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두 개의 아리아가 처음과 끝을 장식할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가장 처음 흘러나온 곡과 엔딩크레딧에 깔린 곡은 아리아였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부를 달릴 때 즈음 예상치 못하게 변주가 되던 배경음악은 아리아로 돌아갔다. 다시 아리아가 흐르는 순간 나는 은연스래 영화가 마지막을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 됐다.

 

영화가 끝나고, 왜 이렇게 음악을 심어놓았을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인공 료타가 보여준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흡사 변주를 완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아리아로 돌아가는 배경음악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모습은 답이라고 할 게 없다. 빨대를 씹어 먹고, 가끔 생각 없는 말을 내뱉지만 늘 아들을 곁에 두고 함께하는 것도, 아들이 보고 싶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 불러내는 것도 모두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들에게 혼자 있는 법을 가르치고,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 료타의 모습도 결국 아버지의 변주다. 하지만 료타의 변주가 그의 아버지,  료타의 아들을 기르고 있었던 유다이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마지막 아리아일테다. 아버지로서 료타는 끊임없이 방황했다. 처음과 마지막의 아리아는 같다. 하지만 료타는 그것을 몰랐다. 아버지가 되기보다는 끊임없이 혼자가 되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자랐기에 아들도 그렇게 자라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료타는 마지막 변주를 생각치 않았다. 아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 료타는 방황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되어간다. 엔딩크레딧에 이르러서야 흐르는 마지막 아리아는 그가 드디어 길을 찾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된다'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냥으로 바뀐다. 아버지가 되기 위해 허삼관은 피를 판다. 1년은 부지런히 일해도 벌지 못하는 큰 돈은 허삼관에게 아내를 안겨준다. 그들은 세 아들을 얻었다. 허삼관 매혈기는 그가 아들을 위해 피를 파는 내용을 그린 소설이다. 아들 일락이가 아내의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을 때도, 온갖 추문으로 가족 간의 갈등이 심해졌을 때도 허삼관은 자신이 아버지임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피를 팔았고 그 때마다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냥으로 허기진 속을 달랬다. 끊임없는 돼지간볶음의 변주는 허삼관이라는 아버지를 나타낸다. 자식들을 무사히 자라고 혼자 집에 남은 허삼관은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위해 피를 팔기로 한다. 하지만 병원에선 늙은 그의 피가 너무 묽어 쓸모없다며 거절한다. 그는 서러움에 복 받쳐 거리를 거닐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발견한 세 아들들은 그에게 찾아간다. 네 아비가 피를 팔아 너희들을 키웠다는 어미의 말에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돼지간볶음과 황주 한 병을 선물한다.

 

허삼관의 돼지 간 볶음은 정명훈에게 슈베르트 환상곡이 된다. 그의 둘째 아들은 ECM프로듀서다. 그는 아버지에게 솔로 앨범을 녹음하자고 했다.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지휘자에게 피아노 솔로앨범이 부담이 되기도 했겠지만 그는 마다하지 않고 녹음을 진행했다. 선곡은 너무나 평범했다. 첫 솔로 앨범을 내는 마에스트로에겐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될 정도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곡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흠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가 감동을 자아낸 건, 그가 지휘자나 피아니스트로 녹음을 하기보다 아버지로서 녹음을 했기 때문이다. 피아노 자서전이라 할 만큼 그의 선곡들에는 사연이 하나하나 담겨있다. 슈베르트 환상곡 D.899, E-flat major는 그가 큰아들의 결혼식에서 직접 연주했던 곡이라 한다. 손녀의 이름은 '루아', 포르투갈어로 '달'이다. 드뷔시의 '달빛'은 그가 손녀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앨범 가득히 그는 가족을 생각했다. 아버지 정명훈이 녹음한 피아노 솔로는 그래서 흠을 잡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마지막 트랙이 돌고 있을 것이다.

 

료타와 허삼관과 정명훈을 생각하며 나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오직 그 분 뿐이다. 아무리 가족을 힘들게 했고, 아들과는 목욕탕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물게 다녀왔고,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장엔 두 번 밖에 못 갔고, 아들과 단 둘이 딱 한번 여행을 갔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아들이다.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며 나는 아버지가 어떤 연주를 했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왜 음악을 이토록 좋아하는지,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변주를 들려주셨다. 그 변주가 설령 잘못될 때도 있고 틀렸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아리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고 믿는다. 끝내 마무리되지 않는 아버지의 변주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그는 나의 아버지가 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