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나이로비까지
인천공항에서느 케냐 직항 비행기가 없다. 대부분의 케냐행은 방콕을 거치거나 두바이를 거쳐가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두바이를 경유하는 쪽이 비행기표가 싸다. 하지만 늦게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경우 자리가 없다. 우리는 뒤늦게 케냐행을 결정했기 때문에 방콕 경유를 택해야만 했다. 비행기표는 대략 122만원 정도였다. 방콕까지는 6시간 방콕에서 케냐는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저렴한 노선을 택하려면 미리미리 예매를 해야 한다. 두바이까지의 비행기는 많지만 두바이에서 케냐를 향하는 비행기는 매진인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사진과 함께하자.

장기간의 비행기 여행은 언제나 지치기 마련이다. 장기간 여행에 대비해 짐을 엄청나게 많이 가져갔기 때문에 공항에서 여러모로 분주하고 힘들었다. 약 3시간 정도를 짐하고 씨름하니 비행기 안에서는 다들 곤히 잘 수 밖에 없었다.

방콕 공항에서는 미쳐 짐에 넣지 못한 것들을 구입했다. 한 달치 선크림, 목욕용품들을 적당히 사고 나이로비로 향했다. 방콕에서는 아프리카행 비행기가 꽤 많은편이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다양한 노선들이 있었고, 동남아시아는 물론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이 공항에 노선이 있었다. 자연스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 공항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 킬리만자로(5,895m)다. 비행기 안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걸 보면 정말 높은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로비 공항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었다. 어느 공항이나 촬영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나이로비 국제공항은 더 심했다. 주변 국가인 수단, 소마리아에서 내전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특이한 행동을 해도 검문을 받게된다. 뿐만 아니라 타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강하여(경찰이나, 국가기관의 경우가 심한 것 같다) 외국인의 행동하나하나에 예민하다. 나도 촬영을 하다 경찰들에게 잡혀갔었다. 다행이 별 일은 없었지만 오금이 저릴뻔한 기억이었다.

적도라 햇볕은 강하지만 이래뵈도 온도는 시원하다. 수도 나이로비의 경우 해발 2500m정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보기와는 달리 연중 15도 정도를 유지하는 편이다. 사람살기에 너무나도 좋은 곳이다.

동아프리카 지역을 스와힐리 문화권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오래 전 부터 중동지역과 문화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의식주 곳곳에서 중동적인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이런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삼손. 우리 준이의 동생이다. 비행기 일정이 맞지 않아 우리가 준이보다 먼저 도착 했는데, 삼손은 그런 우리가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남은 여행에서도 우리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준이의 어머니. 우리에게 맛있는 차이를 끓여주셨다.

지쳐보이지만 밝은 문기누나

나도 긴 비행시간에 머리도 떡이지고 몸도 지쳤다. 하지만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과 날씨에 기분이 좋아졌다.

난간에서 바라본 나이로비 전경. 우리가 머무른 곳은 나이로비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카하와 웬다니라는 지역이었다. 주로 경찰들이 사는 곳이다. 여기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정말 케냐에 왔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가져온 안내문을 자세히 읽고 있는 최준기 군.

물론 나도 읽었다. 동물의 왕국 케냐에 대한 내용이었다.

가족 사진을 보여주는 삼손

케냐는 영국식민지였다. 덕분에 대부분의 케냐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는 편이다. 그외에 동아프리카의 교통어인 스와힐리어를 쓴다.

삼손이 우리를 위해 직접 만들어준 마카로니. 염소고기가 들어가있다. 케냐의 경우 다른 고기보다 염소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다.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외국에 나가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수인성 질병이다. 케냐의 경우 A형간염, 장티푸스등이 물을 통해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우린 물을 먹지 못했고 목이 메어 조금씩 남기게 되었다.

마카로니와 함께 나온 사모사라는 스와힐리문화권의 전통 만두. 향이 독특하고 속이 부드럽다. 하나만 먹어도 든든한 맛있는 음식이다.

후식으로 오렌지를 먹었다. 케냐는 동물의 왕국이기도 하지만 과일의 왕국이기도 하다. 풍부한 강수량과 햇빛, 비옥한 토양덕분에 과일 무럭무럭 자란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없는 풍부한 향미가 그득한 맛이었다.

밥먹고 근처 마켓으로. 집 근처에 핀 꽃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에서는 인도인을 많이 볼 수 있다. 식민통치의 편리함을 위해 영국은 많은 인도인들을 케냐로 데려왔다. 덕분에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반 세기가 지났어도 케냐는 인도의 영향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나쿠마트도 인도의 브랜드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 정도로 왠만한 동네에는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과일은 시장보다 비싸다. 현지인에게도 나쿠마트는 이용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격이 센 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팔지 않는 물이라든지 필요한 식료품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나쿠마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마트가 비싸다 해도 과일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망고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시장에서는 천원(70케냐실링정도)에 3개, 마트에서는 천원이 안되는 가격(약 60실링정도)으로 1개 를 살 수 있다.

삼손은 우리를 위해 정성스래 애플망고를 골라주었다.

제기랄 놈의 코카콜라는 케냐도 잠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과일들.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고 맛있다.

간단히 장을 보고 우리는 근처 교회를 찾았다. 삼손이 다니는 교회다.

케냐는 약 90%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교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이렇게 슬레이트로 지어놨거나 건물에 있더라도 화려하지 않았따. 들어가면 의자 여러개와 탁자 하나정도 있다. 우리나라의 교회처럼 번뜩이거나 화려한 장식도 없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건물에, 모여 앉을 수 있는 의자만 있으며 그곳은 교회가 되었다.

저녁에는 불빛이 많이 없어 조용하고 은은했다. 달빛과 별빛이 사라이 만든 빛보다 더 밝았다.

저녁으론 옆집 레아 아줌마가 만들어준 스튜를 먹었다. 이것도 역시 염소고기었다. 저녁을 걸게 먹었다.

망고는 정말 맛있었다. 케냐는 망고의 나라다. 이곳의 애플망고는 사과의 시큼함이 없고, 망고의 느끼함이 없는 훌륭한 과일이었다. 맛있는 저녁에 훌륭한 후식을 먹으니 든든했다. 케냐에서의 첫날 밤은 든든했다.

다음날 아침도 역시 레아네집에서 먹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웃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때때로 불러서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빵도 고소하고 쫀득쫀득 했다.

오후에 도착할 준이을 맞이하러 가기 전 교회에 들러서 간단하게 예배를 보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 쉽게 빠질 수 없었다. 교회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사람들은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루밖에 안지났지만 우리동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옆 아파트였다. 사람들은 여유롭게 잘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준이의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동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 친절했고, 우리들도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지 못할 것 같았던 아프리카에 도착을 했고, 사람들이 오손도손 사는 그곳에, 우리도 살게 되었다. 우리가 살게된 곳 나이로비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카하와 웬다니 지역이었고 아파트 이름은 GIGATT(God is good all the time)이었다. 2달 임대료는 15만원. 이웃들은 친절했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2009년 1학기, 나는 스와힐리어 수업을 신청했다. 동아프리카에서 쓰는 언어라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신청을 했던 것이다. 대학 와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하고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꼭 '아프리카'여야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인도어와 힌두문화라던지 아랍어 라틴어 등등 언어 다양한 언어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어떤 것이든 다 좋았다.

첫 수업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스와힐리어와 아프리카 문화 수업을 맡고계신 김광수 교수님께서는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셨다. 아프리카어를 전공했고 20대에 처음 아프리카를 갔다온 이후로 60번이나 넘게 다녀오셨다고 한다. 지금도 틈만나면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구를 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워오려 하신다. 특수 언어라는 전공 때문에라도 아프리카에 갈 일이 많았겠지만 그 외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가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금요일, 선생님과 수업을 함께하면서 선생님의 아프리카에 대한 열정은 어느세 나에게로 옮겨와 있었다.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아프리카 곳곳의 사진을 보고, 영상을 보고, 문화를 배우면서 아프리카를 가고싶다는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돈을 모으기 시작한 건 그 때 부터였다.

여름방학에 아프리카를 가자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여행경비는 500-600만원정도이고 동아프리카를 순회하는 일정정도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함께가고자 하는 열의가 뜨겁지 않았고, 모두가 너무 갑작스럽게 여행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여름에도 역시 나는 조금씩 돈을 모았다.


안녕, 준아
준이를 만난건 스와힐리어 회화수업에서였다. 준(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명을 씁니다)이는 한국의 모 기업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는 케냐학생이었다. 2009학년도 2학기 부터 학교에서 지정한 외국어 수업의 의무 드릴수업 덕분에 스와힐리어에도 원어민 교사가 필요했다. 스와힐리어 특성상 대학원에 마땅한 교사가 없기 때문에 준이가 그 회화수업의 강사가 된 것이다. 나는 스와힐리어를 더 배우고자 2학기에는 중급 스와힐리어를 신청했고, 덕분에 준이와 만날 수 있었다. 첫 수업부터 반갑게 스와힐리어로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정을 쌓아갔다.

준이와 케냐여행을 생각하게 된 건 10월 즈음이었다. 평소 준이의 한국 생활을 돕던 한 선배가 준이의 초청으로 케냐에 가게 됐다는 것이다. 겨울방학동안 준이의 집과 주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한다고 했다. 현지인의 초청이기 때문에 비용도 상당히 절약되고, 배낭여행으로 가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에는 그 둘의 여행으로 계획되었던 것이 점점 커져 11월쯤에 이르러서는 5명의 한국 친구들과 준이가 함께하는 여행이 계획되었다. 여러가지 일들이 생기며 결국 처음 여행을 주선한 선배가 빠지고 내가 그 자리름 메꾸게 되면서 나도 그 여행에 참여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1년간 이리저리 아프리카를 갈 길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너무나 운이 좋게도 준이를 만난 것이다. 매 수업 점심도 굶어가며 우리를 가르쳐주던, 항상 웃으며 친구처럼 수업을 해주던 그 친구와 케냐를 간다는 건 아무래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여행을 가겠다고 돈을 모았지만 여름방학에도 일주일간 레일로 여행을 하느라 꽤 많은 비용을 지출하였고 모은돈도 조금씩 까먹었기 때문에 여행비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죄송한 일이지만 어머니께 비행기 값을 구하고, 닥치는대로 돈을 구할 수 있는 구멍들을 찾아봤다.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여비는 비행기표 포함 180만원. 하지만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비행기표는 122만원(방콕경유 인천발 케냐행) 에 구입했고 팀 재정으로는 100만원을 걷기로 했다. 그 외에도 황열병 주사와 각종 예방접종, 비자피등이 추가로 들었다. 여행 계획은 전적으로 준이에게 의존했다. 우리가 케냐여행에 앞서 참고할 수 있는 정보는 다른 나라 여행에 비해 엄청나게 적었으므로 준이와 회의를 하면서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구체적인 일정표는 다음에 함께 올리겠다). 나이로비에 한 현지인 아파트를 베이스로 준이의 고향인 물랑가(나이로비 시내로부터 2시간 거리)를 다녀오고 탄자니아를 둘러보는 일정이 정해졌다. 다음은 여행 전에 우리가 준비했던 것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케냐, 탄자니아 여행시 필요한 것들 -비자

  • 케냐 

    남산 근처에 위치한 주한 케냐대사관에서 받을 수 있다. 얼마전 까지 5만원하던 비자가 3만 4천원으로 가격을 내렸다. 여권과 케냐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는 서식 폼을 받아서 작성해 준비해야 한다. 사진은 여권용 사진 2장이 필요하며 항공 일정이 적혀진 표가 필요하다. 발급 기간은 1박2일이기 때문에 이를 숙지하고 가야한다(당일 발급 안됨) 자세한 내용은 주한 케냐대사관 홈페이지 참조.

    http://www.kenya-embassy.or.kr/

  • 탄자니아 주일본 탄자니아대사관에서 주한대사관을 겸임하므로 한국에는 탄자니아 대사관이 없다. 따라서 주한 명예영사관을 통해 서울에서 탄자니아 입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가 따로 없기 때문에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팩스로 받을 수 있다(혹은 방문하여 받아야 한다). 비자 발급비용은 9만원이며 역시 사진 2장과 항공일정이 적혀진 비행기 표를 지참해야 한다. 역시 당일발급은 안되므로 유의하도록 하자. 자세한 내용은 명예영사관에 연락하여 문의 바란다.

      주한 탄자니아 명예영사관 연락처
    -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30-67 유성빌딩
    - 전화번호 : (02) 508-7411
    - Fax : (02) 508-7637


케냐, 탄자니아 여행시 필요한 것들 - 예방접종

  • 황열병 주사(Yellow Fever) 기본적으로 동아프리카를 여행한다면 황열병 주사를 맞아야 한다. 황열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걸리는 질병이다. 주로 모기를 통해 감염되며 치사율은 20%를 넘는다. 황열병 주사를 맞으면 입,출국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있지만 걸리게 되면 심하게는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전염병이 치사율이 20%라면 엄청난 것이다) 황열병주사는 꼭 맞아야 하는 주사다. 접종료와 인지대 포함하여 2만 1천원이 든다. 인천공항에서도 접종을 하고 있으나 접종 후 이상 증상에 대비하여 적어도 출국 3주 전에는 접종을 하여야 한다. 또한, 생각보다 접종자가 많아 예약이 밀려 있으니 미리 미리 챙겨두는게 좋다. 서울에 사는 경우 국립 의료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하는게 좋다(02-2262-4833). 예방 접종 후 3주간은 심한 운동이나 목욕은 금지다. 예방 접종이 끝나면 노란색 확인증을 준다. 확인증을 받으면 확인증의 이름과 여권상의 영문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황열병이 유행하는 지역에 출입국시 이 확인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출국전 꼭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 말라리아 예방 약 말라리아도 역시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이다.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약으로는 라리암이 있으나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로 여행 중 만났던 선교사 부부의 경우 라리암을 복용했음에도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약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자. 근처 보건원이나 의료원에서 라리암 처방을 의뢰하자. 출국 2주전과 입국 후 2주까지 매주 정해진 요일에 한 알을 복용해야 한다. 복용후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식사 후, 자기 전에 복용하자. 말라리아는 못 먹고 피곤했을때 가장 잘 걸린다고 한다. 또한 저녁에 모기장을 치고 자지 않거나 모기약을 충분히 챙기지 못했을 경우 물리기 때문에 이를 명심해야 한다. 즉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으려면 다음 두 가지를 명심하자

    1.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겁게, 잘 논다!
    2. 모기장은 언제나 잘 챙기고, 모기약은 항상 챙긴다(아프리카 모기들은 모기약에 약하므로 플러그에 꼽는 모기약 만으로도 쉽게 모기를 퇴치할 수 있다. 꼭 챙기도록 하자!)

  • A형간염, 장티푸스 수인성 질병이다. 여행중에는 물을 조심해야 한다. 항상 물은 사서 마시고 끓여서 마셔야 한다. 생명에 큰 위협이 없어 장려하지 않는 예방접종이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하고 싶다면 해도 무방하다. 말라리아나 황열병에 비해서 가격이 비싼편도 아니고 몸에 크게 부담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물을 조심할 자신이 있다면 크게 상관하지 않아도 좋다.

 

  • 파상풍 주사 국내에서도 필요한 예방접종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의료시설이 잘 돼있기 때문에 상처가 났을 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아프면 답이 없다. 만약을 대비하여 저렴한 가격에 동네 보건소에서 파상풍 주사를 맞고 출발하자!

 

이 정도 준비라면 완벽하다.
여행계획을 세우고, 비자를 받고, 각종 예방 접종을 섭렵했다면, 떠나보자!

아프리카로!!

비행기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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