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포스팅입니다.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숨겨두었던 글로 올해를 시작하게 됐네요.
바리스타들은 멋있어 보입니다. 주문과 동시에 뚝딱 커피나 나오는걸 보면, 그들이 하는 일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은 종종 바리스타에 대한 오해를 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바리스타가 누구나 조금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또한 쉬워보이는 추출과정때문에 손님들을 상대하는것도 벅차지 않을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커피를 추출하는 일은 보이는 것 처럼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가령, 에스프레소 추출만 해도 그렇습니다. 바리스타는 출근하자마자 몇번의 추출을 합니다. 그 날, 손님들을 맞이할 원두의 상태를 체크해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일은 예민한 원두의 상태를 파악하는것부터 시작합니다. 언제 로스팅이 됐는지, 얼마나 바스켓에 담아야 하는지, 탬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추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한 잔을 만드는데는 엄청난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업중에도 지속적인 추출로 인해 커피 맛에 변화가 생긴건 아닐지, 바리스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커피는 취향의 음료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추출한 한 잔의 커피도 누군가의 입맛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손님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조용히 커피를 남기고 가는 손님이 있다면, 바리스타에게 항의하는 손님도 더러 있습니다. 바리스타들은 손님들의 미세한 반응부터 체크해가며 다른 주문들을 소화합니다. 손님들이 나간 후, 마감을 하는 일은 바리스타가 해야하는 또 다른 일입니다. 커피 기구들은 민감합니다. 특히 에스프레소 머신은 예민하기 이를데 없죠. 바리스타들은 설거지부터 시작해 매장 청소 그리고 정산까지 하는게 보통입니다. 카페가 11시에 문을 닫는다면, 그들이 카페 문을 닫는 시간은 적어도 12시.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나가거나한다면 퇴근은 훨씬 더 늦어집니다. 바리스타들은 근무시간동안 바(bar)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근무하는 내내 서 있어야하고, 손님의 민감한 반응에 항상 친절한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민감한 미각(혹은 감각)을 유지하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휴식을 하기 위해 카페를 찾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은 커피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바리스타들에겐 남들이 쉬고 노는날이 더욱 고단합니다. 충분한, 일정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들에겐 매우 힘든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도 바리스타의 근무여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홍대 인디뮤지션 못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은 일하고 커피를 내립니다. 실력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훌륭한 프로 바리스타들이 파트타이머의 시급과 다르지 않은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시급은 두번째 문제입니다. 마음놓고 커피를 만들수 있는 환경또한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도제방식으로 직원을 교육하는 카페가 점점 줄어들곤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오너에게 커피맛에 대한 솔직한 조언은 금물이죠. 수 년간 커피를 만들어오고, 마셔왔지만 그들의 조언은 달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최선의 추출을 꿈꾸는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과도한 친절을 요구합니다. 추출하는 와중에 말을 거는것은 예사입니다. 바리스타들은 언제나 준비된 웃음과 답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시미를 든 일식 조리사에겐 말을 걸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리스타들은 추출을 하는 순간에도 웃으며 손님들과 대화를 합니다.
추운 겨울, 친하게 지내던 한 바리스타가 문자로 해고당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쪽의 이야기만 들었다는 점에선 분명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을겁니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것도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바리스타가 어떤사람들인지 얘기 하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바리스타들은 가장먼저 카페에 나가 가장 늦게 마감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카페와 커피에 애착을 가진 분들입니다. 한 잔, 한 잔, 허투로 내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쉬는날이면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를 사랑합니다. 항상 최선의 환경에서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려주는 어떤 커피라도 전 즐거이, 행복하게 마십니다.
한 잔의 커피를 위해 그들이 들인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지난 겨울의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커피는 커피와 바리스타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상호작용을 통해 탄생합니다. 올해에도 바리스타들은 매일 커피와 고군분투를 할겁니다. 맛있는 커피에 귀를 기울이고 한 잔의 노력에 관심을 가지는 손님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커피 추출이란 말은
그것이 간단한 과정이라는 환상을 낳게 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많은 가변요소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그들 모두 맛있는 음료로써 추출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히 제어되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은 일련의 작은 생각을 통해
자연의 비밀에 조금씩 다가간다고 한다.
이들 작은 생각은 때때로 과학적인 방법이 된다.
by Ted R Lingle
'커피 견문록 > 커피와 영수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리스타의 노동과 건강 (6) | 2013.03.17 |
---|---|
리브레 커피세미나; 대학로, 학림; 다동, 다동커피집 (0) | 2012.11.07 |
커피 장사 (1) | 201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