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속으로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산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을 마약중독자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등산가의 계속된 등산을 도박에 비유한다. 그리고 짜릿한 흥분과 쾌감을 얻기 위해 모든것을 걸고 산에 오르는 모습이 무모하다고 지적한다. 1996년, 상업 등반대에 비용을 지불하고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밟았던 존 크라카우어는 등산이 마약이나 도박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희박한 공기속에서, 눈과 얼음 그리고 돌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자연에서 사투하는 일은 오히려 고독한 수련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한다.
산을 오르는 순간 그들은 모든것을 인내한다. 협곡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네팔의 아름다운 풍경과 해발 5천미터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밤하늘은 찰나의 쾌락일뿐이다. 희박한 공기는 사람의 신체를 극한의 상태에 몰아넣는다. 체지방과 근육은 날이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음식물을 소화하는 일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힘들어지기만 한다. 산을 오르며 생긴 상처들은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머리에 물을 묻히는 일이 금지된 고산지역에선 씻는일조차 제한된다. 먹고 배설하는 일은 살기위해 가까스로 해내야만 한다. 기온은 영하 40도에서 영상 30도를 오르내린다. 정상을 오르는 길을 맞이하는건 그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던 산악인과 셰르파의 얼어붙은 시체와 빈 산소통뿐이다. 스스로의 존재조차 인식할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은 정상을 밟고, 목숨을 건 하산을 시작한다.
해수면의 절반 혹은 삼분의 일밖에 안되는 공기는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가장 위험할수도 있는 순간,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은 사람들을 본능과 맞서게 만든다. 산을 오르는 일에 있어서는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어드벤처 컨설턴트 등반대-존이 속했던 등반대- 대장 로브 홀은 끝끝내 캠프로 찾아오지 못했다. 불과 1년전, 정상을 100m 앞두고 돌아서야했던 우체국 직원 한센을 위해서라도 로브 홀은 끝가지 산에 남아 있어야 했다. 함께 등반을 했던 고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정상을 향했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는 눈보라 사우스콜-마지막 캠프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이르는 구간 중 하나-을 떠날 수 없었다. 희박한 공기속에서 그의 판단력은 본능에 의존했다. 10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그는 결국 캠프로 내려오기를 거부했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정상을 밟고 가장 먼저 하산했던 존 크라카우어는 마지막 캠프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희박한 공기속에서 판단력을 잃고 침낭속으로 쓰러졌다. 그는 그날 정상에 올랐던 다섯명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글렌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글렌굴드는 1955년과 1981년, 두 번의 골드베르크를 녹음했다. 두 녹음의 차이는 '아리아 Aria'에서부터 도드라진다. 1981년의 아리아는 1955년 버전보다 연주시간이 두 배 정도 길다. 평소 건강 염려증 때문에 약을 밥먹듯이 챙겨먹듯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건강악화는 건강염려증에 기인한다. 과도하게 챙겨먹은 약들로 말미암아 1981년 굴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몸의 일부가 마비되고,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말년의 굴드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그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한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통통부은 얼굴을 본 지인들은 그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1981년의 골드베르크 녹음은 굴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속되는 마비증세를 이겨내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자세를 교정하고(더 안좋은 자세로 변하기도 했다), 마비증세를 이겨낼 방도를 찾아보았다. 신기하게도 골드베르크를 녹음할 즈음에는 마비증세가 거의 회복되었다. 성숙한 글렌굴드는 그가 깨닳은 모든것을 담아 새로이 골드베르크를 녹음했다. 그의 연주가 느려진건 정상이 아닌 몸상태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수학적으로 잘 짜여진 곡의 구성을 최대한 드러내기위한 의도였다. 1981년 4월과 5월, 굴드는 여섯 차례의 녹음을 통해 마지막 골드베르크를 녹음하기에 이른다. 그의 연주는 실제로 마비증세를 겪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만큼 유려하고 부드러웠다. 가장 극한 상황에서, 죽음을 앞두고 연주했던 그의 연주는 오히려 편안했고, 아름다웠고, 황홀했다.
1955년의 독특한 골드베르크와 굴드 특유의 연주에 대한 태도는 많은 이가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무더운 여름에도 차안에서 히터를 틀고 코트와 장갑으로 무장했던, 극도로 예민하고 지나치게 자주 연주회를 취소했던 그의 모습은 매번 독특한 모습으로 관심을 받으려 한다는 오해를 샀다. 연주에 대한 집착과 자기애는 많은 여인들과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성애자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외적인 모습은 항상 많은이에게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피터 F. 오스왈드는 독특했던 굴드의 모든 행동들은 결국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착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연주에 있어서 굴드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는 항상 그만의 연주를 하고 싶어했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그 외의 일들은 모두 부수적이었다.
미쳐야 미친다 不狂不及
살다보면, 삶의 목표가 불분명해지고 의지가 박약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우리의 삶은 대게 그렇다. 적당히 미치고 적당히 살아간다. 부끄럽거나, 의지가 부족하거나. 우리는 미치기를 거부한다. 끓어오르는 열정과 삶에대한 의지는 늘 현실에 부딪혀 무너진다. 타협할줄 아는 우리의 삶은 길고 건강하다. 오랜 삶의 끝에서 맞이한 죽음은 평온하기만 하다. 목숨을 잃었던 그 산악인들과 글렌굴드는 모두 순수한 미치광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숭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나아갔다. 산을 오르는 일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에 완벽하게 미칠수 있었던 그들은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도 의지를 놓지 않았다. 미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은 짧았고 죽음은 처참하다 할만큼 끔찍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을 이해했다. 미치는 일은 두렵다. 미치는 일은 쾌락을 얻는 일과 마약에 중독되는 일과는 다른 차원이다. 완벽하기 미치는 일은 끊임없는 절제를 필요로한다. 그리고 고독하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미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목숨을 잃었던 그들의 삶과 굴드의 인생이 끊임없이 회자되는건, 그들의 숭고한 광기 때문이다. 오롯이 무엇인가에 미칠수 있었었기 때문이다.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미쳐버린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경이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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