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즈베(Cezve) 이야기
처음으로 커피가 발견된 곳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다. 그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이렇다. 염소를 기르는 소년이, 자신의 염소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자 의아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고, 이상한 열매를 먹고 염소가 흥분한다는 것을 알았다. 곧 그 열매가 각성효과가 있다는게 밝혀졌고, 수도사에 의해서 각성효과를 위해 커피가 만들어졌다. 커피는 곧 무역로를 따라 예멘, 터키로 퍼졌고 전쟁과 무역을 거쳐 유럽으로 퍼졌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각 나라의 문화, 생활방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체즈베(Cezve)로 달여먹는 커피는  그 중에서도 주로 터키(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애용되는 방식이다. 터키에서는 또한 이브리크(Ibrik)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브리크는 커피기구 외에도 오일이나 와인, 커피 따위를 담는 긴 주전자라는 의미가 있다.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체즈베는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사용법이 존재한다. 터키에서는 커피를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 물과 함께 끓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란 사람들은 여기에 우유를 섞어 끓이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물을 먼저 끓인 후 커피를 넣기도 하는 등, 다양한 제조법이 존재한다.



얼마 전, 뜻밖의 커피 주문이 들어왔다.
'체즈베'로 마실건데요, 강하게 볶아서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주세요'
몇 번 마셔본 적은 있지만 파는 곳도 흔치 않고, 잘 알려진 방법이 아니라 살짝 당황했다. 커피를 어느정도로 볶아야 하는지,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마침, 얼마 전 커피상점 이심에서 터키 커피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 느낌을 살려 콩을 볶았다. 그리곤 밀가루 처럼 곱게 커피를 갈아 배송했다.

막상 주문대로 커피를 볶아 포장을 해보니, 체즈베로 커피를 마셔보고 싶었다. 어차피 커피야 매일 마시니, 체즈베 하나 구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심에 들러 1인용 체즈베를 구입했고, 다음날 바로 시음에 들어갔다.
 

짜잔! 포장된 체즈배와 컵. 저 컵은 도자공예를 하는 친구가 나를 위해 직접 만들어준 컵이다. 나의 첫 터키커피를 따라 마시기 위해 개봉을 결심했다.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도자기 잔이다.

친구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그리고 체즈베. 긴 손잡이는 커피를 달일 때, 쉽게 뜨거워지지 않도록 고안됐다. 본체는 동으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나 놋쇠나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제품도 있다. 수제품이 많으며, 다양한 디자인은 터키를 비롯한 중동의 문화를 반영한다.

이브리크는 그 모양이 아름다워, 전시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커피가 쉽게 끓어 넘치지 않도록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띄고 있다.

도자기 컵과 체즈베.

본격적인 체즈베 커피를 만들기 전에, 도자기 컵을 소독하는 작업을 했다. 가스가 아닌 소나무로 구운 자기라 독소가 포함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컵이 잠길만큼 물을 담고, 소금을 한 큰술 덜어넣는다. 물이 끓고 5분간 소독하면 된다.

이브리크도 처음 사용하니 물을 넣고 끓여보았다.

소독 되고 있는 컵.

5분을 기다리고.

자. 이제 컵도 소독했고, 체즈베도 세척했다. 콩은 주문을 받아 터키커피용으로 볶은 온두라스를 준비했다. 강배전이다.

자, 이제 본격적인 터키 커피 만들기를 시작해보자! 우선 그라인더굵기를 가장 가늘게 세팅한다.

밀가루처럼 곱게. 가늘면 가늘수록 좋다. 터키에서는 아주 곱게 갈아 커피를 마실때 자연스럽게 커피를 같이 마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커피는 1인분에 6g, 80ml가 기준이다. 취향에 따라 커피양과 물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우유를 넣고 끓여도 좋고.

준비된 체즈베에 분량의 물을 붓는다.

준비 완료!

작은 불에 적당히 높이를 조절하며 끓인다.

그 사이에 잔을 따뜻하게 해 두면 좋다.

자, 이렇게 커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체즈베를 높게 들어올린다. 거품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다시 끓이고.

이것을 3번 정도 반복하면 완성이다. 취향에 따라 4번, 5번 끓여도 좋다. 끓이면 끓일 수록 맛은 더 진해진다.

자. 완성.

잔에 따르고.

곱게 갈린 커피는 대체로 체즈베에 남는다. 그래도 잔에 따라오는 커피는 어쩔수 없다. 먹어도 안되는 건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커피의 맛은 묵직하다. 그리고 향기롭다. 터프하단 느낌도 들고. 생각보다 커피가 강하지는 않다.

터키사람들은 아침마다 이렇게 체즈베로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고 한다. 그리고 잔에 남은 커피 모양으로 그날 하루의 운을 점친다고. 오늘 나의 운세는 어떤지 궁금하다.


체즈베의 사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리고 맛있었다. 터키커피에 맞는 적절한 원두를 선택해서 내려 먹는다면, 충분히 매력있는 한 잔의 커피가 나온다. 그럼, 긴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편요약.

  • 준비물 : 체즈베, 중강배전 혹은 강배전 커피 6g, 물은 80ml.
  • 만드는 방법 : ① 분량의 커피와 물을 체즈베에 담는다. ② 약한 불에 올려 커피를 달이기 시작한다. ③ 커피가 끓어오르면 체즈베를 높게 들어준다. 이것을 3번 반복한다. 취향에 따라 끓이고 들고를 몇 번 더 반복해도 좋다. ④  커피가 가라앉을 수 있게 조금 기다린다. ⑤ 따라 마신다.
  • 체즈베 구입 : 커피상점 이심에서는 1인용 체즈베를 12,000원에 2인용 체즈베를 14,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 밖에 인터넷 혹은 남대문 커피 상가에서 구입 가능하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쌀쌀해지면, 터키 커피가 그리워질 것이다. 중후하고 텁텁한 터키 커피는, 다른 커피보다 훨씬 더 묵직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운세가 궁금하다면, 당장 체즈베를 구입해 커피를 마시고, 나만의 운세를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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