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모텔에서 글을 쓴다. 외출과 외박때마다 느끼는 이질감은 어디로 여행하든 날 설레게 하지만, 아무래도 모텔은 기분좋게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또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글을 쓸 수 있는 곳도 없기에 이렇게 글을 쓴다. 장항으로 가는 기차 시간이 얼마 안남았기에 길게 쓰진 못할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잠시나마 정리해두어야 할것 같다.

 

 

 

1. 장한나

 

장한나가 훌륭한 뮤지션이라는 것은 그녀의 공연 동영상을 볼 때마다 느낀 부분이다. 온갖 인상을 쓰며, 땀을 흘려가며 첼로와 하나가 된 듯이 음악에 홀려 연주하는 영상을 보다보면 나도 같이 흥분을 하게 된다.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다보니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게 되고, 장한나의 인터뷰도 접하게 된다. 매번 자신이 녹음한 음악에 대해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선택해 설명하는 부분, 자신이 음악가로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그녀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음악 감상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2-3년 전 문을 닫은 한 가게에서 장한나가 정기적으로 자선연주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음악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이야기한 짧은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녀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을 발견했다.

 

숙소에선 혼자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많다. 얼마 전 복구한 아이팟 클래식(160G)에 음악을 가득 채웠고, 손이 가는대로 음악을 고르고 집중해 듣는 일은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다. 어느날 장한나가 연주한 첼로협주곡을 발견한 것도 이것저것 찾아 듣다가 일어난 일이다.

 

'주로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나 그 외의 낭만시대 음악을 주로 연주했지만, 바로크 음악도 정말 좋아합니다.', '비발디의 매력은 뭐랄까요, 독주악기가 혼자 연주를 하기보다 그룹이 되는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혼자 튀어나가지 않으면서도 오케스트라와 주고 받는 하모니는 이 협주곡의 매력이죠.', '긴장감입니다. 엄청 느리지만 강한 긴장감을 가지며 흐르는 물결을 생각해 보세요. 그 위로 첼로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날아다닙니다.'

 

영상은 장한나의 설명이 끝나면 하나의 연주영상을 보여주고 다시 장한나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그런식이다. 너무나 신나서, 어쩔 줄 모르며 자신이 녹음한 음반에 대해 설명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너무 아름답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가 멋있어 보인건, 데이먼 알반이 록페스티발에서 뛰놀때 뿐인 줄 알았다. 오케스트라 속에 둘러쌓여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2. 목욕탕

저번 주에는 집에 올라갔었다. 오랜만에 주말 아침에 목욕탕에 들렀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늘 가던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다른 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렸을 적에 다녔던, 그러니까 지금 찾아가는 목욕탕이 생기기 전 부터 있었던 오래된 목욕탕을 찾았다. 빨간 벽돌과 때 묻은 하얀 기둥이, 한눈에도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것 처럼 보이는 외관을 지닌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나는 순간 10년전의 그 곳을 상상하게 됐다. 달라진건 입장권 가격뿐. 매표소 아저씨는 그 얼굴 그대로 주름이 지고 흰 머리가 됐다. 커다랗게 남탕이라 쓰여져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10년 전의 그 모습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곳을 보면서 나는 잠시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변한 게 있다면 모든 것이 낡았다는 것이다. 이발소 아저씨, 이발소 의자, 지금은 보기 힘든 분홍색과 하얀색 체크무늬의 수건, 코딱지만한 사우나. 가장 하이라이트는 달력이었다. 고추 아가씨 그러니까 그것도 한 20년 전에나 뽑혔을 법한 그런 아가씨가 매혹적인 포즈로 자리잡고 7월이 여름임을 알리는 그림이었다. 요즘에도 저런 걸 파나. 목욕탕에는 그날 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근처의 대형 목욕탕이 정기 휴일이었으니.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목욕탕에서 느꼈던 그 오묘한 기분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변한 건 나 뿐인 것 같은 느낌. 아니,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 오랜 시간동안 세월의 흐름속에 낡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 곳은 이렇게 낡은 유물처럼 살아있을까.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내가 그 곳을 가지 않은 것은 때밀이 때문이었다. 아버지 없이 혼자 목욕탕에 갈 때면, 어머니는 늘 나에게 오천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며 때밀이 아저씨한테 때 밀고 음료수도 사먹고 오라고 하셨다. 그 목욕탕엔 그렇게 매주 나의 때를 밀어주던 때밀이 아저씨가 있었다. 모든 이가 동경하던 최신식 시설을 갖춘 24시 목욕탕이 생겼음에도 그 곳을 찾던 이유는, 그 아저씨와의 친분 때문이었다. 하지만 날로 줄어가는 손님에 월급을 받지 못한 그 아저씨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것도 모르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가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옆 건물의 큰 목욕탕을 가게 됐다.

매번 무심코 그 목욕탕 앞을 지나면서도 그곳의 존재가 이렇게 신비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휴가의 복잡한 마음과 어렸을 적 느꼈던 그 기분이 낡은 목욕탕의 냄새와 어우러져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만들어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지냈으며 그것들은 지금 얼마만큼 낡았을까. 당분간은 휴가때마다 그 목욕탕에 가야겠다고, 따사로운 햇살에 살짝 졸고있던 매표소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리며 나는 그곳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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