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몽타주, 블랜드 센스엔 센서빌리티(Sense & Sensibility), 비터스윗라이프(A Bitter-Sweet Life)
커피 몽타주의 두 블랜드의 이름은 각각 이성과 감성, 비터스윗라이프입니다. 이성과 감성은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을 떠올리게 하고, 비터스윗라이프는 록밴드 더 버브(The Verve)의 히트곡 비터스윗심포니(Bittersweet Symphony)를 떠올리게 합니다. 커피와 동봉된 설명서에서 센스엔 센서빌리티 블랜드는 이성과 감성을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고 했으며 비터스윗 라이프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보여주는 블렌드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의 이성과 감성, 인생이 커피의 단맛, 쓴맛, 신맛으로 변신한거죠. 저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 이 어려운 문제를 커피에 담아서 풀어냈다니 패키지를 뜯기 전 부터 기대가 커집니다.
이성과 감성 블랜드입니다. 쉽지않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블랜드는 케냐 가톰보야(Kenya Gatomboya), 예가체프 코칸나(Yirgacheffe Kokanna), 니카라과 산타 헤마(Nicaragua Santa Hema)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케냐 가톰보야는 케냐식 워시드 프로세스를 거쳤고 오렌지, 블랙커런트, 자두의 향이 매력적인 커피입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나와있는 맛들이 케냐의 테이스팅 노트와 겹치는걸로 보아 이 블렌드의 중심이 되는 커피가 케냐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좋은 케냐들을 맛이 맛보았기에, 가톰보야의 활약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
패키지에 별다른 정보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동봉된 안내문과 홈페이지에는 로스팅 포인트와 블렌딩 구성, 테이스팅 노트와 에스프레소 추출 가이드가 적혀있습니다. 브루잉 가이드는 홈페이지 ENJOY탭에 그림과 함께 나와있고요.
가스를 배출시키는 패키지는 봉투에 아로마벨브를 달아주는 방법도 있지만, 이처럼 브리스 봉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자그마한 밴드 사이의 틈으로 가스가 배출됩니다.
센스앤센서빌리티는 브루잉과 에스프레소 모두를 겨냥한 블렌드입니다. 우선은 핸드드립으로 추출을 진행합니다. V60드리퍼에 30g/93도/450ml/3분의 추출을 합니다. 첫 모금에서 약간의 탄맛이 느껴집니다. 이후에는 단맛이 걸쭉하게 느껴지고 끝에 쓴맛이 조금 느껴집니다. 오렌지나 자두의 풍미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흡사 과일청을 연상시킵니다. 이런 전반적인 과일맛과 신맛이 여운을 길게 남깁니다. 테이스팅 노트엔 '밝고 달다'라고 하는데, 브루잉된 커피는 밝다기보단 중후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에어로프레스 추출은 커피 몽타주 홈페이지의 레시피를 따랐습니다. 에어로프레스를 뒤집어놓고 18g/90도/90ml+90ml/30초+20초+20초의 레시피로 추출을 진행했습니다. 두번째 90ml를 부을땐 스티어링을 해 주었고, 추출시 소요시간이 20초가 걸리도록 조절을 했습니다. 그림과 함께 있는 세세한 레시피대로 커피를 내리니 맛이 좀 더 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브루잉에서 걸렸던 거친 느낌은 줄어들고 더욱 농축된 맛이 느껴집니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두드러지고 자두, 파인, 오렌지의 느낌도 그려집니다. 핸드드립의 레시피에서 걸렸던 약간의 탄맛과 쓴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핸드드립으로 추출시 위의 레시피보다 온도를 조금 더 낮추고 굵기를 조금 굵게 그리고 빠르게 내린다면 더 맛있는 레시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전에도 브루잉과 에스프레소를 동시에 공략한 블렌드를 마셔봤습니다. 몽타주의 센스엔 센서빌리티 블렌드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진 이런 블렌드 중에서도 가장 높은 완성도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점은 남습니다. 지향성이 모호하다보니 결국 어느정도의 부족함이 생기는 것이죠. 스페셜티 커피의 장점을 잘 이용하여 향미를 더 살리고 밝은 느낌을 강조한다면 브루잉 블렌드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높아지는 브루잉에 대한 관심을 고려하여 핸드드립이나 각종 브루잉틀의 특성을 고려한, 목적이 더 뚜렷한 블렌드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 센스엔 센서빌리티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것 같은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소개할 비터스윗라이프 블렌드는 애초부터 '에스프레소'를 목표로 한 블렌드입니다. 인도 마이소르 너겟 에스프라 볼드(India Mysore Nuggets Exta Bold)와 센스엔센서빌리티 블렌드에서도 사용된 예가체프 코칸나가 6:4의 비율로 사용되었습니다.
로스팅 포인트는 센스엔센서빌리티 로스팅보다 조금 더 진행됐습니다. 2차 크랙 직전에 배출된 비터스윗 블렌드입니다.
이전 추출의 경험과, 원두의 특성을 고려하여 에어로프레스 추출을 진행합니다. 18g/90도/90ml+90ml/30초+20초+20초의 레시피입니다. 추출방식도 센스엔 센서빌리티 블렌드와 동일하고요. 비터스윗 블렌드의 에어로프레스 추출은 쓴맛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뒤에는 은은한 향미와 신맛이 강하게 올라옵니다. 바디감은 묵직합니다. 쓴맛이 지배적이며 다크초콜렛과 슈가브라우닝을 연상시킵니다. 단맛이 밀리는 느낌이 느껴집니다만, 우유와의 결합을 고려한다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맛이기도 합니다. 브루잉으로 마시기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비터스윗 블렌드였습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모카포트 추출을 진행합니다. 에어로프레스 추출보다 단맛이 더 사는 느낌이 드는군요. 오히려 에어로프레스에서 인상적이었던 쓴맛이 줄어든것 같습니다. 우유와 결합했을땐 달달함이 더 강해지고 쓴맛은 마지막에 가서야 느껴졌습니다. 시중에서 사먹는 커피우유같은 맛이 느껴진달까요. 시럽을 섞지 않아도 은은하게 찾아오는 단맛이 매력적이네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레시피를 따라 내린다면 브루잉에서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경험할것 같습니다. 단맛과 함께 쓴맛도 살아나는, 몽타주의 카푸치노가 그려지는군요.
에스프레소 추출 환경에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에스프레소를 목표로한 블렌드를 테이스팅 하는건 한계가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에스프레소를 위한 블렌딩인 비터스윗라이프 블렌드의 경우는 더 그렇고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반적인 느낌만 참고하시길 권장합니다.
앞서 브루잉과 에스프레소 추출을 동시에 고려한 블렌드에 대해 언급한바 있습니다. 몽타주의 커피는 브루잉을 위한 블렌드로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런 목표를 가진 원두를 맛볼때마다 이것이 블렌드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에스프레소 추출에서 이 블렌드들이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브루잉 추출에 있어서는 블렌드가 가지는 강점이 도드라지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 오직 핸드드립과 브루잉을 위한 블렌드를 수년간 연구하고 있는 카페 몇 곳이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그 카페의 블렌드 들에선 다양한 스페셜티 원두의 결합이라는 이미지보다 카페와 로스터를 연상케 하는, 그 카페에 들어서야만 느낄 수 있는 오래된 바의 향기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카페에선 들어서자마자 '블렌드 한 잔'이라는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죠.
몽타주의 커피에서 아쉬움을 느낀다면 이런 카페의 모습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사는 제 취향 때문일수도 있단 생각을 합니다. 역시 취향의 문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