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장이 친구들은 디카가 신기한가보다. 사진을 찍고나선 바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가 이 마을을 떠날 때 즈음에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기사가 우산같은걸 들고왔다. 우산에서 불이 번쩍! 아직 여긴 클래식 카메라가 대세다!

지난 이야기 : 준이의 농장을 탐험했다. 말그대로 숲속을, 자연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따먹으면서 말이다. 그리곤 준이와 물랑가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케냐의 자연을 경험하였다.

계절학기를 끝내고 집에오는 길은 지치고 힘들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느끼며 약간의 환기증을 느끼다가 나는 케냐를 생각했다. 아직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고, 빗물을 받아쓰는 그곳이 생각났다. 그 곳에서는 아스팔트 도로보다 흙으로 된 도로가 더 많았다. 비가오면 질퍽질퍽 발에 들러붙곤 했지만, 오히려 시원했다. 땅은 열을 머금지 않았고 적당히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가 더 많았고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연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사실, 불편을 감수한다기보다 그냥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더 편한 삶이었다.

농장에서 돌아오고 몇 일간은 숙소에서 쉬기도 하고 준이와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동을 할 때는 주로 걸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걷고, 이야기하고 걸었다. 그리고 집에와선 한 바가지의 물로 얼샤워를 하고 몸을 식혔다. 해가 지면 움직일 수 없었기에 집에 모여 다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롭게 걸었다. 물랑가의 하루였다.

바나나가 울창한 숲에서 선미누나가 서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천천히 걷고 숨을 쉬었다.

준이네 앞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저 멀리 케냐산이 보일 것 같다.

수잔은 준이의 동생이다. 준이만큼, 공부를 잘하기에 꿈도 많고 똑똑하다. 항상 우리에게 살갑게 대해주고 많은 것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덕분에 물랑가에서의 날들이 좋았던 것 같다.

준이네 집은 일종의 이장댁 같은 곳이었다. 동네 꼬맹이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준이네 집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놀다가 가곤 했다.

'바나나 먹고 싶어?','네' 아뿔싸, 준이어머니는 여기있단다. 이거 다 우리꺼라고 천천히 먹으란다.

준이네 삼촌과 할머니. 같이 앉아 있으면서 스와힐리어로 몇마디 나누었다. 1년간 배운 것들이 아쉽지 않을 만큼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참 행복해 보인다. 아이들은 줄곧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우리도 같이 춤을 추고 노래 했다. 어릴땐, 이렇게 자라야 하나 싶다.

물이 부족해 머리를 잘 감지 못할 때도 있었다. 혹은 물 한 바가지로 샤워를 했기 때문에 머리가 잘 안감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바나나는 맛이다!

아. 정말 최고다. 향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다시 한 번 케냐를 간다면 가자마자 바나나를 사먹을 것이다!

쩌~~ 멀리 코코넛이 보이는가!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아름답고 이름 모를 꽃들이 참 많았다. 초점이 나가긴 했지만 이 꽃을 찍은게 하나 뿐이라 올리고 싶다.

새집인 것 같다.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길 고양이었다.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았고 우리를 졸졸 쫓아다녔다.

에헴

준기도 에헴!

전선이 보이긴 하는데, 전력 상황이 그다지 좋진 않다. 정전도 자주되고. 사실 전기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은 동네이긴 하다.

시간이 나서 근처 커피농장에 들렀다.

아직은 수확을 하는 계절이 아니라 텅텅 비어있었다. 커피를 재배하는 계절이 오면 이곳은 커피를 씻고 정제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커피체리를 벗겨내는 곳이라 설명을 들었다.

껍지를 벗겨낸 커피들이 이곳에서 말려진다. 케냐 커피는 신맛이 강하게 나며 고구마 맛이 나기도 하는(개인적인 의견) 맛있는 커피이다.

역시, 재배를 안하기에 조용하다.

불량 커피들이 모여있다. 체리가 잘 벗겨지지 않은 놈들이나 정제가 제대로 안된 놈들을 모아둔 곳인 것 같다.

껍질이 아직도 붙어있는 걸 보니, 불량품들이 맞나보다.

케냐의 큰 태양으로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

파치먼트 생두라고, 실버스킨이 벗겨지지 않은 생두들이다. 요놈들을 고대로 심으면 커피나무가 자란다!

커피 체리들이다. 커피는 아주 엄선된 지역에서만 자란다. 고도, 위도, 강수량, 온도 등 여러가지 조건들이 갖춰진 곳에서만 잘 자랄 수 있다. 케냐의 천의 자연환경은 질좋은 커피를 만들어 낸다.

붉게 익은 체리들이 재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준이는 농장을 도는 내내, 커피의 가공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따. 더불어 케냐커피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선 우갈리를 먹었다. 우갈리는 우리나라의 밥 처럼, 프랑스의 빵 처럼 케냐인의 주식이다. 거친 옥수수 가루를 끓는 물에 집어 넣고 계속해서 뒤집고 저어주면 우리나라의 백설기 같은 것이 나온다.

준이의 동생들은 뜨거운 우갈리를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거리며 우리의 먹을 것을 만들어주었다.

정성이 들어간 우갈리다. 맛은 약간 싱거운 백설기 정도? 정말 밥을 먹는 기분이다.

호박과 당근등을 넣고 우갈리와 함께 먹을 스튜를 끓여주셨다. 우리는 저녁을 걸게 먹었다.

이름이 기억 안나지만, 준이의 동생이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뻣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에는 우갈리양.

이 케냐 깡시골에도 코카콜라는 음료를 팔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소다(탄산음료)를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았지만, 한 편으론 이곳까지 트럭을 몰고와 콜라를 파는 놈들이 약간 미워졌다.

동네의 쇼핑센터. 이곳에서 소다도 사고 필요한 것들을 산다.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난 어딜가든 시장이 좋다. 시장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물건을 판다. 대형 마트에서는 냉장고와 얼굴을 마주보거나 시식코너와 마주보곤 한다. 에잇, 그러니 내 말은 가능하면, 시장도 자주 가라는 얘기다.

이렇게 얼굴이 마주치면 나는 웃으며 잠보! 하바리 야코!(Jambo!, Habari yako!- 안녕하세요 어떠세요?!) 라고 인사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웃으며 은주리 사나-아산테!(Njuri sana- asante!-잘 지내요, 고마워요!)라고 대답한다.

여기 피는 이 꽃들이 신기했던지, 효원누나는 떠나는 길, 서점에서 케냐 식물도감을 사갔다. 우리가 만난 꽃들 중 몇 종류를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신기하다. 곳곳이 이런 꽃 투성이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케냐에선 꽃 구경으로 2일동안 종일 걸어다니는 일정을 잡아야 한다!

환하게 웃는 쥬디.

삼손도 일을 마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집을 찾았다.

자파티를 만드는 과정이다. 반죽을 빈대떡 처럼 밀대로 밀어 크게 만든 후에, 후라이팬 같은 곳에 올려 기름을 쳐가며 빙빙 돌린다. 앞 뒤로 열 번 넘게 돌리고 나면 맛있는 자파티가 완성된다.

직접 해봤는데 쉽지 않다, 빙글빙글 돌려가며 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어렵고 뜨겁다!

방금 만든 자파티는 신기하게 달고 맛있었다. 식은 자파티는 스튜하고 먹으면 그만이고. 정말 좋은 음식읻

다음날 새벽,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염소를 잡았다. 염소 잡는 장면은 좀 잔인하니 선택권을 주겠다. 보고싶은 분만 아래를 클릭!

삼손은 자파티 만드는 것을 도우고 있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이날 파티를 위해 자파티를 만들었다.

아주머니들은 우리가 촬영을 하고 있자 이리와서 같이 하자며 웃으셨다. 곧 나는 저 자리에 앉아 자파티를 만들었다!

갓 만든 자파티를 얻어 먹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축제 기분이 났다!

한 쪽에선 방금 잡은 염소를 물 한방울 없이 가죽을 벗겨내고 있었다. 대단한 손놀임이었다. 가죽은 악기를 만들고, 옷을 만들고, 가구를 만드는데 쓰일 것이다.

케냐에는 아랍지역 문화가 남아있어 터번을 쓴 사람도 꽤 있었다. 98%의 기독교인을 제외한 인구중 대대수가 이슬람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종교는 중요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도, 이들은 다같이 모여 염소고기를 먹고, 자파티를 먹고 춤추고 노래를 한다.

손질된 염소 다리이다. 이곳 고기들은 우리가 먹는 고기와는 달리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않고 가두어 키우지도 않는다. 따라서 근육이 잘 발달되어있고, 상당히 질기며 씹히는 맛이 좋다. 가공된 고기의 맛보다는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질긴 것이 단점이긴 했지만, 코코넛 가루를 넣어 이를 해결할 수 있어서 그닥 문제가되진 않다. 이어진 내장 손질 장면은 비위가 약하신 분들을 위해 다시 선택권을 주겠다.



이 사진 이후로는 우리도 같이 자파티를 만들고 구경하고 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찍기도 그렇고 말이다. 이후에는 맛있게 준비한 음식들을 먹고 신나게 춤추고 노래했다.

파티는 간단하다. 이렇게 힘들게 만든 음식을 나눠먹고, 기도하고, 춤을 추고 노래한다. 노래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투오나네~ 투오나네  파라디소(Tuonane~ Tuonane~ Tuonane Paradiso- 또 봐요~ 또 봐요~ 또 봐요 천국에서!)

어르신들이 선창하면 우리가 답례로 따라부르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 몇이 다시 선창을 하고 나머지가 따라부른다. 신나게 흔들고 춤추고 가사를 바꿔 부르고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후에는 소다를 나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춤추고 노래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극진히 VIP대접을 받았다. 부담스럽기도 했고, 너무나도 고마웠다. 새로운 손님들이 왔다며 더욱 흥겨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우리도 모든 것을 잊고, 체면치레 생각하지 않고 신나게 흔들었다! 투오나네! 투오나네! 투오나네 파라디소!!!

다음편 예고 - 드디어 나이로비에 다시 입성! 나이로비 국립공원 및 시내투어를 시작한다. 파인애플 농장도 들린다, 그곳에선 파인애플 한개가 단돈 천 원! 너무 달아서 파인애플 심까지도 씹어먹는다. 보고싶다고? 그럼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편을 기대하시길!!

이제는 정기적인 업데이트가 되지 않을까 하네요. 그간 업뎃에 불만을 가지셨다면 이제 그런 걱정은 유에스비에 넣어놓고 다니셔도 되게씁니다(무슨말인지;). 사진을 정리하면서 감동받고 즐거운건 오히려 제 자신인 것 같네요. 오랜 여행을 정리하고 그 추억들을 되돌아보면서 잠시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다른 여행도 그랬지만, 케냐 여행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여행을 가신다면 전 당당히 케냐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케냐는 아릅답고 평화롭고 좋은 곳이기 때문이죠. 단비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낙후된 지역을 찾아가 봉사도 하고 우물도 파주는 그런 프로그램이더군요.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에 '진짜 케냐'는 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진짜 케냐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조금은 색다르게 다가온다면 그건 문화의 차이고 생각의 차이일 뿐이지 그들이 잘 살거나 못사는 것의 차이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단비'에 비친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면 조금 씁슬한 마음이 듭니다. 그들이 물부족에 시달리고 가난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우물을 팔 만큼의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우둔하고 발전되지 못해서 그런것도 아닙니다. 풍요로운 땅 케냐에서 그들은 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찾아온 식민주의에 따른 자본주의와 무분별한 자원개발, 지구 온난화가 그들의 먹을 물을 빼앗고 그들이 살 터전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건 하나의 우물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그들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정무역을 찾는 일,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작은 행동을 하는 것,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일 말입니다. 제 사진이, 제 여행기가 케냐의 아름다운 모습을,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잘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긴 이야기는 여행기를 쓰는 동안 천천히 말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더 긴 여정이 남았으니까요. 오늘은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그럼 물랑가로 떠나볼까요 ^^?

완벽한 가이드 준이. 우리는 졸졸 그 뒤를 따라 다닙니다. 칙칙- 폭폭-


지난 이야기 : 우여곡절 끝에 물랑가에 도착, 닭잡아 먹고 편히 쉬면서 인생의 참맛을 느낌

물랑가에 도착해서 준이는 톡톡히 가이드의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첩첩산중 속에서 준이의 가이딩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길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케냐의 자연은 정말 많은 것을 품고 있었습니다. 훼손되지 않은 그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는 유쾌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농장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준이는 이건 뭐고 저건 뭐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먹을 것이라면 들고 있는 칼로 단숨에 잘라서 우리에게 나눠 주었다.

사탕수수를 자르고 있는 준이. 사탕수수는 설탕의 원재료이다. 슈가케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준이의 고향인 물랑가에는 많은 사탕수수를 볼 수 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간식거리가 된다고 한다.

먹는 법은 간단하다. 칼로 사탕수수를 자른다음 껍질을 벗겨낸다. 개미들을 털어내고 먹기 좋게 조각내어 오물오물 씹으면 된다. 너무 달기 때문에 항상 개미가 있다. 농약따위는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자랐기 때문에 씻을 필요는 전혀 없다.

능숙하게 사탕수수를 손질하는 준이. 저렇게 자르고 남은 사탕수수를 땅에 꽂아 놓으면 일주일 후에 무럭무럭 자라난 사탕수수를 만날 수 있다. 지력이 뛰어나고 기후가 좋기 때문에 어떤 작물이든 무럭무럭 자란다.

사탕수수를 다시 심는 이야기를 하면서 망고 먹다가 씨를 뱉으면 망고 나무가 자라나고 사탕수수 먹고 심어놓으면 쑥쑥 크니 평생 여기서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정말 풍요로운 케냐였다.

손질한 사탕수수. 이걸 오물오물 씹고있으면 설탕물이 나온다. 그 어떤 사탕이나 껌 보다도 달고 맛있으며 그 맛도 오래 갔다. 정말 하늘에서 내려준 간식인듯 싶다.

준이의 사촌이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우리 뒤를 쫒아다니며 각종 위험요소를 제거해주었으며 우리가 놓치는 간식들이 있으면 금세 따다가 우리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방 모든 것이 먹을 것 천지였다.

이렇게 줄을 지어 케냐산 주변을 산책했다. 모두가 신났다.

준이가 칼을 들고 있으니 코끼리가 튀어나와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다들 즐거운 여행을 했다.

준기와 효원누나. 준기는 케냐에서 별명이 키준기였다. 키준기는 스와힐리어에서 ki/vi 클래스에 속하는 단어이며(스와힐리어에는 8개의 단어군이 있다) 차를 내릴때 차를 거르는 거름망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모두가 준기의 이름을 말하면 즐거워했다. 맙소사 거름망이 이름이라니!!!

비가 오고 난 후라 그런지 공기가 더욱 맑았다. 우리가 물랑가에 갈때마다 매일매일 짧고 굵은 소나기가 내렸다. 준이에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규칙적이고 예상할 수 있는 비가 내렸지만, 요즘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매일매일 불규칙하게 소나기가 쏟아진다고 했다. 이러한 환경변화로 농작물을 관리하는데도 애로사항이 생긴다고 했다.

준이네 농장이다. 망고도 있고 커피도 있고 사탕수수도 있다.

다시 칙칙- 폭폭-

망고나무가 지천이다. 여기 망고는 정말 맛있다. 아직 익지 않은 망고지만 너무 탐스러웠다. 날씨가 너무 좋아 딱히 망고를 수확하는 계절이 없다. 어떤 망고나무는 탐스럽게 익은 망고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나무는 저렇게 설익은 망고들이 주렁주렁 수확을 기다리며 자라나고 있었다.

망고 크기의 500배에 달하는 효원누나의 얼굴 감상을 해보자.

자라나고 있는 작물들인데 뭔지는 기억 안난다. 이것까지 필기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저기 뭔가 주렁주렁 달린것이 망고나무다. 에헴. 망고 먹고싶다. 얼마전에 마트에 갔는데 조그마한 애플망고 2개에 8천원이었다. 케냐에선 1개에 300원도 안되는데 폭리다 싶었다.

심하게 썡얼이신 문기누나가 준이네 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열심히 작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준이.

케냐에 가서 부쩍 얼굴이 탄 내 모습이다.

바나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여기 바나나는 정말 쓴 맛이 하나 없이 달고 씹는 맛이 일품이다!!

케냐에는 아직 동양인이 드물다. 게다가 이 동네에는 동양인의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를 처음본 준이의 이웃들은 우리가 모두 중국인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들에게 중국인의 이미지란 쿵후를 잘하는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준이의 이웃들이 "뭐하러 칼을 들고다니냐 준아, 저기 중국인들이 쿵후로 널 지켜줄텐데!" 그렇다. 우리는 모두 쿵후 유단자다. 아뵤!!

물랑가에도 마타투가 다니긴 했지만 우리는 주로 걸어서 이동을 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저 길을 신나게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면 내가 하늘 위를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든다.

준이네 엄마는 줄곧 우리를 마중하셨고 배웅해주셨다. 그리고 그 곁에는 준이네 친척들이 있었다. 우리 모두 친구였고 노래를 불렀다. 임바임바 임바 임바~(노래 노래 노래 노래 노래~~- 스와힐리여 동시통역!)

망고를 먹고난 후의 선미누나의 표정이다. 아, 아닌가?

준이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스와힐리어로 냐냐(Nyanya)이다. 우리가 시카무- 냐냐(안녕하세요 할머니) 그러면 할머니는 우리에게 마라하바(시카무(높임말로 인사할 때 쓰는 말)의 답변)라고 답하며 웃어주셨다.

준이네 집에서 효워누나의 떨떠름한 표정

애교가 많은 준이의 동생 수잔이다. 우리가 사탕을 준다고 하면 어김없이 케냐 최고의 댄서로 변했다.

준이네 엄마가 바나나 먹을래? 라고 물어봐서 네~ 했더니바로 옆에 있는 바나나 나무에서 저걸 따다 주셨다. 다 먹는데 무려 2일이나 걸렸다.

바나나 따주신다길레 한 사람에 한두개나 주시려니 했는데 저렇게 통째로 주셔서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저건,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다!

우리가 바나나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신 냐냐다.

설탕 듬뿍 차이다. 차를 방금 갓 짠 우유와 섞어 오래 끓인 후 키준기(!)로 걸러내고 설탕을 듬뿍 넣어 저어 마시면 된다. 언제나 우리는 차를 대접받았다.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었고, 현지인과 함께 춤을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었다. 융성한 대접에 너무 감사했고,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우리의 저질 스와힐리어를 들어주셨다.

다음 편 예고 : 드디어 크리스마스 파티다! 아침 일찍 염소를 잡고 신나게 춤을 추며 파티를 했다! 케냐에서의 광란의 파티는 어떨지 궁금하지 않은가?

얼마만의 업데이트인지 모르겠다. 만약에, 혹시나, 혹여나, 조금이라도 내 여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또, 여행을 다녀온지 6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다 기억을 해내냐 하고 따지고 물으신다면 나는 원래 메뉴얼 적인 사람이라서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늦게 올린건 귀차니즘 때문이다. 삶이 고달프다 요즘.

천의 자연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란 애벌레. 이게 진짜 애벌레인가 보다. 애비!



지난 이야기 - 우여곡절 끝에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 한 민간인 아파트(?) 혹은 현지인 아파트에 머물며 지역 주민들과 화합의 장을 이룸.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준이의 도착을 기념해 공원에서 한바탕 댄스 파티를 벌임.

준이는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으로 향했다. 2년간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고향이기에 그럴법도 했다. 우리도 그 일정에 맞춰 준이를 따라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100km(정확히는 모르겠다)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물랑가라는 곳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근처 카후히아에 있다. 이곳은 케냐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케냐산을 끼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서늘한 기후를 자랑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물랑가는 해발 3000~4000미터 정도이고 근처의 산들은 대부분 4000미터를 훌쩍 넘는다. 케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5,199미터이다. 이 지역은 케냐 최대 부족인 키쿠유부족의 발원지이다. 준이 또한 키쿠유족이다. 여기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고(키쿠유 부족들과 함께), 잠시 나이로비로 가서 관광을 하다 다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일정을 잡았다. 마타투로 1시간정도 실컷 달리면 갈 수 있는 거리라 그렇게 부담가는 일정은 아니었다.

우리 숙소 근처다. 케냐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사실, 횡단보도라는 개념이 없다. 길을 건널땐 무리 중 한 사람이 외친다. 원 투 쓰리! 그리고 크로싱!!! 시내에는 줄이 몇개 그어져있는데, 그것만이 이곳에 횡단보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을 말해준다.

저기 멀리 보이는 저게 마타투이다. 언제나 마타투는 손에 잡힐듯한 구름 속과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속을 달린다.

케냐는 정전이 잘된다. 아직은 인프라가 구축이 안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생각엔 독재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듯 하다. 케냐의 정치 상황에 대해선 다음번에 좀 더 자세히 서술해드리겠다.

사람들은 저렇게 산다. 넓디넓은 평원에 집을 지어놓고 여유로이 거닐며 지낸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예사로 보면 안된다. 저래뵈도 기본 3000미터는 넘는다.

길 중간 중간 거주지와 시장들이 있다. 없는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다. 정말, 다 있다.

길은 대체로 아름답다. 포장이 어설프게 되어있어 시트가 꺼진 마타투를 타면 엉덩이가 타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찌만 언제나 창 밖을 보면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차가 많이 몰리는 곳엔 항상 이렇게 망고 장수들이 줄을 잇는다. 자기네 농장에서 지은 망고를 이렇게 나와 파는 것이다. 우리는 마트에서 사기보다 주로 이런 곳을 통해 싸고 질좋은 애플망고를 구입했다.

맛있긴 한데, 이렇게 무턱대로 들이대면 좀 곤란하다.

케냐에서 간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간판을 이루는 철들은 돈이 되기 때문에, 걸리는 즉시 뽑히기 때문이다. 뭐 우리나라도 간판 뽑아가는건 낮선일이 아니긴 하겠지만 말이다.

뭘 찍었는진 모르겠는데, 꽃이 이쁜 것 같다.

드디어 오랜 시간 끝에 물랑가 도착! 바나나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드넓은 평원을 보라!

우리가 묵었던 곳은 카후히하 여자 고등학교이다. 기숙학교이며 나름 명문고등학교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방학중이라 이 곳 선생님의 숙소 중 한 곳을 이용할 수 있었다. 준이 어머니가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

교정이 참 아름다웠다. 아침이면 이곳을 산책하곤 했다.

이름도 모를 꽃들이 엄청 아름답게 피어있다. 맘에들면 앞마당에 뽑아다 심으면 또 이렇게 울쑥불쑥 자라난다.

카후히아 여고 정문이다. 밤이면 준이네 가족들이 다 같이 우리를 여기로 배웅해주었다.

동네 꼬맹이다.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한다. 잠보! 하바리야코! 그러면 친구는 대답한다. 잠보! 은주리 사나!

준이는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하다. 10걸음 마다 한번씩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 때마다 준이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었다.

밤이면 우리는 달빛에 의존해 길을 걷는다.

오랜 여정에 다들 지쳤다. 여긴 준이의 방이다.

귀한 닭이다. 우리를 위해서 준이네 가족은 2번이나 닭 요리를 해 주었다. 양배추를 토마토와 볶은 반찬과 감자가 들어간 댕구(혹은 뎅구)랑 같이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여기 닭은 말 그대로 풀어놓고 키우기 때문에 근육이 장난 아니다. 덕분에 닭고기도 약간 질기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꽃이 인사한다. 안녕!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준이가 다녔던 교회에 가보기로 했다. 날은 대부분 이렇게 화창하고, 온도는 15도 정도로 선선하다. 하루에 한 번 정도 비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걸어다니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하쿠나 마타타!

사진 그만찍고 언넝 따라오란다.

앞에서도 말했었지만, 케냐 인구중 98%가 기독교인이다.(아마 식민지배의 영향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시골에도 교회는 있었다. 잠시 들러 구경해보기로 했다.

다들 사진 찍기에 바쁘다.

고개를 돌려서!, 언제나 식물들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장난감 같은데 진짜다. 진짜로 이렇게 이쁘다.

동화 속에 나오는 교회같다. 교회는 저래뵈도 단촐하다. 들어가면 의자와 선반 하나밖에 없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 큰 건물도 필요없고, 화려한 인테리어도 필요없다. 자연속에 어색하지 않으며 소박하면 그만이다.

교회에서 바라본 물랑가 전경이다. 손에 잡힐듯한 구름과 바나나 나무들이 너무 그립다.

5초간 감상

교회 사람들과 함께 찍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손님들을 반긴다. 여기서는 키쿠유 부족의 발원지 답게 키쿠유 어로 인사해야 한다. 키쿠유어로 어른들께 인사할 때는 웨무에가 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누에가 모노모노모노 라고 답할 것이다.웨무에가는 하우어유 누에가는 지낸다 모노모노모노는 너무너무너무다. 모노를 많이 할 수록 사람들은 크게 웃는다.

의자와 조촐한 선반만이 교회의 재산이다.

아, 분 밖을 보면 보이는 풍경도 물론 교회의 일부이다.

할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며 일일이 웨무에가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모두 누에가 모노모노모노라고 답했다. 모두가 잘 살고 있다.

구름속에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교회에 대해 준이가 설명했는데 까먹었다. 꽤 오래된 교회라고 한다.

어디서나 찍기만 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잡힌다.

우리는 항상 여유로웠고, 한가했다.

교회의 마당이다. 별 꾸민것도 없지만 꽃이 아름답고 나무가 좋다.

다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흔히 보이는 꽃인데, 효원누나 말에 의하면 덴버껌 냄새가 난다고 했다. 향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에, 이쁘다.

간식으로 준이가 프렌치 토스트를 해 주었다. 빵이건 계란이건 다 귀한 음식들이다.

뎅구다. 이건 저녁으로 먹은거다. 항상 댕구와 밥을 먹으면 언제나 든든하다.

준이네 밭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

밭 기행은 다음 편에 보도록 하자.

이 녀석들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잡힐 것이다.

물랑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공기가 맑고 차도 맛있고 커피도 쑥쑥 잘 자라는 천의 환경이다. 가령, 망고를 먹다가 그 큰 씨를 던져놓으면 그게 망고나무로 자라는 시스템이랄까. 하지만 차는 영국 자본의 것이며 커피는 미국 자본의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기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파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편 예고 - 준이네 농장투어! 그리고 물랑가 탐방이 이어집니다-!

나이로비는 사람이 참 살기 좋은 곳이다. 연간 15~20도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으며 조금 더워졌다 싶을 때면 시원한 소나기가 내려 지열을 식혀준다. 이 지역은 평균 2000m을 넘나들기 때문에 습하지가 않다. 바람도 매우 시원한편이며 땅도 비옥하다. 가히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안도 생각보다 어지럽지 않았다. 모두들 우리가 케냐에 떠날 때 걱정하는 것이 치안이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나 외국인은 위험한 법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케냐에 와서 잠시 우리 여행에 합류했던 한 한국인 소녀는 두바이 경유를 할 때 잠시 두바이 택시를 탔다가 납치를 당할 뻔 했다. 준이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택시기사들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길을 도통 모르니 그들이 가는 곳을 그대로 따라 가야 했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유학생은 어처구니 없는 택시비를 내야만 했다. 어딜가나 외국인은 차별받고 사기꾼의 속임의 대상이다.

케냐에서의 날들은 생각보다 편안하고 안전했다. 우리가 빌린 아파트는 2달 임대료가 15만원이다(5명이 부담했으니 한달 사용료가 개인당 1만 5천원이다). 준이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부담스런 숙식비를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 아파트의 사람들은 너무 친절했다. 할 일이 없는 날이면 아파트에서 나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외국인도 두명 살았는데 한 사람은 중국인이었고 한 사람은 케냐인과 결혼한 유럽사람이었다.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했다.

준이를 마중하러 나가기 전 준이의 친구들이 모였다. 자카리아는 준이의 오랜 친구다. 지금은 케냐산 근처 카후히아에서 경찰로 일하고 있다. 멋있고 힘도 센 든든한 친구다.

사실 아파트에서 불편한 건 층간 소음이었다. 다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으니 낮에는 조용할 리 없었다. 그 밖에는 좋았다. 근처에 많은 상점과 마트가 있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게다가 양변기도 있고 온수도 나왔다!!

우리는 아랫층 사설택시를 운행하시는 아저씨에게 준이를 마중나갈 때 공항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보통 이곳의 주된 교통수단은 마타투(미니버스)이지만 외국인에게는 택시가 제일 편하다. 하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므로 이를 고려하고 타야한다.

아랫층에 사는 꼬마다. 우리가 시끄럽게 굴어서 나와본 것 같다. 덕분에 우리는 출발을 기다리며 아이와 놀았다.

준이 동생과 효원누나도 같이 아이와 놀면서 사진을 찍었다.

낮가림이 심했다. 엄마 아빠 품이 아니면 다른 곳에 있기를 꺼려했다. 효원누나가 안으려고 하자 울기 시작했다.

드디어 출발. 한 대는 택시, 한 대는 준이네 삼촌 차를 이용했다. 준이내 삼촌 차를 탄 나는 거리에서 파는 바나나를 시식할 기회를 얻었다. 바나나는 씁슬함이 전혀 없었고 달달하며 씹는 맛도 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준이 삼촌의 큰 딸, 왐보위다. 너무너무 귀엽고 사람도 잘 따른다. 준이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우리는 이러고 놀았다. 사실, 이 사진도 겨우겨우 찍은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공항에서는 촬영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금지라기보다도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공항에는 준이를 맞이하기 위해 일가 친척이 다 모였다. 어림잡아 50명도 넘는 듯 했다. 준이는 나이로비 대학에 진학한 인재이고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유학한, 집안에서는 가장 엘리트이다. 모두가 준이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모두들 준이를 반갑게 맞았다.

가족 모두 갈 곳을 찾다가 우리는 한 국립공원에 들렀다.

한적한 공원에 앉아 우리는 춤을 추었고, 이야기를 나눴고, 바나나와 은도마를 먹었으며, 사진도 찍었다.

공원은 한적하고 좋았다.

이게 은도마(ndoma)다. 우리나라의 감자와 고구마 사이의 맛이다. 그닥 맛있지는 않았지만 배를 채우기에는 괜찮은 음식이었다. 이렇게 쪄서 먹기도 하며 스튜에 넣어서 먹기도 하는, 많은 음식에서 아주 자주 쓰이는 식재료였다.

준이 이모, 준이 어머니, 준이 삼촌이다.

준이의 또다른 삼촌들

준이의 할아버지와 삼촌이다.

준이 할머니와 효원누나 그리고 레이첼(준이의 여동생)

준이의 어머니다.

다 같이 모여 신나게 춤을 추고, 사진을 찍었다. 모두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근처에 한국인 선교사 분도 있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외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반가웠다.

이렇게 모여서 우리는 함께 tuonane(스와힐리어로 다시 만나요) paradiso(스와힐리어로 천국), 즉,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한껏 흥을 올렸다. 모두가 공원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내가 배가 나와 보인건, 은도마를 혼자 5개나 먹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진찍기를 좋아해서 우리들 곁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며 졸랐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집에 왔을 땐, 옆집 레아 이모가 우리를 위해 만찬을 준비했다. 양고기가 들어간 스튜와 자파티(스와힐리 전통 음식)이었다.

자파티는 인도의 '난'과 유사하다.혹자는 그 이유가 식민지 시절 유입된 인도인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밀가루 반죽에 약간의 간을 해서 자파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만든 자파티는 너무 맛있었다. 여기에서는 우갈리(옥수수 가루로 만든 음식)와 함께 모든 음식에 함께 나오는(일종의 밥과 같은) 음식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뎅구라 불리는 음식인데, 우리나라의 된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콩으로 스튜를 만든 형식인데, 굉장히 고소하고 맛있었다. 사실, 고기가 식탁에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저 뎅구와 자파티만을 먹는데, 이것만 먹어도 너무너무 맛있다. 특히 소화도 잘 된다.

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스튜에 뎅구를 섞고, 자파티를 찍어 먹으면 된다. 정말, 정말! 맛있다!!!

후식으로는 파파야를 먹었다. 생각보다는 밍밍한 맛이었다.

레아 이모에게 고마웠던 우리는 마트에서 산 망고를 가져왔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애플 망고는 정말 맛있다. 사과의 신 맛이 없고 망고의 느끼함이 없는 훌륭한 맛이다. 배가 불러도 다들 망고는 4-5조각 씩 먹었다.

애플 망고는 요로코롬 생겼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을 대비하여 햇발을 많이 사왔다. 라면도 사오고 말이다. 밖에서 매번 밥을 사먹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었고, 매번 얻어먹기도 미안했기에 이런식으로 우리는 끼니를 때우고자 했다.

준이가 도착하고 여행이 활기를 찾았다. 이제 우리는 준이네 고향으로 가려고 한다. 케냐 산 근처에 키쿠유 부족의 발원지이다. 케냐는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데 그 중 최고 많은 부족이 키쿠유(인구의 약 25%)다. 해발 4000m정도 되는 지역에 아름다운 경치를 품고 있는 곳이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하룻 동안 긴 비행시간동안 소비했던 체력을 보충하고, 동네를 거닐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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