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결혼식에 동창들이 모였다.

 

토요일 낮 12시, 꿀같은 낮잠을 포기하고 달려온 의리의 친구들. 누구는 새벽까지, 누구는 당일 아침까지도 사무실에 있었다. 그리고 한 친구는 예정된 주말근무를 빼기 위해 휴가를 내고 철야작업을 했지만 비상이 터져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어렵게 모인만큼 힘든 한 주를 보냈음에도 다들 밝은 표정으로 안부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진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그래서 넌 무슨 일을 하는데? 라는 질문. 다들 웃으며 나도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대답만 한다.

 

그래도 커피는 안다. 스페셜티 커피의 장점이라면, 추적가능성 traceability일 것이다. 내가 마신 커피가 누구의 손에서 어떤 품종, 토양, 기후에서 어떻게 재배되고 가공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수입되어 로스팅되었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내렸는지 확인 가능하다. 주말의 의무(결혼식 참석)에서 퇴근하고 홀로 찾은 브루브로스에서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주했다. 네가 누군지 정체성이 분명하니, 적어도 나보다는 사정이 낫구나.

 

콜롬비아 스트롱을 시킨다. 부산의 카페 노갈레스에서는 콜롬비아 생두만을 수입한다. 콜롬비아 생두만을 수입하는 만큼 생두도 품질이 좋다는 브루브로스 바리스타의 평가와 설명이 이어진다. 50ml 남짓의 작은잔에 담겨온 커피의 향은 매우 짙다. 마치 내가 콜롬비아 커피야! 라고 말하는것 같다. 비교적 약한 배전도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맛을 선사한다. 달콤하고 새콤하고, 때로는 매콤한 맛도 느껴진다. 스파이시한 느낌도 물론이고. 잔향도 오래남는다.

 

'브루brew'라는 말이 있다.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에스프레소도 브루의 일종이라 볼수도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로 따져 들어가면, 에스프레소가 아닌 커피를 브루잉이라고 부르는편. 스페셜티 커피 시대를 맞아 클레버, 케맥스, 에어로프레스, 프렌치프레스, 사이폰 등 다양한 기구들이 브루잉툴로서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덕분에 다양한 툴로 브루잉을 하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브루브로스는 브루잉, 그 중에서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준다. 시간과 온도, 원두와 추출양 등의 레시피에 맞춰 물을 부어주는 푸어오버(Pour Over)와는 다르게 핸드드립은 좀 더 섬세한 컨트롤을 요한다. 시간도 오래걸릴뿐더러 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핸드드립은, 올드스쿨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절에만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커피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 이렇게 제대로 내려주는곳도.

 

생두의 탄생부터 핸드드립까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한 잔의 커피와 다시 마주한다. 나는 언제쯤 이처럼 분명해질수 있을지. 수많은 정체성들 사이에서도 오롯이 내스스로 서 있을수 있는지. 맛에 감탄하고 있으니, 바리스타께서 강배전으로 내린 스트롱 커피 한 잔을 더 권한다. 부드러운 밸뱃의 느낌이 입을 감싼다. 달콤하고 치명적이다.

 

당분간은 이곳을 찾아 커피 한 잔 앞의 위로를 받을수 있을것 같다.

 

 

 

브루브로스 커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8-30

02-325-3580

평일 0900-2300 / 주말 10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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