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Here? 505호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쎄 정말 얼마나 좋을까? 모르겠다. 
주말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라디오 주파수 100.7MHz에서 내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좀 멋진 일 같은데. 
3명의 친구는 서울시 마포구 지역 공동체 라디오, 
마포에프엠 자원활동가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끼리 우리를 위한 방송을 만들어 볼까?’ 

 


평균나이 23.2세 DJ 5명의 방송, 이빨을 드러낸 20대

교육학을 전공하지만 ‘언론’이 하고 싶었던 너구리(조소나 25)와 불문학을 전공하지만 성적은 ALL F인 양큐(김양우, 22)와 방금 졸업해서 속 시원하기 전까지 머리 복잡했던 늘보(김지애, 24)는 결심을 한다. 뭔가 하고 싶었고, 재미있을 것 같았고, 필요해 보였으니까. 너구리는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오는데,그때 온 학교친구 돼지(유기림, 23)는 요즘 콩트 기획코너 ‘이가는 소리’ 대본을 혼자 다 쓰고 있지. 양큐는 고등학교 때 동네 보습학원에서 처음 만나 독서토론을 했던, 그래서 ‘노란 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라는 책도 같이 썼던 친구 쩌리쪼(조원진, 21)를 데리고 와 드디어 ‘말 더듬기 담당’이 정해진다. ‘이드이’라고 줄여 부르는 ‘이빨을 드러낸 20대’ 첫 방송은 지난해 11월 21일이고, 다들 서로 부끄러워서 죽을라고 하는 이 역사적 순간은 이들의 카페 cafe.naver.com/mapo20에서 들을 수 있다.

인터뷰는 밥 잘먹고 깔깔대며 이야기하다 예쁜 척 하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간지를 고수하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났다. 왠지 ‘너 여기 있는 거 맞아, 듣고 있는 거 맞아?’라고 챙겨주는 이들과 또 수다를 떨고 음악을 듣다보면, 쩌리쪼처럼 뭔가 전환이 일어날 것만 같다. 느리고 조용하게, 음흉하고 압도적으로. 라디오나 한 번 틀어볼까.

▲ 너구리 ▲ 양큐 ▲ 돼지
▲ 늘보 ▲ 쩌리쪼


내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게 맞나. 방송이라고 부담 같은 거 없이 ‘어, 그래. 재미있겠다.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너구리 여성영상집단 ‘반이다’나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의 작업들을 보고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발음 연습이랑 기계 다루는 것 한 달 연습하고 바로 시작했다. 부담은 없었지만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고. 각자 라디오를 하는 이유나 방향이 다 달랐지만 어느 수준에선 합의를 봤고, 그게 기획의도다, ‘20대를 위한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만들자’는.  

쩌리쪼 전공 미학 선택한 것도 양큐랑 얘기하다가 어떤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만나고 책 읽고 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 라디오도 그런 거다. 정 못하면 그만하라고 그러겠지. 하하하.

돼지 3학년 되면 친구들 군대, 교환학생 가고 휴학하고 연락 안되고 허전하다. 나 혼자 심심하다는 자괴가 몰려올 때 라디오가 온 거다.


2월 20일이 개편이었다. 코너가 3분의 1로 줄고 음악은 3배로 늘었다. 개편이 원래 머리가 많이 아프지 않나. 

너구리 정점을 찍은 게 홍대 롯데리아에서였다. 새벽 한시까지 회의를 했으니까 6시간 동안 한 거였지. 청취자를 위해서 하나하나 맞춰나갈 것이냐 아니면,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한 번 해볼 것이냐의 문제였다. 조언을 들었는데,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야 오래 간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고. 

늘보 지금 우리에게 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탁 깨고 올라갈 만한. 99명의 청취자라면, 더 많은 사람이 들어야 하지  않나.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은 더 많은 사람이 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들. 또 도대체 라디오는 나한테 뭔가. 졸업생인 내가 이 라디오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애정을 쏟을 것인가 하는 문제들. 


만일 청취자가 더 안 늘어나면 어떻게 할 건가

양큐 100명의 청취자를 우리방송의 마니아로 만들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끝까지 간다. 하지만 지금 청취자들이 또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하는 거다. 만일 우리를 열렬히 기다리는 청취자가 있다면 소수라도 당연히 해야지. 20대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함께하면서 방송의 역할을 다 하는 거지. 

돼지 사는 게 그런 거 아닌가. 진짜 힘들어도 극복하고 익숙해지면서. 다만 소망은, 사연이 폭주해서 할 말이 많아지는 거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거. 

너구리 개인적으로 목소리 내는 20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산발적이라는 거지. 그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그래서 세력화 하는 것이 내가 이드이에서 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더 어떻게 할 것이냐 계속 고민하는 것이고.  
 

설정을 하나 가지고 왔다. 상반기 채용이 끝날 때쯤 방송을 하는데, 정말 절박한 청취자 한 명으로부터 심각하게 ‘죽고싶다’는 문자를 받았다. 어떻게 할건가.

돼지 질문이 뭐 그러나, 너무 세다. 생각을 좀 해봐야 겠다. 

쩌리쪼 일단 음악은 계속 나가는 상황에서 전화를 걸어 ‘내가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겠다. 어디냐고. 

양큐 죽고 싶은 이유가 있을 거다. 나는 집에서 쫓겨나고 학점도 빵점받고 관계도 그냥 그렇고 본의 아니게 독립됐고, 그런 걸 나누겠다. 다른 사람도 죽고 싶었다는 걸 알면 좀 위로 되는 게 있지 않나. 

돼지 노래를 걸어놓은 다음에 남은 시간동안 이 청취자 얘기를 해보자고 DJ들에게 얘기를 하겠다. 죽음은 공감될 수 있는 거니까.   

너구리 죽고 싶은 순간들을 얘기한 다음에, 농담을 하고 싶다. 염라대왕 앞에 가기 전에 똥오줌 다 마시고 니가 목욕한 물 다 먹어야 된다. 막 웃겨주고 싶다. 절망스럽다가도 개그콘서트 한 번 보면 다 풀리는 것처럼. 

양큐 밥을 먹던가. 밥 먹으면 살고 싶어진다, 진짜로. 

늘보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전화연결을 시도해보겠다, 개인적으로라도.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보겠다. 

일동 죽는 건, 행복의 조건은, 단순한 게 아니다. 그 고비가 생각처럼 복잡한 것도 아니고. 문제는 얘기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음악을 튼다면, 리쌍 ‘우리 지금 만나’. 불나방 스타 소시지 클럽 ‘불행히도 삶은 계속되었다’이나 ‘시실리아’,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


밥을 정말 잘 먹는 거 같다. 점심 12시에 먹으면 6시에는 진짜 배고픈 거니까.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 제일 싫은 것과 제일 좋은 것.  

너구리 바빠서 좋고 바빠서 싫다

쩌리쪼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진짜 좋다. 싫은 건, 요즘에 들어서 잠 잘 집이나, 음식을 살 수 있는 돈, 이런 삶의 조건들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이런 두려움이 문뜩문뜩 올라온다. 3학년이고 졸업 앞둬서 그런지. 

늘보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진짜 좋다. 싫은 건 꿈이 있는데 정말 이렇게는 하지 말자, 되지 말자 했던 것을 하고 있을 때. 자꾸 현재에 급급해서 타협하려는 내 마음이 싫다.  

돼지 계피.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에서 탈퇴한 계피가 좋다. 싫은 건 돈 걱정. 

양큐 좋은 건 포만감, 싫은 건 공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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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진아 기자 사진 김은지 학생리포터 l yook@naeil.com ㅣ 2010-03-08 (15:00:51) 지난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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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 사진이 참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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