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을 트럭운전에 비유한 바 있다. 솔로 연주가 세단을 운전하는 것이라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건 엄청나게 큰 트럭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움직임은 둔하지만 그것을 운전하는 운전자의 손놀림은 그 누구보다도 세심해야 한다고.
나는 줄곧 지휘자를 포수라고 생각해왔다. 야구를 처음보는 사람은 포수를 그저 공을 받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포수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할 곳을 말해주어야 하며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마주보는 사람으로서 수비수를 전체적으로 지휘해야 한다.
지휘자의 역할이 좀처럼 이해가 안간다면 두다멜을 찾으면 된다.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엘 시스테마'를 통해 데뷔한 두다멜은 드물게 어린나이에 지휘자로 성공을 거뒀다. 1999년, 18세의 나이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지휘 콩쿨을 휩쓸며 스타가 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레틀 등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후원을 받은것을 시작으로 그는 2007년 정명훈이 지휘했던 예테보리 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를, 2009년엔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 음악감독을 맡게 됐다.
처음 두다멜의 영상을 봤을 때, 나는 지휘자가 매력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야구를 보며 어느순간 포수의 역할을 깨닫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가령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 영상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지휘다.
두다멜의 표정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또 하나의 도구다. 다음에 나올 멜로디가 얼마나 신날지 알고 있다는 듯 개구장이처럼 지휘한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구제된 빈민가의 아이들은 그의 지휘 아래 하나의 음표가 된다. 축제와 같은 연주는 모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절정에 이르러 폭발하는 이 영상만큼 두다멜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을까.
얼마전 PBS에서 방영하는 Great Performance라는 프로그램에서 두다멜이 등장한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그리고 친구인 후안 디아고 플로레즈와 로시니의 곡을 연주한 공연이었다. 줄곧 유럽 혹은 미국이 주도해왔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남미 출신의 지휘자가, 솔리스트가 무대를 휘어잡는 장면은 이 영상이 가진 매력포인트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멕시코 출신의 작곡가 아르투로 마르케즈의 Danzon No.2다. 두다멜은 이 노래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후안 디아고는 이 노래를 듣다보면 쿠바의 작은 바가 생각난다고 한다. 어딜봐도 남미의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단원들이 두다멜의 지휘아래 연주를 시작하는 장면은 설명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풍경을 만들어준다. 이미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많이 들려준 곡이지만, 더욱 성숙한 멜로디로 연주되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Danzon도 충분히 매력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두다멜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앙코르곡을 들어보자. (5분부터)
두다멜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연주를 시작한다.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후안 디에고를 놀려먹는다. 마구마구 느리게 연주했다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 오케스트라를 숨겨버린다. 얼마나 오케스트라가 유쾌해질 수 있는지, 그는 보여주고 있다. 두다멜은 훌륭한 트럭 운전수며 전설에 남을 포수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으며 지휘자는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수 많은 영상에서 말해주고 있다.
얼마전 친구가 자신은 고전음악을 즐겨 들으면서도 아직 지휘자에 따라 뭐가 달라지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길 했다. 물론 누구나 들어도 알법한 훌륭한 지휘자의 연주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두다멜의 영상을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어쩌면 두다멜은 그 친구에게 좀 더 확실한 답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라는 영화를 보다보면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두다멜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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