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l Shaham - Prokofiev Violin Concerto No. 2 (2nd movement)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첫 날에는 그럭저럭 버틸 만 했는데 점점 신경이 쓰인다. 예상치도 못했던 통증이 찾아와 집에 와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독한 술에 취하면 통증을 잊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치아교정을 시작하면서 걱정되는 점들이 많았다. 많은 돈을 들여서 교정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다. 가장 많이 의지를 한 사람은 단연 치과 의사다. 지인이기도 하고, 성격도 좋은 분이기에 교정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랜 상담 끝에 1년이 넘는 교정치료가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 장치를 부착한 날, 치과에서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우선, 네이버에 '치아 교정'을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 검색 결과의 상당부분이 네이버와 관련된 콘텐츠였다. 상당수가 홍보성이 짙은 네이버 블로그와 연결됐고, 어쭙잖은 정보와 홍보 링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구글에 '치아 교정'을 검색했다. 구글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검색 결과 제일 상단에 위치하는 홍보성 링크 두 개를 제외하곤 전부 원하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치아 교정에 대한 정의'부터 진행경과에 따른 유의사항까지.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매번 네이버의 검색결과에 실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네이버와 구글의 접근 방식에 있었다. 네이버는 유저가 오랫동안 네이버 페이지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첫 페이지에 많은 정보를 띄워 놓는 것부터가 그렇다. 검색 결과는 대부분 네이버 서비스 페이지와 연결된다. 스폰서 링크를 제외하고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네이버 블로그, 지식인과 연결된다. 유저는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는 순간, 그 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유저를 오랫동안 잡아두고 클릭수를 늘리는 것은 네이버의 오랜 전략이었고, 네이버를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괴물로 만들었다. 구글의 접근 방식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말했듯, 구글은 유저를 최대한 빠르게 구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단시간 내에 가장 정확한 정보를 찾게 해주는 것이 구글 검색 알고리즘의 목표다. 네이버와 상반되는 이러한 구글의 접근 방식은 글로벌 유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원하는 정보를 국경과 울타리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는 이 전략은, 검색에 만족하는 유저들이 다시 구글을 찾도록 만들고 있다. 조금 더 멀리, 많이 볼 줄 아는 구글의 접근방식은 그들을 세계적인 검색엔진으로 이끌었다. 반면, 네이버는 국내시장에서만 큰 힘을 발휘한다. 전 세계적인 트래픽을 조사해보면 네이버는 100위권 밖에 머물러있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빠르고 쾌적한 인터넷 접속환경은, 또 다른 우리만의 인터넷 문화적 특성을 유발한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정보가 '짤방'과 '동영상'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읽어야 하는 텍스트와는 달리 짤방과 동영상은 빠르고 쉽게 내용을 전달한다. 그나마 동영상의 내용은 대부분 1분을 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핵심적인 내용(만 담았다고 생각하는)을 담은 이 영상들은 '좋아요' 클릭 한 번으로 수만 명에게 전파된다.

 

'너 그 동영상 봤어?'

 

정보는 점점 자극적으로 변한다. 1시간 분량의 드라마가 끝나면, 가장 자극적인 장면들이 편집돼 돌아다닌다. 이슈가 되는 뉴스들은 금세 핵심만 추려 30초짜리 동영상으로 변한다. 전후 맥락이 거세된 동영상들은 순식간에 여론을 조성한다. 안현수는 국민 영웅이 됐고, 윤진숙 해양부 장관은 몰매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나도 무심코 누른 '좋아요'를 통해 그 수많은 무리 중에 한 명이 되었다. 사려 깊은 지인들의 링크를 통해 '안현수 및 쇼트트랙 파벌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되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 건 그 이후였다.

 

연인 K와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한 말이 생각났다. '뭐든지 100퍼센트 잘못된 것은 없을 거야.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해도 1퍼센트는 옳은 부분이 있을 테고. 그걸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거야. 그래야 소통을 할 수 있는 거야.' 세상을 선과 악으로 분류하는 순간 이 세상에 이해받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기업과 관련된 사람들도,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고 몰매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넥타이 공장을 취재하던 그 분의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1페이지 남짓의 넥타이 무역에 관한 글은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넥타이의 탄생부터, 우리나라 원단 무역이 역사까지. 문제가 출발하는 가장 근본에서부터 질문을 풀어가야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당연하다. 넥타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인터뷰이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얻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머리말부터 역자후기까지.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 귀를 기울여야 진정으로 깊은 독서를 할 수 있다.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지휘봉이 들리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 음표까지. 빨리 감김 없이, 어떠한 편집도 없이 끈기 있게 들어야 깊은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책 한권을 진득하게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졌다. 원하는 정보는 짧은 검색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제 눌렀던 '좋아요'가 오늘의 '화제'가 되는 날이 많아졌다. 카페가 많아졌다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확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서점이 커졌다고 좋은 책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 취향과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좋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오늘부터라도 '좋아요'를 누르는 일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끈기 있게 읽어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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