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따르는 형이 있다. 와인 마니아인 그 형 덕분에 나는 종종 내 처지에 맞지 않는 호사를 누릴 때가 있다. 형이 자주 가는 와인바에서 취하도록 와인을 마시는 것이다. 종종 그렇게 와인을 마실때면, 형은 나에게 와인 선택권을 주시곤 한다. 와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형은 조언을 해 주신다. 와인 라벨은 대부분 신중하게 디자인된 것이니, 맘에드는 라벨이 있다면 맘에드는 디자인을 찾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번 그렇게 와인을 골랐다. 놀랍게도 그 와인에선, 라벨의 디자인과 유사한 맛이 났다.


Flotation Toy Warning - Bluffer's Guide To The Flight Deck



앨범 아트웍도 마찬가지다.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앨범은, 항상 그에 못지 않게 범상치 않은 음악이 들어있었다. Flotation Toy Warning의 앨범 자켓이 그렇다. 왠만해선 선택하지 않을 범상치 않은 배경색에,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날라다니는, 우울해 마지 않은 그림이다. 이상한 그림이다. 하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왠지 정이가는, 그런 느낌이다. 엘리엇 스미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클럽에서 추천 받은 이 앨범은, 한동안 내 아이팟 클래식에 담겨져있었다. 아이팟 클래식을 사용해 본 사람들이면 알겠지만, 용량이 무척이나 커서(80GB, 160GB)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하드에 있는 음악을 죄다 넣어서 듣는다. 나도 그런 사람중에 하나였고, 우연히 추천받은 그들의 음악도 당연히 들어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야자시간이었을 것이다. 별 생각없이 이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이상한 물소리도 나고, 정체불명의 악기 소리도 들리고.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무심코 넘기려던 음악은 2번, 3번 트랙을 지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였다. 잠시 집중해서 들어보자던게 한 앨범을 다 들어버렸다. 8번트랙을 지났을 때 즈음엔 감탄과 감동만이 남아있었다. 눈물도 조금 흘린 것 같았다. 한 편의 소설같은, 전위적인 그들의 연주는 나를 빨아들여버렸다. 그 후로 나는 음악만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주로 이 앨범을 들었다. 그들의 음악은 한 편으론 감동적이면서도 한 편으론 우울한 감도 없지 않아 있어서 쉽사리 딴 일을 하며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밴드는 뭐하는 밴드인가 싶어 구글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통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영국출신의 밴드이며, 2001년 결성됐고, EP 2장을 제외하곤 정규앨범은 2004년의 Bluffer's Guide To The Flight 
Deck 뿐이라는게 전부였다. 음반을 꼭 사고 싶었으나 국내에선 수입조차 안된 곳이 많았다. 있어도 대부분 품절이었고. 미국에 여행갔을 때도 몇번이고 레코드에 들러 찾아봤지만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최근에 다시 이 밴드의 음악을 들을 일이 있었다. 그리곤 다시 너무나 밴드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 다시 구글링을 해 보았다. 역시 비슷한 정보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이들과 같은 음악을 Space Rock라고 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Flotation Toy Warning은 챔버팝과 스페이스록의 중간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록이라니. 우주음악이라니. 역시, 범상치 않은 이유가 있었다. 스페이스록의 기원에 대해 찾아보니 프로그레시브록과 사이키델릭의 중간지점 정도라는 설명이 있었다. 유난히 신디사이져의 활약이 돋보였던 것 보면 그럴것 같기도 했다. 우주록이라니.

범상치 않은 이들의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룹도 몇 개 찾았다. Mercury RevGrandaddy, Sparklehorse,
The Unicorns가 바로 그들이다. Mercury Rev 는 Deserters Songs라는 앨범이 '록역사를 빛낸 앨범'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밴드였다. 하지만 나머지 밴드들의 인지도는 Flotation Toy Warning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 모두의 앨범 아트웍은 범상치 않았다(아래 참조).

와인도 라벨 스타일에 따라 나누다 보면 비슷한 품종끼리 엮이는 경우가 많다. 음악도 그런 것 같다. 범상치 않은 커버를 가진 음반들은 대부분 비슷한 음악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범상치 않은 아트웍에, 음악에 빠져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한 하루였다. 와인이나 음악이나 품종과 장르를 나누는게 사실 무의미할 수도 있다. 맛있으면 좋은거고 듣기 좋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우주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누구보다도 쉽게 하나의 밴드군(?)을 소개시켜줄 수 있는 것처럼 장르를 따지는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힘들게 모아놓은 우주록 음악들을 윈엠프에 모두 걸어놓고 바닥이 울릴 정도의 볼륨으로 한참동안 들었다. 반복되는 사이키델릭함은 나를 우주로 데려다주었고, 한동안 나는 가슴이 둥둥 마음이 둥둥 정신이 둥둥 우주속을 헤매다 내려왔다.

The Unicorns - Who Will Cut Our Hair When We're Gone

The Unicorns - Who Will Cut Our Hair When We're Gone

Mercury Rev - Deserter's Songs

Mercury Rev - Deserter's Songs

Sparhorse - Good Morning Spider

Sparhorse - Good Morning Sp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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