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단지 커피가 맛있고 중독성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커피는 사람이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을, 생각을 가지고 있듯이 다양한 향과 맛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더 중요한건 커피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사로잡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커피를 볶을때 혹은 그라인딩 할 때 풍기는 독특한 향미, 커피를 마시며 함께 하는 생각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나누는 잊을 수 없는 대화들,
커피를 마실 때 듣는 음악, 심지어는 비 오는 날 음악과 함께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그리고 그 분위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 때문에 난 커피를 좋아한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바삐 살고 있다보면 갑갑함을 느낀다. 매일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일상일이지만,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답답해지고, 더 이상 뭐든 해 나갈 힘이 없어진다.
그럴 땐, 주저하지않고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다 집어치우고 커피하우스로 달려간다.
그리곤 말한다. 이제야 숨을 좀 쉴 수 있겠구나, 이제야 생각을 좀 할 수 있겠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늘을 바라 볼 시간도 없이 빠르게 걷고,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없이 너무나 많은 일들에 치여사는 삶이, 광부가 진폐증에 걸려가듯 내 호흡기에 수많은 인생의 찌꺼기들을 남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건, 커피하우스에 달려가면,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건 나와 같은 이유로 혹은 다른 이유로 커피하우스를 찾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각자의 삶에 대해 터울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들을 나눈다.
함께 웃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가슴에 조그마한 숨통을 만들어준다.
처음 미국에 와서 가장 답답했던 일이 그렇게 소중한 커피와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커피야 근처 스타벅스를 가든 맥도날드에 가서 2달러짜리 커피를 마시든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나를 둘러싼 혹은 커피를 둘러싼 그 모든것들이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커피를 마셔도 마치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기분이었다.
물론 미국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고, 바쁜 일상에 치여 살 일이 없었기 때문에 숨쉬기는 비교적 쉬웠지만, 커피하우스에 가지 못한다 생각하니 왠지 마음 한 구석이 허허해졌다.
기껏해야 여기서 생활하는건 두달이지만, 가끔은 한국이 많이 그리워진다.
친구들도 많이 보고싶고,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던 일들이었지만 다시금 그것들을 마주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운건, 그렇게 팍팍한 삶에 그래도 쉼표를 찍어주곤 했던 커피하우스다.
여기서의 일정도 마무리 되어가고, 집에 갈 짐도 슬슬 싸고 있으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커피하우스에서 맡았던 잊지못할 향내가 나오고 있다. 아마도 한국에 도착하면, 바로 그곳에 달려갈지 싶다.
Intelligentsia Coffee&Tea, Los Angeles, CA
그냥 이곳저곳, 시간 나는대로 좋은 커피하우스들을 찾아보려고 계획했던 여행들이,
이 먼곳 LA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번 US 바리스타 챔피언쉽에서 1등을 차지했던 Kyle이 소속되어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내가 찾아갔을땐(사실 사인좀 받아보려고 빳빳한 A4용지 2장과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잘나오는 펜을 하나 챙겨갔었다.) Kyle은 인텔리젠시아 시카고점에 가 있었다. 한 바리스타는 우리가 Kyle에 대해 묻자 자신도 그 못지 않게 커피를 잘 내릴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함께 간 사람들에게 커피 한잔씩 쥐어줬고, 한국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함께 커피를 마셨고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보는 커피하우스의 풍경이,
커피향을 맡으며 함께 웃고있던 그 모습들이, 나를 너무 기분좋게 만들어주었다.
그래,
한국에 돌아가면, 소중한 사람들과 다시 그곳을 찾아야지
그리고 다시 쉼표를 찍어줘야지
뱀발.
누가 그러는데 언니네 이발관은 정신건강에 해롭단다.
생각해봤는데 커피도 비슷하다. 마실땐 마냥 좋다고 마시는데,
분명 몸에 해로운 성분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너무 기분이 좋아 하루종일 언니네를 들었는데,
저녁에 잠자리에 누울때 즈음 되어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우울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마도 듣는이의 마음을 건조하게 만들어버리겠다던 석원옹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덕분에 몇일 언니네를 안듣고 참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터져버렸다. 커피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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