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의 눈

해삼에는 눈이 없다. 해저의 얕은 모래 진흙에서 살고 있는 해삼은 동남아시아 리푸의 산호위에 누워 있기도 하다. 해삼은 인간의 탐욕을 드러내는 사치스러운 식재료다. 해삼의 95%는 수분으로 이뤄져있는데, 날해삼을 먹지 않는 이상 해삼은 삶아서 물기를 뺀 뒤 오랜 시간 잘 말려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보관된 날 해삼은 등급이 나뉘어 고가에 거래되는데, 특성상 양식이 힘들뿐더러 가공과정 또한 많은 인력과 엄청난 양의 소나무(땔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삼이 동남아시아를 너머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귀중한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금과 은 그리고 구리가 고갈되어 화폐로서의 역할을 충당할 수 없게되자 해삼을 가공하여 국제 무역에 참여하곤 했다. 이렇게 거래된 해삼은 중국의 수많은 왕족과 제후들의 식탁을 장식하곤 했다. 그래서 진주조개만큼이나 해삼은 귀중한 자원이었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도 해삼어장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해삼의 발자취를 찾아 해삼이 거래되었거나 재배되었던 지역을 찾아나선 저자 쓰루미 요시유키는 한반도 해삼의 역사 또한 귀중하게 다룬다. 하지만 그 중요함 만큼이나 해삼의 역사는 찾기 힘들었다. 젊은이들은 “해삼은 중국의 음식이다”라고 말하며, 어업을 천하게 여기어 기록이 남지 않은 역사에는 해삼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제국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지만, 일본의 침략 이후에나 해삼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고 씁쓸한 얘기를 한다.

젤라틴을 공급하는 고급 식재료라고 말하기엔, 해삼의 역사는 깊디 깊다. 영생을 얻기 위해 자연의 귀중한 재료를 찾게되었고 그 중 하나가 해삼이라고, 저자는 해삼과 도교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해삼은 눈이 없고 발 또한 없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힘을 가졌다. 해삼이 인간의 손에 들어온 순간,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역사를 좇는 일은 다른 어떤 사사를 다루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게 되었다.

먹는 일과 음식에 대한 역사는 인간이 절대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될 기록이다. 어업을 천하게 여겨 그에 대한 기록 또한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먹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오늘날에도 그다지 귀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경작하거나 채취하고, 그것을 인간의 입으로 가져가는 일에 대한 기록은 가치 있는 사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담처럼 미학의 ‘미’자는 맛을 뜻하는 ‘미’의 의미도 있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아름다움을 논하는 일이 심오했던 것처럼, 맛에 대해 논하는 일 또한 심오하고 깊어져야 할 것이다.

내가 태어난 해 89년 11월에 이 해삼에 대한 역사가 쓰여졌다.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문체는 유려하고 역사는 깊었다. 종종 인터뷰를 할때면 누군가는 “그래, 그 일은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는 일이지”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 세상에 사소한 역사는 없다. 그래서 기록하고 기억해야한다.

귀중한 책을 추천해주신 따비 출판사 박성경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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