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geni Koroliov, Beethoven Sonatas op.101, 106 "Hammerklavier"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베토벤 소나타 28,29번 '함머클라비어'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는 새로운 피아노의 탄생과 맞물려있다. 19세기 초반, 피아노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포르테피아노를 대체할 건반악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빈에 위치한 슈트라이허라는 피아노 회사에 7옥타브를 넘나드는 피아노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독일에서 탄생할 이 새 악기를 위한 메모였다. 지금은 29번 소나타에 붙은 별칭이지만 27번 소나타의 악보부터 함머클라비어란 단어가 등장한다. 두번째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작품번호 101번, 28번 소나타의 악보에는 여지껏 볼 수 없었던 4개의 덧줄이 있다.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피아노로 연주 가능한 음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정확히 한옥타브 낮은 미를 그려놓았다.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베토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동원하여 들리지 않는 소리를 영원한 음표로 표현해내고자 한다. 그 열망으로 베토벤은 그동안 음악사에서는 꿈꾸지도 못할, 혁신이 가득찬 작품을 만든다. 9번 교향곡은 기존의 교향곡이 넘보지 못하는 길이에, 합창까지 담아냈고, 현악사중주 14번(op.131)은 악장이 7개로 늘어났다. 32번 소나타(op.111)는 고작 두 개의 악장을 가지고 있다. 28번 소나타를 비롯하여, 한동안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질만큼 어려운 29번 소나타도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혁명이었다.

'Etwas lebhaft und mit der innigsten Empfindung'. 생동감이 넘치도록, 서정적인 느낌을 살려서 연주하라는, 표제음악에서나 볼수있는 지시사항이다. 28번 소나타의 첫 악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그너는 자신의 아내 코시마에게 이 악장을 '영원의 멜로디'라고 표현했다. 악보에 그려진 세 개의 샵은, 이 소나타가 라장조로 시작할 것을 알린다. 하지만 첫 음표는 마장조의 음들이 그려져있다. 악장이 마지막에 이르러 근음이 제자리를 찾을때까지 미묘한 불안함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극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러한 기법은 이미 바흐의 프렐류드나 하이든의 일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처럼 극적인 전개를 이끌어 나가는건 베토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지는 빠른 악장의 행진에선 미약하나마 대위법적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소나타는 마지막장에 이르러 첫 악장을 상기시키는 음표를 연주한다. 이어서 나타나는 주제는 피날레를 이끌어간다. 28번 소나타는 베토벤이 확신을 가지고 그려낸 음표로 만든, 아찔한 아치를 그리며 버티고 있는 위대한 건축물이다. 28번 소나타의 아찔한 출발처럼, 베토벤의 혁신은 하이든의 그것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하이든의 내림마단조 현악 사중주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조 바꿈이 나온다. 여기서 하이든은 악보에 자유롭게 연주하라는, 법칙에 벗어나서 연주해도 좋다는 'con licenza'를 써넣었다. 떠오른 영감을 과감하게 적용하고,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가는 하이든의 작곡법은 그를 스승으로 둔 베토벤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로 알려진 29번 소나타의 외형은 4개의 악장을 가진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소나타는 비범함으로 가득차있다. 첫 악장의 웅장한 울림은 마치 5번 교향곡의 위대한 등장을 연상케 한다. 알레그로 악장은 차분함과 긴장을 오가며 마지막까지 소나타가 아닌 한편의 교향곡을 연상케 한다. 기교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하는 스케르초 악장은 연주자에게도 기쁨을 안겨준다. 베토벤의 소나타중 가장 길고 서정적인 아다지오 악장은 활기차며 기교가 가득찬 협주곡의 첫악장과 대비되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피날레 악장은 푸가가 가득 차 있다. 상상력이 가득한 주제의 변주와 차분함이 느껴지는 종교적 칸타빌레 테마는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 마지막 악장의 푸가는 소나타 작곡뿐만 아니라 현악사중주를 작곡함에 있어서도 후세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베토벤은 어렸을적부터 바흐의 '평균률 클라비어'를 연주하며 푸가의 우주에 빠져들곤 했다. 바흐를 동경하고 그 무한한 우주에서 음악적 능력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베토벤과 예브게니 코롤리오프는 공통점이 있다. 17세의 나이에 코롤리오프는 모스코바에서 바흐의 '평균률 클라비어' 전곡을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열었다. 코롤리오프는 낭만주의, 현대음악등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했지만 늘 바흐에 대한 동경을 잊지 않았다. 첫 리사이틀 이후에도 코롤리오프는 수많은 콘서트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푸가의 기법, 평균률 클라비어를 연주했다. 그의 첫 CD녹음도 '푸가의 기법'이었다. 코롤리오프의 디스코그라피와 프로필은 온통 바흐의 이름으로 가득차있다. 하지만 그가 바흐의 연주에 정통했다는건 베토벤 연주에 있어서도 믿을만한 연주가라는 것을 반증한다. 기대했던 것처럼, 코롤리오프 시리즈의 최신작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 연주의 정석을 보여준다. 청명하고 울림이 깊은 그의 연주에서는 여태껏 만나보지 못했던 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깊은 우주가 느껴진다. 29번 소나타는 연주하는 이에게도, 듣는이에게도 쉽사리 정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코롤리오프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베토벤의 그려내는 19세기 '푸가의 기법'에 혀를 내두르고,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할것이다.


Evgeni Koroli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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