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는 두 잔의 커피가 있다.


아침(혹은 저녁), 하루의 근무를 혹은 남은 끝자락을 버티기 위해 마시는 커피

온전한 퇴근이 있는 저녁, 남은 하루를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마시는 커피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두 잔의 커피가 모두 의미있지만, 당연히 후자가 더 맛있지.

 

논현동 사무실로 출근한지 1년, 성의없게 쭉쭉뻗은 강남의 대로변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커피였다. 강남에서도 꽤 비싼 임대료를 자랑하는 대로변에 사무실이 있는데, 이런곳이라면 어떤 카페도 살아남기 힘들었을듯 싶다.


강남역에 릴리브가 생겼다는 소식은 가뭄에 단비였다. 이제 강남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것인가! 물론 퇴근후에 강남역을 가는 일은 최악이다. 압구정에서 신사까지 꽉 막힌 버스, 콩나물 시루같이 사람들이 가득찬 거리. 퇴근후에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보면, 이게 사는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맛있는 커피라면 가야하지 않겠는가. 하늘은 높고 미세먼지는 살찌는 가을의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릴리브에 도착한다.

 

 

 

플랫화이트를 시킨다. 점원은 묻는다. '아이스로 드릴까요?'

다시 무더워진 날씨덕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네'라고 대답한다. 아 실수했네. 

다른 음료에 비해 우유의 양이 비교적 적은 플랫화이트는, 되도록이면 따뜻하게 마시는게 좋다. 아무래도 많지않은 우유와 커피에 얼음까지 녹아버리면 커피맛은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일전에 인테리어 짱짱한 카페에 들러 플랫화이트를 아이스로 시켰다가 절반은 버렸던 기억이 난다. 어쩔수 없지. 후루룩 들이키면 되겠지. 


플랫화이트는 보통 150ml 남짓의 작은 잔에 나온다. 유행처럼 작은 유리잔에 담겨 나오기도 하는데,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아무래도 유리잔의 단가가 높지 않고, (조금)멋있어 보여서 그러는게 아닐까하고 추측해본다. 릴리브에서는 작고 귀여운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가 나온다. 받자마자 성급하게 한 모금 후르륵. 개업초기보다 배전도가 살짝 올라 고소함이 더 강해졌다. 강남역 멋쟁이 언니 오빠들 사이를 비집고 3층으로 올라간다.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높은 곳에서 바라도면 더 신기한데, 언덕배기 끝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은 끝임없이 쏟아지는 폭포같기도 하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얼음은 녹는다. 그럼 오늘도 실패인건가, 하며 후루룩 한모금을 마신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래도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빠르게 마실것을 권장한다. 얼음이 녹아서 맛있는 커피는 많지 않으니까. 


플랫화이트, 피콜로, 코르타도, 마끼아또. 이름도 복잡하다. 각각의 메뉴가 무얼 의미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대략의 정의는 있지만 쉽게 확답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심지어 매장마다 레시피도 조금씩 다르니까 말이다. 당신이 마신 한 잔의 커피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커피를 만든 바리스타 밖에 없다. 물론 추천하는 방법은 따뜻한 커피는 식기 전에, 아이스커피는 얼움이 녹기전에 후딱 마시는 것. 질문이 많으면 커피는 맛없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선 다시 여름이 돌아온듯 사람들의 땀냄새가 가득하고, 버스에 내려 멀리 바라본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다. 그래도 오늘은 퇴근후에 한 잔의 커피가 있으니 얼마나 평화로운가 하며 집으로 향한다.

 

 

 

릴리브 강남점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102길 21

평일 0800-2300 / 주말 1100-2300

 

 

 

 

뱀발.

북 콘서트를 합니다. 10월 2일이고, 와우북 페스티벌의 행사 일환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링크를 붙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onoffmix.com/event/7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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