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너무 좋다. 잊혀 가던 케냐 여행기를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날씨 덕분이다. 케냐의 날씨는 딱 요즘의 한국과 닮았다. 한들한들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맑다. 이따금씩 더워진다 싶을 때 즈음, 시원하게 소나기가 내린다. 반팔과 반바지만 입고 있다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 지천에는 과일이 널려있고, 동물들이 뛰어논다.

케냐는 풍요로운 나라다. 언제나 따뜻한 햇볕, 무엇이든 무럭무럭 자라게 만드는 강한 땅, 활기 넘치는 동물, 요리가 따로 필요 없는 훌륭한 과일들!

내 여행기에 케냐 여행에 대한 유용한 팁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우리의 여행은 독특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우리 여행에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담아준다고 해도, 그건 케냐를 여행하는 다른 배낭여행객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행기를 써내려가는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쓴 글을 통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속에 가득 차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의 벽을 조금이나마 무너뜨리고 싶기 때문이다. 오만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케냐가 풍요로운 나라라는 사실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기아, 빈민들은 결국 우리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아프리카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거운 얘기는 여기까지. 필요한 것은 앞으로 절반 이상 남은 여행기를 통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럼 이제 케냐의 파인애플 시티로 여행을 떠나보자!

우리가 여비를 절역할 수 있었던건 마타투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현지인 친구가 먼저 마타투를 잡고, 인원수를 말하며 흥정을 한다. 그렇게 가격이 결정되면 우리는 마타투에 오른다. 갑자기 몰려오는 외국인들에 마타투 승무원은 다시 흥정을 하려하지만, 돈은 이미 지불되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어디를 이동하든 한국돈으로 1000원이상을 들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배낭여행객이 택시를 이용하려면 한번에 한화 1만원-3만원정도를 써야한다.

 

오늘 가는 곳은, 파인애플 시티에 있는 준이의 삼촌네. 초대를 받아 가는 것이지만, 빈손으로 가는건 예의가 아니므로 마트에 들렀다. 간단한 식료품과 선물을 사들고 파인애플 시티로 출발!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케냐에서는 그냥 차만 타고 있어도 이렇게 볼거리가 많다.

청명한 하늘과, 손에 닿을 듯한 구름. 굽이굽이 나무사이로 뻗어있는 조그마한 찻길. 케냐에선,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길 밖에 없다. 아직은 개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덕이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파인애플 시티. 끝이 보이지 않는 파인애플 농장이 장관이다(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 농장은 아직도 영국 소유. 델몬트가 관리하고 있다. 식민지배의 잔재이다.

파인애플, 한 개에 1천원이 안된다. 너무 달아서 가까이만 가도 향기가 코를 찌른다. 너무 맛있어서 가운데 심까지 씹어먹을 정도. 한국에서 파인애플을 먹을 때 느껴지는 신맛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당도보장, 그 자체이다!

여기가 파인애플을 파는 곳. 저 뒤로 파인애플이 잔뜩 쌓여있다. 파인애플, 한 개 천원이다.

파인애플 시티 주변에 있는 소도시. 준이의 삼촌 사무실이 여기에 있어 잠시 들렀다. 길거리에는 사탕수수와 파인애플을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우리는 파인애플을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초점이 나간 사진이지만 맘에 든다!

준이의 삼촌과 함께!

준이 삼촌네 집으로 가는 길. 넓게 펼쳐진 푸르르른 들판. 그리고 낮게 깔린 구름들. 아름다웠다.

소들도 많이 보이고.

실제로 이곳은 90년대 까지만 해도 기린과 코끼리가 엄청 많았다고 한다. 주거지 개발과 함께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말이다.

그냥 사진기를 들이대도, 이정도는 나온다. 훌륭하다!

드디어 도착. 준이가 집 주변을 둘러보며 우리에게 이것 저것 설명해줬다.

이게 코코넛이야! 라고 말이다.

준이의 사촌동생 왐보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낮가림도 없이 우리와 잘 어울려 놀았다. 어찌나 귀엽던지!

오늘의 촬영담당은 준기!

근데 촬영한 영상들이 다 어디로 갔더라..

점심식사 중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브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왐보위!

오늘의 점심. 콩과 감자가 들어간 토마토 스튜와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 우리가 오기 전, 손수 닭을 잡아 요리를 해주셨다. 워낙에 허기진터라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후식으로 파인애플. 환상적이다. 이건, 정말 말로 표현 못하는 맛이다. 으악! 으악!!!!

이후로 우리들은 파인애플을 엄청 많이 사먹었다. 하루는 아침에는 망고 점심에는 파인애플 저녁에는 바나나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구름을 따라가기로 했다.

우리가 타고온 차량.

점심에 먹었던 닭도 여기에 있었겠지.

왐보위는 집에 있기로 했다.

집을 나서는 골목길. 사람들을 만났다.

멀리 보이는 저 산이 킬리맘보고(Kilimanbogo) 산이다. 킬리는 산, 맘보고는 버팔로라는 뜻이다. 즉. 킬리맘보고는 버팔로의 산이라는 뜻. 산이 너무 높아서 구름이 쉽사리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저 구름을 따라 폭포를 보러기로 했다.

구름도 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구름이 많아진 것을 보니 목적지에 다 와가는 것 같다.

한 층 가까워진 킬리맘보고. 아, 여기서 또다른 상식.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신의 산이라는 뜻이다. 킬리는 산, 만자로는 신이다. 킬리만자로도 높은 산이지만, 킬리맘보고도 꽤나 높은 산. 케냐에서는 3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단다. 4000m가 넘는 산이다.

저 멀리 보이는건, 파인애플이다. 파인애플 시티 답게, 농장에는 파인애플이 끊임없이 보인다. 안타까운건 저게 모두 델몬트 소유의 농장이라는것. 현대판 플렌테이션이다.

구름을 따라왔더니 도착했다. 14 Falls. 이름 참 간단하다. 워낙에 구석에 있는 곳이라 외지 사람들은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마타투, 택시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주로 현지인들이 놀러오는 관광지라 입장료도 저렴하다. 하지만 현지인의 안내 없이는 찾기 힘들다는거!

간판을 따라 들어가고, 또 들어가면...

폭포가 나오기 전에 작은 고개가 있다.

꽤나 깊이 들어간다. 택시를 타고왔더라면, 족히 5만원도 넘게 돈을 냈을 것이다.

이제 킬리맘보고가 손에 잡힐듯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바로 그 구름 밑에 도달한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코너를 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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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Falls가 보인다. 우렁찬 소리도 들린다.

커다라지는 않지만, 감탄을 자아낼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준기는 촬영을 하고!

다이빙을 하는 소년! 점프!

사라졌다.

14 Falls.

하하하

하하하

폭포의 아랫쪽

우리를 태워주신 준이 삼촌의 친구분.

준이 삼촌. 준이와 아프리카 이름이 똑같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1천원 정도에 폭포 하구를 돌아보는 투어를 신청했다.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거라 가격도 싸고, 시간도 1시간 정도 둘러보는 코스라 만족했다!

아래서 보니 더 장관이다!


폭포 아래서 본 풍경

기분이 좋다.

새가 지나간 발자국

폭포 아래느 이런 모습이 있었다. 폭포 가까이 가보기로 결심, 길을 떠났다.

우리가 탔던 배. 정말 말도 안되는 노 하나로 꽤 수심이 깊은 강을 건넜다.

역광이 심해서 아쉬웠다.

역광 + 폭포수 효과

 

정말 신기한 뱃사공. 저 노는 물 속에 또 저만한 깊이로 이어진다. 자기 키보다 한 4배는 긴 노를 이용해 배를 움직이는 것이다!

 

폭포 아래의 한가로운 풍경

노를 그만 빠트리고 말았다. 바로 잠수!

금방 떠내려가는 노를 찾아올 수 있었다.

아프리카 쎄매남(쎄끈하고 매끈한 남자)

날이 어두워져 폭포를 뒤로하고 우리는 나이로비로 향했다.

14 Falls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관광지이다. 준이가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준 덕분에, 우리는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파인애플 시티 여행은, 우리에게 파인애플 향기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아쉬운 건, 언젠가 14 Falls도 관광지로 개발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넓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케냐의 땅이지만, 거기서 자란 파인애플은 영국인들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교과서 속에서나 볼법했던 플렌테이션 농업은, 아직도 케냐에선 이뤄지고 있었다. 그들의 땅에서 나는 작물을 그들이 먹지 못하는 부조리함은, 식민지배의 영향력이 아직도 케냐의 농업과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은, 좋은 여행하면서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다음 이야기 : 나이로비 국립 박물관을 가다. 그리고 다시 카후히아, 케냐산으로! 해발 5000m에 위치한 그림 같은 차밭, 그리고 수채화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맥주 한 잔하며 즐긴 냐마쵸마.

연재가 늦었다. 집에서 매일 놀고 있음에도 연재가 잘 되지 않는것은 천성이다 싶다. 매번 핑계를 대기 귀찮으니 앞으로 성실하게 업데이트를 하겠다는 약속밖에는 할 것이 없겠다. 오늘은 날잡고 여행기를 올리겠다 했는데 방대한 사진의 양으로 말미암아 사진 올리기에 여러번 실패를 했다. 덕분에 2시간에 걸쳐 여행기를 쓰게되었다. 열심히 열심히 만들어 나갈테니, 질문도 많이 해주고 많은걸 느껴가셨음 좋겄다.

지난 이야기 :  물랑가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된 우리들. 순식간에 닭 3마리와 염소 2마리를 잡아먹었다. 신나게 춤을 추고 놀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나이로비로 복귀. 일상(?)을 위해 나이로비의 삶에 적응 들어갔다!

동물의 왕국 케냐에선 모든 국립공원이 잘 되어 있다. 정갈한 입장소와 훌륭한 볼거리들, 천의 자연환경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수많은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그것들을 보게 만든다. 입장료는 평균 6만원에서 10만원 사이.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은 특히, 입장료에 돈을 아끼지 않고 지갑을 연다. 케냐 정부가 부유하고, 케냐가 그럭저럭 나라 구실을 하며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이 국립공원의 역할이 크다.

나이로비는 생각보다 큰 도시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나이로비에서 차로 약 20분간 떨어져 있는 카하와 웬다니 지역. 매일 아침 사람들은 나이로비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다. 버스건, 마타투이건, 택시건 시내로 나가는건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이 때 만큼은 정찰제가 아닌 대중교통값이 위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싸게간다 하지만 마타투도 1인당 1천원을 넘게 내야 한다. 케냐에서 여행을 하기 위해선 부지런해야 한다. 출근시간을 피해야하고, 퇴근시간을 피해야 저렴한 가격에 여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나이로비 시내에 도착하면 언제나 사람들이 와글와글 거린다. 우리가 나이로비를 둘러보기로 한 날에도 사람들은 여지없이 많았고 붐볐다. 그런 나이로비 시내를 걷고 있으면 여느 세련된 도시들을 다니는 느낌이 든다. 케냐도, 엄청난 발전을 하며 도시화를 이뤄나가고 있기에, 도시의 모습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바쁘고 화려하다. 이번과 다음편에 걸쳐 나는 나이로비와 나이로비 주변의 국립공원과 소도시들을 여행한 기록을 적어보려한다.

출근길은 언제나 붐비고 사람이 많다. 버스들도 그렇고, 마타투도 그렇다. 우리는 붐비는 아침, 마타투를 타고 준이가 다니는 교회로 마실을 나갔다.

교회는 붐비는 시장통을 지나서 있었다. 비가 오고 난 터라 바닥에 웅덩이가 많았다. 날씨는 여전히 선선하고,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온도였다.

역시나 교회는 소박했다. 시멘트 벽에 뚫린 십자가 하나와 의자들 그리고 단상 하나만 조촐하게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교회에 모여 춤을추고 노래하고 예배를 했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교회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정말로, 흑인들의 교회에서는 랩으로 찬양을 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교회 구경하는것도 나쁜일은 아니었다. 90%가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인 케냐에서 교회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일종의 여행이었다.

시장에선 맛있는 것들을 많이 팔았다. 망고, 바나나, 오렌지, 각종 채소들과 옥수수, 사탕수수 등. 우리는 예배가 끝난 후, 초대된 집에 가기 전에 시장과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선물을 샀다. 그 와중에는 이렇게 아무곳에서나 사진을 찍었다.

준이의 친구가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고 해서 찾아갔다. 역시 나이로비에서 조금 떨어진 집이었다. 조그마한 신혼 냄새를 풍기는 집이었다. 그곳에서는 애기가 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선미누나는 아이가 둘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도 선미누나 품에 안기자 곤히 잠들어버렸다.

멀리서 여행온 우리를 위해 집주인이 맛있는 요리를 준비해주셨다. 이건 일종의 뎅구(콩요리)이다.

식탁에는 언제나 자파티나 우갈리가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식탁에 밥과 김치가 빠지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자파티와 함께 먹는 스튜이다. 주로 염소고기가 들어간다. 보기와는 다르게 매콤하지는 않다. 케냐에선 뎅구 아니면 스튜가 우리나라의 국 처럼 자주 식탁에 오른다.

닭요리였다. 국물이 좀 없는것만 빼면 우리나라의 안동찜닭과 비슷했다. 케냐의 닭은 운동을 많이해서 질기지만 씹는 맛이 좋았다. 우리나라의 닭과는 다르게 살이 없는 편이지만 닭을 일부러 살찌우기 위해 약을 먹이고 가두어 키우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살집이 없어도 맛있으면 그만이니까.

은도마(ndoma)라는 고구마의 친척뻘 되는 녀석이다. 감자와 함께 스튜형식으로 나왔다. 저번편을 잘 살펴보면 쪄먹는 은도마가 등장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은도마는 이렇게 스튜에도 들어가고 그냥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감자 고구마처럼 활용이 많이 되는 음식이었다. 맛은 역시나 감자와 고구마의 중간이었다.

우리는 스와힐리어로 각자 소개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준이의 동생도 이 자리에 함깨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타투 잡기가 힘들었다. 6명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에 모두가 교회를 가고 하는 그런 시간에는 빈자리가 많은 마타투를 잡기가 힘들다.

다음날, 우리는 나이로비 시내 구경에 나섰다. 본격적인 나이로비 시내 구경에 앞서, 시내 바로 옆에 있는 국립공원을 찾기로 했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차로 5분정도 가면 나이로비 국립공원이 보인다. 입구는 저렇게 생겼다. 안에는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차(마타투)를 타고 돌아다니는 코스가 있기도 하고 정해진 길을 따라서 공원을 산책하는 사파리워크라는 코스가 있었다. 차를 빌리는 것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에 우리는 사파리 워크를 선택했다.

국립공원은 언제나 정갈했다. 케냐의 주된 수입원은 주로 이런 관광자원이기 때문에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사실, 사회 보장시설이나 기반 시설보다 이렇게 국립공원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다는걸 생각해보면 아쉬운 일이었다. 사람들이 더 잘살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케냐를 둘러보다 보면 정부의 노력은 온통 국립공원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케냐의 아쉬운 단면이었다.

보통의 길거리에선 보기 드문 간판(길거리의 간판은 보통 돈이 되기에 설치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뽑혀버린다고 한다.)과 정갈하게 다져진 길들이 인상적이다.

촬영장비를 들고있는 나의 모습. 사파리 워크에 들어가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2년전에 미국에서 동물원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의 동물원과 별반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냐 국립공원의 요금체계는 다음과 같다. 외국인의 경우 US달러로 표시되어있다. 사파리워크는 20달러로 그나마 국립공원 치고는 싼 편이었다(코스가 짧기 떄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거주자들(주로 동아프리카 사람들을 의미한다. 케냐는 브룬디, 르완다, 탄자니아 등과 함께 동아프리카 공동체를 출범시키려고 수년째 노력중이다. EU를 모델 삼아 동아프리카의 강력한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리고는 케냐사람들 혹은 나이로비 사람들이다. KSH는 케냐 실링인데 70실링이 약 1000원정도 하므로 100실링은 1천 5백원, 300실링은 4천원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외국인이 20달라(약 2만 4천원)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다.

다다다다다음편에서 살펴볼 거대한 국립공원에 비하면 철조망도 쳐저있고 동물들도 비활동적이지만, 나름 인공물을 많이 배제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공기도 좋고, 훌륭한 자연환경도 좋았다.

케냐에서는 참 멋있는 나무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거대한 국립공원(나쿠루 국립공원, 응고로응고로 국립공원)에서는 치타나 사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사냥은 주로 초저녁이나 새벽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원에서는 치타나 사자가 가시권에 들어온다. 나름 매력있는 부분이다.

철조망이 쳐있긴 하지만 나름 자유롭다. 한국에서는 보기힘든 동물들이 많다.

이런식으로 이어진 나무 길을 따라서 주욱 걷다보면 많은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은 조용하고 볼거리도 많고 정갈했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커플들이 보였다. 실제로 이곳은 대학생들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나도 신혼여행을 케냐로 오게 된다면 이곳에 다시 들르고 싶다.

공원은 이렇게 넓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 맘에드는 곳에 머물다보면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무에는 이렇게 새들이 있거나 새집이 있었다.

각자 눈을 크게 뜨고 동물들을 찾아 헤맸다.

하늘은 넓고, 가깝고, 맑았다.

이곳에서도 운이 좋으면 동물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찾는게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이렇게!

이곳은 아마 기린 먹이를 주는 곳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동물원을 찾은것은 낮시간때였다. 덕분에 사자들은 저 멀리서 뒹글거리고 있었다. 동물들은 대부분 해가 중천에 떠 있을때 활동을 하지 않는다.

뒹굴뒹굴, 저러니 하나도 안무서웠다.

가서 배라도 긁어주고 싶었다.

옆에서 코뿔소는 나름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간혹 이렇게 설명을 적어놓은 팻말들이 있었다. 영어와 스와힐리어로 쓰여져있는데, 덕분에 스와힐리어 공부도 조금 했다.

하마는 지쳐있다 하암.

케냐에서 이정도면 참새둥지정도 되겠다.

사파리 워크를 끝내고 사진을 찍었다. 유쾌한 하루였다!

겉으로 보기에 케냐와 탄자니아는 민주정부의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케냐는 키쿠유 부족(케냐의 최대 부족) 독점과 부정부패로, 탄자니아는 수십년동안 이어진 일당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두 나라 다 선거를 하지만 케냐의 경우 정전을 일으켜서라도 투표결과를 조작하여(실제로 2008년에는 선거 결과 발표 도중, 키쿠유 부족 출신의 유력한 당선 후보가 큰 표차로 뒤지자 정부는 3시간의 정전을 단행했다. 정전 후에는 선거 결과가 뒤집혀 있었고, 지금의 케냐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다. 이 결과로 케냐에서는 소요사태가 발생했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총리가 민간인에게 암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선되었고, 탄자니아에서는 투표가 이뤄지긴 하지만 언제나 같은 당의 후보가 당선되기 때문에 언제나 경쟁은 당내에서만 이뤄진다고 한다.

케냐의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일종의 국가 수익사업이었다. 매년 수천만명의 외국인들이 동물을 보러 케냐와 탄자니아에 왔다 가는걸 생각하면 입장료로 얻어지는 수익은 엄청날 것이다. 국립공원을 돌아보면서 케냐나 탄자니의 정부가 이 수익으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입장료의 절반이라도 국민들을 위해 투자했다면 지금의 케냐, 탄자니아는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쓴 돈들이 케냐 정부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채워진다 생각하니 꺼림찍함이 가시질 않았다.

다음편 예고 : 옆집 리라 이모와 함께하는 저녁식사, 그리고 한복 파티! 그리고 여유롭게 나이로비를 활보하며 케냐의 도시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공개한다!

개구장이 친구들은 디카가 신기한가보다. 사진을 찍고나선 바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가 이 마을을 떠날 때 즈음에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기사가 우산같은걸 들고왔다. 우산에서 불이 번쩍! 아직 여긴 클래식 카메라가 대세다!

지난 이야기 : 준이의 농장을 탐험했다. 말그대로 숲속을, 자연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따먹으면서 말이다. 그리곤 준이와 물랑가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케냐의 자연을 경험하였다.

계절학기를 끝내고 집에오는 길은 지치고 힘들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느끼며 약간의 환기증을 느끼다가 나는 케냐를 생각했다. 아직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고, 빗물을 받아쓰는 그곳이 생각났다. 그 곳에서는 아스팔트 도로보다 흙으로 된 도로가 더 많았다. 비가오면 질퍽질퍽 발에 들러붙곤 했지만, 오히려 시원했다. 땅은 열을 머금지 않았고 적당히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가 더 많았고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연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사실, 불편을 감수한다기보다 그냥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더 편한 삶이었다.

농장에서 돌아오고 몇 일간은 숙소에서 쉬기도 하고 준이와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동을 할 때는 주로 걸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걷고, 이야기하고 걸었다. 그리고 집에와선 한 바가지의 물로 얼샤워를 하고 몸을 식혔다. 해가 지면 움직일 수 없었기에 집에 모여 다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롭게 걸었다. 물랑가의 하루였다.

바나나가 울창한 숲에서 선미누나가 서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천천히 걷고 숨을 쉬었다.

준이네 앞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저 멀리 케냐산이 보일 것 같다.

수잔은 준이의 동생이다. 준이만큼, 공부를 잘하기에 꿈도 많고 똑똑하다. 항상 우리에게 살갑게 대해주고 많은 것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덕분에 물랑가에서의 날들이 좋았던 것 같다.

준이네 집은 일종의 이장댁 같은 곳이었다. 동네 꼬맹이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준이네 집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놀다가 가곤 했다.

'바나나 먹고 싶어?','네' 아뿔싸, 준이어머니는 여기있단다. 이거 다 우리꺼라고 천천히 먹으란다.

준이네 삼촌과 할머니. 같이 앉아 있으면서 스와힐리어로 몇마디 나누었다. 1년간 배운 것들이 아쉽지 않을 만큼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참 행복해 보인다. 아이들은 줄곧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우리도 같이 춤을 추고 노래 했다. 어릴땐, 이렇게 자라야 하나 싶다.

물이 부족해 머리를 잘 감지 못할 때도 있었다. 혹은 물 한 바가지로 샤워를 했기 때문에 머리가 잘 안감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바나나는 맛이다!

아. 정말 최고다. 향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다시 한 번 케냐를 간다면 가자마자 바나나를 사먹을 것이다!

쩌~~ 멀리 코코넛이 보이는가!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아름답고 이름 모를 꽃들이 참 많았다. 초점이 나가긴 했지만 이 꽃을 찍은게 하나 뿐이라 올리고 싶다.

새집인 것 같다.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길 고양이었다.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았고 우리를 졸졸 쫓아다녔다.

에헴

준기도 에헴!

전선이 보이긴 하는데, 전력 상황이 그다지 좋진 않다. 정전도 자주되고. 사실 전기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은 동네이긴 하다.

시간이 나서 근처 커피농장에 들렀다.

아직은 수확을 하는 계절이 아니라 텅텅 비어있었다. 커피를 재배하는 계절이 오면 이곳은 커피를 씻고 정제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커피체리를 벗겨내는 곳이라 설명을 들었다.

껍지를 벗겨낸 커피들이 이곳에서 말려진다. 케냐 커피는 신맛이 강하게 나며 고구마 맛이 나기도 하는(개인적인 의견) 맛있는 커피이다.

역시, 재배를 안하기에 조용하다.

불량 커피들이 모여있다. 체리가 잘 벗겨지지 않은 놈들이나 정제가 제대로 안된 놈들을 모아둔 곳인 것 같다.

껍질이 아직도 붙어있는 걸 보니, 불량품들이 맞나보다.

케냐의 큰 태양으로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

파치먼트 생두라고, 실버스킨이 벗겨지지 않은 생두들이다. 요놈들을 고대로 심으면 커피나무가 자란다!

커피 체리들이다. 커피는 아주 엄선된 지역에서만 자란다. 고도, 위도, 강수량, 온도 등 여러가지 조건들이 갖춰진 곳에서만 잘 자랄 수 있다. 케냐의 천의 자연환경은 질좋은 커피를 만들어 낸다.

붉게 익은 체리들이 재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준이는 농장을 도는 내내, 커피의 가공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따. 더불어 케냐커피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선 우갈리를 먹었다. 우갈리는 우리나라의 밥 처럼, 프랑스의 빵 처럼 케냐인의 주식이다. 거친 옥수수 가루를 끓는 물에 집어 넣고 계속해서 뒤집고 저어주면 우리나라의 백설기 같은 것이 나온다.

준이의 동생들은 뜨거운 우갈리를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거리며 우리의 먹을 것을 만들어주었다.

정성이 들어간 우갈리다. 맛은 약간 싱거운 백설기 정도? 정말 밥을 먹는 기분이다.

호박과 당근등을 넣고 우갈리와 함께 먹을 스튜를 끓여주셨다. 우리는 저녁을 걸게 먹었다.

이름이 기억 안나지만, 준이의 동생이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뻣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에는 우갈리양.

이 케냐 깡시골에도 코카콜라는 음료를 팔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소다(탄산음료)를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았지만, 한 편으론 이곳까지 트럭을 몰고와 콜라를 파는 놈들이 약간 미워졌다.

동네의 쇼핑센터. 이곳에서 소다도 사고 필요한 것들을 산다.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난 어딜가든 시장이 좋다. 시장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물건을 판다. 대형 마트에서는 냉장고와 얼굴을 마주보거나 시식코너와 마주보곤 한다. 에잇, 그러니 내 말은 가능하면, 시장도 자주 가라는 얘기다.

이렇게 얼굴이 마주치면 나는 웃으며 잠보! 하바리 야코!(Jambo!, Habari yako!- 안녕하세요 어떠세요?!) 라고 인사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웃으며 은주리 사나-아산테!(Njuri sana- asante!-잘 지내요, 고마워요!)라고 대답한다.

여기 피는 이 꽃들이 신기했던지, 효원누나는 떠나는 길, 서점에서 케냐 식물도감을 사갔다. 우리가 만난 꽃들 중 몇 종류를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신기하다. 곳곳이 이런 꽃 투성이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케냐에선 꽃 구경으로 2일동안 종일 걸어다니는 일정을 잡아야 한다!

환하게 웃는 쥬디.

삼손도 일을 마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집을 찾았다.

자파티를 만드는 과정이다. 반죽을 빈대떡 처럼 밀대로 밀어 크게 만든 후에, 후라이팬 같은 곳에 올려 기름을 쳐가며 빙빙 돌린다. 앞 뒤로 열 번 넘게 돌리고 나면 맛있는 자파티가 완성된다.

직접 해봤는데 쉽지 않다, 빙글빙글 돌려가며 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어렵고 뜨겁다!

방금 만든 자파티는 신기하게 달고 맛있었다. 식은 자파티는 스튜하고 먹으면 그만이고. 정말 좋은 음식읻

다음날 새벽,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염소를 잡았다. 염소 잡는 장면은 좀 잔인하니 선택권을 주겠다. 보고싶은 분만 아래를 클릭!

삼손은 자파티 만드는 것을 도우고 있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이날 파티를 위해 자파티를 만들었다.

아주머니들은 우리가 촬영을 하고 있자 이리와서 같이 하자며 웃으셨다. 곧 나는 저 자리에 앉아 자파티를 만들었다!

갓 만든 자파티를 얻어 먹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축제 기분이 났다!

한 쪽에선 방금 잡은 염소를 물 한방울 없이 가죽을 벗겨내고 있었다. 대단한 손놀임이었다. 가죽은 악기를 만들고, 옷을 만들고, 가구를 만드는데 쓰일 것이다.

케냐에는 아랍지역 문화가 남아있어 터번을 쓴 사람도 꽤 있었다. 98%의 기독교인을 제외한 인구중 대대수가 이슬람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종교는 중요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도, 이들은 다같이 모여 염소고기를 먹고, 자파티를 먹고 춤추고 노래를 한다.

손질된 염소 다리이다. 이곳 고기들은 우리가 먹는 고기와는 달리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않고 가두어 키우지도 않는다. 따라서 근육이 잘 발달되어있고, 상당히 질기며 씹히는 맛이 좋다. 가공된 고기의 맛보다는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질긴 것이 단점이긴 했지만, 코코넛 가루를 넣어 이를 해결할 수 있어서 그닥 문제가되진 않다. 이어진 내장 손질 장면은 비위가 약하신 분들을 위해 다시 선택권을 주겠다.



이 사진 이후로는 우리도 같이 자파티를 만들고 구경하고 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찍기도 그렇고 말이다. 이후에는 맛있게 준비한 음식들을 먹고 신나게 춤추고 노래했다.

파티는 간단하다. 이렇게 힘들게 만든 음식을 나눠먹고, 기도하고, 춤을 추고 노래한다. 노래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투오나네~ 투오나네  파라디소(Tuonane~ Tuonane~ Tuonane Paradiso- 또 봐요~ 또 봐요~ 또 봐요 천국에서!)

어르신들이 선창하면 우리가 답례로 따라부르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 몇이 다시 선창을 하고 나머지가 따라부른다. 신나게 흔들고 춤추고 가사를 바꿔 부르고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후에는 소다를 나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춤추고 노래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극진히 VIP대접을 받았다. 부담스럽기도 했고, 너무나도 고마웠다. 새로운 손님들이 왔다며 더욱 흥겨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우리도 모든 것을 잊고, 체면치레 생각하지 않고 신나게 흔들었다! 투오나네! 투오나네! 투오나네 파라디소!!!

다음편 예고 - 드디어 나이로비에 다시 입성! 나이로비 국립공원 및 시내투어를 시작한다. 파인애플 농장도 들린다, 그곳에선 파인애플 한개가 단돈 천 원! 너무 달아서 파인애플 심까지도 씹어먹는다. 보고싶다고? 그럼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편을 기대하시길!!

이제는 정기적인 업데이트가 되지 않을까 하네요. 그간 업뎃에 불만을 가지셨다면 이제 그런 걱정은 유에스비에 넣어놓고 다니셔도 되게씁니다(무슨말인지;). 사진을 정리하면서 감동받고 즐거운건 오히려 제 자신인 것 같네요. 오랜 여행을 정리하고 그 추억들을 되돌아보면서 잠시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다른 여행도 그랬지만, 케냐 여행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여행을 가신다면 전 당당히 케냐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케냐는 아릅답고 평화롭고 좋은 곳이기 때문이죠. 단비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낙후된 지역을 찾아가 봉사도 하고 우물도 파주는 그런 프로그램이더군요.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에 '진짜 케냐'는 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진짜 케냐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조금은 색다르게 다가온다면 그건 문화의 차이고 생각의 차이일 뿐이지 그들이 잘 살거나 못사는 것의 차이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단비'에 비친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면 조금 씁슬한 마음이 듭니다. 그들이 물부족에 시달리고 가난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우물을 팔 만큼의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우둔하고 발전되지 못해서 그런것도 아닙니다. 풍요로운 땅 케냐에서 그들은 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찾아온 식민주의에 따른 자본주의와 무분별한 자원개발, 지구 온난화가 그들의 먹을 물을 빼앗고 그들이 살 터전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건 하나의 우물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그들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정무역을 찾는 일,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작은 행동을 하는 것,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일 말입니다. 제 사진이, 제 여행기가 케냐의 아름다운 모습을,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잘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긴 이야기는 여행기를 쓰는 동안 천천히 말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더 긴 여정이 남았으니까요. 오늘은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그럼 물랑가로 떠나볼까요 ^^?

완벽한 가이드 준이. 우리는 졸졸 그 뒤를 따라 다닙니다. 칙칙- 폭폭-


지난 이야기 : 우여곡절 끝에 물랑가에 도착, 닭잡아 먹고 편히 쉬면서 인생의 참맛을 느낌

물랑가에 도착해서 준이는 톡톡히 가이드의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첩첩산중 속에서 준이의 가이딩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길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케냐의 자연은 정말 많은 것을 품고 있었습니다. 훼손되지 않은 그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는 유쾌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농장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준이는 이건 뭐고 저건 뭐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먹을 것이라면 들고 있는 칼로 단숨에 잘라서 우리에게 나눠 주었다.

사탕수수를 자르고 있는 준이. 사탕수수는 설탕의 원재료이다. 슈가케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준이의 고향인 물랑가에는 많은 사탕수수를 볼 수 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간식거리가 된다고 한다.

먹는 법은 간단하다. 칼로 사탕수수를 자른다음 껍질을 벗겨낸다. 개미들을 털어내고 먹기 좋게 조각내어 오물오물 씹으면 된다. 너무 달기 때문에 항상 개미가 있다. 농약따위는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자랐기 때문에 씻을 필요는 전혀 없다.

능숙하게 사탕수수를 손질하는 준이. 저렇게 자르고 남은 사탕수수를 땅에 꽂아 놓으면 일주일 후에 무럭무럭 자라난 사탕수수를 만날 수 있다. 지력이 뛰어나고 기후가 좋기 때문에 어떤 작물이든 무럭무럭 자란다.

사탕수수를 다시 심는 이야기를 하면서 망고 먹다가 씨를 뱉으면 망고 나무가 자라나고 사탕수수 먹고 심어놓으면 쑥쑥 크니 평생 여기서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정말 풍요로운 케냐였다.

손질한 사탕수수. 이걸 오물오물 씹고있으면 설탕물이 나온다. 그 어떤 사탕이나 껌 보다도 달고 맛있으며 그 맛도 오래 갔다. 정말 하늘에서 내려준 간식인듯 싶다.

준이의 사촌이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우리 뒤를 쫒아다니며 각종 위험요소를 제거해주었으며 우리가 놓치는 간식들이 있으면 금세 따다가 우리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방 모든 것이 먹을 것 천지였다.

이렇게 줄을 지어 케냐산 주변을 산책했다. 모두가 신났다.

준이가 칼을 들고 있으니 코끼리가 튀어나와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다들 즐거운 여행을 했다.

준기와 효원누나. 준기는 케냐에서 별명이 키준기였다. 키준기는 스와힐리어에서 ki/vi 클래스에 속하는 단어이며(스와힐리어에는 8개의 단어군이 있다) 차를 내릴때 차를 거르는 거름망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모두가 준기의 이름을 말하면 즐거워했다. 맙소사 거름망이 이름이라니!!!

비가 오고 난 후라 그런지 공기가 더욱 맑았다. 우리가 물랑가에 갈때마다 매일매일 짧고 굵은 소나기가 내렸다. 준이에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규칙적이고 예상할 수 있는 비가 내렸지만, 요즘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매일매일 불규칙하게 소나기가 쏟아진다고 했다. 이러한 환경변화로 농작물을 관리하는데도 애로사항이 생긴다고 했다.

준이네 농장이다. 망고도 있고 커피도 있고 사탕수수도 있다.

다시 칙칙- 폭폭-

망고나무가 지천이다. 여기 망고는 정말 맛있다. 아직 익지 않은 망고지만 너무 탐스러웠다. 날씨가 너무 좋아 딱히 망고를 수확하는 계절이 없다. 어떤 망고나무는 탐스럽게 익은 망고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나무는 저렇게 설익은 망고들이 주렁주렁 수확을 기다리며 자라나고 있었다.

망고 크기의 500배에 달하는 효원누나의 얼굴 감상을 해보자.

자라나고 있는 작물들인데 뭔지는 기억 안난다. 이것까지 필기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저기 뭔가 주렁주렁 달린것이 망고나무다. 에헴. 망고 먹고싶다. 얼마전에 마트에 갔는데 조그마한 애플망고 2개에 8천원이었다. 케냐에선 1개에 300원도 안되는데 폭리다 싶었다.

심하게 썡얼이신 문기누나가 준이네 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열심히 작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준이.

케냐에 가서 부쩍 얼굴이 탄 내 모습이다.

바나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여기 바나나는 정말 쓴 맛이 하나 없이 달고 씹는 맛이 일품이다!!

케냐에는 아직 동양인이 드물다. 게다가 이 동네에는 동양인의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를 처음본 준이의 이웃들은 우리가 모두 중국인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들에게 중국인의 이미지란 쿵후를 잘하는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준이의 이웃들이 "뭐하러 칼을 들고다니냐 준아, 저기 중국인들이 쿵후로 널 지켜줄텐데!" 그렇다. 우리는 모두 쿵후 유단자다. 아뵤!!

물랑가에도 마타투가 다니긴 했지만 우리는 주로 걸어서 이동을 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저 길을 신나게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면 내가 하늘 위를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든다.

준이네 엄마는 줄곧 우리를 마중하셨고 배웅해주셨다. 그리고 그 곁에는 준이네 친척들이 있었다. 우리 모두 친구였고 노래를 불렀다. 임바임바 임바 임바~(노래 노래 노래 노래 노래~~- 스와힐리여 동시통역!)

망고를 먹고난 후의 선미누나의 표정이다. 아, 아닌가?

준이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스와힐리어로 냐냐(Nyanya)이다. 우리가 시카무- 냐냐(안녕하세요 할머니) 그러면 할머니는 우리에게 마라하바(시카무(높임말로 인사할 때 쓰는 말)의 답변)라고 답하며 웃어주셨다.

준이네 집에서 효워누나의 떨떠름한 표정

애교가 많은 준이의 동생 수잔이다. 우리가 사탕을 준다고 하면 어김없이 케냐 최고의 댄서로 변했다.

준이네 엄마가 바나나 먹을래? 라고 물어봐서 네~ 했더니바로 옆에 있는 바나나 나무에서 저걸 따다 주셨다. 다 먹는데 무려 2일이나 걸렸다.

바나나 따주신다길레 한 사람에 한두개나 주시려니 했는데 저렇게 통째로 주셔서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저건,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다!

우리가 바나나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신 냐냐다.

설탕 듬뿍 차이다. 차를 방금 갓 짠 우유와 섞어 오래 끓인 후 키준기(!)로 걸러내고 설탕을 듬뿍 넣어 저어 마시면 된다. 언제나 우리는 차를 대접받았다.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었고, 현지인과 함께 춤을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었다. 융성한 대접에 너무 감사했고,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우리의 저질 스와힐리어를 들어주셨다.

다음 편 예고 : 드디어 크리스마스 파티다! 아침 일찍 염소를 잡고 신나게 춤을 추며 파티를 했다! 케냐에서의 광란의 파티는 어떨지 궁금하지 않은가?

얼마만의 업데이트인지 모르겠다. 만약에, 혹시나, 혹여나, 조금이라도 내 여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또, 여행을 다녀온지 6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다 기억을 해내냐 하고 따지고 물으신다면 나는 원래 메뉴얼 적인 사람이라서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늦게 올린건 귀차니즘 때문이다. 삶이 고달프다 요즘.

천의 자연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란 애벌레. 이게 진짜 애벌레인가 보다. 애비!



지난 이야기 - 우여곡절 끝에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 한 민간인 아파트(?) 혹은 현지인 아파트에 머물며 지역 주민들과 화합의 장을 이룸.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준이의 도착을 기념해 공원에서 한바탕 댄스 파티를 벌임.

준이는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으로 향했다. 2년간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고향이기에 그럴법도 했다. 우리도 그 일정에 맞춰 준이를 따라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100km(정확히는 모르겠다)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물랑가라는 곳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근처 카후히아에 있다. 이곳은 케냐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케냐산을 끼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서늘한 기후를 자랑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물랑가는 해발 3000~4000미터 정도이고 근처의 산들은 대부분 4000미터를 훌쩍 넘는다. 케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5,199미터이다. 이 지역은 케냐 최대 부족인 키쿠유부족의 발원지이다. 준이 또한 키쿠유족이다. 여기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고(키쿠유 부족들과 함께), 잠시 나이로비로 가서 관광을 하다 다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일정을 잡았다. 마타투로 1시간정도 실컷 달리면 갈 수 있는 거리라 그렇게 부담가는 일정은 아니었다.

우리 숙소 근처다. 케냐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사실, 횡단보도라는 개념이 없다. 길을 건널땐 무리 중 한 사람이 외친다. 원 투 쓰리! 그리고 크로싱!!! 시내에는 줄이 몇개 그어져있는데, 그것만이 이곳에 횡단보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을 말해준다.

저기 멀리 보이는 저게 마타투이다. 언제나 마타투는 손에 잡힐듯한 구름 속과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속을 달린다.

케냐는 정전이 잘된다. 아직은 인프라가 구축이 안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생각엔 독재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듯 하다. 케냐의 정치 상황에 대해선 다음번에 좀 더 자세히 서술해드리겠다.

사람들은 저렇게 산다. 넓디넓은 평원에 집을 지어놓고 여유로이 거닐며 지낸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예사로 보면 안된다. 저래뵈도 기본 3000미터는 넘는다.

길 중간 중간 거주지와 시장들이 있다. 없는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다. 정말, 다 있다.

길은 대체로 아름답다. 포장이 어설프게 되어있어 시트가 꺼진 마타투를 타면 엉덩이가 타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찌만 언제나 창 밖을 보면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차가 많이 몰리는 곳엔 항상 이렇게 망고 장수들이 줄을 잇는다. 자기네 농장에서 지은 망고를 이렇게 나와 파는 것이다. 우리는 마트에서 사기보다 주로 이런 곳을 통해 싸고 질좋은 애플망고를 구입했다.

맛있긴 한데, 이렇게 무턱대로 들이대면 좀 곤란하다.

케냐에서 간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간판을 이루는 철들은 돈이 되기 때문에, 걸리는 즉시 뽑히기 때문이다. 뭐 우리나라도 간판 뽑아가는건 낮선일이 아니긴 하겠지만 말이다.

뭘 찍었는진 모르겠는데, 꽃이 이쁜 것 같다.

드디어 오랜 시간 끝에 물랑가 도착! 바나나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드넓은 평원을 보라!

우리가 묵었던 곳은 카후히하 여자 고등학교이다. 기숙학교이며 나름 명문고등학교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방학중이라 이 곳 선생님의 숙소 중 한 곳을 이용할 수 있었다. 준이 어머니가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

교정이 참 아름다웠다. 아침이면 이곳을 산책하곤 했다.

이름도 모를 꽃들이 엄청 아름답게 피어있다. 맘에들면 앞마당에 뽑아다 심으면 또 이렇게 울쑥불쑥 자라난다.

카후히아 여고 정문이다. 밤이면 준이네 가족들이 다 같이 우리를 여기로 배웅해주었다.

동네 꼬맹이다.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한다. 잠보! 하바리야코! 그러면 친구는 대답한다. 잠보! 은주리 사나!

준이는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하다. 10걸음 마다 한번씩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 때마다 준이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었다.

밤이면 우리는 달빛에 의존해 길을 걷는다.

오랜 여정에 다들 지쳤다. 여긴 준이의 방이다.

귀한 닭이다. 우리를 위해서 준이네 가족은 2번이나 닭 요리를 해 주었다. 양배추를 토마토와 볶은 반찬과 감자가 들어간 댕구(혹은 뎅구)랑 같이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여기 닭은 말 그대로 풀어놓고 키우기 때문에 근육이 장난 아니다. 덕분에 닭고기도 약간 질기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꽃이 인사한다. 안녕!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준이가 다녔던 교회에 가보기로 했다. 날은 대부분 이렇게 화창하고, 온도는 15도 정도로 선선하다. 하루에 한 번 정도 비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걸어다니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하쿠나 마타타!

사진 그만찍고 언넝 따라오란다.

앞에서도 말했었지만, 케냐 인구중 98%가 기독교인이다.(아마 식민지배의 영향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시골에도 교회는 있었다. 잠시 들러 구경해보기로 했다.

다들 사진 찍기에 바쁘다.

고개를 돌려서!, 언제나 식물들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장난감 같은데 진짜다. 진짜로 이렇게 이쁘다.

동화 속에 나오는 교회같다. 교회는 저래뵈도 단촐하다. 들어가면 의자와 선반 하나밖에 없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 큰 건물도 필요없고, 화려한 인테리어도 필요없다. 자연속에 어색하지 않으며 소박하면 그만이다.

교회에서 바라본 물랑가 전경이다. 손에 잡힐듯한 구름과 바나나 나무들이 너무 그립다.

5초간 감상

교회 사람들과 함께 찍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손님들을 반긴다. 여기서는 키쿠유 부족의 발원지 답게 키쿠유 어로 인사해야 한다. 키쿠유어로 어른들께 인사할 때는 웨무에가 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누에가 모노모노모노 라고 답할 것이다.웨무에가는 하우어유 누에가는 지낸다 모노모노모노는 너무너무너무다. 모노를 많이 할 수록 사람들은 크게 웃는다.

의자와 조촐한 선반만이 교회의 재산이다.

아, 분 밖을 보면 보이는 풍경도 물론 교회의 일부이다.

할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며 일일이 웨무에가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모두 누에가 모노모노모노라고 답했다. 모두가 잘 살고 있다.

구름속에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교회에 대해 준이가 설명했는데 까먹었다. 꽤 오래된 교회라고 한다.

어디서나 찍기만 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잡힌다.

우리는 항상 여유로웠고, 한가했다.

교회의 마당이다. 별 꾸민것도 없지만 꽃이 아름답고 나무가 좋다.

다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흔히 보이는 꽃인데, 효원누나 말에 의하면 덴버껌 냄새가 난다고 했다. 향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에, 이쁘다.

간식으로 준이가 프렌치 토스트를 해 주었다. 빵이건 계란이건 다 귀한 음식들이다.

뎅구다. 이건 저녁으로 먹은거다. 항상 댕구와 밥을 먹으면 언제나 든든하다.

준이네 밭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

밭 기행은 다음 편에 보도록 하자.

이 녀석들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잡힐 것이다.

물랑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공기가 맑고 차도 맛있고 커피도 쑥쑥 잘 자라는 천의 환경이다. 가령, 망고를 먹다가 그 큰 씨를 던져놓으면 그게 망고나무로 자라는 시스템이랄까. 하지만 차는 영국 자본의 것이며 커피는 미국 자본의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기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파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편 예고 - 준이네 농장투어! 그리고 물랑가 탐방이 이어집니다-!

인천에서 나이로비까지
인천공항에서느 케냐 직항 비행기가 없다. 대부분의 케냐행은 방콕을 거치거나 두바이를 거쳐가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두바이를 경유하는 쪽이 비행기표가 싸다. 하지만 늦게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경우 자리가 없다. 우리는 뒤늦게 케냐행을 결정했기 때문에 방콕 경유를 택해야만 했다. 비행기표는 대략 122만원 정도였다. 방콕까지는 6시간 방콕에서 케냐는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저렴한 노선을 택하려면 미리미리 예매를 해야 한다. 두바이까지의 비행기는 많지만 두바이에서 케냐를 향하는 비행기는 매진인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사진과 함께하자.

장기간의 비행기 여행은 언제나 지치기 마련이다. 장기간 여행에 대비해 짐을 엄청나게 많이 가져갔기 때문에 공항에서 여러모로 분주하고 힘들었다. 약 3시간 정도를 짐하고 씨름하니 비행기 안에서는 다들 곤히 잘 수 밖에 없었다.

방콕 공항에서는 미쳐 짐에 넣지 못한 것들을 구입했다. 한 달치 선크림, 목욕용품들을 적당히 사고 나이로비로 향했다. 방콕에서는 아프리카행 비행기가 꽤 많은편이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다양한 노선들이 있었고, 동남아시아는 물론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이 공항에 노선이 있었다. 자연스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 공항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 킬리만자로(5,895m)다. 비행기 안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걸 보면 정말 높은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로비 공항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었다. 어느 공항이나 촬영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나이로비 국제공항은 더 심했다. 주변 국가인 수단, 소마리아에서 내전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특이한 행동을 해도 검문을 받게된다. 뿐만 아니라 타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강하여(경찰이나, 국가기관의 경우가 심한 것 같다) 외국인의 행동하나하나에 예민하다. 나도 촬영을 하다 경찰들에게 잡혀갔었다. 다행이 별 일은 없었지만 오금이 저릴뻔한 기억이었다.

적도라 햇볕은 강하지만 이래뵈도 온도는 시원하다. 수도 나이로비의 경우 해발 2500m정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보기와는 달리 연중 15도 정도를 유지하는 편이다. 사람살기에 너무나도 좋은 곳이다.

동아프리카 지역을 스와힐리 문화권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오래 전 부터 중동지역과 문화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의식주 곳곳에서 중동적인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이런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삼손. 우리 준이의 동생이다. 비행기 일정이 맞지 않아 우리가 준이보다 먼저 도착 했는데, 삼손은 그런 우리가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남은 여행에서도 우리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준이의 어머니. 우리에게 맛있는 차이를 끓여주셨다.

지쳐보이지만 밝은 문기누나

나도 긴 비행시간에 머리도 떡이지고 몸도 지쳤다. 하지만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과 날씨에 기분이 좋아졌다.

난간에서 바라본 나이로비 전경. 우리가 머무른 곳은 나이로비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카하와 웬다니라는 지역이었다. 주로 경찰들이 사는 곳이다. 여기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정말 케냐에 왔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가져온 안내문을 자세히 읽고 있는 최준기 군.

물론 나도 읽었다. 동물의 왕국 케냐에 대한 내용이었다.

가족 사진을 보여주는 삼손

케냐는 영국식민지였다. 덕분에 대부분의 케냐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는 편이다. 그외에 동아프리카의 교통어인 스와힐리어를 쓴다.

삼손이 우리를 위해 직접 만들어준 마카로니. 염소고기가 들어가있다. 케냐의 경우 다른 고기보다 염소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다.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외국에 나가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수인성 질병이다. 케냐의 경우 A형간염, 장티푸스등이 물을 통해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우린 물을 먹지 못했고 목이 메어 조금씩 남기게 되었다.

마카로니와 함께 나온 사모사라는 스와힐리문화권의 전통 만두. 향이 독특하고 속이 부드럽다. 하나만 먹어도 든든한 맛있는 음식이다.

후식으로 오렌지를 먹었다. 케냐는 동물의 왕국이기도 하지만 과일의 왕국이기도 하다. 풍부한 강수량과 햇빛, 비옥한 토양덕분에 과일 무럭무럭 자란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없는 풍부한 향미가 그득한 맛이었다.

밥먹고 근처 마켓으로. 집 근처에 핀 꽃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에서는 인도인을 많이 볼 수 있다. 식민통치의 편리함을 위해 영국은 많은 인도인들을 케냐로 데려왔다. 덕분에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반 세기가 지났어도 케냐는 인도의 영향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나쿠마트도 인도의 브랜드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 정도로 왠만한 동네에는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과일은 시장보다 비싸다. 현지인에게도 나쿠마트는 이용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격이 센 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팔지 않는 물이라든지 필요한 식료품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나쿠마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마트가 비싸다 해도 과일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망고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시장에서는 천원(70케냐실링정도)에 3개, 마트에서는 천원이 안되는 가격(약 60실링정도)으로 1개 를 살 수 있다.

삼손은 우리를 위해 정성스래 애플망고를 골라주었다.

제기랄 놈의 코카콜라는 케냐도 잠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과일들.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고 맛있다.

간단히 장을 보고 우리는 근처 교회를 찾았다. 삼손이 다니는 교회다.

케냐는 약 90%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교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이렇게 슬레이트로 지어놨거나 건물에 있더라도 화려하지 않았따. 들어가면 의자 여러개와 탁자 하나정도 있다. 우리나라의 교회처럼 번뜩이거나 화려한 장식도 없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건물에, 모여 앉을 수 있는 의자만 있으며 그곳은 교회가 되었다.

저녁에는 불빛이 많이 없어 조용하고 은은했다. 달빛과 별빛이 사라이 만든 빛보다 더 밝았다.

저녁으론 옆집 레아 아줌마가 만들어준 스튜를 먹었다. 이것도 역시 염소고기었다. 저녁을 걸게 먹었다.

망고는 정말 맛있었다. 케냐는 망고의 나라다. 이곳의 애플망고는 사과의 시큼함이 없고, 망고의 느끼함이 없는 훌륭한 과일이었다. 맛있는 저녁에 훌륭한 후식을 먹으니 든든했다. 케냐에서의 첫날 밤은 든든했다.

다음날 아침도 역시 레아네집에서 먹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웃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때때로 불러서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빵도 고소하고 쫀득쫀득 했다.

오후에 도착할 준이을 맞이하러 가기 전 교회에 들러서 간단하게 예배를 보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 쉽게 빠질 수 없었다. 교회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사람들은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루밖에 안지났지만 우리동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옆 아파트였다. 사람들은 여유롭게 잘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준이의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동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 친절했고, 우리들도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지 못할 것 같았던 아프리카에 도착을 했고, 사람들이 오손도손 사는 그곳에, 우리도 살게 되었다. 우리가 살게된 곳 나이로비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카하와 웬다니 지역이었고 아파트 이름은 GIGATT(God is good all the time)이었다. 2달 임대료는 15만원. 이웃들은 친절했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2009년 1학기, 나는 스와힐리어 수업을 신청했다. 동아프리카에서 쓰는 언어라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신청을 했던 것이다. 대학 와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하고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꼭 '아프리카'여야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인도어와 힌두문화라던지 아랍어 라틴어 등등 언어 다양한 언어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어떤 것이든 다 좋았다.

첫 수업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스와힐리어와 아프리카 문화 수업을 맡고계신 김광수 교수님께서는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셨다. 아프리카어를 전공했고 20대에 처음 아프리카를 갔다온 이후로 60번이나 넘게 다녀오셨다고 한다. 지금도 틈만나면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구를 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워오려 하신다. 특수 언어라는 전공 때문에라도 아프리카에 갈 일이 많았겠지만 그 외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가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금요일, 선생님과 수업을 함께하면서 선생님의 아프리카에 대한 열정은 어느세 나에게로 옮겨와 있었다.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아프리카 곳곳의 사진을 보고, 영상을 보고, 문화를 배우면서 아프리카를 가고싶다는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돈을 모으기 시작한 건 그 때 부터였다.

여름방학에 아프리카를 가자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여행경비는 500-600만원정도이고 동아프리카를 순회하는 일정정도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함께가고자 하는 열의가 뜨겁지 않았고, 모두가 너무 갑작스럽게 여행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여름에도 역시 나는 조금씩 돈을 모았다.


안녕, 준아
준이를 만난건 스와힐리어 회화수업에서였다. 준(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명을 씁니다)이는 한국의 모 기업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는 케냐학생이었다. 2009학년도 2학기 부터 학교에서 지정한 외국어 수업의 의무 드릴수업 덕분에 스와힐리어에도 원어민 교사가 필요했다. 스와힐리어 특성상 대학원에 마땅한 교사가 없기 때문에 준이가 그 회화수업의 강사가 된 것이다. 나는 스와힐리어를 더 배우고자 2학기에는 중급 스와힐리어를 신청했고, 덕분에 준이와 만날 수 있었다. 첫 수업부터 반갑게 스와힐리어로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정을 쌓아갔다.

준이와 케냐여행을 생각하게 된 건 10월 즈음이었다. 평소 준이의 한국 생활을 돕던 한 선배가 준이의 초청으로 케냐에 가게 됐다는 것이다. 겨울방학동안 준이의 집과 주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한다고 했다. 현지인의 초청이기 때문에 비용도 상당히 절약되고, 배낭여행으로 가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에는 그 둘의 여행으로 계획되었던 것이 점점 커져 11월쯤에 이르러서는 5명의 한국 친구들과 준이가 함께하는 여행이 계획되었다. 여러가지 일들이 생기며 결국 처음 여행을 주선한 선배가 빠지고 내가 그 자리름 메꾸게 되면서 나도 그 여행에 참여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1년간 이리저리 아프리카를 갈 길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너무나 운이 좋게도 준이를 만난 것이다. 매 수업 점심도 굶어가며 우리를 가르쳐주던, 항상 웃으며 친구처럼 수업을 해주던 그 친구와 케냐를 간다는 건 아무래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여행을 가겠다고 돈을 모았지만 여름방학에도 일주일간 레일로 여행을 하느라 꽤 많은 비용을 지출하였고 모은돈도 조금씩 까먹었기 때문에 여행비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죄송한 일이지만 어머니께 비행기 값을 구하고, 닥치는대로 돈을 구할 수 있는 구멍들을 찾아봤다.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여비는 비행기표 포함 180만원. 하지만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비행기표는 122만원(방콕경유 인천발 케냐행) 에 구입했고 팀 재정으로는 100만원을 걷기로 했다. 그 외에도 황열병 주사와 각종 예방접종, 비자피등이 추가로 들었다. 여행 계획은 전적으로 준이에게 의존했다. 우리가 케냐여행에 앞서 참고할 수 있는 정보는 다른 나라 여행에 비해 엄청나게 적었으므로 준이와 회의를 하면서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구체적인 일정표는 다음에 함께 올리겠다). 나이로비에 한 현지인 아파트를 베이스로 준이의 고향인 물랑가(나이로비 시내로부터 2시간 거리)를 다녀오고 탄자니아를 둘러보는 일정이 정해졌다. 다음은 여행 전에 우리가 준비했던 것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케냐, 탄자니아 여행시 필요한 것들 -비자

  • 케냐 

    남산 근처에 위치한 주한 케냐대사관에서 받을 수 있다. 얼마전 까지 5만원하던 비자가 3만 4천원으로 가격을 내렸다. 여권과 케냐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는 서식 폼을 받아서 작성해 준비해야 한다. 사진은 여권용 사진 2장이 필요하며 항공 일정이 적혀진 표가 필요하다. 발급 기간은 1박2일이기 때문에 이를 숙지하고 가야한다(당일 발급 안됨) 자세한 내용은 주한 케냐대사관 홈페이지 참조.

    http://www.kenya-embassy.or.kr/

  • 탄자니아 주일본 탄자니아대사관에서 주한대사관을 겸임하므로 한국에는 탄자니아 대사관이 없다. 따라서 주한 명예영사관을 통해 서울에서 탄자니아 입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가 따로 없기 때문에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팩스로 받을 수 있다(혹은 방문하여 받아야 한다). 비자 발급비용은 9만원이며 역시 사진 2장과 항공일정이 적혀진 비행기 표를 지참해야 한다. 역시 당일발급은 안되므로 유의하도록 하자. 자세한 내용은 명예영사관에 연락하여 문의 바란다.

      주한 탄자니아 명예영사관 연락처
    -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30-67 유성빌딩
    - 전화번호 : (02) 508-7411
    - Fax : (02) 508-7637


케냐, 탄자니아 여행시 필요한 것들 - 예방접종

  • 황열병 주사(Yellow Fever) 기본적으로 동아프리카를 여행한다면 황열병 주사를 맞아야 한다. 황열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걸리는 질병이다. 주로 모기를 통해 감염되며 치사율은 20%를 넘는다. 황열병 주사를 맞으면 입,출국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있지만 걸리게 되면 심하게는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전염병이 치사율이 20%라면 엄청난 것이다) 황열병주사는 꼭 맞아야 하는 주사다. 접종료와 인지대 포함하여 2만 1천원이 든다. 인천공항에서도 접종을 하고 있으나 접종 후 이상 증상에 대비하여 적어도 출국 3주 전에는 접종을 하여야 한다. 또한, 생각보다 접종자가 많아 예약이 밀려 있으니 미리 미리 챙겨두는게 좋다. 서울에 사는 경우 국립 의료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하는게 좋다(02-2262-4833). 예방 접종 후 3주간은 심한 운동이나 목욕은 금지다. 예방 접종이 끝나면 노란색 확인증을 준다. 확인증을 받으면 확인증의 이름과 여권상의 영문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황열병이 유행하는 지역에 출입국시 이 확인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출국전 꼭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 말라리아 예방 약 말라리아도 역시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이다.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약으로는 라리암이 있으나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로 여행 중 만났던 선교사 부부의 경우 라리암을 복용했음에도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약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자. 근처 보건원이나 의료원에서 라리암 처방을 의뢰하자. 출국 2주전과 입국 후 2주까지 매주 정해진 요일에 한 알을 복용해야 한다. 복용후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식사 후, 자기 전에 복용하자. 말라리아는 못 먹고 피곤했을때 가장 잘 걸린다고 한다. 또한 저녁에 모기장을 치고 자지 않거나 모기약을 충분히 챙기지 못했을 경우 물리기 때문에 이를 명심해야 한다. 즉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으려면 다음 두 가지를 명심하자

    1.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겁게, 잘 논다!
    2. 모기장은 언제나 잘 챙기고, 모기약은 항상 챙긴다(아프리카 모기들은 모기약에 약하므로 플러그에 꼽는 모기약 만으로도 쉽게 모기를 퇴치할 수 있다. 꼭 챙기도록 하자!)

  • A형간염, 장티푸스 수인성 질병이다. 여행중에는 물을 조심해야 한다. 항상 물은 사서 마시고 끓여서 마셔야 한다. 생명에 큰 위협이 없어 장려하지 않는 예방접종이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하고 싶다면 해도 무방하다. 말라리아나 황열병에 비해서 가격이 비싼편도 아니고 몸에 크게 부담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물을 조심할 자신이 있다면 크게 상관하지 않아도 좋다.

 

  • 파상풍 주사 국내에서도 필요한 예방접종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의료시설이 잘 돼있기 때문에 상처가 났을 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아프면 답이 없다. 만약을 대비하여 저렴한 가격에 동네 보건소에서 파상풍 주사를 맞고 출발하자!

 

이 정도 준비라면 완벽하다.
여행계획을 세우고, 비자를 받고, 각종 예방 접종을 섭렵했다면, 떠나보자!

아프리카로!!

비행기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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