음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엉뚱하기도 하네요. 너무 궁금해 마셔보고 싶어 벼르고 있다가 드디어 마셔봤습니다. 라임맛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은은하게 생두맛이 느껴지네요. 마셔보기가 두렵다면 생두를 씹고 라임에이드를 드시면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아실듯 합니다.

가볍게 즐길수 있는 커피음료네요.

커피라고 하기엔 어색합니다. 커피는 보통 로스팅 과정에서 생두에 일어나는 화학작용에서 그 맛과 향이 결정되거든요. 이건 뭐 볶지도 않았으니 리조또라고 할수도 없고. 뭐 여튼. 궁금하면 드셔보시길 :)

 

추신 : 상호가 변경됐습니다. 테일러 커피(Tailor Coffee)로 로스터와 바리스타는 동일합니다. 위치와 상호만 변경됐다고 하네요. 서교동 329-15/02-335-0355 입니다. 찾으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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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적어도 5번 넘게 영화를 봤을 테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는 수첩 어딘가에 적어뒀을 것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에 감탄하고 대사에 공감할 것이다. 기차 여행을 떠날 때면 혼자 영화의 첫 장면을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볼 것이다. 독일어로 싸우고 있는 부부는 없는지,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남자는 없는지 그리고 줄리 델피가, 에단 호크가 아니 셀린느와 제시가 있는지.

 

그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이번이 여섯 번 째던가. 무심코 넘겼던 오프닝부터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영화를 틀었을 때, 나는 음악이 잘못 나온 줄 알았다. 듣고 있던 음악을 끄지 않았던가? 하고 일시정지를 눌렀다. 함께 꺼지는 음악. 아, 헨리 퍼셀이 오프닝 음악이었어?

고풍스러운 헨리 퍼셀의 음악함께 그 유명한 기차 신이 시작된다. 철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영상이 흐른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퍼셀의 음악이 들려온다. 미묘하게 들려오는 하프시코드 소리는 기차가 내는 철커덕 소리와 어우러져 긴장감마져 형성한다. 비엔나로 향하는 열차의 풍경은 음악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잠시 숨을 고르듯 긴장을 향해 고조되던 음악이 멈춘다. 그리고 셀린느의 등장. 숨이 멎는줄 알았다. 바로크 시대의 악기편성을 그대로 사용한 퍼셀의 음악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등장하다니.

바로크 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찾아듣기 시작하면서 늘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인데, 이 음악은 과연 어떤 장면에 어울릴까. 가령, 영화로 치면 어떤 장면에 등장해야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류트소리와 하프시코드의 고풍스러운 사운드가 어색하지 않으려면 꽤 복잡한 장면을 상상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열차 카페테리아 신에서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헨리 퍼셀. 아, 이렇게 어울릴 수 있는 건가.

 

 

음악에 집중해 비포 선라이즈를 본다면 새로운 장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사랑스럽고 가슴이 콩딱 거리는 장면은 음악감상실 씬이다. 거리를 걷다 우연히 발견한 레코드 샵에서 셀린느는 음반을 고른다. 그리곤 감상실에 들어가 제시와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흐르는 순간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시선과 감정이 담긴 그 장면을 보면 왜 이 영화를 몇번이고 다시보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끊임없는 대화가 멈추는 그 순간, 흐르는 음악과 그들의 표정은 긴 여운을 남겨 다음 장면까지 오버랩되기도 한다.

 

 

 

 

사실 내가 이전까지 발견했던 음악씬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만 집중해도 러닝타임은 충분히 모자랐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대사가 나올지 대충 짐작이 가는 그 순간에야 나는 음악이 들어간 장면에 젖어들 수 있었다. 음악감상씬이나 비포 선셋에서 셀린느가 연주하는 왈츠나, 영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그정도였다. 하지만 흐르는 음악에 집중하고 나니 이 영화에 쓰인 음악 장치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거리 곳곳을 지나다닐때 흐르는 바로크 음악은 그곳이 비엔나이기 때문에 어울리기도 했지만, 때와 장소 그리고 분위기를 적절하게 활용해 음악을 틀었기에 어색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500년이 지난 음악이 지금의 영화와 어울릴 수 있는 이유다. 오프닝에서 받았던 충격은 계속 이어졌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요요마가 연주하는 첼로소나타, 베토벤의 소나타도 자신들이 언제 등장해야할 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스르르 등장하고 사라진다.

 

사실 새로운 발견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것일수도 있다. 수없이 영화의 장면들을 겪었을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한 음악이고 장면들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강렬하게 음악이 들려왔던 감상이었기에 영화를 보며 메모했던 것들을 써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곧 있으면 비포 선셋의 속편이 등장한다고 한다. 10년이 흐른 뒤에도 제시와 셀린느는 여전할까. 그리고 영화속에 흐르던 음악들의 감동은 여전할까. 아직까지 기차여행을 떠날 때면, 혼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잊지못할 장면을 선사할까. 영화관에 찾기 전, 다시 한 번 더 영화를 챙겨봐야겠다.

 

 

Scent of a Woman

 

 

 

 

'여인의 향기'라는 제목 때문에 오해를 살 수 있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아 그래서 알파치노가 저 미묘한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저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거구나' 하고 오해할 수 있겠다. 아마 영화가 두 남자의 이야기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겠지. 눈 먼 프랭크가 찰리의 도움으로 스포츠카를 타고 멘헤튼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라면 더더욱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매혹적인건 정말 여인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묘한 섹시함은 프렝크가 여인의 등에 손을 살짝 올릴 때다. 미묘하게 등 근육이 움찔거린다. 그리고 더빙한듯한 수줍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탱고. 탱고가 절정에 이르렀을때보다 실수할까 조마조마한 시작부분이 더 미묘하다.

라오스 여행에서 라파엘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춤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고. 그저 남자가 이끄는데로 uno, dos, tres, cuatro. 발을 옮겨가면 된다고 했다. 실수를 하면 할수록 여성의 매력은 솟아 넘치며 더욱 섹시해보일 수 있고. 그러니까 탱고를 배워야 한다.

 

 

Hallelujah

 

 

할렐루야의 오리지날 버젼은 레너드 코헨에 의해 탄생했다. 영국 차트에서 36위를 차지하며 심심찮은 성공을 이끌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제프 버클리 버젼은 후에 존 케일이 커버한 버전에서 유래했다. 요절한 제프버클리의 할렐루야는 영국에서 2위, 미국 빌보드에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이곡을 제프버클리의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로 시작하는 시편 51장은 이 곡의 기원을 설명해준다. 다윗왕은 친애하는 우리야 장군의 아내의 밧세바를 사랑하게 된다. (노래 가사대로라면)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다윗은 결국 우리야를 전장에 내몰게 된다. 그가 죽고 다윗은 밧세바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곤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할렐루야, 할렐루야.

노래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담아냈다. 여기, 비밀스런 노래가 있다. 다윗은 주를 찬양하기 위해(혹은 회개하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 하지만 넌 음악에 대해 신경쓰지 않잖아.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하지. 네 번째와 다섯 번 째 그리고 메이저 코드는 올리고, 마이너는 내리고. 다윗의 신념은 강했다. 하지만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그녀는 그렇게 다윗을 묶고 왕좌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할렐루야를 끌어낸다. 이제 다윗은 회개하기 시작한다. 나는 온 힘을 다했어요.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느낄 수 없었기에 만져보려 했어요. 나는 진실을 말했고, 당신을 속이러 온 것이 아니에요. 간절하게 할레루야를 외치며 그는 노래한다. 어떻게 다윗이 사랑에 빠졌으며 어떻게 반성하고 고백했는지 노래는 담아내고 있다. 제프 버클리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사람들은 그 애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버 더 라인이 부른 할렐루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이다. 노래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곡을 설명하는 Karin Bergquist의 목소리는 이미 이 노래가 얼마나 매혹적일지 알려주고 있다. 그녀는 어디서 더 힘을 주어야 할 지 알고 있다. 다윗이 고백하듯, 할렐루야를 부른다. 그의 남편은 그녀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들만의 비밀스런 코드가 있는 것 처럼, 그렇게 할렐루야는 시작된다. 오버 더 라인의 음악을 듣고 울었던 적이 있다. 그녀가 부르는 음표는 가슴을 저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사람들에게 종종 이들의 할렐루야를 추천하곤 한다. 하도 사람들이 '오버 더 라인'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에 직접 찾아봤다. 오버 더 라인은 신시내티, 오하이오에 있는 이탈리아 풍의 거리라고 한다. 근처에 있는 운하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독일의 라인강에서 별명을 얻었고, 이 지역은 오버 더 라인이라고 불리게 됐단다. 당연히 오버 더 라인은 오하이오 출신의 밴드다. Linford DetweilerKarin Bergquist를 주축으로 객원 멤버들을 참여시키며 앨범 작업을 했다. Ohio라는 앨범도 있고 Drunkard's Prayer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영상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면 이 두 앨범을 들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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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왈츠 op.54, no.1



체코 태생의 작곡가 드보르작. 모국의 민속풍 선율을 이용해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브람스의 총애를 받은걸로도 유명하다.
포근하면서도 신선한 소규모 작품들은 드보르작의 성향을 말해준다.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 놀이동산에서 솜사탕을 들고 걸어다니는듯한, 구름위에서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음악들은 평온함을 선사해준다. 평범한듯한 작품들이지만 드보르작만의 무언가가 있다. 천재적인 작품들이라 하기엔 무난한, 하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있는 느낌. 편안하다.

나나 무스끄리&존 윌리엄스, 브라질 풍의 바하

브라질풍의 바하라니.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나나무스끄리의 무심한듯 시크한 표정, 빨간 드레스, 뿔테안경, 가지런히 모은손 그리고 마지막 땡큐라는 인사. 너무나 재미있는 영상. 김남시 교수님은 존 윌리엄스와 나나 무스끄리의 뿔테안경이 이 오래된 영상의 풍크툼이라 표현하셨다. 재미있는 표현이라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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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라디오 주파수는 93.1MHz. 내가 좋아하는 실내악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창문을 적당히 열어 빗소리가 잔잔히 들려오도록 맞추어두었다. 잔잔한 실내악들과 어울려 기분이 좋아진다. 평소보다 오래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 급하게 결정한 서울행이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제야 겨우 마음이 차분해졌다.

 

1.

4개월간의 훈련기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본다. 본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인생의 최악의 기간이었다. 첫 한 달은 편지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전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1주 남짓이었다. 취미와 섬세한 취향은 당연히 지킬 수 없었다. 입맛조차도 단순해져서 평생 사 먹은 과자보다 더 많은 과자를 먹었다. 이렇게 하소연을 늘어놓자면 길다. 모든게 무뎌졌다. 그리고 오감이 억압당했다.

지난 두달은 나에게 그동안 쌓여왔던 극심한 스트레스를 푸는 기간이었다. 읽고 싶은 책, 음반을 마음껏 샀다. 먹고싶은 것, 마시고 싶은것(주로 맥주와 커피)도 원없이 먹었다. 가령 일반적인 나의 주말 스케쥴은 이랬다. 토요일 아침 일찍 교보문고나 풍월당에 들렀고 낮에는 무연탄-노란코끼리-밀로-이심-리브레로 이어지는 카페투어를 즐겼다. 카페에선 주로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났고, 적당히 커피를 나눠마셨다. 저녁에는 불광동이나 이태원에서 맥주를 마셨다. 다행이도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들은 나와 동행해주었다. 나는 그동안 하고싶은 말들을 쏟아냈고 그렇게 정신없이 주말이 흘러갔다. 평일에는 틈틈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교육기간은 종종 여유로운 시간을 선사해 심심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도 난 사람들에게 연락해 그간 쌓아두었던 회포를 풀곤했다.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그간 잊혀졌던 감각들은 그 순간에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문제는 밸런스. 밸런스가 없었다. 지나간 상처들을 치유받고 싶었고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대해 미리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지나칠 정도로. 커피와 맥주를 너무 마셔 몽롱했던 기억이 한두번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오랜만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가 흥분해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모든 감정에 있어서 스스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군대가 사람을 이리 변하게 만드는가. 혹은 내가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었던가.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2.

지나치게 감상적인 이 기간동안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집중적으로 독서를 했다. 일주일에 2-3권정도. 일과 시간만 끝나면 독서에 매진했다. 헐거벗은 상태에서 읽은 그 소설을은 그 어느때보다도 나에게 강렬하거나 아프게 다가왔다. 존 치버의 '팔코너'나 루쉰의 '아Q정전'은 특히 그랬다. 팔코너에서 주인공이 감옥에서 겪었던 일들이 지난 4개월의 훈련에서 겪었던 일들이 미묘하게 교차했다. 아Q가 생각하고, 보여주는 행동들은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몇몇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단체생활, 그것도 군대에서 서로의 가장 낮은 모습까지 보여주는 상황에서 그들이 보여줬던 역겨운 모습들이 아Q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과 교차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이라는 중국 작가들의 단편집에는 개화시절 중국인들이 겪었던 처절한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최근에, 일거리를 찾아 아저씨가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휴가철을 맞아 주차장 일을 돕기로 하신것이다. 잘 지내시는가 싶더니 오늘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셨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6주정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최근에 어머니는 일하시던 문화센터에서 손님이 가방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오해를 사셨다. 손님은 가방이 없어지자 어머니를 의심하곤 CCTV를 보자고 했단다. 알고보니 가방은 그 손님의 친구가 다른 곳으로 옮겨놨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어머니는 서러움에 나에게 문자를 보내셨다. 그리고 얼마 후 일을 관두셨다. 오늘에야 마지막 책장을 넘겼던 그 소설집에서의 강렬한 이야기들이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시기는 지나가겠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을 하고 있다. 부디 부족하거나 흘러넘치지 않기를. 잘 균형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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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카페투어입니다.

그간 군복무로 인해 잠시 중단했던 카페투어를 다시 시작합니다. 아직도 나라를 지키고(?)있지만 이제는 종종 주말에 시간이 나기 때문이죠. 남들은 휴가 나오면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커피->맥주->커피->맥주를 즐기다 복귀하곤 합니다. 위장을 버리기에 딱 좋은 테크트리죠. 짬밥에 익숙해졌던 미각이 맛있는 맥주와 커피를 만나면 극대화되어 쾌감을 주기 때문에 멈출수가 없습니다. 당분간은 이렇게 지낼것 같네요. 맥주는 어디서 마시냐구요? 그건 나중에 카페 투어가 끝나면 리뷰해보겠습니다 :)

 

얼마 전, 이태원에 있는 쿠바풍의 바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일행 모두가 지쳐있었던 새벽 3시의 일이었죠. 우리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바에 갈 수 있었던건 인테리어 덕분이었습니다. 활짝 열린 창문 안으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는 지나가는 사람을 발목을 잡는 묘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가게를 정리하던 사장님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잔 정도는 괜찮다며 자리를 안내하셨습니다. 32년된(?) 과테말라 럼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요). 라디오를 틀어놨다곤 하셨는데 음악도 묘하게 분위기와 어울렸습니다. 피곤함과 취기가 시가향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기억을 만들어줬습니다.

 

홍대를 비롯한 곳곳 카페들은 종종 '이국적인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추구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카페들은 대부분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태원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실제로 외국인 비율도 높고 카페나 바를 이용하는 손님들도 외국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그렇다보니 이국적인 카페와 바가 자연스럽게 생겨나죠. 오늘 소개할 '보통'이라는 카페도 이태원에 자리잡은 이국적인 카페입니다.

 

 

 

 

사진만 놓고보면 여기가 유럽인지, 한국인지 헷갈릴게 분명합니다.

카페 보통입니다.

 

 

너무나 감각적인 인테리어 덕분에 문을 열고 들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문부터 해보죠. 우선 이곳은 로스터리 샵이 아닙니다. 원두는 모두 홍대의 '포레스트'라는 카페에서 공수를 해옵니다. 포레스트는 기센(Giesen) W1을 사용하며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합니다. 드립 메뉴는 매번 달라집니다. 코스타리카는 다른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샵에서도 먹어본 것 같네요. 역시 좋은 콩은 돌고 돕니다. 메뉴에서 보이는 특이점은 플렛화이트(Flat White)를 판다는 점입니다. 카푸치노와 비슷한 메뉴입니다. 에스프레소 1-2샷에 카푸치노에 들어가는 스팀밀크의 1/3정도가 들어갑니다. 미국이나 영국 혹은 호주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메뉴죠. 일전에 소개해드린 뉴욕의 샵들에서도 코르타도(Cortado, 커피와 스팀밀크가 1:1)와 함께 판매하고 있죠.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메뉴. 보통의 이국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주문을 하고 매장을 둘러봅니다. 멀리 모카마스터가 보이네요. 드립을 모카마스터로 하냐고 물어보니, 주인장께선 바쁜 아침에만 사용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앞에 보이는건 맛있는 베이커리네요.

 

 

에스프레소 머신은 이태리제 비비엠메(Vibiemme)입니다. 가격대비 성능이 좋으며 듀얼보일러를 사용해 온도 보전이 잘된다는 주인장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저도 잘 접해보지 못했던 머신이라 자세히 설명해드리진 못하겠네요. 그라인더는 콤팍입니다. 요즘 쓰는 곳이 꽤 많더군요. 드립용 그라인더는 사진에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말코닉 그라인더를 사용합니다. 좋은 그라인더를 쓰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그런 말이 있죠. 휼륭한 바리스타는 가장먼저 좋은 그라인더에 투자를 한다고. 제 아무리 훌륭한 원두가 있어도 그라인더가 좋지 않으면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으니 주인장께서 커피에 관심이 많으시냐고 물어봅니다. 이럴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긁적이며, '네, 좀 좋아합니다' 라고 부끄럽게 대답했습니다. 짧은 머리가 눈에 띄던지 단박에 군인임을 알아보시더군요. 덕분에 군인찬스, 휴가 찬스로 맛있는 멜론도 얻어먹었습니다.

 

 

 

메뉴가 나오는동안 카페를 둘러봅니다. 휴지를 누르고 있는 템퍼와 사탕처럼 생긴 천연 설탕이 눈에 띕니다. 좋은 설탕은 커피의 맛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스르르 녹고 있던 아이스 라떼에 두 알 정도 첨가해 먹었습니다. 자극적인 단맛이 없어 좋았습니다. 넣은듯, 넣지 않은 듯 솟아오르는 설탕이 참 매력적이더군요.

 

아아. 그러니까 저도 커피에 가끔씩 설탕을 넣습니다. 얼음때문에 커피맛이 변하거나 너무 식어서 신맛이 치고 올라올땐 설탕을 사용하죠. 가끔씩 에스프레소를 먹을때 설탕을 넣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씩요. 좋은 커피라면 설탕과의 조화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해서 그렇습니다만, 내부 인테리어도 참 훌륭합니다.

 

사실, 손님이 꽤 많이 있어서 요래저래 피해서 찍느라 좋은 사진을 많이 놓쳤습니다. 궁금하시다면 직접 가보시길!

 

 

 

 

제가 주문한 메뉴는 에스프레소 더블, 플렛화이트, 아이스 라떼, 아이스 드립(인도네시아)입니다. 같이 갔던 일행분들이 있어서 방정맞게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플렛 화이트는 훌륭했습니다. 착착 감기는 맛이랄까요. 블랙커런트의 느낌이 났습니다. 홍차의 맛이 느껴졌달까요. 고소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근래 먹은 에스프레소 음료중에선 단연 최고였습니다. 아이스 라떼도 비슷했습니다. 여름이라 상콤한 맛을 기대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더군요. 대신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드립 또한 적절한 산미와 균형감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메뉴가 평균이상이네요. 그래도 고르라면 전 플렛화이트를 추천합니다.

 

 

 

저 안쪽에 보이는 회색 그라인더가 말코닉 그라인더입니다. 신형이라더군요. 안쪽으로 하리오와 멜리타 드리퍼가 보입니다.

 

 

 

카페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더니, 주인장님께서 슬며시 방명록을 내미셨습니다. 몇자 적고 왔습니다. 뭐라고 적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직접 가셔서 확인해보시길 :)

 

 

곳곳에 보이는 '보통'의 이미지. 제가 마신 커피가 '보통'의 커피라는 것을 각인시켜줍니다.

 

 

 

바깥으로 보이는 연두색의 외벽은 이국적인 정취를 더해줍니다. 주차된 차들이 없었더라면 더 멋진 장면들이 나왔을것 같네요.

 

짧은 외박을 해외여행처럼 느끼게 해 준, 즐거운 커피 한 잔이었습니다 :)

 

  • 카페 보통 포인트 - 이국적인 분위기, 플렛화이트, 평균 이상의 커피맛 그리고 선곡
  • 카페 보통 미스 포인트 - 로스팅까지 보통의 로스팅이었다면? 비비엠메가 아닌 라마르조꼬였다면? 하는 일말의 아쉬움.
  • 카페 보통 포 미 - 이태원에 갈 일이 있다면 카페는 보통. 
  • 카페 보통 가는 길 -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1번출구 이용. 육교를 건너 언덕길을 따라 이태원을 향하는 길로 올라가다 보면 카페 보통이 보인다. 이태원역에서 나올 경우 역시 1번 출구를 이용. 녹사평역으로 가는 방향에 언덕길이 보인다. 쭉 따라 올라가다보면 보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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