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즉흥곡 D.899 3악장 작품번호90

 

사람들이 공연장을 채우기 시작한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공연이 시작된다. 슈베르트 즉흥곡의 첫 악장이 울려퍼지는 그 순간까지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를 찾지 못할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알렉상드르를 찾아 인사할 때가 되어서야 그들이 주인공임이 명확해진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는 그들이 집에 도착해서야 끝이 난다. 아름다움을 향해 달려가던 음악은 어떠한 징조도 없이 끊긴다. 침묵과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에서는 모두 네 번의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네 번의 연주는 모두 너무나 짧게 끝난다. 페이드 아웃이 되는게 아니라 무심하게 끊겨 버린다. 아름다움이 느껴지려고 하는 순간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그 순간 아무르에서 흐르는 음악들은 가장 충실한 효과음이 된다.

 

안느의 병세가 심각하지 않을 때, 그의 제자였던 알렉상드르가 노부부의 집을 찾아온다. 그는 어릴적 안느가 연주하라고 했던 바가텔(베토벤이 작곡한 연습용 곡)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타로는 곧 안느의 굳은 오른팔을 발견한다. 안느는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것이라며, 다른 얘기를 하는게 어떻느냐고 묻는다. '자네도 왔고, 멋진 막간을 즐기고 싶어'라고 말하는 안느는 알렉상드르에게 바가텔 연주를 권한다. 그렇게 시작된 멋진 막간의 연주는 또 예고 없이 끊긴다.

 

알렉상드르가 가고 난 저녁, 침상에 누운 안느의 모습 뒤로 바흐의 부조니가 울려퍼진다. 그러다 갑자기 연주가 멈춘다. 아름다운 순간은 연주를 갑자기 그만 둔 조르주의 침묵으로 마무리 된다. 그 후로 안느의 병세는 깊어만 간다. 그녀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즈음 다시 음악이 흐른다. 이번에는 안느가 피아노에 앉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슈베르트 즉흥곡의 세 번째 악장을 연주한다. 연주에 빠져들려고 할 때 조르주는 시디 플레이어를 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순간에 음악이 흐르지만, 그 음악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것은 노부부의 마지막과 닮았다. 멋진 막간을 즐기고 싶지만 그들은 더이상 아름다움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멈추게 한 건 조르주다.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음악을 멈출 수밖에 없다. 연주가 계속될 수 없다는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음악은 더욱 슬펐다.

 

아무르는 메타포와 침묵의 영화다. 어떤 장면도 과하거나 지나치지 않다. 가장 슬퍼야하는 순간 음악은 끊기고 침묵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게 노부부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지난 1년간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나는 바로 '아무르'라고 답했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사무치게 아름답고 슬펐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의 과잉이 넘쳐나는 영상들이 이끌어내는 신파적인 슬픔을 싫어한다. 문학과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삶의 어떤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매체기 때문이다. 아무르에서 노부부의 삶과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건 그 모든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침묵과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이해하게 만든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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