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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의 커피 칼럼 :: http://www.factoll.com/2013/05/beirut-cafe-daegu-1/

 

다방을 카페라고 부를 수 있다면, 미도다방과 하이마트는 최고령 카페안에 들어갈겁니다. 미도다방은 동성로 진골목에서 옛 모습, 옛 메뉴 그대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약차를 파는 다방입니다. 하이마트는 공교롭게도 아직까지 '다방'으로 분류되어있는 음악 감상실입니다.

 

두 장소는 카페와 음악을 좋아하는 저에게 언젠가는 꼭 찾아가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카페는 커피를 넘어서 지역과 함께 존재해야한다는 생각이 저를 미도다방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남는게 아무것도 없는 서글픈 나라에 살며 음악만을 오롯이 들을 곳이 그리웠기에 하이마트로 향할 수밖에 없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선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어느 도시 어느 곳 주인이 없는 땅은 없습니다. 국가는 도시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최대한 그것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덕분에 도시에는 빈틈없이 건물이 들어섭니다. 그리고 그것은 효용에 따라 철저하게 스러지고 다시 일어섭니다.

 

카페는 이렇게 삭막한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작은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커피 한 잔 값이면 사람들은 누구나 카페가있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카페를 통해 공간을 잠시동안이라도 공유하게 됩니다. 숨막히는 도시의 풍경은 카페를 가득 채우고 쉬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온화해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카페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커피를 파는 가게를 넘어선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생각하는건 지나친 일일까요.

 

오늘 소개할 두 공간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곳입니다.

 

대구 도심에는 다양한 사연을 담은 골목들이 많습니다. 진골목은 그 중에서도 옛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골목으로 유명합니다. 미도다방은 그런 진골목의 끝에서 진한 약탕향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미도다방은 2층에 있습니다.

 

올 봄에도 '입춘대길'입니다.

 

공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다방 그대로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원래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거죠.

 

우선 카푸치노를 주문합니다. 는 농담이고.

 

가장 맛있어보이는 쌍화차와 약차를 주문합니다. 각각 3천원과 2천5백원. 착한 가격이네요.

 

우선 쌍화차입니다. 약차를 베이스로 다양한 견과류와 계란노른자등의 쌍화차 건더기가 함께 우려져 나옵니다.

담백한 약탕은 재료가 품은 고유의 맛과 조화를 이룹니다. 건더기들의 다양한 식감은 마시는 이에게 한끼 식사의 포만감을 안겨줍니다. 밥같은 쌍화차 한 잔입니다.

 

약탕은 담백하기 그지 없습니다. 한약재의 향기가 그대로 우러나온 약탕의 향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약탕 한모금을 먹고 생각에 설탕을 가득 찍어 먹는게 정석이라고 합니다. 약탕의 향기가 은은하게 맴돌때 달달한 생강을 씹어먹으면 그리 오묘할 수 없습니다.

 

음료를 주문하면 서비스로 나오는 센베과자. 훌륭한 맛입니다.

 

자자, 요렇게 한 상 차리면 5천원입니다.

 

매장을 둘러봅니다. 약탕머신은 저렇게 생겼네요. 아마 국내산인듯합니다. 약탕머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재료에 들어가는 정성스런 손길이 깊은 약탕의 향기로 전해집니다.

 

브루잉 머신은 처음보는 녀석이네요. 커피는 시키지 않았습니다만, 노른자 동동 띄워주는 옛날 다방커피가 그리운 분들은 시켜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잡한 주방에는 핫 워터 디스펜서를 포함해 다양한 브루잉 머신들이 갖춰져있습니다.

 

포근한 실내. 다방을 애용하는 어르신들이 기증했을법한 서예 작품들이 벽면을 가득채웁니다.

 

넓고 쾌적한 다방 내부. 브금(BGM)은 흐르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소박하게 들리고 깊은 약탕향기가 남은 공간을 채웁니다.

 

 

편안한 소파는 쌓여있던 여독을 풀어줍니다.

 

잘 정돈된 계산대

 

창 밖 풍경입니다. 아쉽게도 진골목의 모든 상점이 다 운영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은 다시 새로운 용도를 찾아 나섭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이곳도 언젠가는 도시의 필요로 사라지겠죠.

 

정정한 어르신들이 찾아오는 미도다방만큼은, 이 골목에서 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합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중앙로로 향합니다. 1957년 문을 연 그 모습 그대로 중앙로를 지키고 있는 음악감상실 '하이마트'를 향했습니다.

 

독일어로 '고향'을 뜻하는 하이마트(Heimat)에는 가전제품 전문점으로 오인한 젊은이들의 전화가 종종 온다고 합니다. 하이마트(Hi Mart)나고 하이마트(Heimat)난거 아닙니다. 하이마트(Heimat)나고 하이마트(Hi Mart)났습니다.

 

대구역에서는 걸어서 15분정도. 중앙로 역에서 내리면 5분이면 하이마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시내 중심에 있어 깜짝 놀랬습니다.

 

하이마트 뮤직홀. 벌써부터 음악을 들을 생각에 마음이 설렙니다.

 

음악 감상실 밖으로 보이는 카페공간입니다. '마시는 곳'과 '듣는 곳'을 구분짓는건 하이마트의 소신입니다. 듣기만해도 바쁜데 어찌 마시고 먹겠습니까.

 

여기도 커피를 마시는 공간입니다. 감상실 내부는 어떠한 식음료도 반입금지입니다. 오직 음악만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주인장의 섬세한 배려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음악이 들리니 커피를 마시며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네. 카라얀은 클래식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성공을 위해 나치를 따르긴 했지만 훌륭한 지휘로 베를린필의 종신지휘자를 역임했고 최초로 디지털 녹음을하며 LP시대에서 CD시대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이끈 대단한 사람입니다. 덕분에 고전음악을 향유하는 공간에선 카라얀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에 실린 카라얀에 대한 설명으로 갈음합니다.

http://windshoes.new21.org/classic-karajan.htm

좋은 글이니 카라얀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가사를 옮겨놓은 팻말입니다.

 

O Freunde nicht diese toene! Sondern lasst uns angenehmere anstimmmen. und freudenvollere

오 벗들이여, 이 노래는 아니다. 이제 기쁨의 노래를 부르자, 환희의 송가를 부르자!

 

뭐 대충 이런 뜻입니다.

 

한켠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클래식 잡지 '객석'이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감상실로 향하는 입구.

 

 

흡사 영화관 의자를 떠올리게 하는 감상실 의자들. 정면에는 스피커만이 오롯이 서 있습니다.

 

한쪽 면에는 틀어주는 음악의 제목이 판서돼있네요.

 

벽면에는 다양한 음악가들이 가득합니다.

 

제가 찾았을땐 하이마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신청곡을 들을 수 있었죠. 음악이 나오자 주인장은 문을 닫고 조명을 어둡게 해 줍니다.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자리를 비워주시네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란덴브루크 협주곡을 신청합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LP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이리 보존이 잘 된 스피커로 듣는건 처음입니다. 공간을 가득채우는 소리에 압도돼 아무것도 못하고 음악만 들었습니다.

 

벽면을 가득채운 LP는 이 공간뿐만 아니라 윗층의 다락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습니다.

 

1대 운영자이신 김수억씨. 6.25때 가재도구를 팽개치고 평생을 모으신 음반들만 들고 대구로 향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음반이 상할까봐 쉽사리 이곳을 뜨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인의 뜻에 자식들은 대를 물려가며 이곳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이마트는 연중 무휴. 음악은 오직 가족만이 틀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거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2대 운영자 김순희씨는 말합니다.

 

칼 리히터의 브란덴 브루크 협주곡. 고민끝에 6번을 부탁했습니다. 아직도 귓가에 음악소리가 맴도는듯 합니다.

 

전성기였던 60년대 이후로는 찾는 손님이 급감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는 주변 학교의 음악감상반들이 손님이라고. 그래도 주인장께선 혹시나 언제라도 먼길을 찾아오는 손님이 허탕치지 않을까, 문을 닫지 않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음악을 듣는일은 쉬워졌지만 음악을 '제대로 듣는일'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언제부터 음악을 듣는게 이리 부수적이고 가벼운일이 됐을까요. 하이마트는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세월이 지나 더이상 들을 수 없는 음반들은 하이마트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음악만을 듣기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매일매일 장비들을 정검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있죠.

 

미도다방과 하이마트는 대구가 간직한 보물입니다. 카페라는 공간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던져줍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이 공간이, 대구와 함께 오래오래 늙어가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카페 견문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이 곳을 찾아 함께 공간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소중한 공간을 지키는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걸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미도다방 가는 길 - 대구 지하철 2호선 반월당역 16번 출구 이용. 덕산떡전골목을따라 쭉 들어간다. 고려인삼이있는 사거리를 지나 직진. '가창떡집'을 발견하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진골목길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좌측에 있는 미도다방을 만날 수 있다. 1호선 중앙로역 이용시 1번출구로 나와 직진, 경안빌딩을 끼고 우회전. 중앙시네마 옆길(진골목길)을 따라 이동하면 사거리가 나온다. 2층에 있는 미도다방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 66-1, 053-252-2599

 

  • 음악감상실 '하이마트' 가는길 -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이용. 2·28 공원 방향으로 이동(2번,8번출구 이용) 2번출구로 나올경우 나오자마자 좌회전. 길을따라 직진. 사거리가 나오면 다시 직진. 중앙공원이 보이면 우회전. 다시 사거리에서 좌회전. 카페프로모션이 보이는 사거리에서 성내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하이마트 간판을 볼 수 있다. 8번출구 이용시 2·28공원까지 직진. 공원을 끼고 우회전. 성내동 주민센터를 지나면 바로 하이마트가 보인다.
  • 대구 중구 공평동 16-21 3층, 053-425-3943, 연중무휴.
  • http://www.heim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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