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월간커피] 커피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

 

 


COFFEE COLUMN

 

문화로서의 스페셜티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던 이대앞 비미남경이나 안암동 카페 보헤미안은 마치 종교의식을 행하는 그런 엄숙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공간이 뿜어내는 그 기운에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자신 앞에 놓인 커피에 집중했다. 물 흐르는 소리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이따금씩 들리는 호로록 소리를 들으며 마셨던 이 커피들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분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스페셜티 커피시장이 성장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뉴욕이나 시애틀, 런던에서 마주할만한 수준급 카페들이 자리 잡았다. 화려한 커피들이 도시를 수놓음에도 나는 그 시절의 커피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종종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올드스쿨 카페들의 문을 두드리곤 한다.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도 없이 나의 모든 것을 다해 이 한 잔의 커피를 만들었습니다.’라고 묵묵하게 건네주는 그 커피가 아직도 나에게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커피는 문화의 음료다. 하지만 커피시장의 성장 속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페셜티 커피를 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커피가 스페셜하기 때문이 아닌, 당신에게 스페셜한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에 스페셜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고리타분하게 과거를 추억하며 올드스쿨 시절의 커피로 회귀하자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대중이고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문화다. 스페셜티 업계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것도 산업적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카페를 둘러싼 지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뚜렷한 방향성과 철학을 가지고 커피를 만들어내는 일 또한 필요하다.

문화로서의 커피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교토여행 중 발견한 작은 카페들에서였다. 외지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한 골목 내 위치한 카페들은 그 동네의 향기를 가득 담은 블렌드를 내어놓곤 했다. 어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든 교토에서는 블랜드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하면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커피를 마신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매혹시킨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단순한 싱글 오리진이 아닌 카페가 추구하는 맛을 꾹꾹 눌러담은 개성적인 블랜드였다. 이제 곧 60주년을 맞이하는 대학로의 <학림다방> 역시 30여년 전부터 개발한 학림 블랜드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당시 블랜드를 개발하기 전에는 설탕 둘, 프림 둘 커피 믹스커피가 전부였지만 학림다방의 주인장이 믹스커피에 길들여진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메뉴를 밤낮없이 연구한 끝에야 학림블랜드가 탄생했다.

스페셜티가 커피 산업이 아닌 문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화려한 수식어가 없어도 사람들은 좋은 커피를 알아본다. 소비를 넘어 취향을 설득하는 커피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10년 뒤에는 어느 골목에 있는 카페를 들어가더라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커피들이 가득해지길 바란다.

 

조원진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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