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채식주의를 대변하는 책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동물을 먹는다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고 의미를 집고자 한다. 개고기에 대한 해묵은 논쟁으로 글을 시작한다는 점은 이 책의 방향성을 보여주고있다. 개와 인간이 계약이라도 맺은양, 개를 특별하게 여기고 그것을 먹는걸 금기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모순적인가. 돼지는 개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 고통을 느끼는것도, 행복을 느끼는것도 개와 돼지는 모두 똑같을텐데 왜 우리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가.

 

그리고 이야기는 해마로 넘어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신비로운 모습의 해마는 약 35종으로 분류된다. 그 중 20종이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나 만날법한 신비로운 모습은 수집광들에게 크나큰 유혹이다. 잘말려 보관된 해마는 훌륭한 수집용 화석이 된다.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해마의 모습은 신비 그 자체다. 덕분에 모든 물고기가 그렇듯 해마도 수족관에서 자유를 잃고 생명을 잃는다. 해마가 죽는 경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해마는 부수어획에서 가장 많이 희생당하는 어종이다. 참치 한마리를 잡기위해서 위성항법장치(GPS)를 동원하는 글로벌 포획자들은, 그물에 함께걸린 다른 145종을 죽인다. 새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우 0.5kg를 잡기 위해 12kg의 다른 어종들이 죽어야만 한다. 사람의 얼굴에 갈고리를 던지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숨도 못쉬게 죽여버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갈고리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은 물론이요 함께 죽어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공장식 축산업이 전달하는 비극적인 광경은 참치가 잡히는 모습에 비하면 온화한것일지도 모른다. 원양어선을 타고 비극의 종점으로 가는대신 샤프란포어는 농장들을 찾아간다. 곧 세상의 빛을 볼 자신의 아이를 위해, 그 아이가 먹게될지 모르는 동물들을 직접 보기 위해 그는 농장에 편지를 쓰고 머나먼 시골로 차를 몰고 간다. 그는 침착하게 그가 보고 듣고 읽고 느낀것을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업 덕분에 우리가 겪게될 고초들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그는 우리가 사소하게 넘기는 소화불량이나 복통의 원인이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가공된 육류에서 기인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비정상적으로 단기간에 성장한 동물들은 생명이라 하기엔 너무 많은것을 잃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모든 공장식 축산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광인이거나, 광인이었거나, 광인이 된다.

 

그가 채식주의를 선택한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안이라고 존재하는 목장들에서 탄생하는 육류들조차도 공장식 축산이 지배하는 업계에서 벗어날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대안이 될수있는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포어는 사실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챕터에서 그는 할머니가 차려주었던 맛있는 닭 요리에 대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올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책은 마무리 된다. 동물을 먹는다는것에 대한 성찰. 우리가 마주하는 음식들이 어디서 탄생하고,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마주하는 일에 그는 수많은 생각과 과제들을 던져주고 끝이난다. 책은 통해 육식에 대한 독자의 냉철한 성찰을 도와주고 그들이 선택을 하게 도와준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됐든, 책의 내용들은 그 선택의 근거가 되어준다.

 

 


 

착한커피열풍이 드세다. 이 열풍이 좋은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듣도보도 못한 스페셜티에 관심을 가졌다는건 대단한 일이다. 시다고만 여겨졌던 그 커피들을 설득할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는 좋은것이고 라마르조꼬도 훌륭한 머신으로 밝혀졌다. 이제는 바리스타들이 자신들이 낸 커피가 왜 신맛이 지배적인지 소비자를 설득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육식에 반감을 가지듯 직거래하지 않은 커피, 비싼 머신을 쓰지 않는 가게를 착한 가게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

 

착한커피 방송과 샤프란포어의 책은 깊이의 차이가 있다. 좋은 기자는 기사를 쓰기 전 자신이 취재하고자 하는 것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령, 넥타이 무역에 대한 취재를 한다면 넥타이의 탄생부터 섬유업계의 화두까지 간단하게라도 사정을 파악한 후 펜을 집어든다는 것이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는 동물을 먹는 모든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착한커피 방송은 그저 하나의 '맛집 소개'에 그치지 않는 방송을 만들어냈다. 70분의 영상이 던진 충격은 1권의 책보다 파격적이었다. 우리는 어떤 커피를 마셔야하는가. 포어는 육식을 하지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평생 육식에 대해 고민없는 선택을 했던 사람이 샤프란 포어의 책을 읽는것과, 커피라곤 인스턴트만 마셨던 사람이 방송을 보는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포어의 책은 사람들의 편견을 걷어냈고 착한커피 방송은 사람들에게 뿌리깊은 편견을 심어줬다.

 

Coffee Break (Addis Ababa, Ethiopia) from John Harrison on Vimeo.

 

 

애초에 '착한 먹거리'를 찾겠다는 방송의 의도가 잘못됐다. 어떤 먹거리가 착한 먹거리일까. 착한 먹거리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것들은 다 나쁜 먹거리가 되는걸까. 방송에서는 착한 먹거리만 보여주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다른것들은 나쁜 먹거리로 자리잡는다.

 

커피는 도대체 어떻게 마셔야 할까. 오랫동안 수많은 커피와 마주하고 카페를 다녔지만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답이라고 찾은것이 있다면 먹는것과 같이 커피 또한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다. 커피를 볶는 것에 정답이 있을까. 추출을 하고 마시는 것에 정답이 있을까. 방송에서 그토록 찾아해맸던 직거래, 약배전 커피가 훌륭하고 비싼 머신이 착한 커피라면 아디스아바바에서 마시는 저들의 커피는 나쁜 커피일까.

 

실제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마이크로랏 농장주들은 어마어마한 부자들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가 꼭 착한일만 하는건 아니다. 스페셜티가 커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시모넬리 라인업은 국제대회에서 사용할만큼 공인된 머신이다. 약배전 커피라고 낮은온도에서 내리라는 법은 없다. 커피가 맛있어지는건 커피에서만 기인하는게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 어떤 음악과 함께 듣느냐도 중요하다. 내리는 사람의 철학도 중요하다. 취향의 문제도 무시하지 못한다.

 

샤프란 포어가 소규모 목장을 방문하면서, 채식주의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스스로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서 글을 써나간 것 처럼 커피에 대한 방송을 만들었으면 하는 하는건 너무 심각한 부탁일까. 포어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은것처럼, 독자 스스로가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하게끔 만든것처럼 커피를 선택하게 만들어 줬으면 어땠을까. 우리는 꼭 착한커피를 마셔야 한다는양 방송을 하는건 너무나 거만하고 납득할수 없는 폭력적인 일이다. 그들이 무심코 만들어낸 그 70분의 영상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들은 알까. 커피 한 잔에 담긴 깊은 의미가 짧은 영상으로 인해 무너져내렸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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