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속으로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산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을 마약중독자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등산가의 계속된 등산을 도박에 비유한다. 그리고 짜릿한 흥분과 쾌감을 얻기 위해 모든것을 걸고 산에 오르는 모습이 무모하다고 지적한다. 1996년, 상업 등반대에 비용을 지불하고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밟았던 존 크라카우어는 등산이 마약이나 도박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희박한 공기속에서, 눈과 얼음 그리고 돌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자연에서 사투하는 일은 오히려 고독한 수련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한다.

 

산을 오르는 순간 그들은 모든것을 인내한다. 협곡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네팔의 아름다운 풍경과 해발 5천미터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밤하늘은 찰나의 쾌락일뿐이다. 희박한 공기는 사람의 신체를 극한의 상태에 몰아넣는다. 체지방과 근육은 날이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음식물을 소화하는 일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힘들어지기만 한다. 산을 오르며 생긴 상처들은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머리에 물을 묻히는 일이 금지된 고산지역에선 씻는일조차 제한된다. 먹고 배설하는 일은 살기위해 가까스로 해내야만 한다. 기온은 영하 40도에서 영상 30도를 오르내린다. 정상을 오르는 길을 맞이하는건 그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던 산악인과 셰르파의 얼어붙은 시체와 빈 산소통뿐이다. 스스로의 존재조차 인식할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은 정상을 밟고, 목숨을 건 하산을 시작한다.

 

해수면의 절반 혹은 삼분의 일밖에 안되는 공기는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가장 위험할수도 있는 순간,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은 사람들을 본능과 맞서게 만든다. 산을 오르는 일에 있어서는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어드벤처 컨설턴트 등반대-존이 속했던 등반대- 대장 로브 홀은 끝끝내 캠프로 찾아오지 못했다. 불과 1년전, 정상을 100m 앞두고 돌아서야했던 우체국 직원 한센을 위해서라도 로브 홀은 끝가지 산에 남아 있어야 했다. 함께 등반을 했던 고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정상을 향했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는 눈보라 사우스콜-마지막 캠프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이르는 구간 중 하나-을 떠날 수 없었다. 희박한 공기속에서 그의 판단력은 본능에 의존했다. 10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그는 결국 캠프로 내려오기를 거부했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정상을 밟고 가장 먼저 하산했던 존 크라카우어는 마지막 캠프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희박한 공기속에서 판단력을 잃고 침낭속으로 쓰러졌다. 그는 그날 정상에 올랐던 다섯명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글렌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글렌굴드는 1955년과 1981년, 두 번의 골드베르크를 녹음했다. 두 녹음의 차이는 '아리아 Aria'에서부터 도드라진다. 1981년의 아리아는 1955년 버전보다 연주시간이 두 배 정도 길다. 평소 건강 염려증 때문에 약을 밥먹듯이 챙겨먹듯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건강악화는 건강염려증에 기인한다. 과도하게 챙겨먹은 약들로 말미암아 1981년 굴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몸의 일부가 마비되고,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말년의 굴드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그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한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통통부은 얼굴을 본 지인들은 그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1981년의 골드베르크 녹음은 굴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속되는 마비증세를 이겨내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자세를 교정하고(더 안좋은 자세로 변하기도 했다), 마비증세를 이겨낼 방도를 찾아보았다. 신기하게도 골드베르크를 녹음할 즈음에는 마비증세가 거의 회복되었다. 성숙한 글렌굴드는 그가 깨닳은 모든것을 담아 새로이 골드베르크를 녹음했다. 그의 연주가 느려진건 정상이 아닌 몸상태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수학적으로 잘 짜여진 곡의 구성을 최대한 드러내기위한 의도였다. 1981년 4월과 5월, 굴드는 여섯 차례의 녹음을 통해 마지막 골드베르크를 녹음하기에 이른다. 그의 연주는 실제로 마비증세를 겪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만큼 유려하고 부드러웠다. 가장 극한 상황에서, 죽음을 앞두고 연주했던 그의 연주는 오히려 편안했고, 아름다웠고, 황홀했다.

 

1955년의 독특한 골드베르크와 굴드 특유의 연주에 대한 태도는 많은 이가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무더운 여름에도 차안에서 히터를 틀고 코트와 장갑으로 무장했던, 극도로 예민하고 지나치게 자주 연주회를 취소했던 그의 모습은 매번 독특한 모습으로 관심을 받으려 한다는 오해를 샀다. 연주에 대한 집착과 자기애는 많은 여인들과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성애자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외적인 모습은 항상 많은이에게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피터 F. 오스왈드는 독특했던 굴드의 모든 행동들은 결국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착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연주에 있어서 굴드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는 항상 그만의 연주를 하고 싶어했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그 외의 일들은 모두 부수적이었다.

 

미쳐야 미친다 不狂不及

 

살다보면, 삶의 목표가 불분명해지고 의지가 박약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우리의 삶은 대게 그렇다. 적당히 미치고 적당히 살아간다. 부끄럽거나, 의지가 부족하거나. 우리는 미치기를 거부한다. 끓어오르는 열정과 삶에대한 의지는 늘 현실에 부딪혀 무너진다. 타협할줄 아는 우리의 삶은 길고 건강하다. 오랜 삶의 끝에서 맞이한 죽음은 평온하기만 하다. 목숨을 잃었던 그 산악인들과 글렌굴드는 모두 순수한 미치광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숭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나아갔다. 산을 오르는 일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에 완벽하게 미칠수 있었던 그들은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도 의지를 놓지 않았다. 미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은 짧았고 죽음은 처참하다 할만큼  끔찍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을 이해했다. 미치는 일은 두렵다. 미치는 일은 쾌락을 얻는 일과 마약에 중독되는 일과는 다른 차원이다. 완벽하기 미치는 일은 끊임없는 절제를 필요로한다. 그리고 고독하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미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목숨을 잃었던 그들의 삶과 굴드의 인생이 끊임없이 회자되는건, 그들의 숭고한 광기 때문이다. 오롯이 무엇인가에 미칠수 있었었기 때문이다.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미쳐버린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경이롭기 때문이다.

 

 

 

 

 

 

 

 

 

 

Lambchop이라는 밴드의 이야기. 그들의 1996년 앨범 How Quit I Smoking이라는 흥미로운 이름의 앨범엔 The man who loved beer라는 기묘한 음악이 있다. 내 어떻게 담배를 끊겠냐는 이름으로 묶은 이 앨범의 곡들은 읊조리는 듯한 단조로운 톤의 보컬이 매력적이다. 누군가는 이 밴드를 오케스트라라고 말한다. 악기 편성이 엄청나기때문. 이 한 곡에 들어가는 악기는 10여개가 넘는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했을때 느껴지는 외로움이 맥주를 부를때 이 음악을 듣는다.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들때는 이 맘을 가득 담아,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신다. 가사들이 그렇게도 재미있을 수 없다. 악기들이 튀지 않고 보컬의 목소리를 감싸주는 흥미로운 이 음악의 가사는 이렇다.

 

맥주를 사랑한 남자

 

오늘은 누구에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주변에는 다 고만고만한 놈들뿐인데,

옛 친구들이라곤 모두 맘에 안드는 놈들이 돼 버렸는데.

 

오늘은 내가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친절함이란 것도 다 죽어 버렸는데.

난폭함만이 남아 아무에게나 덤벼들기만 하는데, 오늘은 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할까.

세상을 떠도는 잘못된 것들, 없어지지도 않는, 멈출수도 없는 것들.

 

오랜시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 할 때, 나는 죽음을 보았지.

2월에서 12월까지, 우리가 보낸 시간은 비극적이었지.

펼쳐진 손가락이 하나의 주먹을 모아지고, 난폭함만이 남아 모두에게 덤벼들겠지.

 

The man who loved beer

 

To whom can I speak today

The brothers they are equal

But the old friends of today

They have become unlovable

To whom can I speak today

The gentleness has perished

And the violent man has come down on everyone

To whom can I speak today

The wrong which roams the earth

There can be no end to it

It is just unstoppable

Death is in my sights today

As when a man desires

To see home after many years in jail

February through December

We have such a tragic year

As separate as the fingers

Suddenly, as one, as the hand

And the violent man has come down on everyone

And the violent man has come down on everyone

 

 

 

 

 

DG; 김선욱, 서울시향, 정명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교향곡 5번'운명'

Deutche Grammophon;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Symphony No.5

Sunwook Kim(Piano),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Myung-Whun Chung, 2013.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따라 마음껏 변하는 선율을 이해하는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과 비슷하다. 로스터는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음색을 만들어가듯 생두를 고르고 콩을 볶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단계들을 거처 우리는 한 곡의 심포니와 같은 커피 한 잔을 마주한다.

 

처음 커피를 마실때는, 언제쯤 다양한 커피들을 제대로 느끼고 구분해낼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건 책으로 읽어서 되는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설명으로 이해되는 일도 아니었다. 좋아해서 마시고, 그렇게 자주 커피 한 잔과 마주하다보니 이제는 커피를 조금은 이해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로스터도 생기고 바리스타도 생겼다. 음악을 듣는일도 비슷하게 된것같다. 처음엔 어려웠던 선율들이 이제는 마음에 와 닿는다. 지휘자의 손 끝에서 파도가 출렁이듯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보는 일도 익숙해졌다. 좋아하는 지휘자가 생기고 오케스트라가 생겼다.

 

지난 1월, 요섭형과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베토벤연주회에 다녀왔다. 말러와 모차르트를 통해 친숙해진 서울시향을 만나는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합창석, 관악파트의 깊은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자리는 고작 3만원이었다. 소리의 밸런스를 느끼기엔 부족한 자리었지만 정명훈의 섬세한 표정을 살피며 연주를 볼 수 있는건 더할나위 없는 좋은 선택이었다. 피아노의 소리가 아쉬운 협주곡 5번이 끝나고 오케스트라가 전열을 정비하자 감동의 소리가 밀려왔다. 3-4악장의 흥분되는 피날레를 맞이하면서 나와 요섭형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3만원에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호사라고 그랬던 형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봤던 공연이 음반을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음반이 나오면 꼭 같이 새로 연 카페에서 듣자는 약속을 했었다. 음반이 카페에 도착한 날 아침은 운이 좋게도 내가 비번을 받은 날이었다. 눈앞에서 포장을 뜯고 연주를 들었다. 새로바뀐 헬카페의 스피커는, 잘 정재된 디지털 음원과 어울려 좋은 소리를 냈다. 공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김선욱의 섬세한 연주는 카페를 가득 채웠다. 필요한 소리만이 존재하는 협주곡이었다. 정명훈이 맥주를 마시며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3악장은 흥겨웠다. 화려하면서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김선욱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서울시향과 가진 인터뷰서 김선욱이 존 엘리엇 가디너와 베토벤 4번 협주곡을 함께한 것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절제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선욱의 베토벤 연주는 가디너를 만나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를 탄생시켰다. 대단했던 그 공연을 뒤로하고 김선욱은 더 깊은 이해로 5번을 연주했다. 합창석에선 느끼지 못했던 그의 연주는 새롭게 다가왔다. 아름다웠다.

 

이어진 베토벤 5번 교향곡도 공연장의 연주에선 놓쳤던 부분들이 들렸다. 현악의 울림이 더 부드럽고 깊게 전달되면서 오케스트라는 깊은 선율이 느껴졌다. 작년 1월의 말러 1번, 12월의 모차르트 주피터, 1월의 베토벤 5번과 3월의 베토벤 7번을 들으면서 서울시향의 사운드에 익숙해져다. 덕분에 이 음반에서 나는 서울시향만의 분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베토벤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많이 찾아 들었다. 프란츠 브뤼헨과 18세기 오케스트라의 베토벤은 목관악기의 울림이 좋았다. 고악기의 저음을 제대로 살린 브뤼헨의 베토벤은 4번 교향곡 1악장과 7번 교향곡 2악장이 하이라이트였다. 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전집은 시원시원하고 간결했다. 시대와 잘 어우러진 베토벤이었다. 인상깊었던 앨범은 2012년 존 엘리엇 가디너와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가 카네기홀에서 연주한 베토벤 7&5 음반이었다. 여지껏 들었던 베토벤중 가장 개성넘치고 흥겨웠던 연주였다. 그러면서도 베토벤의 의도를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 살아있었다. 가디너와 그의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서울시향의 새 음반이 발매되기 전 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베토벤 5번이었다.

 

공연 이후 더 많이 베토벤을 듣게 됐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교향곡 5번을 자주 들으면서 4월에 발매될 서울시향의 5번을 기다렸다. 악보를 보고, 연주 영상도 보면서 베토벤의 걸작이 정명훈의 손에서 살아나기만을 기다렸다. 음반은 기대에 부응했다. 현악파트의 굵고 부드러운 사운드는 서울시향만이 가진 미쟝센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가 떠오르는 연주다. 다른 연주에선 뭔가 부족하기만 했다고 느껴졌던 관악 파트에도 아쉬움이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벅찬 눈망울로 서로를 끌어안던 단원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특히 관악파트 연주자들이 보인 표정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왠지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시향의 음반은 음표들을 아쉬움없이 잘 살려냈다. 브뤼헨, 가디너와 함께 내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베토벤 5번 교향곡이다.

 

한시간여의 플레이타임. 아무것도 못한채 나와 요섭형은 음악만 들었다. 다 듣고 나니 머리가 띵 할정도로 어질어질했다. 이렇게 집중해서 음악만 들었던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제서야 나 커피를 부탁했고 햇볕을 받으며 한모금 마시자 정신이 들었다. 감동의 전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음악이 끝나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음악도 좋았고, 커피도 맛있었다.

 

서울을 닮은 음악을 하는 오케스트라가 서울에 있다는건 감사한 일이다. 한달에도 몇번씩 서울시향의 공연이 열린다. 도시를 한껏품은 오케스트라가 가까이 있다는건 참 행운이다.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맛과 향을 선사하는 커피 한 잔 처럼, 오직 서울에서만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있어 좋다. 수십년동안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찾아 헤맸던 명 오케스트라처럼 서울시향도 오크통에서 잘 숙성된 위스키 같이 깊어졌으면 좋겠다. 더 많이 공연을 가고, 더 많은 서울시향의 음반을 샀으면 좋겠다.

 

동대문 운동장의 일이라면, 나는 이렇다할 기억이 없다. 그 주변 헌책방을 돌아다녔거나 생일날 아버지가 글러브를 사준다고 스포츠용품점을 들렀던게 기억의 전부다. 고교야구의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그 낡은 야구장 담벼락을 지나면서 나는 지난날의 함성을 들었고 늙은 아비의 추억을 읽었다.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문화 역사공원에 대해 건축가 (고)정기용씨는 이런말을 했다. '동대문 운동장, 그게 뭐냐. 서울의 자존심인가, 서울 시민의 자존심인가, 역사인가. 다 아니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자존심이다. 그 건축가의 자존심을 도시 한복판에 세우는 일에 우리는 수천억을 투자하는거다.' 심사위원들은 모르는 일이다. 그 운동장에 새겨진 함성과 성벽에 남긴 애환을. 그저 건축의 신세계로 나아가는 건축물로, 서울을 빛나게 하는게 그들의 심사 기준이었을게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건축가는 단순히 설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문화를 짓는 사람들이라고. 고 정기용씨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죽기 전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걸 나누고 가려는 모습을 담은 <말하는 건축가>라는 다큐를 보면서, 나는 눈물이 흘렀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의 마지막 장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건축물이 있기 전, 그곳은 너른 벌판이며 자연이었을것이라고. 그곳에 터를 잡고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일은 겸손함이 함께 해야 한다고. 자연의 일부에 인간의 건축물을 들여놓는 일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역으로는 건축물을 철거하는 일에도 우리는 겸허해야하고 신중해야 한다.

 

황정은의 소설집 <파씨의 입문>에 실린 '옹기전'이란 소설을 선물받았다. 친구는 나에게 이 책을 주며 옹기전에 담긴 이야기의 저변에는 용산이 있을거라 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줍게 된 옹기는 '서쪽에 다섯 개가 있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옹기의 말을 따라 떠나는 화자는 재개발되고 있는 도시의 풍경들과 마주한다. 다섯개가 용산참사로 스러진 다섯명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을 읽은지 얼마 안지나 용산 재개발이 부도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김중혁의 단편소설집 <일층/지하일층>은 재개발에 미친 도시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다. 오래된 건축물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크라샤'는 세월이 지나면 남는게 없는 서울을 그리게 하는 영화였다. 빈티치풍의 카페를 위해 고가구를 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교차하는 건물이 사라지는 마술 장면은 우리의 건축철학을 되묻는 장면이었다.

 

카페 투웰브피엠의 일부터 해방촌 콩밭로스터까지.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실때에도 부동산을 걱정해야했다. 오랫동안 한곳에 뿌리 박고 살아남는 카페들이 없음에 슬퍼했다. 세월이 지나서 다시 그곳을 찾아 블렌드 한 잔 시키며 추억을 더듬을 카페가 없을것이란 사실에 가슴아파해야했다. 건축학자 임석재는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에서 미국의 마천루들이 역사와 철학의 빈곤에 비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나는 카페에서 그 구절을 읽으며 역사와 철학은 물론이요 기억조차 잡아먹는 이 도시의 재개발에 치를 떨었다. 르 꼬르뷔지에의 새도시 건축계획은 철학이라도 있었다. 

 

3월 한달의 독서목록은 건축으로 시작해 건축으로 끝났다.

때마침 일어난 카페에서의 사건들은 책을 읽는데 도움을 줬다. 황정은의 <파 씨의 입문>, 임석재의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알랭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김중혁의 <일층/지하일층>. 이 네권을 마무리함에 나는 <말하는 건축가>라는 다큐를 추천한다. 자신이 설계한 목욕탕 앞에서 할머니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문화를 짓는 건축가의 인생은 큰 귀감을 줬다. 건축물에 감사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마음, 자연의 땅 위에 새워진 모든것들에 대해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3월의 독서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Alexandre Tharaud - Chopinata

 

Marc-Andre Hamelin, Chopinata

 

Le Boeuf sur Le Toit(지붕위의 황소)는 1920년대 프랑스의 한 캬바레 이름이다. 영화 Midnight In Paris를 본 사람이라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거다. 콜 포터의 음악이 신나게 흘러나왔던 그 곳이 1920년의 캬바레였다. Chopinata는 Clement Doucet가 쇼팽의 왈츠와 환상곡을 섞어 만든 춤곡(Foxtrot)이다. 1920년대는 헤밍웨이나 스콧피츠제럴드 혹은 달리나 피카소가 있었다. 그러면 그 땐 어떤 음악이 있었냐고? 콜포터를 비롯한 캬바레 음악이 있었다.

 

고전음악 공연은 지금처럼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19세기 말에는, 리스트같은 기교파 혹은 꽃미남 연주자들이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지금의 아이돌 스타처럼 그들을 숭배했다. 연주 후, 그의 대기실은 항상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뿐만아니다. 대부분의 공연 플레이리스트는 잡다했으며, 연주자들은 관객들이 너무 시끄러워 연주를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개방된 분위기에서 연주했다. 너무나 조용해 기침조차 하지 못하고, 박수도 눈치 봐가며 쳐야하며 조금만 둘러보아도 상모를 돌리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 그런 분위기는 1920년대에 없었다. 와타나베 히로시는 '청중의 탄생'에서 작금의 견고한 고전음악 문화가 발전하게 된 일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 한다. 192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는게 그의 이야기다.

 

프랑스 출신의 꽃미남 피아니스트 Alexandre Tharaud의 새 앨범 Le Boeuf sur Le Toit(지붕위의 황소)는 그가 가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출발한다.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줄곳 모여 연주를 했던 할아버지의 캬바레는 타로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한 소중한 매개체다. 그 어릴적, 할아버지를 통해 알게됐던 1920년대의 파리는 타로에게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가 연주한 바흐, 라무, 쿠프랭 혹은 쇼팽의 연주를 들었던 사람이라면 이 앨범이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보면 그의 연주는 1920의 파리에 잘 어울린다. 손가락이 건반에 닿는듯 안닿는듯,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그의 연주는 낭만을 즐길줄 알았던 캬바레 손님들에게 제격이다. 멋지게 턱시도를 차려입고, '그래서, 새들도 벌들도 교육받은 벼룩들도 사랑을 나누죠, 사랑해요, 모두 사랑에 빠집시다'고 말하며 연주한다. 사람들은 그의 연주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을것이다. 이 앨범에는 클래시컬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Jeane Wiener나 Clement Doucet의 음악부터 시작해 Cole Porter, Darius Milhaud등 1920년대에 활약한 작곡가들이 작품이 실려있다. 낭만주의의 바통을 이어받은 혹은 스윙과 블루스로 이어지는 과도기의 음악들이다.

 

고전음악이 지루하다고 생각했거나 어찌해서 고전음악이 즐거울수 있는가 궁금한 사람들은 타로의 연주를 들어보길 바란다. 1920년대의 파리를 생각하며 Chopinata를 듣는다면 당신도 오늘 저녁, 술취한 길목에서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푸조를 타고 캬바레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쇼팽을 듣고 콜포터도 듣고 스윙과 재즈를 듣고, 다시 쇼팽을 듣고 베토벤도 듣고 모짜르트도 듣고 바흐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음악들은 다 연결되는 것이니까. 아름답고 신나면 다 좋은거니까.

 

 

Original score of Chopinata, 1927

  

Alexandre Tharaud - Le Boeuf sur Le Toit

 Alfred Brendel - Impromptus(D.899)

 



눈이 온다. 커피를 갈고 물을 끓인다. 커피를 다 내리고 나면 의자를 챙긴다. 눈이 오는 풍경을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의자를 둔다. 풍경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신다.

Gabor Boldoczki의 바흐 트럼펫 협주곡(으로 편곡한)을 듣는다. 식상하지만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도 듣는다.  Albrecht Mayer의 오보에 연주는 겨울들어 가장 많이 찾는 음반이다. 요래저래 눈하고 어울리는 음악을 찾다가 듣게된 슈베르트. 결국엔 슈베르트로 커피잔을 비우고 들어왔다. 오늘 들었던 곡은 D899. 슈베르트가 작곡한 두개의 즉흥곡집 중 하나(Op.90)다.  두 즉흥곡집 모두 슈베르트 사후에 출판됐고, '즉흥곡'이란 제목은 출판가가 붙였다고 한다.

사실 음악을 듣기전에 설명부터 읽자치면 지루하기 짝이없다. 가령 이곡은 음조가 어떻게 되고 도이치 번호는 어떻고, 작품번호는 어떻고, 곡의 흐름은 어떠며 어떤 형식이고 등등. 더군다나 고전음악에 관심이 없는 경우는 더 그럴것이다. 나부터도 처음 이 곡을 설명을 접했을땐 그랬으니까.

눈오는 날 자연스럽게 D899를 들을 수 있었던건 기억 덕분이다. 
내가 음악을 기억하는 방법은 매번 같은 방식을 따른다. 슈베르트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지난 겨울쯤이었고, 광화문 커피에서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D940을 들었다. 선배는 더 좋은 연주가 있다며 나에게 Paul Lewis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어렴풋이 기억된 그 멜로디가 어느날 갑자기 생각났고, 기억을 더듬어 음원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곤 무한 반복. 귀에 박히도록 슈베르트이 피아노 듀엣을 들었다. 그리고 곁들여 받은 다른 작품들도 들어두었다. 겨울에 들은 슈베르트는 그렇게 강력한 기억으로 남았다. 찬 바람이 불면 의례 슈베르트가 생각났다. 겨울에 잘 맞는 옷차림이라 생각했다.

다시 슈베르트를 꺼내들은건 올 겨울,  아이팟 한 가득 슈베르트만 담아서 들었다. 몇시간이고 반복된 슈베르트 플레이. 그렇게 나는 슈베르트 소나타를 기억속에 담아두었다. 맘에드는 것들은 해설도 찾아보고 악보도 읽어보았다. 기억을 넘어서 각인이 된 슈베르트는 이제 온전히 내것이 되었다. 오랜시간 집중해 다시 슈베르트를 들었다. 이젠, 언제쯤에 슈베르트 소나타를 들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됐다. 여름아닌 겨울, 눈이오거나 비가 오거나 찬바람이 몰아치는 밤 혹은 새벽. 나는 내 기억속의 음악을 들었다.

대부분의 음악이 이런식 기억되고 플레이된다. 어떤식으로든 많은 음악을 들으려 노력한다. 시간을 내서라도 그 음악을 몇번이고 들어본다. 그 곡을 작곡한, 연주한 사람 만큼이나 음악을 들었을때 그것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슈베르트를 들었고, 눈이내리는 풍경속의 피아노 연주는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이제 다시 슈베르트에 대한 글들을 찾아본다. 까막눈이지만 악보도 훑어본다. 
평론가들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서정적인 멜로디의 결정판이며 그의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주는 곡이라 평가한다.  이 곡에는 가식도 없고 넘치는 서정도 없다. 밸런스가 잘 잡힌 한 병의 와인같은 곡이다. 3악장과 4악장은 이 곡의 백미다. 긴 멜로디 라인에서 긴장을 뽑아내는건 멘델스존의 무언가(Lied Ohne Worte, Op.109)를 연상캐 한다. 

내가 처음 들었던 건 오스트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Alfred Brendel의 연주다. 평론가들이 왜 이 곡을 슈베르트의 타고난 서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연주이기도 하다. 넘치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그러면서도 풍부하고 따뜻한 연주다.  그 밖에 또 추천하는건  Paul Lewis, David Fray의 음반이다. 둘다 최근에 발매됐으니 구입해서 들어보는것도 추천한다.

영상은 Alfred Brendel, 덧붙여 Paul Lewis와 David Fray의 음반 정보를 소개한다.


Paul Lewis
http://www.limelightmagazine.com.au/Search/Default.aspx?q=david%20fray%20impromptus



David Fray
http://www.guardian.co.uk/music/2010/jan/21/schubert-moments-musicaux-impromptus-d899





아침 09시, 그녀는 나의 머나먼 비행을 위해 짐을 싸죠. 그리고 나는 저 멀리 나는 연 보다도 더 높게, 비행을 할거랍니다.

엘튼존의 로켓맨은 비장한 목소리의, 우주로 떠나는 로켓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생각보다 오래걸릴 것이라고, 과학 따위는 알지 못한다고, 이건 그냥 나의 일이라고. 내가 다시 지구위에 발을 내밀었을땐, 당신들이 아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로켓맨은 이야기한다.
이 곡의 탄생에는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david bowie의space oddity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기도 하고 berni taupin이 하늘에 별을 보면서 받은 영감에서 나온 곡이라고도 한다. 우주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딧는 로켓맨의 복잡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한 사람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하는거라면, 나는 전자의 경우가 더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데이빗 보위의 노래에서도 로켓맨의 모습은 겹친다. 지구에서는 당신이 우주에서 무엇을 입는지, 무엇을 먹는지 궁금해 할 것이랍니다. 잘하고 있어요, 아주 성공적인 비행입니다. 지상 관제소는 로켓맨에게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고독을 이겨내야 하는건, 멀리서 지구의 모습을 지켜보며 온갖 그리움을 극복해야 하는건 우주비행사 홀로의 몫이다. 평생이고 내가 지구에서 떨어져 이렇게 홀로 떠다니고 있을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새벽 근무가 끝나고 혼자 벤치에 나와 담배를 피며 이 노래를 들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그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렇게 커피 한 잔을 하고 있자니 마치 내가 로켓맨이 된 기분이었다. 우주에 있지 않으면서도 로켓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로켓맨은 나 뿐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로 떠나는 일 처럼, 은하에 떠 있는 먼지 따위를 연구하는 일 처럼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거라곤 상상도 못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따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 일을 일주일에 5일씩 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가사처럼, 사람들은 종종 그 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주에 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혹은 홀로 멀리 떨어져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한건 그들이 어떤 옷을 입느냐 정도다. 로켓맨 얼마나 고독할지, 그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지 못한다.

한동안 로켓맨만 들었었다. 열번도 넘게 로켓맨만 듣다가 잠에 들어버린 날도 있었다. 엘튼존의 목소리가 몸서리치게 좋았던 것도있었고 그의 피아노 연주가 피로를 씼겨내줄만큼 청량해였을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위로가 됐던건 로켓맨의 마음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을거라며, 외로움을 삼키는 로켓맨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로켓맨은 1972년에 탄생했다. 그 해, 영국 차트에서는 2위, 미국 차트에서는 6위를 차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콘서트장에 가면 따라부르는, 엘튼존의 히트곡 중 하나다. 로켓이 날아가는 소리같은 몽환적인 기타 소리가 매력적인, 로켓맨의 이야기가 담긴 곡이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당연히 로켓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된 일상의 끝에, 홀로 남은 기분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노래속의 로켓맨이 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엘튼존은 청량한 목소리로 로켓멘의 마음을 절절하게 전해줬다.
덕분에 이 곡은 스테디 셀러가 됐다. kate bush, david fonseca, my morning jacket, jason mraz등 수 많은 뮤지션들이 이 노래를 커버했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익숙한 멜로디처럼 들린다면, 아마도 이 때문일것이다.

그래도 이 상황을 이해해주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다는 것. 로켓맨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겠지, 생각하며 오늘도 다시 한 번 그의 음악을 플레이한다.

첨부하여 로켓맨과 데이빗 보위 스페이스 오디티 가사도.

Elton John - Rocket Man

She packed my bags last night pre-flight
Zero hour nine a.m.
And I'm gonna be high as a kite by then
I miss the earth so much I miss my wife
It's lonely out in space
On such a timeless flight

And I think it's gonna be a long long time
Till touch down brings me round again to find
I'm not the man they think I am at home
Oh no no no I'm a rocket man
Rocket man burning out his fuse up here alone


Mars ain't the kind of place to raise your kids
In fact it's cold as hell
And there's no one there to raise them if you did
And all this science I don't understand
It's just my job five days a week
A rocket man, a rocket man


And I think it's gonna be a long long time...



David Bowie - Space Oddity




Ground control to major Tom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Ten) Ground control (Nine) to major Tom (Eight)
(Seven, six) Commencing countdown (Five), engines on (Four)
(Three, two) Check ignition (One) and may gods (Blastoff) love be with you

This i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ve really made the grade
And the papers want to know whose shirts you wear
Now it's time to leave the capsule if you dare
This is major Tom to ground control, I'm stepping through the door
And I'm floating in a most peculiar way
And the stars look very different today
Here am I sitting in a tin can far above the world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Though I'm past one hundred thousand miles, I'm feeling very still
And I think my spaceship knows which way to go
Tell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she know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r circuits dead, there's something wrong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re am I sitting in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을 트럭운전에 비유한 바 있다. 솔로 연주가 세단을 운전하는 것이라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건 엄청나게 큰 트럭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움직임은 둔하지만 그것을 운전하는 운전자의 손놀림은 그 누구보다도 세심해야 한다고.

나는 줄곧 지휘자를 포수라고 생각해왔다. 야구를 처음보는 사람은 포수를 그저 공을 받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포수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할 곳을 말해주어야 하며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마주보는 사람으로서 수비수를 전체적으로 지휘해야 한다.

 

지휘자의 역할이 좀처럼 이해가 안간다면 두다멜을 찾으면 된다.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엘 시스테마'를 통해 데뷔한 두다멜은 드물게 어린나이에 지휘자로 성공을 거뒀다. 1999년, 18세의 나이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지휘 콩쿨을 휩쓸며 스타가 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레틀 등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후원을 받은것을 시작으로 그는 2007년 정명훈이 지휘했던 예테보리 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를, 2009년엔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 음악감독을 맡게 됐다.

 

처음 두다멜의 영상을 봤을 때, 나는 지휘자가 매력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야구를 보며 어느순간 포수의 역할을 깨닫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가령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 영상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지휘다.

 

 

두다멜의 표정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또 하나의 도구다. 다음에 나올 멜로디가 얼마나 신날지 알고 있다는 듯 개구장이처럼 지휘한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구제된 빈민가의 아이들은 그의 지휘 아래 하나의 음표가 된다. 축제와 같은 연주는 모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절정에 이르러 폭발하는 이 영상만큼 두다멜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을까.

 

얼마전 PBS에서 방영하는 Great Performance라는 프로그램에서 두다멜이 등장한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그리고 친구인 후안 디아고 플로레즈와 로시니의 곡을 연주한 공연이었다. 줄곧 유럽 혹은 미국이 주도해왔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남미 출신의 지휘자가, 솔리스트가 무대를 휘어잡는 장면은 이 영상이 가진 매력포인트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멕시코 출신의 작곡가 아르투로 마르케즈의 Danzon No.2다. 두다멜은 이 노래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후안 디아고는 이 노래를 듣다보면 쿠바의 작은 바가 생각난다고 한다. 어딜봐도 남미의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단원들이 두다멜의 지휘아래 연주를 시작하는 장면은 설명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풍경을 만들어준다. 이미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많이 들려준 곡이지만, 더욱 성숙한 멜로디로 연주되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Danzon도 충분히 매력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두다멜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앙코르곡을 들어보자. (5분부터)

 

 

두다멜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연주를 시작한다.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후안 디에고를 놀려먹는다. 마구마구 느리게 연주했다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 오케스트라를 숨겨버린다. 얼마나 오케스트라가 유쾌해질 수 있는지, 그는 보여주고 있다. 두다멜은 훌륭한 트럭 운전수며 전설에 남을 포수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으며 지휘자는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수 많은 영상에서 말해주고 있다.

 

얼마전 친구가 자신은 고전음악을 즐겨 들으면서도 아직 지휘자에 따라 뭐가 달라지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길 했다. 물론 누구나 들어도 알법한 훌륭한 지휘자의 연주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두다멜의 영상을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어쩌면 두다멜은 그 친구에게 좀 더 확실한 답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라는 영화를 보다보면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두다멜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적어도 5번 넘게 영화를 봤을 테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는 수첩 어딘가에 적어뒀을 것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에 감탄하고 대사에 공감할 것이다. 기차 여행을 떠날 때면 혼자 영화의 첫 장면을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볼 것이다. 독일어로 싸우고 있는 부부는 없는지,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남자는 없는지 그리고 줄리 델피가, 에단 호크가 아니 셀린느와 제시가 있는지.

 

그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이번이 여섯 번 째던가. 무심코 넘겼던 오프닝부터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영화를 틀었을 때, 나는 음악이 잘못 나온 줄 알았다. 듣고 있던 음악을 끄지 않았던가? 하고 일시정지를 눌렀다. 함께 꺼지는 음악. 아, 헨리 퍼셀이 오프닝 음악이었어?

고풍스러운 헨리 퍼셀의 음악함께 그 유명한 기차 신이 시작된다. 철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영상이 흐른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퍼셀의 음악이 들려온다. 미묘하게 들려오는 하프시코드 소리는 기차가 내는 철커덕 소리와 어우러져 긴장감마져 형성한다. 비엔나로 향하는 열차의 풍경은 음악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잠시 숨을 고르듯 긴장을 향해 고조되던 음악이 멈춘다. 그리고 셀린느의 등장. 숨이 멎는줄 알았다. 바로크 시대의 악기편성을 그대로 사용한 퍼셀의 음악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등장하다니.

바로크 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찾아듣기 시작하면서 늘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인데, 이 음악은 과연 어떤 장면에 어울릴까. 가령, 영화로 치면 어떤 장면에 등장해야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류트소리와 하프시코드의 고풍스러운 사운드가 어색하지 않으려면 꽤 복잡한 장면을 상상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열차 카페테리아 신에서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헨리 퍼셀. 아, 이렇게 어울릴 수 있는 건가.

 

 

음악에 집중해 비포 선라이즈를 본다면 새로운 장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사랑스럽고 가슴이 콩딱 거리는 장면은 음악감상실 씬이다. 거리를 걷다 우연히 발견한 레코드 샵에서 셀린느는 음반을 고른다. 그리곤 감상실에 들어가 제시와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흐르는 순간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시선과 감정이 담긴 그 장면을 보면 왜 이 영화를 몇번이고 다시보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끊임없는 대화가 멈추는 그 순간, 흐르는 음악과 그들의 표정은 긴 여운을 남겨 다음 장면까지 오버랩되기도 한다.

 

 

 

 

사실 내가 이전까지 발견했던 음악씬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만 집중해도 러닝타임은 충분히 모자랐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대사가 나올지 대충 짐작이 가는 그 순간에야 나는 음악이 들어간 장면에 젖어들 수 있었다. 음악감상씬이나 비포 선셋에서 셀린느가 연주하는 왈츠나, 영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그정도였다. 하지만 흐르는 음악에 집중하고 나니 이 영화에 쓰인 음악 장치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거리 곳곳을 지나다닐때 흐르는 바로크 음악은 그곳이 비엔나이기 때문에 어울리기도 했지만, 때와 장소 그리고 분위기를 적절하게 활용해 음악을 틀었기에 어색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500년이 지난 음악이 지금의 영화와 어울릴 수 있는 이유다. 오프닝에서 받았던 충격은 계속 이어졌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요요마가 연주하는 첼로소나타, 베토벤의 소나타도 자신들이 언제 등장해야할 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스르르 등장하고 사라진다.

 

사실 새로운 발견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것일수도 있다. 수없이 영화의 장면들을 겪었을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한 음악이고 장면들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강렬하게 음악이 들려왔던 감상이었기에 영화를 보며 메모했던 것들을 써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곧 있으면 비포 선셋의 속편이 등장한다고 한다. 10년이 흐른 뒤에도 제시와 셀린느는 여전할까. 그리고 영화속에 흐르던 음악들의 감동은 여전할까. 아직까지 기차여행을 떠날 때면, 혼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잊지못할 장면을 선사할까. 영화관에 찾기 전, 다시 한 번 더 영화를 챙겨봐야겠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기차역에 갔을때 장항선 열차를 본 적이 있었다. 장항이란 이름은 쉽게 잊혀지질 않았다. 주황색 무궁화호 열차에 장항이라 써 있는 그림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에, 나는 기차여행 하면 의례 장항을 생각하곤 했다. 물론 24년을 살면서 장항에는 발을 디뎌본 적도 없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이름인가 하며 장항역에 발을 디뎌본 건 13일. 장항 선셋 페스티발을 보러가기 위해서였다. 

우선 장항역에 대한 사연이다. 장항선은 1922년에 충남선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곧 이어 이 충남선은 천안에서 전북 익산을 연결하는 노선이 됐고 장항선이라 불리게 됐다. 1955년의 일이다. 장항역은 장항선의 종착점이었다. 즉, 내가 어렸을 적 본 장항선 열차들은 모두 장항역을 종착점으로 했던 것이다. 장항역은 2008년에 장항 화물역으로 개칭되면서 더 이상 민간인들을 수송하지 않게 됐다. 대신 익산으로 이어지는 직선 코스가 만들어졌고, 장항읍내에서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새로운 장항역사가 만들어졌다. 장항역의 이동으로 장항 읍내는 저절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장항으로 가는 열차가 증편되긴 했지만, 열차를 타기 위해서 읍내에서 역까지 가야 하는 길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장항역만 댕그라니 있었다. 여기서 무슨 축제를, 하고 택시를 잡아 읍내로 향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역사가 이전한 역사에 대해 들으며 장항화물역에 도착했다. 축제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읍내는 황량했다. 폐허가 된 건물들, 문을 닫은 가게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공장들. 여기가 한국이 맞는가 생각할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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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 선셋 페스티벌의 시작은 1999년으로 올라간다. 역이 이전되기부터 장항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폐공장을 활용해 대안적인 문화공간을 만들고, 젊고 패기있는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했던것이 이 페스티발의 시초다. '공장미술제'라는 이름으로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젊은 작가들을 선발하여 보기드문 대형 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던 이 미술제는 2000년 두번째 전시를 끝으로 이어지질 못했다. 끈기 없는 정부의 지원정책 때문이었다. 

2012년, 지자체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다양한 공연과 함께 장항선셋페스티발이 문을 열 수 있었다. 공장미술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공연을 열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몽구스, 피터펜 컴플렉스 등 보기 드문 라인업은 젊은이들의 시선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장항에 색동옷을 갖춰입은 젊은이들이 모였다. 그들은 어렴풋이 장항의 역사에 대해서 듣고, 쇠락한 읍내를 둘러보며 사람들이 장항을 찾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노란머리, 파란 눈의 술취한 외국인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장항은 확실히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홍대의 어설픈 카페 인테리어가 빈티지를 모방한 것이었다면 장항 읍내는 그야말로 진정한 빈티지였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공간은 그 자체로 훌륭한 전시공간이고 공연장이었다. 그리고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루한 여름을 뜨겁게 보내기엔 너무나도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내가 장항에 왔다니. 장항이라니.

이름있거나 수 번의 개인전시를 거치며 이름을 날린 작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신진작가들이었다. 기회만 되면 대박을 터트리려고 눈을 부라리는 미술 시장에서 힘겹게 살아 남은 젊은 작가들은 장항에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쳤다. 

매서운 장맛비도 공연을 멈출 순 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뜨끈뜨끈한 홍대앞 밴드들의 공연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폐공장에서의 하룻밤이라니. 모기가 아무리 작정하고 팔다리를 물어뜯어도 춤추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광란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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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은 노년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공연장에서 만났던 한 아저씨는 서울로 올라간 아들이 잘 내려오지 않는다면서 우리에게 맥주를 권했다. 짧게나마 아저씨의 사연을 들으면서 장항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주민들도 타지에서 온 사람들과 같은 가격을 내고 티켓을 사야 공연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저씨는 처음에는 20대만 참여할 수 있다는 축제로 알았다고 한다. 공연 관계자에게 물어보고서야,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는 있는 축제란 얘기를 듣고서야 용기내어 티켓을 구입하셨다고 맥주 한 잔 사주시며 얘기해주셨다. 평소 자주가던 음식점에 들어가려던 부녀회장님은 공연장 통제요원에게 신분을 밝혀야 했고, 말도 안통하는 외국인들의 질문세례에 마트 아주머니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과연 이 축제는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축제였지만 사실 조용한 동네에서 살아오던 어르신들에게는 난감한 공연이었다. 미술전시는 급박하게 기획이 됐다. 지역과 유대되지 않은 주제의 전시는 해석을 불가케 했다. 좋은 작가, 젊은 작가, 뛰어난 상상력은 장항에게 낯선 주제였다. 작가들이 전시를 위해 장항을 몇 번이나 방문했으며 얼마나 이 곳을 느꼈는지 궁금했다. 아니면 그냥 작품만 전시장에 걸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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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장항선셋페스티벌은 훌륭한 대안문화축제다. 스러져가는 도시에서 지역과 유대한 잔치를 벌이는건 어디서나 필요한 일이었다. 영국의 몰락한 탄광도시가 '북방의 천사'라는 100톤짜리 거대한 조각상을 설치하며 유명한 관광지로 거듭났던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접근 방식은 항상 고민을 해야한다. 북방의 천사가 게이츠 헤드에 세워지기까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예술은 소외된 자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한편으론 이질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도 한쪽 가슴이 답답했던건 이 때문이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고민을 사람들은 얼마나 했을까.  뜨거운 밤을 보내는 그들의 가슴에는 과연 무엇이 남았을까. 5년만에 옛 장항역에 화물선이 아닌 열차가 들어온 것에 대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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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전시는 22일까지 이어지며 읍내 곳곳에서도 소소한 행사들이 이어진다. 당분간은 장항에 사람들이 붐빌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끝가지 고민을 해야한다. 뜨거웠던, 열정적이던 공연을 기억하며 장항에 대해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2013년에도 이 축제가 의미있게 개최되려면 말이다.

꿈만 같았던 1박 2일의 짧은 장항여행. 앞으로 한동안은 이 복잡한 생각과 마음으로 어지러울 것 같다. 그리고 장항이 그리워질 것 같다. 내년에도 그 곳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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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정보

2012. 07. 13. -  2012. 07. 22. 열흘동안

장항읍, 금강중공업 창고, 어망공장 창고, 미곡창고, 물양장부지, 장항화물역사, 송림백사장 등 장항 일대.

예매는 인터파크, 문의는 선셋장항컨퍼런스 추진위원회(041-950-4723)

공장미술제, 대안공간 전시, 미디어 아트스쿨 등 다양한 전시와 문화행사.

 http://www.sunset-janghang.com



대전의 한 모텔에서 글을 쓴다. 외출과 외박때마다 느끼는 이질감은 어디로 여행하든 날 설레게 하지만, 아무래도 모텔은 기분좋게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또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글을 쓸 수 있는 곳도 없기에 이렇게 글을 쓴다. 장항으로 가는 기차 시간이 얼마 안남았기에 길게 쓰진 못할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잠시나마 정리해두어야 할것 같다.

 

 

 

1. 장한나

 

장한나가 훌륭한 뮤지션이라는 것은 그녀의 공연 동영상을 볼 때마다 느낀 부분이다. 온갖 인상을 쓰며, 땀을 흘려가며 첼로와 하나가 된 듯이 음악에 홀려 연주하는 영상을 보다보면 나도 같이 흥분을 하게 된다.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다보니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게 되고, 장한나의 인터뷰도 접하게 된다. 매번 자신이 녹음한 음악에 대해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선택해 설명하는 부분, 자신이 음악가로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그녀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음악 감상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2-3년 전 문을 닫은 한 가게에서 장한나가 정기적으로 자선연주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음악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이야기한 짧은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녀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을 발견했다.

 

숙소에선 혼자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많다. 얼마 전 복구한 아이팟 클래식(160G)에 음악을 가득 채웠고, 손이 가는대로 음악을 고르고 집중해 듣는 일은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다. 어느날 장한나가 연주한 첼로협주곡을 발견한 것도 이것저것 찾아 듣다가 일어난 일이다.

 

'주로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나 그 외의 낭만시대 음악을 주로 연주했지만, 바로크 음악도 정말 좋아합니다.', '비발디의 매력은 뭐랄까요, 독주악기가 혼자 연주를 하기보다 그룹이 되는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혼자 튀어나가지 않으면서도 오케스트라와 주고 받는 하모니는 이 협주곡의 매력이죠.', '긴장감입니다. 엄청 느리지만 강한 긴장감을 가지며 흐르는 물결을 생각해 보세요. 그 위로 첼로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날아다닙니다.'

 

영상은 장한나의 설명이 끝나면 하나의 연주영상을 보여주고 다시 장한나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그런식이다. 너무나 신나서, 어쩔 줄 모르며 자신이 녹음한 음반에 대해 설명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너무 아름답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가 멋있어 보인건, 데이먼 알반이 록페스티발에서 뛰놀때 뿐인 줄 알았다. 오케스트라 속에 둘러쌓여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2. 목욕탕

저번 주에는 집에 올라갔었다. 오랜만에 주말 아침에 목욕탕에 들렀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늘 가던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다른 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렸을 적에 다녔던, 그러니까 지금 찾아가는 목욕탕이 생기기 전 부터 있었던 오래된 목욕탕을 찾았다. 빨간 벽돌과 때 묻은 하얀 기둥이, 한눈에도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것 처럼 보이는 외관을 지닌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나는 순간 10년전의 그 곳을 상상하게 됐다. 달라진건 입장권 가격뿐. 매표소 아저씨는 그 얼굴 그대로 주름이 지고 흰 머리가 됐다. 커다랗게 남탕이라 쓰여져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10년 전의 그 모습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곳을 보면서 나는 잠시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변한 게 있다면 모든 것이 낡았다는 것이다. 이발소 아저씨, 이발소 의자, 지금은 보기 힘든 분홍색과 하얀색 체크무늬의 수건, 코딱지만한 사우나. 가장 하이라이트는 달력이었다. 고추 아가씨 그러니까 그것도 한 20년 전에나 뽑혔을 법한 그런 아가씨가 매혹적인 포즈로 자리잡고 7월이 여름임을 알리는 그림이었다. 요즘에도 저런 걸 파나. 목욕탕에는 그날 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근처의 대형 목욕탕이 정기 휴일이었으니.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목욕탕에서 느꼈던 그 오묘한 기분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변한 건 나 뿐인 것 같은 느낌. 아니,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 오랜 시간동안 세월의 흐름속에 낡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 곳은 이렇게 낡은 유물처럼 살아있을까.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내가 그 곳을 가지 않은 것은 때밀이 때문이었다. 아버지 없이 혼자 목욕탕에 갈 때면, 어머니는 늘 나에게 오천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며 때밀이 아저씨한테 때 밀고 음료수도 사먹고 오라고 하셨다. 그 목욕탕엔 그렇게 매주 나의 때를 밀어주던 때밀이 아저씨가 있었다. 모든 이가 동경하던 최신식 시설을 갖춘 24시 목욕탕이 생겼음에도 그 곳을 찾던 이유는, 그 아저씨와의 친분 때문이었다. 하지만 날로 줄어가는 손님에 월급을 받지 못한 그 아저씨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것도 모르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가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옆 건물의 큰 목욕탕을 가게 됐다.

매번 무심코 그 목욕탕 앞을 지나면서도 그곳의 존재가 이렇게 신비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휴가의 복잡한 마음과 어렸을 적 느꼈던 그 기분이 낡은 목욕탕의 냄새와 어우러져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만들어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지냈으며 그것들은 지금 얼마만큼 낡았을까. 당분간은 휴가때마다 그 목욕탕에 가야겠다고, 따사로운 햇살에 살짝 졸고있던 매표소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리며 나는 그곳을 나왔다.

 

평소 따르는 형이 있다. 와인 마니아인 그 형 덕분에 나는 종종 내 처지에 맞지 않는 호사를 누릴 때가 있다. 형이 자주 가는 와인바에서 취하도록 와인을 마시는 것이다. 종종 그렇게 와인을 마실때면, 형은 나에게 와인 선택권을 주시곤 한다. 와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형은 조언을 해 주신다. 와인 라벨은 대부분 신중하게 디자인된 것이니, 맘에드는 라벨이 있다면 맘에드는 디자인을 찾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번 그렇게 와인을 골랐다. 놀랍게도 그 와인에선, 라벨의 디자인과 유사한 맛이 났다.


Flotation Toy Warning - Bluffer's Guide To The Flight Deck



앨범 아트웍도 마찬가지다.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앨범은, 항상 그에 못지 않게 범상치 않은 음악이 들어있었다. Flotation Toy Warning의 앨범 자켓이 그렇다. 왠만해선 선택하지 않을 범상치 않은 배경색에,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날라다니는, 우울해 마지 않은 그림이다. 이상한 그림이다. 하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왠지 정이가는, 그런 느낌이다. 엘리엇 스미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클럽에서 추천 받은 이 앨범은, 한동안 내 아이팟 클래식에 담겨져있었다. 아이팟 클래식을 사용해 본 사람들이면 알겠지만, 용량이 무척이나 커서(80GB, 160GB)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하드에 있는 음악을 죄다 넣어서 듣는다. 나도 그런 사람중에 하나였고, 우연히 추천받은 그들의 음악도 당연히 들어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야자시간이었을 것이다. 별 생각없이 이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이상한 물소리도 나고, 정체불명의 악기 소리도 들리고.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무심코 넘기려던 음악은 2번, 3번 트랙을 지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였다. 잠시 집중해서 들어보자던게 한 앨범을 다 들어버렸다. 8번트랙을 지났을 때 즈음엔 감탄과 감동만이 남아있었다. 눈물도 조금 흘린 것 같았다. 한 편의 소설같은, 전위적인 그들의 연주는 나를 빨아들여버렸다. 그 후로 나는 음악만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주로 이 앨범을 들었다. 그들의 음악은 한 편으론 감동적이면서도 한 편으론 우울한 감도 없지 않아 있어서 쉽사리 딴 일을 하며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밴드는 뭐하는 밴드인가 싶어 구글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통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영국출신의 밴드이며, 2001년 결성됐고, EP 2장을 제외하곤 정규앨범은 2004년의 Bluffer's Guide To The Flight 
Deck 뿐이라는게 전부였다. 음반을 꼭 사고 싶었으나 국내에선 수입조차 안된 곳이 많았다. 있어도 대부분 품절이었고. 미국에 여행갔을 때도 몇번이고 레코드에 들러 찾아봤지만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최근에 다시 이 밴드의 음악을 들을 일이 있었다. 그리곤 다시 너무나 밴드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 다시 구글링을 해 보았다. 역시 비슷한 정보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이들과 같은 음악을 Space Rock라고 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Flotation Toy Warning은 챔버팝과 스페이스록의 중간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록이라니. 우주음악이라니. 역시, 범상치 않은 이유가 있었다. 스페이스록의 기원에 대해 찾아보니 프로그레시브록과 사이키델릭의 중간지점 정도라는 설명이 있었다. 유난히 신디사이져의 활약이 돋보였던 것 보면 그럴것 같기도 했다. 우주록이라니.

범상치 않은 이들의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룹도 몇 개 찾았다. Mercury RevGrandaddy, Sparklehorse,
The Unicorns가 바로 그들이다. Mercury Rev 는 Deserters Songs라는 앨범이 '록역사를 빛낸 앨범'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밴드였다. 하지만 나머지 밴드들의 인지도는 Flotation Toy Warning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 모두의 앨범 아트웍은 범상치 않았다(아래 참조).

와인도 라벨 스타일에 따라 나누다 보면 비슷한 품종끼리 엮이는 경우가 많다. 음악도 그런 것 같다. 범상치 않은 커버를 가진 음반들은 대부분 비슷한 음악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범상치 않은 아트웍에, 음악에 빠져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한 하루였다. 와인이나 음악이나 품종과 장르를 나누는게 사실 무의미할 수도 있다. 맛있으면 좋은거고 듣기 좋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우주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누구보다도 쉽게 하나의 밴드군(?)을 소개시켜줄 수 있는 것처럼 장르를 따지는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힘들게 모아놓은 우주록 음악들을 윈엠프에 모두 걸어놓고 바닥이 울릴 정도의 볼륨으로 한참동안 들었다. 반복되는 사이키델릭함은 나를 우주로 데려다주었고, 한동안 나는 가슴이 둥둥 마음이 둥둥 정신이 둥둥 우주속을 헤매다 내려왔다.

The Unicorns - Who Will Cut Our Hair When We're Gone

The Unicorns - Who Will Cut Our Hair When We're Gone

Mercury Rev - Deserter's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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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rhorse - Good Morning Sp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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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1. 자우림은 '나는 가수다'의 첫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출연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악은 스포츠와는 다른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순위 매기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용히 있었던 베이시스트(였던 걸로 기억한다)가 인상깊은 말을 던졌다. "이 프로를 통해 사람들이 가사를 듣게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출연하기로 결심했죠."

2. 작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박완규는 자신이 후배들과 노래방에 가서 생긴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 번은 후배 가수들과 노래방에 가서 대판 싸웠던 적이 있었어요. 그녀석들이 간주점프를 하는거에요. 간주점프를. 아니, 제대로된 뮤지션이라면 한 곡의 음악이 가진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닐텐데 간주점프를 하다니. 화가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은 음표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작곡합니다. 간주에는 그러한 고뇌가 깊이 담겨있어요. 그걸 무시하는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어요."

3. 뉴욕에선 지난 노래들을 틀어주는 곳이 많았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엘튼 존과 마이클 잭슨은 내가 미국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쳤던 뮤지션이다. 특히 비틀즈는 뉴욕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옷가게에서도, 초콜렛 공장에서도, 카페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심지어는 마트에서도 비틀즈가 그려진 잔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뉴요커들이 오래된, 고전이 된 음악을 여전히 즐겨들을 줄 아는 멋쟁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우리나라에는 헤이쥬드처럼 모든 국민이 따라부를만한 노래가 있나 싶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심수봉의 음악을 다시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건, 한 편의 동영상 때문이었다. 전날 비오는 곰다방에서 심수봉의 음악을 틀어놓고, 가슴이 쿵쿵 거렸던 생각이 나서 찾아봤었다.



1978년 대학가요제, 드럼을 잘 친다는 심민경양이었다. 범상치 않은 전주며, 목소리 그리고 재즈의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간드러지는 피아노 솔로까지. 아, 이거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수봉의 음악은 가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음악이다. 그녀의 음악을 통해 우리는 심수봉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노래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알 수 있다. 노래의 가사를 듣는다는건 단순히 듣는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가사가 채 이야기 하지 못하는, 노래에 담긴 사연을 가슴깊이 공감한다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어떤 가사인지 부르는 사람조차도 모르는 그런 가사만이 가득한 최근의 가요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멜로디와 스토리가 없는 가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사를 듣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자우림이 말했던 것 처럼, 사람들은 다시 가사를 듣기 시작했다. 나도, 심수봉을 통해 가사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음악에는 가사를 듣게 하는 힘이 있다. 음악 자체에 담겨있는 그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듣게 만든다.

심수봉의 피아노 솔로는 한 곡의 재즈를 연상케 했다. 앞서 들려준 이야기(주제)에 대한 자유롭고 멋드러진 재 해석이 자연스럽게 간주속에 녹아들어있다. 마치 고전적인 재즈가 보여주는 형식-주제가 되는 멜로디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을 연주하고 다시 마지막에는 주제가 되는 멜로디로 곡을 마무리하는 방식-처럼 말이다.간주를 다시 듣기 위해 동영상을 몇번이나 반복 재생했는지 모르겠다. 음표 하나하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 음악이다. 말그대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음악이었다. 어떤 악기, 어떤 음표도 놓칠수 없는 매력적인 음악이었다. 박완규가 그토록 화냈던 이유를(이전에도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었지만) 다시 이해할 수 있었다.

트로트라는 장르를 구분짓는 용어 덕분에, 심수봉의 음악이 조금은 저평가 됐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심수봉이 훌륭한 뮤지션이라는데 다들 동의는 하지만, 그녀의 노래와 세대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노래가 트로트라는 이름하에 잘 찾지 않는 음악이 됐다는 것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그저 70-80년대 분위기를 향수하는데 쓰이는 배경음악이 됐고, '사랑밖에 난 몰라'는 색소폰 전주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이 지긋이 드신 분들이 찾아가는 캬바레를 상징하는 음악처럼 여겨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기한건, 우리는 대부분 심수봉 노래의 가사를 (한 소절이라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이 들었거나 혹은 익숙한 음악이라거나. 미국에서, 비틀즈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음악이라면 우리에게는 심수봉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로트라는 장르가 가진 수 많은 편견 때문에, 심수봉의 음악은 세대를 넘나들기에는 조금 벅찬감이 있다.
한 트로트 가수가 공중파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트로트라고 부르기보다 고전가요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음악이라고 모두 트로트라는 장르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음악을 모두 트로트라 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다. 고전가요라고 칭하기엔 머쓱한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모든 7080 대중가요가 트로트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건 분명 지적할만한 일이다. 아니, 어떤 음악을 장르로 분류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장르구분을 떠나서 어떤 뮤지션이 음악인지를 기억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수봉의 음악은 '트로트'로 분류되기보다 '심수봉의 음악'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노래로 기억되는 순간, 장르가 가진 편견은 허물어질 것이다. 그제서야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가 형성이되고, 누구나 언제든지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멍하니 누워 심수봉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어머니께서 방에 올라오셨다. 심수봉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며 오랜만에 어머니와 음악이야기를 나눴다. 심수봉의 오랜 팬인 어머니께선 대학가요제 영상을 보더니 그때 심수봉은 참 촌스러웠다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래도 정말 좋았다고 이야기 해 주셨다. 나는 다시 영상을 보면서, 심수봉은 참 매력적인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다. 촌스럽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늦은 밤이지만, 오늘 밤이 아니면 쓰지 못할 이야기일 것 같아 자지 못하고 글을 쓴다.



타이틀 넘버인 "Song for my father"는 불가사의한 존재감을 지닌 곡이다. 리듬의 바탕을 보사노바인데, 묵직하고 끈적하고 어두운 색 필터가 끼여있어, 당시 유행했던 스탄 게츠의 세련되고 도회적인 보사노바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버지는 포르투칼 출신의 흑인이었다. 호레이스가 어렸을 때, 곧잘 동네 사람들은 악기를 들고 자기들끼리 모여 세션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런 정겨운 뒷골목 냄새가 음악 구석구석에 푸근하게 배어있다. 하드 밥도 아니고 펑키도 아닌 호레이스 실버의 개인적인 세계가 선명하게, 다소는 마술적으로 전개된다. 멜로디는 뚝뚝 끊어지지만, 속은 꽤 깊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


재작년 9월쯤이었던가, 라디오 방송 녹음 때문에 재즈 관련 책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재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무했던지라, 도서관에서 되는대로 책을 빌려 읽었던 기억이 있다. 빌렸던 책들은 이해못하는 말로 가득했다. 하드 밥이니, 펑키니하는 말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는 거의 유일하게 인상깊게 남은 글이었다. 당시 라디오의 소재가 소니롤린스였기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읽었었다. 하지만 하루키의 글이 인상깊게 남았던지라, 방송이 끝난 후에 나는 다시 그 책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 가장 인상깊었던 소개글은 뭐니뭐니해도 호레이스 실버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처음 호레이스 실버의 음반을 샀을때의 하늘이며, 여자친구의 표정이며, 기분이며 음반에 대해 자연스럽게 적어놓은 글이 인상적이었다. 글에는 아버지와의 추억에 대한 곡이라는 소개가 있었는데, 너무 담백하게 잘 서술하여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전문적인 내용을 소개한다거나, 재즈의 역사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든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아, 이 앨범 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호레이스 실버를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당장에 소울식을 뒤져 호레이스 실버의 음반을 받았다. 그리곤 하루키의 기분을 마음에 한 가득 담고 곡을 듣기 시작했다. 둥 두두, 둥 두두. 그가 말했던 것 처럼 묵직하고 어두운색의 보사노바였다. 하지만 흥겨움이 담겨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호레이스 실버가 동네 사람들과, 아버지와 함께 모여 연주를 하는 모습은, 이내 내 추억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낡은 턴테이블에, 먼지가 묻을라 조심스레 LP판을 옮겨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건 그 때부터였다. 하얀 메리어스에, 체크무니 반바지를 입고 신나게 춤을 추던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나도 술에 취한 듯 함께 춤을 추었던 기억이 호레이스 실버의 연주 넘어로 스멀스멀 찾아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에 대해 억지로 안 좋게 생각하는건 아니다. 좋은 추억이 별로 없다는 게 사실일거다. 아버지와 목욕탕을 갔던 적은 딱 2번. 야구장도 역시 두 번. 그리고 잠수교를 함께 걸었던게 인상깊은 추억이라면 추억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아주 어렸을땐, 아버지가 집에 있는 일이 많아서 같이 춤을 추었던 기억도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모습이 강하게 떠올랐다. 왠지 음악을 멈추고, 아랫층에 내려가면 낡은 턴테이블과 LP와 음악과 아버지가, 내가 기억했던 모습 그대로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목표를 세운건, 돈을 조금씩 아껴서 한 달에 한 장의 시디를 사자는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 호레이스 실버의 LP를 구입했다. 턴테이블이 있지는 않지만 LP를 구하고 싶었다. 하루키가 느꼈던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보너스로 시디가 동봉돼있던 덕분에, 내 방의 작은 컴포넌트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LP로 호레이스 실버의 음악을 듣고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는 음악에 맞춰 쿵따따.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쿵 따다 쿵 따다.
음악이 흐르면, 나는 아버지와 춤을 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음악이 뭔지 가르쳐 주었던, 인생이 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해 주었던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몸 속에, 마음 속에 깊이깊이 간직해 둘 것이다.

쿵 따다 쿵따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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