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이라면 조심!)

 

하이젠베르크는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나치의 핵연구를 맡게 되었다. 사보타주는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의 핵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리학자로서 순수한 과학이 정치와 전쟁에 이용되는것을 바라지 않았는지, 실제 그것을 만들능력이 없었기에 핑계를 댄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그를 둘러싼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최초의 핵무기 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가 뉴멕시코(New Mexico) 사막에서 이뤄진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5년 7월 16일의 일이다.

 

미국 AMC에서 방영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배경은 뉴멕시코다. 드라마는 50살의 생일을 맞은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며 시작한다. 칼텍(Caltech)의 총망받는 화학자였던 그는 믿음은 져버린 동료를, 성공을 앞둔 업적을 버리고 뉴멕시코에 정착했다. 하지만 화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올곧은 신념으로 가족과 함께한 지난날의 삶은 암 선고와 함께 스러지기 시작했다. 이 때, 죽음 앞에 내몰린 힘없는 그에게 마약단속국(DEA;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에서 일하는 동서 행크 슈레이더가 나타난다. 마약 제조실을 단속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정의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 월터 화이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결심을 한다. 그리고 마약 제조를 결심하고 쫓아간 행크의 단속 현장에서 자신의 제자였던 제시 핑크맨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소아마비에 걸린 아들, 자신이 암에 걸린지도 모른채 임신 사실을 털어놓은 아내, 세차장 알바를하며 근근히 충당해온 생활비, 보잘것 없는 자신의 50년 인생 앞에서 월터 화이트는 마약 제조업자가 된다. 그는 '하이젠버그'라는 별칭과 함께, 떼어놓을 수 없는 사업파트너 제시 핑크맨과 함께 마약의 세계로 빠져든다.

 

브레이킹 배드는 일종의 성장드라마다. 월터 화이트는 마약판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총 62화에 이르는 드라마는 월터화이트가 하이젠베르크로 변태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나쁜것(Bad)에 대해 이야기한다. 월터는 본격적으로 마약 판매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기 전, 행크와의 식사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전체적인 주제와 맞닿는다. 암에 걸린 월터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사자리에서 행크는 FBI 친구에게 얻었다며 쿠바산 시가를 건낸다. 월터는 불법이 아니냐고 묻지만, 행크는 별것이 아닌양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자 월터가 묻는다. 마약도 과연 나쁜것일까, 누가 그것이 나쁜 행위라 규정할까라고 말이다. 그러자 행크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 번 교도소에서 마약에 절은 놈들을 만나봐야 그런 얘기를 못할거야, 약에 절어 삶을 포기하고 절규하는 그 얼굴을 보고 나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행크의 대답은 월터가 제시한 문제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브레이킹 베드에서 제시하는 화두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다시 드라마의 배경인 뉴멕시코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뉴멕시코는 원래 나바호족과 아파치족이 몰려있던 인디언 서식지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이곳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200년이 넘는 식민지배 기간동안 인디언 문화는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다. 독립과 함께 최초의 멕시코인 도시가 된것도 잠시, 이곳은 다시 비극의 역사를 잇게 된다. 민가를 불태우고 가축을 잡아 죽이는 보복을 가해서 나바호 인디언의 항복을 받아 내고 강제 이주를 하는 장거리 행진, 롱 워크(Long Walk)는 비극의 일부였다. 오랜 인디언의 땅이었던 그곳은 미군의 점령과 함께 수많은 토착민들의 묘지가 되었다. 비극의 역사를 통해 미국의 영토가 된 뉴 멕시코는 미국에서도 주의 수입이 낮은 쪽에 속한다. 주수입원은 대부분 관광업과 주정부에서 관할하는 사업에 의존한다. 주를 대표하는 뉴멕시코 대학은 미국 내에서도 100위권 밖일 정도로 교육에서도 낙후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주의 특성상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월터 화이트는 뉴멕시코 마약업계의 거물 구스타보 프링(거스)와 손을 잡는다. 캠핑카에 조악하게 만들었던 제조시설은 이제 커다란 공장으로 변한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마약업계의 또 다른 '거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구스타보 프링은 남미에서 불법으로 이주한 역사가 있는 사람이다. 사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자랑하는 그는 최고의 마약 제조업자 하이젠베르크와 손을 잡고 마약 시장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이 성공을 오래 이끌지 못한다. 치열한 세력사움 끝에 숨을 거둔 구스타보는 나바호족과 아파치족의 가슴아픈 역사와 닮아있다. 월터 화이트를 곤경으로 몰아 넣은 수 억 원대의 암 치료비, 마약상들과 총격전을 하다 마비된 행크를 회복시키기 위해 들어야하는, 보험으로는 처리가 안되는 엄청난 치료비는 의료 민영화의 맹점을 꼬집는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이미 정직하게 살아가는 고등학교 교사의 능력을 넘어선다.

 

하이젠베르크의 딜레마는 다시 시작된다. 순수한 물리학자의 삶을 살고, 양심을 지킬것인가. 그가 어떤 선택을 했건, 핵을 개발하지 못한 나치는 미국에 의해 괴멸당했다. 1945년, 뉴멕시코에서 최초의 핵실험이 이뤄진 이후 미국은 또 다른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이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들은 무엇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증폭시킨다. 수많은 인디언들의 목숨과 아픈곳을 치료할 돈이 없어 죽어가는 수많은 저소득층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자유의 땅 미국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마약이 나쁘다고 규정된 순간부터, 누군가는 마약을 뿌리뽑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그 쾌락의 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나쁜것'이 규정된 순간 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에서 토킹 배드(Talking Bad)까지, 하이젠베르크의 성장기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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