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커피투어]
1월 26일부터 28일까지, 도쿄 카페들을 다녀왔습니다. 마루야마커피부터 시작해 블루보틀까지 3일간 총 12곳의 카페를 방문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일본 스페셜티 커피의 신예 노지커피부터 시작합니다. 노지커피가 있는 산겐자야 지역의 카페들부터 시부야의 커피까지 올드스쿨과 스페셜티가 공존하는 일본의 커피씬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노지커피
Nozy Coffee
주소: 일본 〒154-0002 Tokyo, Setagaya, 下馬2丁目29−7
연락처: +81 3-5787-8748
영업 : 월-일 1000-1800
번잡한 도쿄 시내와는 달리, 산겐자야는 비둘기와 시바견이 산책을 즐기는 고즈넉한 동네입니다. 고급 주택가와 중소규모의 쇼핑몰이 있는 전형적인 베드타운 느낌이랄까요. JR 도큐덴엔도시선 산겐자야 역에서 내려 조용한 골목을 따라 이동하다보니 노지커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노지커피는 도쿄에 총 2개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산겐자야 지점이 본점의 역할을 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소규모로 로스팅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모테산도에 이보다 큰 매장을 두고 그곳에서만 로스팅을 한다고 합니다.
산겐자야 지점은 브루잉이 중심이 되는 매장이고, 오모테산도에 있는 2호점은 에스프레소를 주로 하는 매장이라고 합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노지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부분이 브루잉이라는 얘기를 전해듣고 산겐자야 매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매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테이블만 있는 1층과 브루잉 스테이션이 있는 반지하로 이뤄져있고, 커피를 즐기기에 더할나위 없이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매력적입니다. 커피를 주문하려고하자 바리스타는 브루잉 메뉴가 좋다는 얘기를 한 번 더 해주었고, 좋아하는 맛에 대해 묘사를 하면 원두 큐레이션을 하주겠다는 말을 전합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맛을 찾아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자, 바리스타는 일단 키워드를 달라고 자신감 있게 받아칩니다. 시트러스, 밸런스, 스위트니스 그리고 브루잉툴은 에어로프레스. 난감할법한 주문에 그는 좋은 생각이 났다며 원두를 집어듭니다. 그리고 저에게 시향을 권하죠. 은은한 오렌지 향이 매력적인 원두였습니다.
그가 추천해준 원두는 2016 온두라스 Cup of Excellence 18위에 오른 부에나 비스타입니다. 제가 온두라스 원두를 좋아하는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요. 반가운 마음에 한 모금 입에 머금어봅니다. 커피는 키워드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오렌지, 머스켓, 슈가 케인의 느낌이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깜짝 놀라 바리스타를 쳐다보니, 그는 멋쩍게 웃습니다.
마루야마에 이어서 또 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커피는 완벽한 밸런스를 갖췄고, 떼루아를 인상깊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마시자마자 떠올랐던 맛들은 테이스팅 노트에 그대로 적혀있었습니다. 브루잉이 유별났던것은 아닙니다. 전시됐던 브루잉툴로도 충분히 누구나 내릴 수 있을만큼 쉽게 레시피는 간단합니다. 좋은 생두를 고르고, 그 생두가 가장 빛날 수 있는 포인트를 찾는일에 있어 마루야마와 노지는 베스트컵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금 일본 스페셜티 커피의 위상을 느끼게 됩니다.
노지 커피를 올드스쿨보다 스페셜티를 먼저접한 젊은 바리스타들이 만들어낸 마루야마라고 말한다면 과장일까요. 다른 커피에 대한 설명도 듣고 일본 스페셜티 커피 신에 대해서도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매장을 나서기 전에는, 원두 추천을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도 자신있게 큐레이팅을 해주었고, 저는 코스타리카 원두를 구매했습니다.
카페 옵스큐라
Cafe Obscura
주소: 1 Chome-9-16 Sangenjaya, Setagaya, Tokyo 154-0024 일본
연락처: +81 3-3795-6027
영업 : 월-일 1100-2100
노지커피를 나와 한적한 골목길을 걷습니다. 노부부가 상점앞에서 목재 인형을 구경하기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어르신도 보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아주머니들이 공원에 둘러 앉아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어딜가나 사람이 끊이질 않았던 도쿄 중심가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저도 여유를 즐겨봅니다.
옵스큐라는 노지커피와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있는 주민이 있었고, 노란색 머리가 인상적인 이탈리아인도 보입니다. 조금은 독특한 동네 분위기에 카페 옵스큐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매혹적인 모습으로 진한 커피향을 풍기고 있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메뉴판을 봅니다. 오래 전, 안암동에 있던 보헤미안에서 처음 메뉴판을 열었을때가 생각납니다.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하나의 메뉴판에 정리해놓은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싱글 오리진을 마실까 생각하다가, 사이폰 스테이션을 보고 블랜드를 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블랜드는 딱 두 가지. 과일과 초콜렛이 있습니다. 점원에게 오늘 어떤 원두가 더 상태가 좋냐고 물어보니, 초콜렛을 추천합니다. 추천한 메뉴를 주문하고 잠시 카페를 둘러봅니다.
차분한 인테리어와 카페 마스코트가 인상적입니다. 카페를 둘러보다보니 아주 조용하게 커피가 갈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리스타는 움직임 하나에도 소음이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습니다.
카페 옵스큐라의 모든 메뉴는 사이폰으로 만들어집니다. 노지가 스페셜티 커피의 최전선에 서있다면, 카페 옵스큐라는 올드스쿨의 오마주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커피를 내리는 점원에게 말을 걸어보니, 노지커피와는 교류가 활발하다는 얘기를 전해줍니다. 두 카페의 지향점은 다르지만 말이죠.
커피 맛 또한 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비터스윗의 결정체랄까요. 커피의 전반적인 흐름을 지배하는 쓴맛과 식을수록 견고해지는 맛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며, 카페 옵스큐라의 커피가 올드스쿨에 영감을 받은 스페셜티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문팩토리(도쿄 엘리펀트)
Moon Factory Coffee
주소 : 일본 〒154-0024 Tokyo, Setagaya, Sangenjaya, 2 Chome−15−3, 132F 寺尾ビル
연락처 : +81-3-3487-4192
영업 : 월-일 1300-2500
산겐자야에서 가장 문을 늦게 여는 카페 문팩토리는, 쿄토에 있는 카페 엘리펀트의 도쿄 버전입니다. 로스팅을 공유하고, 레시피 또한 같습니다.
노지커피와 옵스큐라보다 훨씬 더 작은 골목길 2층에, 달이 그려진 간판을 찾아갑니다. 문팩토리는 작은 화분의 나뭇가지처럼 작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카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층의 공간은 꽤 넓습니다.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음악과 커피향이 아주 밝은 느낌의 홍대 곰다방을 연상케 합니다. 삐그덕 삐그덕, 나무바닥을 울리며 자리에 앉아봅니다.
가장 진한 EF Blend(앨리펀트 블랜드)를 시킵니다. 조용히 메뉴를 받아든 바리스타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겨울 블랜드는 초콜릿의 느낌이 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문팩토리의 블랜드도 다크 초콜렛을 연상케 합니다. 종종 체리의 향기도 느껴지고요. 따스한 햇살 덕분인지 커피는 천천히 식어갑니다. 찬 바람에 얼었던 몸도 천천히 녹으면서, 커피는 점점 더 달게 느껴집니다.
이곳의 커피 맛이 가장 최고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랜시간 머물 수 있는 카페라면 저는 문팩토리를 꼽겠습니다. 귀에 거슬리지 않은 음악과 차분한 분위기는 카페가 단지 커피만을 마시는 공간이 아니란 것을 설명해줍니다.
손님들도 아주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익숙하게 메뉴를 주문하고 각자 들고온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오후의 햇살은 따사롭기만 합니다.
사테이 하토우
茶亭羽當 Chatei Hatou
주소 : 1 Chome-15-19 Shibuya, 渋谷区 Tokyo 150-0002 일본
연락처 : +81 3-3400-9088
영업 : 월-일 1100-2330
문팩토리를 나와 다시 번잡한 시부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이든 오후든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시부야에서 가장 큰 횡단보도에는 관광객들이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횡단보도를 걷는 모습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강남대로나 홍대의 번잡한 거리가 이보다 더 복잡할까 싶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사테이 하토우는 놀랍게도, 시부야역에서 멀지않은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말 이곳에 이런 카페가 있는게 맞을까 싶어 지나가던 사람에게 한 번 더 물어봅니다. 마침 그 사람도 카페를 들어가려고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엽니다.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시간은 오후 3시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커피 한 잔을 나누고 있습니다.
바리스타의 안내로 바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복잡한 메뉴판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토 블렌드(혹은 하토우 블렌드)를 주문합니다. 바리스타는 물잔을 내밀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주문을 하고 바리스타들을 쳐다봅니다. 모두 세 명. 주문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오지만 바리스타들은 당황한 기색이 없습니다. 차분히 자기의 몫을 나누고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얼핏보면 어지러워 보이는 어선에는 어부들의 규칙이 있고, 파도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차분하게 자신의 일들을 해냅니다. 사람들이 가득찬 사테이 하토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스타들은 익숙한 동선을 따라 커피를 내리고 손님들을 상대합니다.
어떤 메뉴도 허투로 다루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메뉴에 지칠법도 합니다만, 음료를 제조할때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진지합니다.
주문서는 끊임없이 몰려듭니다. 소서를 예열하고 원두 계량도 정확하게 합니다. 바쁜 와중에도 결점두를 골라내고, 물 온도를 맞추기 위해 주전자를 움직입니다.
케이크를 자를때도 바리스타의 손은 신중합니다. 사시미를 자르듯, 차가운 물을 묻힌 예리한 칼은 케이크를 말끔하게 도려냅니다.
주문한 블렌드를 내릴때에는 제 앞으로 찾아왔습니다.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커피를 내리지만, 주전자를 잡은 손은 능수능란합니다. 꾸준히 가느다란 물줄기에서는 오랜 훈련의 힘이 느껴집니다.
카페만큼이나 오래됐을 웻지우드 잔입니다. 조심스럽게 받아든 커피에선 피트함이 가득 찬 위스키의 맛과 향이 느껴집니다. 잘 숙성된 곡류와 과일의 맛이 이럴까요. 오래묵은 의자와 나무바닥에서 풍겨오는 정겨운 향이, 그만큼이나 잘 보존된 오랜 블랜드의 은은한 향과 어우러져 카페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첫 모금부터 마지막까지, 커피는 흔들리지 않고 균일한 맛을 보여줍니다.
냉장고와 진열대 모두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커피를 내리지 않을때면, 바리스타들은 끊임없이 바와 진열대를 정리합니다.
1989년으로 시작되는 접시는 2017년까지 이어집니다.
라이온
Lion
주소: 일본 〒150-0043 Tokyo, 渋谷区Dogenzaka, 2−19−13
연락처: +81 3-3461-6858
영업 : 월-일 11:00-2030
사테이하토우를 나와 번화가를 따라 한참을 걷습니다. 번쩍이는 빌딩사이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러브호텔이 즐비한 골목이 보입니다. 홍등가와 유흥가를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구석진곳에서 라이온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시부야의 터줏대감 라이온의 역사는 1926년부터 시작합니다. 이제 곧 100살을 맞이하는 음악다방 라이온은 세월의 풍파속에서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것은 한 쪽 벽을 가득 채운 스피커 입니다. 두 대의 턴테이블과 수천장의 LP 그리고 1층과 2층을 가득 채우는 소리에 감탄하며 자리에 앉습니다.
오래된 의자와 바닥은 삐걱하는 소리를 냅니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의자에 줄지어 앉은 노신사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누구는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누구는 신문을 읽고있습니다. 또 누구는 노트북으로 자신의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 사이사이 젊은이들 또한 섞여앉아 사랑을 나누거나 커피를 마십니다.
바흐의 미사 B단조가 흘러나옵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음악에 침전합니다.
1층과 2층, 아무런 소리 없이 자신의 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카페를 가득 채운 음악에 기댑니다. 이어 베토벤의 현악 4중주가 흘러나왔고, 그 사이 카페지기의 간단한 음악소개도 들었습니다. 다음 여정을 위해 몸을 일으켰을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따라 라이온을 나섰습니다.
도쿄의 카페들은 서두루지 않습니다. 각자의 시간에 맞춰 성장하고 또 오랜시간을 버텨냈습니다. 고즈넉한 도시의 외곽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마주하고, 가장 번화한 도심에서 오래된 카페의 깊은 향기를 맡았습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어색하지 않게 도시에 살아있습니다. 문득 도쿄의 건물주들은 높은 월세보다, 자신의 건물에 오래된 음식점과 카페가 있는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긴다는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일본의 커피가 성장하는 세계 커피시장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신들의 색과 철학을 뽐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진정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존중하며 즐길 줄 압니다. 그래서 노지커피는 햇과일마냥 신선한 커피를 뽑아내며, 사테이 하토우와 라이온은 신주쿠의 중심에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을수 있습니다.
좀처럼 오랜 카페를 보기 힘들고, 젊음과 패기로 문을 연 훌륭한 스페셜티 카페들이 건물주와의 다툼속에 문을 닫는 홍대의 거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도쿄에 커피를 마시러 와야한다는 말에 가슴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이렇게 멋진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긴자의 람브르, 신주쿠의 블루보틀을 들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일본 카페기행의 마지막편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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