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잡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림. 마티즈의 바이올리니스트. 친구는 나에게 이 그림을 선물로 줬다. 여러장 중에 한 장이었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걸. 그림이나 시집 혹은 책을 선물 했을때 그걸 진심으로 기뻐하며 받고 또진심으로 읽어주는 친구는 드물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말로 손에 꼽는다.

어린 마음에(혹은 어른이 돼섣) '시집을 선물하면 좋겠다'고 했다가 막상 선물했을때 낭패를 본 경험이 많다.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시집을 가지고 어쩔줄 몰라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곤, 내가 선물한 시집도 저런 처지겠거니 생각했었다. 종종 너무 좋다는 이유만으로 범문사 문고판 책들을 선물로 대신한 적이 있었으나 역시 이것도 낭패. 같은 가격이면 수면 바지나 목도리가 더 좋은 선물이라는 걸 나는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는 아직도 그림과 시집, 책 그리고 음반을 선물하는 이들이 몇 있다. 나도 역시 이들에게 답례로 진지하게 고민한 소정의 선물을 주곤 한다. 같이 읽었을때 나눌 수 있는 묘한 희열감, 함께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는 뭉클함, 어느날 문득 마주친 그림에 반가운 사람이 생각나는 것.

 

2. 지지난 밤에는 혼자 부암동 언덕길에 올랐다.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오늘의 커피를 테이크아웃했다. 3천원. 멀리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은 몇년이 지나도 평화로운 마음을 선물한다. 문득 말러 교향곡이 생각나 한시간이 넘도록 음악을 듣다가 집에 왔다. 같이 좋아해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내심과 집중력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친근해지기만 하면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이 고전음악을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록음악에 끼워서 팔면 되지'라는 답변을 들었던게 생각났다. 어떻게든 듣게하고,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거니까.

밤에는 그날 새로 산 음반을 들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스코틀랜드 3번 교향곡. 박진감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몇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역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런거 같이 들어줄 동네친구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디 록음악에 끼워팔면 자기도 모르게 쏙 빠져들만한 사람 없나?

 

3. 교수님의 성화에 이끌려 온듯한 대학원생들 사이에 끼어 피나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졸거나 미처 내지 못한 레포트를 만지작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는 감상문을 써야하나라는 질문만 무성했다. 누군가 같이 나눌 사람이 있을까 하고 폰을 만지작 거렸다. 좋아할만한 사람들이 몇 있었으나, 그들 역시 바쁜 삶에 영화보기도 힘든 처지였다. 팝콘을 들고 동네 CGV에서 영화를 봤다면 얘기할만한 사람들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무취향, 무취미인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고 진득하니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씨얘기 뿐만이 아니라 취미얘기만으로도 신나게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내가 가진 취미 만큼이나 당신의 취미도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4. 피나에는 피나 바우쉬가 춤추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긴 하지만 앞과 뒤에 조금. 그리고 대사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춤과 표현만이 있을뿐. 처음에는 난감했다. 도대체 뭘 의미하는거지, 생각하며 머리를 감쌌다. 영화가 흐를수록 자연스레 그들의 춤동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어와 기보법으로는 표편할 수 없는 동작들이, 피나 바우쉬의 안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새삼 빔 벤더스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더 길게, 깊게 쓰고 싶지만 사정상 여기까지. 자자, 다들 영화관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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