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의 업데이트인지 모르겠다. 만약에, 혹시나, 혹여나, 조금이라도 내 여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또, 여행을 다녀온지 6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다 기억을 해내냐 하고 따지고 물으신다면 나는 원래 메뉴얼 적인 사람이라서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늦게 올린건 귀차니즘 때문이다. 삶이 고달프다 요즘.

천의 자연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란 애벌레. 이게 진짜 애벌레인가 보다. 애비!



지난 이야기 - 우여곡절 끝에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 한 민간인 아파트(?) 혹은 현지인 아파트에 머물며 지역 주민들과 화합의 장을 이룸.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준이의 도착을 기념해 공원에서 한바탕 댄스 파티를 벌임.

준이는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으로 향했다. 2년간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고향이기에 그럴법도 했다. 우리도 그 일정에 맞춰 준이를 따라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100km(정확히는 모르겠다)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물랑가라는 곳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근처 카후히아에 있다. 이곳은 케냐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케냐산을 끼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서늘한 기후를 자랑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물랑가는 해발 3000~4000미터 정도이고 근처의 산들은 대부분 4000미터를 훌쩍 넘는다. 케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5,199미터이다. 이 지역은 케냐 최대 부족인 키쿠유부족의 발원지이다. 준이 또한 키쿠유족이다. 여기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고(키쿠유 부족들과 함께), 잠시 나이로비로 가서 관광을 하다 다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일정을 잡았다. 마타투로 1시간정도 실컷 달리면 갈 수 있는 거리라 그렇게 부담가는 일정은 아니었다.

우리 숙소 근처다. 케냐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사실, 횡단보도라는 개념이 없다. 길을 건널땐 무리 중 한 사람이 외친다. 원 투 쓰리! 그리고 크로싱!!! 시내에는 줄이 몇개 그어져있는데, 그것만이 이곳에 횡단보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을 말해준다.

저기 멀리 보이는 저게 마타투이다. 언제나 마타투는 손에 잡힐듯한 구름 속과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속을 달린다.

케냐는 정전이 잘된다. 아직은 인프라가 구축이 안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생각엔 독재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듯 하다. 케냐의 정치 상황에 대해선 다음번에 좀 더 자세히 서술해드리겠다.

사람들은 저렇게 산다. 넓디넓은 평원에 집을 지어놓고 여유로이 거닐며 지낸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예사로 보면 안된다. 저래뵈도 기본 3000미터는 넘는다.

길 중간 중간 거주지와 시장들이 있다. 없는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다. 정말, 다 있다.

길은 대체로 아름답다. 포장이 어설프게 되어있어 시트가 꺼진 마타투를 타면 엉덩이가 타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찌만 언제나 창 밖을 보면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차가 많이 몰리는 곳엔 항상 이렇게 망고 장수들이 줄을 잇는다. 자기네 농장에서 지은 망고를 이렇게 나와 파는 것이다. 우리는 마트에서 사기보다 주로 이런 곳을 통해 싸고 질좋은 애플망고를 구입했다.

맛있긴 한데, 이렇게 무턱대로 들이대면 좀 곤란하다.

케냐에서 간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간판을 이루는 철들은 돈이 되기 때문에, 걸리는 즉시 뽑히기 때문이다. 뭐 우리나라도 간판 뽑아가는건 낮선일이 아니긴 하겠지만 말이다.

뭘 찍었는진 모르겠는데, 꽃이 이쁜 것 같다.

드디어 오랜 시간 끝에 물랑가 도착! 바나나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드넓은 평원을 보라!

우리가 묵었던 곳은 카후히하 여자 고등학교이다. 기숙학교이며 나름 명문고등학교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방학중이라 이 곳 선생님의 숙소 중 한 곳을 이용할 수 있었다. 준이 어머니가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

교정이 참 아름다웠다. 아침이면 이곳을 산책하곤 했다.

이름도 모를 꽃들이 엄청 아름답게 피어있다. 맘에들면 앞마당에 뽑아다 심으면 또 이렇게 울쑥불쑥 자라난다.

카후히아 여고 정문이다. 밤이면 준이네 가족들이 다 같이 우리를 여기로 배웅해주었다.

동네 꼬맹이다.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한다. 잠보! 하바리야코! 그러면 친구는 대답한다. 잠보! 은주리 사나!

준이는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하다. 10걸음 마다 한번씩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 때마다 준이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었다.

밤이면 우리는 달빛에 의존해 길을 걷는다.

오랜 여정에 다들 지쳤다. 여긴 준이의 방이다.

귀한 닭이다. 우리를 위해서 준이네 가족은 2번이나 닭 요리를 해 주었다. 양배추를 토마토와 볶은 반찬과 감자가 들어간 댕구(혹은 뎅구)랑 같이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여기 닭은 말 그대로 풀어놓고 키우기 때문에 근육이 장난 아니다. 덕분에 닭고기도 약간 질기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꽃이 인사한다. 안녕!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준이가 다녔던 교회에 가보기로 했다. 날은 대부분 이렇게 화창하고, 온도는 15도 정도로 선선하다. 하루에 한 번 정도 비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걸어다니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하쿠나 마타타!

사진 그만찍고 언넝 따라오란다.

앞에서도 말했었지만, 케냐 인구중 98%가 기독교인이다.(아마 식민지배의 영향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시골에도 교회는 있었다. 잠시 들러 구경해보기로 했다.

다들 사진 찍기에 바쁘다.

고개를 돌려서!, 언제나 식물들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장난감 같은데 진짜다. 진짜로 이렇게 이쁘다.

동화 속에 나오는 교회같다. 교회는 저래뵈도 단촐하다. 들어가면 의자와 선반 하나밖에 없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 큰 건물도 필요없고, 화려한 인테리어도 필요없다. 자연속에 어색하지 않으며 소박하면 그만이다.

교회에서 바라본 물랑가 전경이다. 손에 잡힐듯한 구름과 바나나 나무들이 너무 그립다.

5초간 감상

교회 사람들과 함께 찍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손님들을 반긴다. 여기서는 키쿠유 부족의 발원지 답게 키쿠유 어로 인사해야 한다. 키쿠유어로 어른들께 인사할 때는 웨무에가 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누에가 모노모노모노 라고 답할 것이다.웨무에가는 하우어유 누에가는 지낸다 모노모노모노는 너무너무너무다. 모노를 많이 할 수록 사람들은 크게 웃는다.

의자와 조촐한 선반만이 교회의 재산이다.

아, 분 밖을 보면 보이는 풍경도 물론 교회의 일부이다.

할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며 일일이 웨무에가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모두 누에가 모노모노모노라고 답했다. 모두가 잘 살고 있다.

구름속에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교회에 대해 준이가 설명했는데 까먹었다. 꽤 오래된 교회라고 한다.

어디서나 찍기만 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잡힌다.

우리는 항상 여유로웠고, 한가했다.

교회의 마당이다. 별 꾸민것도 없지만 꽃이 아름답고 나무가 좋다.

다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흔히 보이는 꽃인데, 효원누나 말에 의하면 덴버껌 냄새가 난다고 했다. 향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에, 이쁘다.

간식으로 준이가 프렌치 토스트를 해 주었다. 빵이건 계란이건 다 귀한 음식들이다.

뎅구다. 이건 저녁으로 먹은거다. 항상 댕구와 밥을 먹으면 언제나 든든하다.

준이네 밭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

밭 기행은 다음 편에 보도록 하자.

이 녀석들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잡힐 것이다.

물랑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공기가 맑고 차도 맛있고 커피도 쑥쑥 잘 자라는 천의 환경이다. 가령, 망고를 먹다가 그 큰 씨를 던져놓으면 그게 망고나무로 자라는 시스템이랄까. 하지만 차는 영국 자본의 것이며 커피는 미국 자본의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기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파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편 예고 - 준이네 농장투어! 그리고 물랑가 탐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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