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커피투어]


동경을 가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던 건, 커피 평론가 심재범님이었습니다. 망설이다 가지 못한 곳이 도쿄였고, 그곳의 커피는 언제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3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스페셜티 커피와 문화를 살펴보기에 2박 3일은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심재범님과 헬카페의 권요섭 바리스타의 훌륭한 가이드 덕에 무사히 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연하게도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했던 두 카페는, 일본 커피 문화의 극과 극에 서 있는 곳이었습니다. 1948년 긴자에 자리잡은 람브르는 일본 기사텐 문화의 산실입니다[각주:1]. 제철과일처럼 신선함을 강조하는 스페셜티 커피 흐름과는 반대로 숙성된 생두를 사용해 독특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블루보틀은 제 3의 물결이라 불리우는 스페셜티 커피 흐름의 최전선에 있는 카페입니다. 


두 카페가 공존하는 일본의 커피신을 둘러보며, 도쿄 커피기행 연재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카페 드 람브르

Cafe de l'ambre

주소 : 일본 〒104-0061 Tokyo, 中央区Ginza, 8−10−15

연락처 : +81 3-3571-1551

영업 : 월-토 1200-2200, 일 1200-1900


신주쿠 주변에 숙소를 잡았기에, 처음 방문한 긴자의 거리는 낯설기만 했습니다. 콧대높은 건물과 고급 상점가,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거닐면서 카페 드 람브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COFFEE ONLY'

먼지 한 톨 없을것 같이 정돈된 세련된 거리에 오래된 상점은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기묘했습니다. 오직커피라는 글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70년의 역사가 담긴 커피는 어떤 맛일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봅니다. 



바(bar)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람브르의 로고가 새겨진 그라인더가 눈에 띕니다. 카페의 세월만큼이나 오래됐을 냉장고도 인상적입니다. 블랜드를 데미타세로 주문합니다. 커피를 준비하는 바리스타의 능숙한 움직임이 인상적입니다. 



앞서 말했듯 람브르의 생두는 10년 이상의 숙성과정을 거칩니다. 수입한 원두가 1년이 지나면 패스트 크롭으로 취급하는, 신선함을 강조하는 스페셜티의 흐름에서는 이해할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생두를 취급하는 람브르의 커피는 숙성원두 특유의 발효취와 몰트향이 인상적이란 평이 지배적입니다.



제가 주문한 커피는 숙성원두는 아니었습니다. 블랜드의 경우 뉴크롭(당해 생산된 생두)를 사용하더군요. 커피 주문을 한 이후에 점원의 설명을 듣고 깊은 맛이 인상적인 탄자니아 원두를 구입했습니다. 

 


커피가 만들어지는동안 조용히 매장 내부를 둘러봅니다. 그 사이 퇴근한 긴자의 직장인들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기사텐은 끽다점, 말 그대로 담배를 피며 차를 마시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자리마다 재떨이가 있는 이유는 카페드 람브르가 기사텐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담배냄새 없는 쾌적한 카페도 좋지만, 종종 안개같은 연기가 자욱했던 홍대의 커피볶는 곰다방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좋은 커피를 마시면 담배를 피우지 않을수 없다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카페와 역사를 함께한 후지로얄 로스터가 보입니다.


람브르의 블랜드 데미타세는 시트러스의 향미가 가득합니다. 어쩌다가는 살두나 자두같은 달콤한 과일의 맛이 느껴졌고, 목넘김 또한 부드러웠습니다. 한 모금을 넘기고 나면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것처럼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긴자의 누구라도 위로할법한 이 커피 한 잔은 두 명의 바리스타가 책임집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부탁에, 바리스타는 흔쾌히 허락하며 웃음을 지어줍니다.


얼마전 기사텐 문화를 대표하는 카페 다이보가 문을 닫았습니다. 일본의 올드스쿨 커피또한 시대의 변화를 맞아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면이었죠. 하지만 제가 방문했던 사테이 하토우, 람브르는 아직도 건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둥지내몰린 우리나라의 수많은 카페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60년의 역사를 품은 대학로의 학림다방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카페는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역사의 공간입니다. 카페가 사라진다는 것은 누구도 기록할 수 없는 한 지역의 문화가 사라지는것과 같습니다.  


람브르의 커피는 카페를 드나든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만들어낸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지친어깨를 위로하기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바리스타들이 있기에 람브르가 있고, 람브르의 커피가 있습니다. 더 오랜시간이 지나도 똑같이 람브르의 문을 열고 들어와 블랜드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루보틀 신주쿠

Blue Bottle Shinjuku

주소 : 4 Chome-1-6 Shinjuku, 新宿区 Tokyo 160-0022 일본

연락처 : +81 3-5315-4803

영업 : 월-일 0800-2200


한 번 문을 열기까지에는 오랜시간이 걸리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온전히 자신들의 문화로 만들고자 하는것이 일본인의 성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텐으로 출발하는 일본의 커피가 그렇습니다. 한때는 수입된 커피의 양 중 90%이상을 키사텐들 사용했을 정도로 일본 카페문화는 독특한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그 와중에도 추출과 서비스에 있어 온 힘을 다하는 일본 특유의 에티튜드를 길러오면서, 커피를 마시기에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환경이 조성된것 같습니다.


커피평론가 심재범은 <동경커피>에서 기사텐 커피의 영향을 받은 블루보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부분은 일본의 기사텐 커피 스타일이다. 그중에서도 시부야의 사테이 하토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일본의 혼을 담은 서비스, 기사텐 커피 매장의 독특한 분위기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블루보틀 커피를 창업하였다. 그는 "밍크코트의 사치스러움을 입으로 마시는 것과 같았다"라고 말한다.[각주:2]


블루보틀은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는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전략으로 눈부시게 성장해 지금은 전세계 커피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고있습니다. 그 탄생의 비화에 맞게 일본에 문을 연 블루보틀은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매장은 신주쿠점이었고, 신주쿠역사에 바로 붙어있는 쇼핑몰 1층에 위치해있었습니다.



마지막날, 방문하기로 했던 카페 하나가 문을 닫아 아쉬운 마음에 두 잔의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브루잉으로 에티오피아를 주문했고, 카푸치노도 주문했습니다. 바리스타는 저에게 이름을 물었고, 베이루트라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도쿄에서의 마지막 커피를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스페셜티 커피라는 얘기를 들으면, 저 하늘색 병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장은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스타벅스를 처음 마주한 사람들의 기분이 이와같지 않을까 , 새로운 커피 문화를 이끄는 블루보틀 커피바를 직접 목격하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커피 맛은 방문한 열 두 곳의 카페보다 특별히 우월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스트컵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우연한 기회에 맛본 블루보틀의 커피는 전부 동일한 색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매장에서 마셨을때도 마찬가지. 머릿속에 푸른색 병의 이미지는 더욱 강해집니다.



주문된 커피가 완성되면 바리스타는 손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브루잉 스테이션의 높이는 꽤 낮습니다. 커피가 어떻게 내려지는지 누구나 쉽게 살펴 볼 수 있고, 커피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해도 바리스타는 친절하게 답해줍니다.



최근 방문했던 스타벅스 1000번째 매장, 청담스타점이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매장의 중앙에 바가 있고, 문턱없는 높이 덕분에 어디서든 자신이 주문한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작년 카페쇼에서는 언더카운터 머신이 화제가 되었었는데, '보여주는 커피', '한 발 더 다가가는 커피'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향후 커피시장의 화두가 될 것임을 보여준 사례죠. 


블루보틀 스테이션은 이러한 유행에 한 발 앞서나갑니다. 매장의 구조와 바리스타의 동선, 브루잉 스테이션과 에스프레소 머신의 배치가 인상적이었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인테리어또한 훌륭했습니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사람들은 '한 잔의 커피'가 아닌 '한 잔의 블루보틀'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사텐의 역사가 오롯이 살아있고,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스페셜티 커피 또한 어색하지 않게 공존하는 일본의 커피신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올드스쿨과 스페셜티 커피가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모습은 왜 일본커피가 이토록 탄탄하게 성장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에 대해 공경하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는 오랜 역사를 가진 기사텐 문화의 기반이란 생각이 듭니다. 건물의 경제적 가치보다 하나의 상점이 오래 머물러 만들어내는 문화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풍토 또한 올드스쿨 커피들이 버텨내는 큰 힘이었겠죠. 사테이 하토우를 비롯해 라이온, 람브르에는 나이든 사람들 못지않게 젊은이들 또한 어렵지 않게 문을 넘나들곤 했습니다. 이렇게 어디서도 마주할 수 없는 도쿄 커피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존경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일본인들의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미국의 블루보틀과 버브, 호주의 폴바셋, 프랑스 코튬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도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자칫 유행에 휩슬릴까 걱정이 될수도 있지만, 이 카페들은 탄탄한 일본 스페셜티 커피의 위에 자리하고 있기에 도리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곤 합니다. <동경커피>의 저자 심재범또한 반복적으로 일본 스페셜티 커피의 독특한 지점을 설명하곤 합니다. 가령 '쌉싸름한 맛'을 하나의 향미표현으로 두고 맛 체계를 구축한다는 부분이 일본 스페셜티 커피의 특징을 잘보여줍니다.


동경에 가면 배울것이 많을 것이라고 등떠밀지 않았더라면, 일본 스페셜티 커피 투어는 언제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수년간 직접 발로 뛰고 마셔보며 경험한 결과물들을 스스럼없이 공유해주신 <동경커피>의 저자 심재범님과 헬카페 권요섭 바리스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도쿄로 향하기 전, <동경커피>의 출간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행을 가기전에 책이 발간되었더라면 더 많은것을 느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클 정도로 <동경커피>는 일본 스페셜티 커피 전반에 대해 깊이있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총 25곳의 일본 카페에 대해 풀어쓴 이 책은, 한 두 번의 취재로는 할 수 없는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수년간 미국과 일본을 다니며 쌓은 내공덕분인지 자칫 어려울수 있는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이 쉽게 쓰여져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경'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책이지만 스페셜티 커피 문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한 서술도 상당하다는 점입니다. 출간일보다 조금 늦게 책을 구입했지만, 너무 재미있어 반나절만에 책장을 넘겼습니다.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선배 칼럼니스트이자 평론가인 심재범님의 세번째 출간을 이 자리를 빌어 축하하드리고 싶습니다. <동경커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동경커피, 심재범, 79페이지 '사테이 하토우'편을 참고바랍니다. [본문으로]
  2. 동경커피, 심재범, 89페이지 '블루보틀'편을 참고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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