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이래로 한 달 가까이 피아노곡만 찾아 들었다. 브렌델이 주로 언급한 작품은 베토벤 후기 소나타, 슈베르트 소나타, 리스트 소품들이다. 그의 친절한 소개와 함께 이 곡들을 다양한 버전으로 다시 듣고 있다. 피아노를 듣는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깨닫는 요즘, 그 느낌을 나누고자 몇가지 구절과 책에 나온 곡들의 영상을 올려본다.

 

밸런스, p.27-29

밸런스는 음향을 구성하는 특성입니다. 우리는 긴장하지 않고 기술적으로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음이나 동시에 울리는 수직적 음향을 그냥 뭉뜽그려 연주하거나 벨런스를 피아노에 맡겨 버린다면, 불완전한 씨앗을 뿌리는 꼴이 됩니다. 싫증이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게다가 강약의 조절 없이 양손을 기계적으로 연주하거나 성부의 진행을 통제하지 않거나, 혹은 계속해서 소프라노와 베이스 성부의 소리를 두드러지게 뻣뻣하게 연주합니다. 이런 왼손으로 저음의 옥타브를 쳐대면 다른 음향들은 쉽사리 묻히고 말죠.

분명이 저음 부분의 소리가 큰 피아노들이 있습니다. 미국에는 수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피아노들이 그랬지요. 이보다 더 흔한 현상은 중간 음역 아래 부분의 소리가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소프트 페달을 쓰는 경우네는 특히나 심해지죠. 하지만 진정한 피아니스트는 결함이 있는 악기의 이러한 장애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무언가 특별히 들려줄만한 매력을 품고 있을 때만 베이스가 두드러지게 해야 합니다. 피아노의 위쪽은 노래할 때 빛나야 하고, 아래쪽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위쪽보다 크게 울려야 하죠. 연주자의 양팔은 마치 서로 다른 몸에 붙어있는 것인 양 완전히 독립적이야 합니다.

벨런스는 음향을 펼쳐 보이게도 하고 우리를 음향으로부터 멀어지게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벨른스는 음향에 색감과 특성을 부여하고 빛과 어둠을 주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베이스에 힘을 싣는 연주자보다는 소리가 바닥을 벗어나 상승하여 자유롭게 떠나닐 수 있도록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에드윈 피셔, 알프레드 코르토, 빌헬름 켐프같은 이름들이 눈앞에 떠오르는군요.

 

오케스트라, p.130-131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에게 일류 오케스트라가 옆에서 귀를 열고 그의 소리에 집중하며 호흡을 맞춰주는 순간만큼 멋진 것은 없을 겁니다. 오케스트라가 지닌 음향, 다양한 음색, 폭넓은 음량, 규칙적인 리듬은 우리 피아니스트들에게 이상적인 본보기지요. 또 다른 중요한 본보기로는 인간의 음성과 노래, 그 둘의 결합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휘의 거장들은 우리에게 오케스트라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과 어떻게 교감하는지, 또 템포의 뉘앙스 같은 것을 오케스트라에게 어떻게 암시하고 요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케스트라풍의 피아노 음악은 낭만주의 시대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바흐와 모차르트에게서도 대단히 오케스트라적인 악절들을 찾아볼 수 있고, 노년의 하이든도 <피아노 소나타 Eb장조>에서 갑자기 오케스트라적인 음향으로 기울었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들 중에도 오케스트라적인 경향을 분명하게 보이는 곡들이 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a단조, KV310>의 1악장은 교향곡적인 색채가 짙고, 2악장에서는 극적인 중간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곡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3악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분명한 관악기곡으로 볼 수 있지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또 대부분의 피아노 소나타들도 오케스트라적인 음향을 품고 있습니다. 리스트도 일찍부터 관현악곡의 음향을 피아노로 옮겨 심었지요. 그리고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은 억눌린 비르투오소에게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내고 피아노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답니다.

 

 

알프레드 브렌델, 슈베르트 소나타 D.899, 3악장

노년의 알프레드 브렌델이 슈베르트 소나타를 연주하는 영상. 모든 것을 피아노에 맡긴 것처럼 연주하는 이 영상은 브렌델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백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연주.

 

 

폴루이스, 슈베르트 소나타, D.940, 4악장

알프레드 브렌델이 도이치그라모폰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빛나는 피아니스트로 뽑은 폴 루이스. 그가 이모겐 쿠퍼와 함께 연주한 슈베르트 환상곡. 긴 연주만큼이나 풍부한 음표가 담긴 아름다운 환상곡. 끝가지 들어보길 권유.

 

빌헬름 켐프, 베토벤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

'밸런스' 파트에서 알프렌드 브렌델이 언급했던 빌헬름 캠프. 그가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17번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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