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에서 바라본 서울

 

화교인 우리 어머니는 서울에서 30년을 넘게 사셨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서울은 고향 땅보다도 익숙한 곳이다. 먼 곳을 여행하고 올 때마다 어머니께선 늘 이런 말을 하셨다. '매연 가득하고, 답답한 도시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서울만한 곳이 없어, 서울에 오면 편안한 기분이 들어.' 스무 살이 조금 넘어서야 나는 어머니가 서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처음 둥지를 틀었을 그 사글세 방, 동시통역을 위해 드나들던 동대문 상가들과 아버지가 처음가게를 얻었던 인사동, 이제는 고향보다도 더 친숙한 불광동까지. 인사동에서 동대문을 향해 걷던 어느 날 나는 어머니의 서울을 생각했다.

 

빌리조엘이 1976년에 발표했던 앨범 [Turnstiles]에 수록된 'New York State of Mind'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Some folks like to get away, Take a holiday from the neighbourhood
Hop a flight to Miami Beach or to Hollywood
But I'm taking a Greyhound on the Hudson River Line
I'm in a New York state of mind

 

어떤 사람들은 휴일을 맞아 이웃을 떠나 먼 곳으로 향하죠. 마이애미 비치로 혹은 할리우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뛰어들죠. 하지만 나는 나의 그레이하운드와 함께 허드슨 강변을 산책할거에요. 제 마음은 언제나 뉴욕에 있죠.

 

'New York State of Mind'은 빌리조엘의 넘버원 히트곡이 아니다. 하지만 빌리조엘은 자신의 콘서트에서 이 곡을 빼먹지 않고 부른다. 9·11테러를 추모하기 위한 콘서트에서 이 곡이 울려 퍼졌을 땐, 많은 뉴욕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떠한 이유도 이 마음을 설명 못할 것이다. 뉴욕 사람들의 마음엔 뉴욕이 있다. 잘 모르겠지만, 빌리조엘에게 뉴욕은 어머니의 서울과 같이 않을까 생각했다.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어머니는 중국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을 사랑한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품어준 도시에 대한 애정은 국적을 넘나든다. 그 깊고 아련한 마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968년 일본의 인기 여배우인 이시다 아유미가 발표한 블루라이트 요코하마(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Blue light yokohama)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 노래다. 발매되자마자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일본 노래가 금지돼있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사자에상에서 요코하마행 기차표를 블루라이트행 기차표로 달라는 장면이 나온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는 이렇게 요코하마를 상징하는 곡이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미국의 재즈밴드 핑크 마티니와 일본인 가수 사오리 유키가 함께 작업한 '1969' 앨범에 수록되기도 해서 인기를 끌었다)

 

街 の? り が とても きれい ね, ヨコハマブル? ライト? ヨコハマ
거리의 불빛이 무척 아름답 네요, 요꼬 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あなた と ふたり 幸せ よ
당신과 둘이 행복 해요

いつも の よう に 愛 の 言葉 を ヨコハマ ブル? ライト? ヨコハマ

私 に ください あなた から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전해주세요. 요꼬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 い て も? い て も 小舟 の よう に
걷고 걸어도 작은 조각배처럼

私 は ゆれ て ゆれ て あなた の 胸 の 中
나는 당신의 품속에서 흔들리고 흔들려요

 
足音 だけ が つい て? る の よ ヨコハマ ブル? ライト? ヨコハマ
발소리만이 따라 와요, 요꼬 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やさしい くち づけ もう一度
부드러운 입맞춤 다시 한 번 더

 

뉴욕을 노래하는 마음보다 이 노래가 더 깊이 와 닿는 이유는 가사때문일테다. 일엽편주가 되어 둥둥 떠다녔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잊지 못하는 마음은 1968년의 이시다 아유미나 어머니, 내가 모두 공유하고 있는 설렘일테다.

 

 

 

1989년에 발매된 어떤날의 2집에는 취중독백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도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정신없는 네온이 까만 밤을 수 놓는, 나의 고향 서울을 문득 바라본다.
제법 붙은 뱃살과 번쩍이는 망또로, 누런 이를 쑤시는 나의 고향 서울
설쳐대는 자동차 끔찍한 괴성과, 난지도의 야릇한 향기가 어울린
오등신의 미인들 검정 선그라스로 엿보는, 나의 고향 서울을 문득 바라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감싸주고 키워줄, 나의 고향 서울을 힘껏 껴안고 싶다.

나의 고향 서울을 힘껏 껴안고 싶다.


 

고향이 서울인 사람들이라면 깊게 공감할수 있을 테다. 서울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낸 어머니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다. 노래 제목에 '서울'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하찮은 시빗거리가 있지만, 나는 이 노래를 서울의 노래로 꼽고 싶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가 울려 퍼지던 1969년, 공교롭게도 패티김이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모 치통약 광고에서 이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 이 CM송의 멜로디가 익숙하게 들렸던 건 알게 모르게 서울찬가를 들었기 때문일 거다. 서울을 노래한 곡의 원조라면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가 단연 최고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작은 언덕배기에 오르면 서울시내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살았다. 서울에 올 기회가 있으면 종종 그곳을 찾았다.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들이 가득 찬 도시의 모습은 못나 보인다. 하지만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서 살으렵니다라고 외치는 이 노래의 가사가 와닿는 순간이었다. 도시에게 위로를 받는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빌리조엘도, 이시다 아유미도, 패티김도, 어떤날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을테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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