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운동장의 일이라면, 나는 이렇다할 기억이 없다. 그 주변 헌책방을 돌아다녔거나 생일날 아버지가 글러브를 사준다고 스포츠용품점을 들렀던게 기억의 전부다. 고교야구의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그 낡은 야구장 담벼락을 지나면서 나는 지난날의 함성을 들었고 늙은 아비의 추억을 읽었다.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문화 역사공원에 대해 건축가 (고)정기용씨는 이런말을 했다. '동대문 운동장, 그게 뭐냐. 서울의 자존심인가, 서울 시민의 자존심인가, 역사인가. 다 아니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자존심이다. 그 건축가의 자존심을 도시 한복판에 세우는 일에 우리는 수천억을 투자하는거다.' 심사위원들은 모르는 일이다. 그 운동장에 새겨진 함성과 성벽에 남긴 애환을. 그저 건축의 신세계로 나아가는 건축물로, 서울을 빛나게 하는게 그들의 심사 기준이었을게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건축가는 단순히 설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문화를 짓는 사람들이라고. 고 정기용씨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죽기 전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걸 나누고 가려는 모습을 담은 <말하는 건축가>라는 다큐를 보면서, 나는 눈물이 흘렀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의 마지막 장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건축물이 있기 전, 그곳은 너른 벌판이며 자연이었을것이라고. 그곳에 터를 잡고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일은 겸손함이 함께 해야 한다고. 자연의 일부에 인간의 건축물을 들여놓는 일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역으로는 건축물을 철거하는 일에도 우리는 겸허해야하고 신중해야 한다.

 

황정은의 소설집 <파씨의 입문>에 실린 '옹기전'이란 소설을 선물받았다. 친구는 나에게 이 책을 주며 옹기전에 담긴 이야기의 저변에는 용산이 있을거라 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줍게 된 옹기는 '서쪽에 다섯 개가 있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옹기의 말을 따라 떠나는 화자는 재개발되고 있는 도시의 풍경들과 마주한다. 다섯개가 용산참사로 스러진 다섯명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을 읽은지 얼마 안지나 용산 재개발이 부도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김중혁의 단편소설집 <일층/지하일층>은 재개발에 미친 도시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다. 오래된 건축물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크라샤'는 세월이 지나면 남는게 없는 서울을 그리게 하는 영화였다. 빈티치풍의 카페를 위해 고가구를 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교차하는 건물이 사라지는 마술 장면은 우리의 건축철학을 되묻는 장면이었다.

 

카페 투웰브피엠의 일부터 해방촌 콩밭로스터까지.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실때에도 부동산을 걱정해야했다. 오랫동안 한곳에 뿌리 박고 살아남는 카페들이 없음에 슬퍼했다. 세월이 지나서 다시 그곳을 찾아 블렌드 한 잔 시키며 추억을 더듬을 카페가 없을것이란 사실에 가슴아파해야했다. 건축학자 임석재는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에서 미국의 마천루들이 역사와 철학의 빈곤에 비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나는 카페에서 그 구절을 읽으며 역사와 철학은 물론이요 기억조차 잡아먹는 이 도시의 재개발에 치를 떨었다. 르 꼬르뷔지에의 새도시 건축계획은 철학이라도 있었다. 

 

3월 한달의 독서목록은 건축으로 시작해 건축으로 끝났다.

때마침 일어난 카페에서의 사건들은 책을 읽는데 도움을 줬다. 황정은의 <파 씨의 입문>, 임석재의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알랭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김중혁의 <일층/지하일층>. 이 네권을 마무리함에 나는 <말하는 건축가>라는 다큐를 추천한다. 자신이 설계한 목욕탕 앞에서 할머니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문화를 짓는 건축가의 인생은 큰 귀감을 줬다. 건축물에 감사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마음, 자연의 땅 위에 새워진 모든것들에 대해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3월의 독서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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