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최근에 방문했었는데, 커피 가격이 인상됐더군요(5500원). 리필도 한 잔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통돌이 로스팅을 하는 곳은 예상외로 얼마 없다. 많아봤자 500g내외를 볶아내는 통돌이로 커피를 볶아 장사를 한다는 건, 상당한 인내와 꾸준함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통돌이로 커피를 볶는 로스터들이 있는 것 보면, 통돌이로만 표현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통돌이로 커피를 볶는다. 전문 로스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마추어'지만, 통돌이 로스팅이라면 왠지 동질감도 들기도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홍대의 '커피볶는 곰다방'은 그래서 내가 즐겨찾는 카페 3순위 안에 든다. 유니온 통돌이로 볶아낸 그곳의 커피는, 나의 롤모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이었나, 통인시장 근처에 통돌이 명인이 등장했다는 소문을 몇몇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호기심 때문에 몇번이고 카페 앞까지 찾아갔으나, 근처에 단골 카페가 있어서 그곳을 가느라 들어갈 엄두를 못냈다. 아쉬움을 달래길 몇번째. 드디어 광화문커피를 찾았다.
 

 

광화문 커피는 통인시장옆에 있다. 근처에는 효자동 베이커리가 있고 언덕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다보면 정겹게 생긴 광화문 커피 입구가 보인다. 정면에서 봤을땐, 로스팅실이 있어서 좁아보이지만, 안쪽으로 앉을곳이 있다. 테라스에도 테이블이 두 개나 있어 애연가들도 부담없이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테라스에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내가 생각하는 일본 카페와 한국 카페의 차이점. 바로 하우스블렌드이다. 일본 카페에 들렀다면, 그곳의 블렌드 커피를 마셔보는게 묘미다. 카페 주인이 연구에 연구를 거쳐, 그 카페만의 맛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블렌드를 파는 곳은 많지 않다. 우선, 직접 로스팅을 하는 카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두번째로는 블렌드가 있다하더라도 자신있게 추천하는 경우가 없다. 혹은 추천하여 마셔보더라도 큰 인상이 남지 않는다. 드립커피 블렌드 중 가장 인상이 남는 곳은 딱 세 곳. 대학로의 학림다방과 강릉의 카페 보헤미안 그리고 연희동에 있는 카페 이심이다. 특히, 학림다방의 블렌드의 그 부드러움과 달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물론 내가 카페를 많이 안다녀 본 탓에, 블렌드 커피를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카페에 들어서 메뉴판을 받았을 때, 나는 이곳에서도 왠지 제대로 된 블렌드를 맛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하게 외부에 노출시켜놓은 로스팅실하며, 메뉴판의 제일 첫번째 메뉴를 장식한 모습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광화문 브렌드를 주문하고, 카페를 둘러보았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기물들과 곳곳에 눈에 띄는 커피용품들. 왠지 사직동의 내 단골 카페가 생각나는 인테리어였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카페가 오픈한지 오래되지 않아 깨끗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커피가 준비되는 동안, 살짝 주방(?)도 살펴보았다. 멀리 보이는 말코닉 케냐 그라인더가 눈에 띄었다. 훌륭한 바리스타는 가장먼저 좋은 그라인더에 투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커피를 잘 분쇄하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드립커피에서는 사람의 힘을 벗어나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그라인딩 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기계가 모든 걸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기계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더 좋은 커피맛을 위해 신경을 쓴다는 것이므로 눈여겨볼만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커피가 나왔으니 잔말말고 시음을 해 보았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아, 이 커피는 정말 솔직한 커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이 솔직한 맛을 가진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직한 맛은 좀 덜했지만, 부드러운 맛과 은은하게 느껴지는 산미는 마시는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고소함과 단맛 또한 느껴지기도 했다. 거친 맛을 가진 생두들이, 좋은 로스터를 만나 잘 길들여진 맛을 냈다는 것이 총평이라면 총평.

결국, 나는 다음날에 또 이 곳을 찾아, 블렌드를 시켜마셨다.


약간은 불맛이 느껴지고, 거친느낌이 나는건 아마도 저 타공식 샘플로스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강한 불에서, 소량의 원두를, 5-6분 사이의 짧은시간에 뽑아내기 때문에 더욱이 그런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통돌이 로스팅은 워낙에 변수가 많고, 그 변수를 컨트롤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통돌이 로스팅은 '느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생두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집중하고, 풍겨나오는 향기에 후각을 총 동원해야 한다. 거친 생두들이 잘 컨트롤 됐다는건, 그만큼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얼개미며, 초시계 그리고 탐침까지. 통돌이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더욱 눈이 가고 동질감마져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내부는 조용하고 차분하다기보다, 활기차고 재미있는 느낌. 배경음악 대신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클래식 방송과 국악방송을 번갈아 트는 것 같았다. 굳이 안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었다.

 

 

리필로 콜롬비아를 마시며 다시 카페 구경. 콜롬비아 역시 거친 느낌 와중에 생두가 가진 맛을 잘 표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콜롬비아를 시킨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바로 콜롬비아를 볶았기 때문이다.

 


이 곳의 장점은 리필이 자유롭다는 점. 에스프레소 블렌딩도 궁금해 주문을 했는데, 친절하게도 리필로 내려주셨다. 드립 블렌딩보다는 인상깊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균이상의 맛이었다. 카푸치노를 한 잔 더 시켜먹을까 하다가 역시 집에서 2잔이나 마시고 단골카페에 들러 커피를 반 잔 정도 마셨기에, 이게 마지막 잔이 됐다.

 

약속이 취소된 바람에, 블렌드나 한 잔 더 마실 겸 다음날 또 카페에 들렀다. 전날보단 좀 차분한 느낌이었다. 블렌드는 여전했다(여전하지 않을리가 없지만;). 어제 사람이 많아 찍지 못한 사진을 좀 찍었다. 민폐를 끼친게 아니길. 리필로 과테말라와 케냐를 먹었다. 이 날은 케냐가 맛있다고 하길래 마셔봤는데, 적절한 바디감도 느껴지고, 신맛도 잘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맛있어서 다 마시고 싶었으나, 저녁을 먹지 않아 속이 좀 부대끼는 느낌이었다. 미안하게도, 약간 남기고 저녁을 먹으러 자리를 떴다.

 


창 밖 풍경은 정겨웠다. 시장 주변인데다가 주택가가 밀집해있어 꽤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집에 오는길엔, 자하문 터널을 지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구름이 멋있어 하늘을 찍었다. 카페인에 취해 더욱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두번째 사진은 마그리트의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광화문 커피의 로스팅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집에와서 타공식 로스터기를 꺼내들었다. 흉내를 내본다고 볶아봤는데, 맛은 어떨는지 모르겠다. 생두의 투입량과 화력, 배출 포인트는 억지로 맞춰봤지만, 역시나 미세한 컨트롤에서 미스를 한 듯 싶다. 내일 한 번 마셔나 봐야지.

  • 광화문 커피 포인트 - 통돌이 장인 혹은 달인이 신선한 원두로 내려주는 드립커피. 하우스 블렌드는 물론이요, 생기 넘치는 드립커피는 이곳만의 매력 포인트.
  • 광화문 커피 미스 포인트 - 경복궁역에서 도보로 카페를 찾아가기까지는 조금 걸어야 한다. 개성있는 드립커피 메뉴 때문에 에스프레소가 빛을 못낼 수도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 광화문 커피 포 미 -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20분 거리. 통돌이로 커피를 볶는다는 점. 개성있는 블랜드와 맛있는 드립커피가 있으니, 단골 카페가 되는건 시간문제.
  • 광화문 커피 가는 길 - 지하철 이용시 3호선 경복궁 하차. 2번출구로 나와 직진. 도*노피자를 지나 통인시장 입구가 나오면 나오면 좌회전. 통인시장을 통해 나오면 우회전. 효자 베이커리가 보이고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광화문 커피가 등장. 버스 이용시 경복궁역에서 내려 효자동을 향하는 버스를 아무거나 타고 통인시장에 내려서 찾아가거나 171등 사직단을 통과하는 버스를 이용. 사직단에서 내려 종로도서관쪽 골목으로 향한다. 종로도서관쪽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골목을 향해 쭉 걷다보면 역시 통인시장과 효자베이커리를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자전거 이용시 자하문 터널을 넘어 오거나 광화문에서 효자동쪽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다면 쉽게 올 수 있을 것이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35-11

 추신: 최근에 방문했었는데, 커피 가격이 인상됐더군요(5500원). 리필도 한 잔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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