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부쩍 강남에도 스페셜티 카페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좀처럼 근처에도 가질 않지만, 그럴싸한 카페가 있다길래 외근 중 망중한을 즐기러 한 카페에 들렀다. 자세한 묘사를 시작하면, 인스타그램으로 유명세를 탄 그 카페를 알아차리는 이들이 있을테니 생략하기로 한다. 빈티지한 인테리어와 한낮에도 사진을 찍으러 몰려드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러 온 것인지, 찍으러 온 것인지.


이쯤되면 혼란스러워진다. 카페는 과연 어떤 공간인가. 

나에게 카페는 '커피가 맛있어야'하는 공간이다. 카페의 주제가 커피가 아닌 곳들(북카페, 애견카페 등)을 제외하고 커피가 메인이 되는 곳이라면 당연히 커피가 맛있어야지 않을까. 어느 밥집에서든 설익은 밥을 내어준다면, 바싹 탄 음식이 나온다면 문제가 되는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낮의 커피를 즐기러 방문한 이곳의 맛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맛집과 먹방과 쿡방이 지배하는 시대에 카페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심오한 고민속에서도 카메라 소리는 찰칵 찰칵.


카페에 들어서면 싱글그룹 머신이 2대가 있다. 보통의 카페라면 2그룹(그룹헤드가 2개인 머신)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머신의 크기가 작으면, 추출 안정성이 좋지 못할 수 있다. 물론, 드문드문 커피를 내리는 카페라면 싱글그룹 머신으로도 충분히 좋은 커피를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끊임없이 커피 주문이 쏟아지는데, 두 대의 싱글그룹 머신이 훌륭한 디스플레이를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커피가 맛있으면 괜찮은거 아닐까. 원두가 훌륭하고 바리스타가 머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사실 머신의 크기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게 시킨 커피는 아무리 애를쓰고 마셔봐도 맛있지 않았다. 보통은 한 잔의 커피에 위로와 휴식을 기대하며 카페를 찾는다. 하지만 주문한 커피가 맛없으면 우울함이 찾아온다. 인테리어도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빈티지를 지향하는 의자는 앉는순간 삐걱 소리를 내며 기울었고, 불편함이 가시질 않아 옆에 있는 더 작은 의자에 몸을 옮겼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 공간을 찾는 것일까.


다시 가을답지 않은 더위가 가득한 강남의 대로변을 걷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회사로 들어가 직접 내린 커피로 다친 마음을 위로 받고싶은 심정이다. 


서울의 커피는 서울을 닮았다. 설탕-프림-인스턴트 커피가 믹스되어있는 믹스커피의 탄생이 그렇다. 어디서든 빨리 커피를 타야하고, 후루룩 들이켜야 하니 인스턴트 커피는 1976년 처음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시장을 지배했다. 언제나 피곤하고 우울하니 달디단 믹스커피에 담배라도 한까치 피어야 정신이 들지 않겠는가. 카페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 넓은 도시에 내 공간 하나 가지고 꾸밀 여력이 없으니,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카페에 대리 만족을 하는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5천원이면 그 공간은 내것이 되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하염없이 수다를 떨 수 있으니. 그럼에도 제법 맛있는 카페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2호점을 확장한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어쨌든 이 도시가 망하지 않은 이유들이 문득 생각난다.


곧 동부이촌동에 헬카페 2호점이 오픈한다.


애증의 도시 서울에서 맛 볼 수 있는 최고의 커피 한 잔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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