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지만, 오늘 밤이 아니면 쓰지 못할 이야기일 것 같아 자지 못하고 글을 쓴다.



타이틀 넘버인 "Song for my father"는 불가사의한 존재감을 지닌 곡이다. 리듬의 바탕을 보사노바인데, 묵직하고 끈적하고 어두운 색 필터가 끼여있어, 당시 유행했던 스탄 게츠의 세련되고 도회적인 보사노바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버지는 포르투칼 출신의 흑인이었다. 호레이스가 어렸을 때, 곧잘 동네 사람들은 악기를 들고 자기들끼리 모여 세션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런 정겨운 뒷골목 냄새가 음악 구석구석에 푸근하게 배어있다. 하드 밥도 아니고 펑키도 아닌 호레이스 실버의 개인적인 세계가 선명하게, 다소는 마술적으로 전개된다. 멜로디는 뚝뚝 끊어지지만, 속은 꽤 깊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


재작년 9월쯤이었던가, 라디오 방송 녹음 때문에 재즈 관련 책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재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무했던지라, 도서관에서 되는대로 책을 빌려 읽었던 기억이 있다. 빌렸던 책들은 이해못하는 말로 가득했다. 하드 밥이니, 펑키니하는 말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는 거의 유일하게 인상깊게 남은 글이었다. 당시 라디오의 소재가 소니롤린스였기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읽었었다. 하지만 하루키의 글이 인상깊게 남았던지라, 방송이 끝난 후에 나는 다시 그 책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 가장 인상깊었던 소개글은 뭐니뭐니해도 호레이스 실버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처음 호레이스 실버의 음반을 샀을때의 하늘이며, 여자친구의 표정이며, 기분이며 음반에 대해 자연스럽게 적어놓은 글이 인상적이었다. 글에는 아버지와의 추억에 대한 곡이라는 소개가 있었는데, 너무 담백하게 잘 서술하여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전문적인 내용을 소개한다거나, 재즈의 역사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든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아, 이 앨범 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호레이스 실버를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당장에 소울식을 뒤져 호레이스 실버의 음반을 받았다. 그리곤 하루키의 기분을 마음에 한 가득 담고 곡을 듣기 시작했다. 둥 두두, 둥 두두. 그가 말했던 것 처럼 묵직하고 어두운색의 보사노바였다. 하지만 흥겨움이 담겨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호레이스 실버가 동네 사람들과, 아버지와 함께 모여 연주를 하는 모습은, 이내 내 추억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낡은 턴테이블에, 먼지가 묻을라 조심스레 LP판을 옮겨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건 그 때부터였다. 하얀 메리어스에, 체크무니 반바지를 입고 신나게 춤을 추던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나도 술에 취한 듯 함께 춤을 추었던 기억이 호레이스 실버의 연주 넘어로 스멀스멀 찾아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에 대해 억지로 안 좋게 생각하는건 아니다. 좋은 추억이 별로 없다는 게 사실일거다. 아버지와 목욕탕을 갔던 적은 딱 2번. 야구장도 역시 두 번. 그리고 잠수교를 함께 걸었던게 인상깊은 추억이라면 추억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아주 어렸을땐, 아버지가 집에 있는 일이 많아서 같이 춤을 추었던 기억도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모습이 강하게 떠올랐다. 왠지 음악을 멈추고, 아랫층에 내려가면 낡은 턴테이블과 LP와 음악과 아버지가, 내가 기억했던 모습 그대로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목표를 세운건, 돈을 조금씩 아껴서 한 달에 한 장의 시디를 사자는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 호레이스 실버의 LP를 구입했다. 턴테이블이 있지는 않지만 LP를 구하고 싶었다. 하루키가 느꼈던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보너스로 시디가 동봉돼있던 덕분에, 내 방의 작은 컴포넌트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LP로 호레이스 실버의 음악을 듣고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는 음악에 맞춰 쿵따따.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쿵 따다 쿵 따다.
음악이 흐르면, 나는 아버지와 춤을 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음악이 뭔지 가르쳐 주었던, 인생이 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해 주었던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몸 속에, 마음 속에 깊이깊이 간직해 둘 것이다.

쿵 따다 쿵따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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