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커피를 마시는게 아니라 부동산을 마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재개발의 망령이 든 서울의 5년은 처참했습니다. 용산과 두리반의 투쟁은 부동산, 재개발과의 싸움이었죠. 홍대카페 투웰브피엠도 말도 안되는 세입자에 대한 법과 재건축에 대한 광기 덕분에 내몰리게 됐습니다.

 

건축학자 임동우는 사회주의 도시를 분석한 자신의 논문(책으로 출판된 바 있죠)에서 자본주의 도시건설의 맹점을 꼬집습니다.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개인이 소유한 토지가 가장 중요한 세금 수입원이기 때문에 도시계획에 있어서 세금을 써야하는 공공영역을 최소화하면서 세금을 매길 수 있는 사유 토지를 가능한 한 최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획의 논리였다. 이는 개발에 필요한 대도로 등의 요구를 낳았고 공공영역이나 녹지공간은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19페이지, 효형출판)며 자본주의 도시개발의 문제를 꼬집었습니다. 서울은 이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축에 속합니다.

 

30년이 넘은 카페가 즐비한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10년 넘은 카페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많은 카페들이 부동산에 큰 비용을 허비하는동안 질적인 성장도 더뎌졌구요. 지금도 훌륭한 카페들이 건물주와 대립하고있거나 월세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습니다.

 

해방촌은 남산자락 바로 아래 위치한 달동네 마을입니다. 해방후 월남민들이 모여살았기에 그 이름이 붙었습니다. 유독 높은 언덕을 자랑하는 해방촌은 아직도 3000원이면 배를 채울수 있는 식당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서울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도 서울같지 않은, 기묘한 동네죠.

 

서론이 너무 길었나요. 해방촌을 찾기로 한 건 콩밭 메는 아낙네가 그리 참하다는 얘기를 들은 후였습니다. 봄바람에 기분이 좋아진 저는 4B 연필보다 짙은 흑심을 품고 해방촌으로 향합니다.

 

생활커피(생커활피 아닙니다) 콩밭로스터즈는 보성여·중고 앞에 자리잡았습니다. 녹사평역에서 걸어갔는데, 만만찮은 산행이었습니다. 마을버스 타시길 권유합니다.

 

두근두근, 아낙네를 만나기 전 커피 가격을 확인합니다. 핸드드립 커피가 삼천오백원입니다. 해방촌의 물가를 반영하네요. 커피가격은 비정상적으로 저렴하고 와이파이도 무료입니다.

 

여기서 제 흑심은 무너집니다. 노동자 아낙네는 남자였습니다. 쿵.

 

안그래도 휴일이라 민감한데 결재판이 날라드네요.

 

펼치니 메뉴판이. 검은커피가 마시고싶어 내리는 커피를 시킵니다. 원두 목록을 확인하니....

 

스페셜티, 마이크로랏 커피가 즐비합니다. 아니 근데 이게 모두 삼천오백원이라니. 말이됩니까 이게.

아리따운 아낙네를 만나는데 실패했지만, 원두리스트를 보고 다시 두근거림을 회복합니다. 스페셜티 커피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주목받은 과테말라의 우에우에테낭고 커피를 주문합니다. 아, 삼천오백원이야...

 

주문하고 가게를 둘러봅니다. 머신은 소박한 가정용 브레빌머신입니다. 그라인더는 바리오. 사실 넓지 않은 매장에서, 에스프레소가 주력상품이 아니라면 선택할 수 있는 라인입니다.

 

소박한 주방에는 깨알같은 커피용품들이 가득합니다.

 

얼음을 깨는 기계와 그라인드 마스터라는 미국제 그라인더가 눈에 띕니다. 살짝 에어로프레스도 보이네요.

 

로스터는 자작로스터입니다. 저기 저 아래에 이어진 랜선같은 선은 온도를 컴퓨터에 옮겨주는 역할을 합니다. 프로파일을 잡기위한 목적인것 같네요.

 

미싱앞에 놓여진 물잔들. 알고보니 콩밭커피 지하에 미싱공장이 있다네요. 아직까지 미싱공장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심지어 공장 사람들이 종종 커피마시러 놀러온다고 하네요.

 

 

주문한 과테말라입니다. 인헤르토입니다. 기계들을 쓰윽 살펴보고 별 기대를 안했습니다만, 제 실수였습니다. 커피맛은 훌륭했습니다. 과실향이 그득합니다. 자두의 단맛이 느껴지네요. 클린컵이 좋습니다. 좋은 생두도 생두지만 로스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3천 5백원에 이런 커피는 절을 두번하고 마셔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로스팅프로파일을 적는 종이가 눈에 띄네요.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로스터기에서 이어지는 저 하얀선이 바로 이 컴퓨터에 입력이 됩니다. 구글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로스팅 프로그램에 연결된 온도 입력장치는 로스팅이 진행되는동안 그래프를 그려줍니다. 콩밭로스터 아낙네는 매 로스팅마다 프로파일을 기록하고 공부합니다.

 

'농부들이 어렵게 재배한 커피, 실수해서 잘못볶으면 아깝잖아요. 소중히 여겨야죠'. 아낙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로스팅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맛있는 커피를 홀짝이며 아낙네와 수다 한 판. 음악취향이 비슷해 신났습니다. 해방촌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커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 사셨던 적이 있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네요. 그 동네엔 오래된 영화관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쉬는시간도 있었고 방음도 안되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영화관에 대한 향수를 나누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남는것이 없는 도시에 살고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엘피도 트는군요.

 

영화를 공부하셨다고. 롤랑바르트의 책이 보입니다. 모두 읽었던 책이라고 합니다. 허세 작렬하며 아무책이나 꼽아놓은 몇몇 카페들하고 비교가 됩니다. 책 목록은 훌륭합니다. 책없이 가도 될 것 같네요 .옆에 디브이디 타이틀도 재미있습니다.

 

아낙나에게 커피하나를 더 주문합니다. 이번엔 브라질. 향이 좋습니다. 시트러스가 느껴집니다. 감귤류의 단맛이 깊게 느껴집니다. 약배전된 커피라서 가벼운감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클린컵이 훌륭한 콩밭의 커피들입니다.

식어도 신맛이 솟아오르지않아 거부감도 들지 않구요. 다시 한 번 삼천오백원에 이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합니다.

 

요즘 커피 좀 한다는 집들은 아즈텍 핫초코를 내놓죠. 달기보다 카카오의 깊은맛이 일품인 초콜렛입니다. 역시 맛있네요. 잔도 인상적입니다.

 

 

 

훌륭한 그림들.

 

선반작업은 물론 모든 인테리어를 손수 하셨다고. 소품들도 애장품들을 가져다 놓은거라 합니다.

 

엘피는 모두 대학시절에 모았다고 합니다.

아낙네는 센스가 넘칩니다. '칠갑산'의 첫소절에 등장하는 아낙네 곁에는 '커피 한 잔'에 등장하는 새카만 김상사가 지킵니다. 어이쿠!

 

하이커머셜, 마이크로랏, 스페셜티 커피는 이렇게 핸드픽 작업을 거쳐 콩밭 로스터의 로스팅을 맞이합니다.

 

네, 맞는 말이죠.

 

바지를 내렸다가 혼쭐났습니다.

 

아이패드의 초기버전(?)입니다. 저 두 휠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는데, 아이큐와 이큐가 상승.... 하기는 커녕 성질이 뻗쳐서 죽는줄 알았습니다.

 

수다 떠는 사이에 팔려간 원두. 아, 저도 사올걸 그랬습니다. 집에와서 원두가 모자르다는걸 파악.

 

결제판 옆에 있는 참기름병... 아니 더치커피를 발견합니다.

 

이것은 참기름병이 아니다.

 

맛있는 베이커리입니다.

 

연고도 판매하네요.

 

좋은 생두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아낙네는 친절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왔으면 좋겠어요. 좋은 생두 쓰는게 아깝지는 않아요. 어차피 썩으면 똥되는건데. 맛있게 볶아서 나누면 좋잖아요'

 

아낙네의 마음씨에 반했습니다.

 

어스름이 질 때 즈음 해방촌 골목골목을 살펴가며 다시 녹사평역으로 내려왔습니다. 찾아가기는 힘들지만, 힘을 들여서라도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카페를 만났네요.

 

 

  • 콩밭커피로스터즈 가는길 -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5번출구, 녹사평역 2번출구에 나와 마을버스 용산 2번에 탑승합니다. 해방촌 5거리에 내려 보성여중고 방면으로 올라가다보면 왼편에 낮은 간판의 콩밭로스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보성여중고입구(정류소번호 03-171)로 가는 버스(402,405)나, 해방촌(마을버스 용산2번)을 가는 버스를 타고 보성여중고 방향으로 가는것도 좋은 방법.
  •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 34-1 1층, 010-2649-5841
  • 월-목 11시부터 18시30분 까지, 금-일 11시부터 23시까지, 월요일 종종 휴식 트위터 참조. 
  • Twitter - @kongbat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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