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행 계획을 짜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우선 한 도시나 카페를 정합니다. 그리곤 그 도시에 있는 카페를 찾아보거나 그 카페가 있는 도시로 갑니다. 그리고 그걸 기준으로 주변에 있는 관광지나 숙소를 찾습니다. 아니면 카페에 가서 여행 계획을 마무리 하기도 하죠. 카페 주인이나 그곳을 찾은 사람에게 주변 맛집이나 여행지를 물어보는 방법도 언제나 좋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저의 여행에는 '커피'라는 주제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덕분에 카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고 뜻밖의 도움도 받게 되죠.

 

이번 여행은 경주-대구 카페들을 가보는게 목표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꼭 가보고 싶었던, 가야만했던 곳은 경주의 '커피 플레이스'였습니다. 커피 플레이스를 찾게 된 건 모두 그곳에서 주문한 원두 덕분이었습니다.

 

커피 플레이스에서 도착한 원두는 강배전 클래식 블렌드와 중배전 싱글오리진(제가 마신건 에티오피아 이디도)였습니다. 커피가 그렇게 맛있었냐구요? 사실은 그렇게 인상깊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강배전 클래식 블렌드는 배기가 약한 느낌이 들 정도로 스모키하기까지 했습니다. 커피 플레이스에 대한 오해가 생긴건 그 즈음이었죠. 그러다가 며칠후 다시 그곳의 커피를 이해하기 위해 함께 온 에티오피아 이디도를 마셔봤습니다.

 

그리고 전 망설이지 않고 경주행 KTX를 예매했습니다. 직접 가서 마셔봐야 하는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농담이 아닙니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경주까지 찾아왔습니다. 뒤늦게 마신 에티오피아 이디도는 훌륭했습니다. 신맛이 지배적일거란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중후한 바디에 고소함과 달달함이 감싸는 아주 매력적인 이디도였죠. 약배전에 신맛이 강한 인상을 풍기는 유행에 따르는 맛이 아니었습니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찾아간 커피플레이스 1호점. 고즈넉한 봉황대 앞에 위치해있더군요.

 

커피 플레이스 가보셨어요? 너무 좋아요. 카페에 앉아서 보면 봉황대가 보여요. 너무나도 평화로운 곳이죠.

 

정말로 커피플레이스 바로 앞에는 오래된 나무가 세그루나 자라고 있는 봉황대가 있었습니다.

 

풍경에 놀란것도 잠시, 카페로 들어서 주문을 합니다. 뭘 주문할지는 '커피 견문록'을 꾸준히 봐오신 분이라면 아시겠죠.

 

 

 

카푸치노를 한 모금.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보기드문 강배전에 스모키함까지 느껴졌던 커피는 사장님의 추출을 통해 초콜렛과 와인향이 깊은 클래식 카푸치노로 변신했습니다. 강배전 커피들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약배전 커피들에 익숙해졌던 입맛을 반성하게 되는 맛이었습니다.

 

강배전을 택한 이상 카푸치노는 뛰어난 향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신 묵직한 바디, 중후한 마우스필을 선사하죠. 우유와는 찰떡궁합입니다. 산미가 도드라지지 않는, 오일리한 카푸치노 한 잔은 커피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마실수 있는 맛을 자랑합니다.

 

이어서 마신 드립커피. 역시 중배전포인트입니다. 요즘 보기드문 멜리타 드립입니다.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하리오는 비교적 드립이 쉽습니다. 추출 디펙드도 적은편이구요. 그에 반해 멜리타는 컨트롤하기 상당히 어려운 드리퍼죠. 구멍은 똑같이 한 개지만 추출구가 작고 물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엘살바도르 한 잔은 융으로 내린듯한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역시나 중후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때마침 둘러본 카페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이 커피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맛이 커피플레이스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마신 사장님의 특별 에스프레소. 이디도 싱글로 내린 에스프레소였습니다. 팡 터지는 산미와 향긋함 그리고 짭짜름함까지. 이런 커피를 할 줄 모르는건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듯 했습니다. 서울 깍쟁이에게 주는 선물인것 같네요. 물어보니 원하는 손님에게만 서비스로 내려주는 커피라고 합니다.

 

커피에 감동을 했으니 이제 매장을 둘러봅니다. 논란이 있었던 시모넬리 아피아네요.

 

많은 카페들이 좋아하는 시모넬리 아피아.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번 내려보겠...

 

개인적으로 아피아는 참 훌륭한 머신이라고 봅니다. 일단 가격대 성능비가 훌륭하다는게 장점이죠. 게다가 개조하기도 편해 많은 바리스타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꿔가며 쓰는 머신이기도 합니다. 작동도 편리하고 스팀을 치기에도 좋은 구조죠. 누구나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머신입니다. 일부에선 일정한 추출을 하기엔 부족한 머신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야 머신을 잘 이해하기만 한다면 손쉽게 해결할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비포장도로에서 람보르기니보다 모닝이 훨씬 더 적합합니다. 긁힐가봐 조마조마하며 타는, 프리미엄 기름만 먹어대는 깍쟁이 벤츠보다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소나타가 더 좋을때도 있습니다.

 

 

안핌의 스테디 셀러 밀라노. 호퍼안에는 기름진 강배전 원두들이 보입니다.

 

디팅 그라인더. 개인적으로 디팅과 후지로얄은 애정하는 그라인더이기도 합니다.

 

커피를 처음 접하는 사람과 스페셜티 커피에 익숙할정도로 커피에 빠져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권할만한 글들입니다. 소설을 쓰고싶었던 사장님의 글솜씨는 이렇게 카페를 통해 발현됩니다.

 

커피가격에 대한 오해와 이해에 대한 글 부터 카페운영에 대한 철학까지. 카페를 찾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10g을 더 넣어주는건 애누리겠죠. 정이 넘치는 원두 판매입니다.

로스팅은 2호점에서 진행됩니다. 약간 개조가 된 태환 프로스타 1kg이 메인 로스터입니다.

 

멋진 필기체 글씨가 인상적인 커피들입니다.

 

 

더치커피도 마셔봤습니다. 달달하고 부드럽더군요. 좋아하는 분들은 드셔도 후회없을거라 보장합니다.

 

매장 안쪽으로 보이는 드립용 본막그라인더(카페 이심에서 사용하는 그라인더이기도 합니다),

베째라 줄리아 머신입니다.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거나 아피아에서 하지 못하는 다양한 실험추출을 위해 사용하는것 같네요.

 

 

매장 벽면에는 포근한 그림들이.

 

소박한 인테리어의 매장은 언제 찾아도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경주에서 커피 배우고 싶은 분들은 권하고싶은 수업이네요.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다들 사장님과 한 마디씩 합니다. 사장님은 바와 테이블을 오가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듯 손님들의 안부를 묻고 커피 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커피는 자연스럽게 경주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게 됩니다. 경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편안하게 커피 한 잔 하고 갈 수 있는 커피의 탄생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넓고 쾌적한 실내.

 

퍼즐이 있습니다. 사장님의 취미인것 같기도 하네요. 의외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퍼즐을 즐기다 가는 학생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책장에는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습니다. 하루키 책이 많아 물어봤더니 다 사장님 책이라고. 하루키의 소설보다 수필을 좋아한다는 점이 같아 한참 얘기를 나눴습니니다.

 

좋은 매장의 징표인가요? 매거진B 인텔리젠시아편은 호두커피, 헬카페에 이어 커피플레이스에도 등장합니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봉황대 앞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봉황대 앞에 불을 뽑는 봉황이 등장. 순간 놀라서 커피 잔을 들고 뛰쳐나왔습니다.

 

 

스페셜티 직거래 유기농 마이크로랏 착한 딸기주스.

과일만큼은 맛을 보장한다고하는 사장님. 경주 과일맛이 그렇게 좋다고 자랑을 하십니다. 매장에 오기 전 농장에 들러 집적 공수해오신다고. 이거야말로 착한 주스 아니겠습니까. 입안에서 딸기가 춤을 춥니다. 딸기 플레버에 딸기 아로마 스트로베리 마우스 필에 스트로베리 바디 그리고 딸리 에프터테이스가 인상적인 딸기주스입니다.

 

이래서 여기는 딸기플레이스가 됐다는 이야기가...

과음해서 헛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커피플레이스의 분점은 2호점 로스팅 전문점을 제외하고 모두 4곳.

컨설팅과 원두공급을 제외하곤 사실 독립적인 매장이라고해도 될 정도입니다. 분점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죠. 사장님의 경영철학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1호점 노동동점입니다.

매장에따라 메뉴는 상이할수 있다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는 지역화된 카페입니다. 로컬라이제이션이라고 하면 될까요. 동네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들의 입맛을 설득하는 커피가 가장 좋은 커피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리 유기농에 스페셜티에 좋은 머신에 트렌디한 요소들을 갖춘 카페라도 옆집사는 사람이 쉽게 드나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겠죠.

 

커피플레이스는 제가 찾은 카페중 가장 지역에 밀착된 카페였습니다. 오해가 있었던 강배전 블렌딩은 일부러 지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배기를 낮춰 뽑은 커피였습니다. 사장님의 철학이 담긴 추출은 결점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대구로 올라가기까지 둘러봤던 경주는 커피플레이스와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아니, 커피플레이스는 경주와 많이 닮은 카페였습니다. 좋은 카페가 무엇인가에 대해 의미있는 화두를 던져준 커피플레이스 사장님께 이자리를빌어 감사하단 말을 하고싶습니다.

 

 

  • 커피 플레이스 가는 길 - 경주 역전 삼거리에서 법원 경찰서 방향으로 직진, 신한은행 사거리에서 좌회전 300m정도 직진하면 봉황대 맞은 편 커피 플레이스를 발견할 수 있다. 경주 터미널에서 하차시 서라벌 문화회관 쪽으로 직진, 주유소를 지날때까지 직진. 봉황대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직진하면 된다.
  •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43-1, 010-2352-2573
  • 월요일-토요일 오전 10시반-오후 10시, 일요일은 휴무
  • 홈페이지 http://coffeeplace.kr
  • 2호점은 로스팅 전문점, 3-6호점은 분점으로 원두와 상호를 제외하고 차이가 있을수 있음

 

 

 

커피플레이스 1호점에서 머지않은 곳에 경주밀면식당이 있습니다. 국물이 담백하고 면발도 쫄깃허니 참 좋네요.

카페투어도 식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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