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들러붙는 체크무늬 바지, 단발로 가볍게 뽂아 5:5로 산만하게 자란 머리, 강렬한 원색 블레이저로 포인트를 준, 그러면서도 쪼리를 질질끌면서 '나의 평상복은 이 정도다'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홍대남(혹은 여)은 오늘도 커피를 마십니다. 그가 들르는 곳은 간판도 찾기 힘든 당인리 화력발전소 앞의 '커피발전소'. 옷에 투자하느라 지갑이 가벼워졌더라도 커피 한 잔은 부담 없습니다. 3천원이면 거품키스를 위한 카푸치노부터 제주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당근주스까지 다 맛볼 수 있습니까요.
커피발전소를 처음 들르신 분들은 분명 이 곳을 무심코 지나쳤을 겁니다. 그리 밝지 않은 조명에, 간판도 크지 않고, 자극적인 인테리어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곳, 커피발전소에는 항상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누가봐도 홍대에서 일하는(혹은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찾아오거든요.
내부는 조용하고, 아늑하고, 소박합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점잖은 카페주인이 부지런히 커피를 만들고 있습니다. 거대한 굴뚝이 솟아오른 발전소가 무색하게, 아담한 커피발전소에서는 쉬지 않고 커피가 생산됩니다.
저에게 카페에서 공부하는 건 참 힘든일입니다. 등산가방처럼 공부할 거리를 가득 채운 가방을 매고 가도 책 조금 읽고 수다떨고, 커피나 마시고 오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이곳에 들르면 항상 뭔가를 하나씩 하고 옵니다. 책 한권을 다 읽거나, 레포트를 하나 다 쓰거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덕분이죠.
누가 발전소 앞 카페 아니랄까봐 발전소 사진을 잔뜩 찍어 걸어놨네요.
드립, 에스프레소 그리고 과일음료까지 다루면서 이렇게 소박한 주방은 아마 여기뿐 일겁니다. 이곳에서는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메뉴를 만들어 줍니다. 모카포트는 특성상 시간이 오래걸리고 불편하기 때문에 영업장에선 잘 쓰지를 않아요.(모카포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링크 참조) 저도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손님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에서 모카포트로 영업이 가능할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사장님의 손놀림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어설픈 실력으로 머신을 다루는 사람보다 훨 빠른 속도로 한 잔의 카푸치노를 만들어 내더군요. 그것도 수동 거품기로 거품을 내면서 말이죠.
물론, 모카포트는 기계보다는 압력이 덜 걸리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연한 카푸치노나 카페라떼는 취향을 탈 수 밖에 없겠네요.
발전소의 '소박의 미학'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수제 더치툴입니다(수제 더치툴 만들기 - 링크참조).
사실 커피 발전소 근처에는 M본부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무연탄 카페(anthracite)가 있습니다. 프로밧과 고도(실제 고도를 쓰는지는 모르겠습니다)로스터를 사용하며, 라마르조꼬와 말코닉 그라인더까지 갖춘 (기계가)훌륭한 카페입니다. 공장을 개조한 인테리어도 인상적이고요. 하지만 저는 이 근처에 오면 무연탄 카페보다 프로스타를 쓰는 이 곳을 더 즐겨찾습니다. 이 곳의 커피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죠.
발전소의 도서관 입니다. 심야식당 전권이 있는것만 봐도 이 곳의 책들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짐작할 수 있죠.
흡연자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의자 입니다.
사장님은 야구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야구공은 물론이고 야구 관련 책도 많습니다. 그래서 전 이 곳이 좋습니다.
모든 메뉴는 일괄 5천원, 테이크 아웃시 3천원 입니다. 친구는 이곳의 당근주스를 추천하더군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오직 '제주도산 천연 당근'만이 들어간 이 주스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들 정도로 맛있다고 합니다.
엘 살바도르를 시켰습니다. 이 곳의 커피는 겸손합니다. 자극적이지 않죠. 은은하면서도 잔향이 오래가는 편이에요. 화려하고 강렬한 커피를 뽑아내는 커피생각과는 정반대입니다.
- 커피 발전소 포인트 - 저렴한 테이크아웃 가격. 겸손하고 은은하고 부드러운 드립커피.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 커피 발전소 미스 포인트 - 모카포트로 만든 연한 에스프레소 메뉴. 상수역에 내려서 10분은 걸어야 하는, 찾기도 힘든 애매한 위치.
- 커피 발전소 포 미 - 조용한 카페가 가고 싶을 때, 카페가서 정말 공부가 하고 싶을 때.
- 커피 발전소 가는 길 - 지하철로 갈 때에는 상수역 4번출구 내려서 한강공원 방면으로 직진 후 사거리서 우회전. 쭉 가다 보면 멀지 않은 곳에 화력 발전소가 보인다. 조금 더 직진하면 좌측에 커피발전소가 있다. 버스는 마포07번이 다니고 있다. 근처에 정류장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자전거 이용시에는 홍대에서 주차장길 지나서 쭉 따라 내려와서 골목길을 조금만 지나면 발전소에 다다를 수 있다.
정 모르겠다면 택시타고 '당인리 화력발전소 가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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