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너무 좋다. 잊혀 가던 케냐 여행기를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날씨 덕분이다. 케냐의 날씨는 딱 요즘의 한국과 닮았다. 한들한들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맑다. 이따금씩 더워진다 싶을 때 즈음, 시원하게 소나기가 내린다. 반팔과 반바지만 입고 있다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 지천에는 과일이 널려있고, 동물들이 뛰어논다.
케냐는 풍요로운 나라다. 언제나 따뜻한 햇볕, 무엇이든 무럭무럭 자라게 만드는 강한 땅, 활기 넘치는 동물, 요리가 따로 필요 없는 훌륭한 과일들!
내 여행기에 케냐 여행에 대한 유용한 팁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우리의 여행은 독특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우리 여행에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담아준다고 해도, 그건 케냐를 여행하는 다른 배낭여행객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행기를 써내려가는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쓴 글을 통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속에 가득 차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의 벽을 조금이나마 무너뜨리고 싶기 때문이다. 오만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케냐가 풍요로운 나라라는 사실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기아, 빈민들은 결국 우리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아프리카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거운 얘기는 여기까지. 필요한 것은 앞으로 절반 이상 남은 여행기를 통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럼 이제 케냐의 파인애플 시티로 여행을 떠나보자!
우리가 여비를 절역할 수 있었던건 마타투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현지인 친구가 먼저 마타투를 잡고, 인원수를 말하며 흥정을 한다. 그렇게 가격이 결정되면 우리는 마타투에 오른다. 갑자기 몰려오는 외국인들에 마타투 승무원은 다시 흥정을 하려하지만, 돈은 이미 지불되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어디를 이동하든 한국돈으로 1000원이상을 들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배낭여행객이 택시를 이용하려면 한번에 한화 1만원-3만원정도를 써야한다.
오늘 가는 곳은, 파인애플 시티에 있는 준이의 삼촌네. 초대를 받아 가는 것이지만, 빈손으로 가는건 예의가 아니므로 마트에 들렀다. 간단한 식료품과 선물을 사들고 파인애플 시티로 출발!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케냐에서는 그냥 차만 타고 있어도 이렇게 볼거리가 많다.
청명한 하늘과, 손에 닿을 듯한 구름. 굽이굽이 나무사이로 뻗어있는 조그마한 찻길. 케냐에선,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길 밖에 없다. 아직은 개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덕이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파인애플 시티. 끝이 보이지 않는 파인애플 농장이 장관이다(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 농장은 아직도 영국 소유. 델몬트가 관리하고 있다. 식민지배의 잔재이다.
파인애플, 한 개에 1천원이 안된다. 너무 달아서 가까이만 가도 향기가 코를 찌른다. 너무 맛있어서 가운데 심까지 씹어먹을 정도. 한국에서 파인애플을 먹을 때 느껴지는 신맛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당도보장, 그 자체이다!
여기가 파인애플을 파는 곳. 저 뒤로 파인애플이 잔뜩 쌓여있다. 파인애플, 한 개 천원이다.
파인애플 시티 주변에 있는 소도시. 준이의 삼촌 사무실이 여기에 있어 잠시 들렀다. 길거리에는 사탕수수와 파인애플을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우리는 파인애플을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초점이 나간 사진이지만 맘에 든다!
준이의 삼촌과 함께!
준이 삼촌네 집으로 가는 길. 넓게 펼쳐진 푸르르른 들판. 그리고 낮게 깔린 구름들. 아름다웠다.
소들도 많이 보이고.
실제로 이곳은 90년대 까지만 해도 기린과 코끼리가 엄청 많았다고 한다. 주거지 개발과 함께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말이다.
그냥 사진기를 들이대도, 이정도는 나온다. 훌륭하다!
드디어 도착. 준이가 집 주변을 둘러보며 우리에게 이것 저것 설명해줬다.
이게 코코넛이야! 라고 말이다.
준이의 사촌동생 왐보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낮가림도 없이 우리와 잘 어울려 놀았다. 어찌나 귀엽던지!
오늘의 촬영담당은 준기!
근데 촬영한 영상들이 다 어디로 갔더라..
점심식사 중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브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왐보위!
오늘의 점심. 콩과 감자가 들어간 토마토 스튜와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 우리가 오기 전, 손수 닭을 잡아 요리를 해주셨다. 워낙에 허기진터라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후식으로 파인애플. 환상적이다. 이건, 정말 말로 표현 못하는 맛이다. 으악! 으악!!!!
이후로 우리들은 파인애플을 엄청 많이 사먹었다. 하루는 아침에는 망고 점심에는 파인애플 저녁에는 바나나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구름을 따라가기로 했다.
우리가 타고온 차량.
점심에 먹었던 닭도 여기에 있었겠지.
왐보위는 집에 있기로 했다.
집을 나서는 골목길. 사람들을 만났다.
멀리 보이는 저 산이 킬리맘보고(Kilimanbogo) 산이다. 킬리는 산, 맘보고는 버팔로라는 뜻이다. 즉. 킬리맘보고는 버팔로의 산이라는 뜻. 산이 너무 높아서 구름이 쉽사리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저 구름을 따라 폭포를 보러기로 했다.
구름도 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구름이 많아진 것을 보니 목적지에 다 와가는 것 같다.
한 층 가까워진 킬리맘보고. 아, 여기서 또다른 상식.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신의 산이라는 뜻이다. 킬리는 산, 만자로는 신이다. 킬리만자로도 높은 산이지만, 킬리맘보고도 꽤나 높은 산. 케냐에서는 3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단다. 4000m가 넘는 산이다.
저 멀리 보이는건, 파인애플이다. 파인애플 시티 답게, 농장에는 파인애플이 끊임없이 보인다. 안타까운건 저게 모두 델몬트 소유의 농장이라는것. 현대판 플렌테이션이다.
구름을 따라왔더니 도착했다. 14 Falls. 이름 참 간단하다. 워낙에 구석에 있는 곳이라 외지 사람들은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마타투, 택시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주로 현지인들이 놀러오는 관광지라 입장료도 저렴하다. 하지만 현지인의 안내 없이는 찾기 힘들다는거!
간판을 따라 들어가고, 또 들어가면...
폭포가 나오기 전에 작은 고개가 있다.
꽤나 깊이 들어간다. 택시를 타고왔더라면, 족히 5만원도 넘게 돈을 냈을 것이다.
이제 킬리맘보고가 손에 잡힐듯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바로 그 구름 밑에 도달한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코너를 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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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Falls가 보인다. 우렁찬 소리도 들린다.
커다라지는 않지만, 감탄을 자아낼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준기는 촬영을 하고!
다이빙을 하는 소년! 점프!
사라졌다.
14 Falls.
하하하
하하하
폭포의 아랫쪽
우리를 태워주신 준이 삼촌의 친구분.
준이 삼촌. 준이와 아프리카 이름이 똑같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1천원 정도에 폭포 하구를 돌아보는 투어를 신청했다.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거라 가격도 싸고, 시간도 1시간 정도 둘러보는 코스라 만족했다!
아래서 보니 더 장관이다!
폭포 아래서 본 풍경
기분이 좋다.
새가 지나간 발자국
폭포 아래느 이런 모습이 있었다. 폭포 가까이 가보기로 결심, 길을 떠났다.
우리가 탔던 배. 정말 말도 안되는 노 하나로 꽤 수심이 깊은 강을 건넜다.
역광이 심해서 아쉬웠다.
역광 + 폭포수 효과
정말 신기한 뱃사공. 저 노는 물 속에 또 저만한 깊이로 이어진다. 자기 키보다 한 4배는 긴 노를 이용해 배를 움직이는 것이다!
폭포 아래의 한가로운 풍경
노를 그만 빠트리고 말았다. 바로 잠수!
금방 떠내려가는 노를 찾아올 수 있었다.
아프리카 쎄매남(쎄끈하고 매끈한 남자)
날이 어두워져 폭포를 뒤로하고 우리는 나이로비로 향했다.
14 Falls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관광지이다. 준이가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준 덕분에, 우리는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파인애플 시티 여행은, 우리에게 파인애플 향기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아쉬운 건, 언젠가 14 Falls도 관광지로 개발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넓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케냐의 땅이지만, 거기서 자란 파인애플은 영국인들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교과서 속에서나 볼법했던 플렌테이션 농업은, 아직도 케냐에선 이뤄지고 있었다. 그들의 땅에서 나는 작물을 그들이 먹지 못하는 부조리함은, 식민지배의 영향력이 아직도 케냐의 농업과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은, 좋은 여행하면서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다음 이야기 : 나이로비 국립 박물관을 가다. 그리고 다시 카후히아, 케냐산으로! 해발 5000m에 위치한 그림 같은 차밭, 그리고 수채화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맥주 한 잔하며 즐긴 냐마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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